조그만 2인용 테이블 앞에 다른 사람이 서서 뭔가를 꺼내고 있으면, 그 맞은편 자리에 앉을 때 합석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앉는게 예의 아닌가...
이 간단한 의문이 오유를 접게 만들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_-;
회원 가입한지는 일년 좀 넘었을 뿐이지만 눈팅경력은 5~6년은 넘었고, 글도 30개 넘게 베오베로 보낸지라 나름 애착이 강한 커뮤니티였는데 이렇게 접게 되니 착잡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 글쓴이와 무개념녀가 "거의 동시"에 2인용 테이블에 도착
2. 무개념녀가 뭔가를 꺼내느라 테이블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글쓴이가 자리에 앉아 식사 시작
3. 무개념녀가 글쓴이가 앉은 것을 알아차리고 "거기 자리 있는데요" 시전. 글쓴이는 "거의 동시에 왔는데 먼저 앉아먹는 사람이 임자 아닌가?" 반문.
4. 무개념녀가 패거리와 함께 뒷담화 시전. 평소에도 자리맡기 하던 무개념들임
뭐,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그냥 무개념녀 패거리 욕하고 넘어가면 간단한 일이지만, 저는 뭔가 좀 이상하더군요.
거의 동시에 같은 테이블에 도착했는데 글쓴이를 못 보고 자기 먹거리나 꺼낸다? 눈 가리고 앉은 것도 아닐텐데...
그래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글쓴이 답장으로 올라온 게...
이 답장으로 미뤄보면 무개념녀가 도착하기는 한발짝 먼저 도착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콜로세움이 시작됩니다. -_-;
1. 제가 잘못 판단한 거라면 대형학원 휴게실이 굉장히 특수한 공간이라는 거죠. 이 점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중고딩시절 내내 동네 조그만 학원만 다니고, 커서도 외국어 학원 다닌 게 전부인지라 대형학원 휴게실은 사람 많아서 저런 조그만 자리에 합석할 때도물어보지 않고 앉는게 당연하다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콜로세움 중후반에 대형 학원 휴게실의 특수성에 대한 설명글이 올라오면서, 특히 '이런 곳 다니는 사람들은 다 신경 예민하고 날카로워서 말 시키는 것 자체가 민폐다'라는 댓글이 올라올 때는 이거 뭔가 특수한 동네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상황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제가 겪어보지 못한 환경이니 그런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2. 35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 절대 다수가 제게 '난독증 환자' 타이틀을 붙여주더군요. "본문에 써놨잖아! 동시에 도착했다고!" "동시에 도착했다고, 동시에!" "본문좀 제대로 읽어!"라는 내용인데, 이미 말했다시피 그 동시에 도착했다는 부분에서 의문을 가진 거고, 작성자도 자신이 한발짝 늦게 도착했다고 했지요. 실수라면 글 한개 올릴때마다 제게 난독증이라는 새 글이 우루루 올라오는지라 그냥 '댓글도 제대로 읽지 않고 난독증 운운하는 사람들은 무시하자'라고 생각했던게 실수겠지요. 그런데 이게 쌓이고 쌓이니까 "저 놈은 본문도 제대로 안 읽고, 댓글도 자기 읽고 싶은 것만 읽는 난독증 환자다"라는 이미지로 고정되더군요. 누군가를 비판이건 비난이건 하기 전에 당사자가 올린 글은 최소한 꼼꼼하게 읽고 나서 공격하면 좋겠네요.
3. 난독증 환자와 더불어 얻은 또 하나의 타이틀은 '사대주의자'네요. 혹은 미국뽕 맞은 관심종자라거나.
이 두 리플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는 미제국주의자가 될 줄이야...
일단 변명을 좀 하자면 중간에 "안 물어보고 합석한다"는 댓글이 꽤나 올라와서 '5년만에 한국 문화가 바뀌었나'라는 쇼크를 먹어서 그런 것도 좀 있습니다. 원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물어보고 앉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시민의식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며칠 전에 다른 커뮤니티에서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 차에 태워서 안전벨트 매주는 동안 시간이 지체되어도 뒤에서 빵빵거리는 것 좀 자제해 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는데, 여기에 제가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스톱사인 펼치면 양쪽 차선 차들 다 서야 합니다. 이런 건 좀 본받으면 좋겠네요"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출근시간에 지각하면 책임질거냐" "교통체증은 어쩌고"라는 반응을 보여서 놀랐었죠. 효율을 안전보다 중요시하는 바람에 국가적 비극이 생긴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댓글들이 올라오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게 시민의식 차이인가 싶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의료민영화나 총기규제 자율화를 들여오자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에티켓을 잘 지키는 것 좀 본받자는 말에 시민의식이라는 단어 썼다고 줄창 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뭐.... 대략적인 전개는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신고 누적으로 차단을 먹었고, 차단을 먹고 나서 이의신청을 해서 하루만에 차단이 풀렸고, 차단이 풀리자마자 다시 신고로 인해 광속 차단을 먹었습니다. -_-;
일베가 생기기 전 대막장 시대의 디씨에서 2박3일로 콜로세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나름 결론이라던지 입장 차이의 이해라던지 얻는 것이 있는지라 토론이건 논쟁이건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는데, 이번엔 별 수가 없네요.
토론에서 비매너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분위기 잘못타면 차단이 된다는 건 좀 충격입니다.
세컨드 아이디 파서 계속 글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15년 넘게 니트로라는 닉네임을 인터넷에서 써 오면서 최소한 얼굴 마주보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는 글만 올리자는 생각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연속차단을 당하니 오유에서의 니트로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렵니다.
그럼 다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