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날이 오니 부처의 사상이 흥하네요.
나란 영원하지 않고 모든건 항상있지 않으니 결국 무상, 무아이고 나란 없다고들 하는데요
이렇게 본다면 나라는건 없는게 아니라 없어지는 것입니다.
순간으로 보세요. 나란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이 순간에 수많은 세포들이 이렇게 결합하여서.
'나'의 정의도 내리지 않은채 '나'를 찾으니 무엇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시대의 '나'의 정의는 윤회하는 '나'입니다. 당신의 '나'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글을 쓰게된건 밑의 글 <[만화]'태세우스의 배' 패러독스> 게시판에 댓글을 쓰다각 너무 길어져서입니다.
보통 배의 핵심은 용골이라하여 이부분이 못쓰게 되면 그 배는 죽었다고 봅니다. 만약 이 용골을 그대로 놔두고 다른 부품들만 교체한다면 그배는 그배로 그대로 살아있는 겁니다. 인간도 뇌를 두고 다른 신체부위만 교체한다면 내가 살아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골이라는 물질은 분해하여 부위별로 떼서 교체하거나 복사시킬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뇌가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도 가능하다치고 뇌를 한번 분해해 봅시다. 소뇌, 대뇌, 시상하부, 측두엽, 두정엽 등 수많은 뇌 부위가 있습니다. 이젠 이 수많은 뇌 부위들이 하는 역할을 알아야 합니다. 운동기능, 감각처리기능, 언어기능, 학습기억기능, 항상성유지, 호르몬분비가 있다고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처가 알려준 '나'인 색,수,상,행,식으로 비교를 해보면 색은 기능을 말하는게 아니라 물질인 몸 전체를 말하니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각각의 뇌의 형태로 볼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는 느낌이니 호르몬분비, 항상성유지, 감각처리기능으로 볼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상은 생각이니 언어기능으로 볼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은 의지이니 운동기능으로 보고, 식은 의식이니 학습기억기능으로 대충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실 부처의 기준은 더 심오합니다. 이렇담 보통 우리들은 나란 식, 의식, 학습기억기능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음을 담당하는게 그녀석들이기 때문이죠. 그렇담 나란 학습기억기능을 하는 뇌 부위만을 말합니다.
이제 이 부위의 뇌를 분해해 봅시다. 자 어느 기억부위가 '나'인가요? 어릴적 아름다운 추억 속의 나? 어제 화장실에서 똥을 싸며 핸드폰을 만지적 거리던 나? 오늘 뇌를 이렇게 해부당하기 직전의 나? '나'는 지금 해부당하고 있는게 '나'입니다. 과거의 기억은 '나'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이 기억들은 현재였던 '나'를 통해 나오니 현재의 흔적일 뿐입니다. 지나가는 기억들은 나를 이루는데 일조하지만 팔과 다리처럼 그렇게 핵심적인 것은 아닙니다.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청소년시절 배웠던 교육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들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살아있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란 지금, 현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게 나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현재의 '나'를 이끌어낼 수 있을려면 뇌의 모든 부위와 신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란 수많은 세포들이 결합된 숲이지만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면 점차 숲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도 사라집니다. 몸의 주요 세포들은 팔과 다리에 있는 세포보다 더큰 범위의 숲을 차지하니 내 팔이 잘리면 보기 흉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숲의 98% 나무를 가진 머리가 잘리면 그건 더이상 숲, 나로 부를 수 없습니다. 그 숲은 죽었기때문이죠. 또한 잘린 팔이 떨어지면 그것은 '나'가 아니지만 성공적인 수술을 하여 다시 붙히면 '나'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나'란 빽빽한 나무들이 꽉찬 숲처럼 수많은 세포들이 결합되어 있는 지금, 현재의 나입니다.
이번엔 나를 한번 복제해봅시다. 이건 뭐 길게 말할 것도 없네요. 복제된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저 또다른 '나'의 주체가 만들어진 것이죠. '나'와 또다른 '나'가 생긴것 뿐입니다. 너와 다를바 없죠.
마지막으로 복제한 부위를 이식해 봅시다. 몸부위는 제쳐둡시다. '나'의 핵심은 배의 용골처럼 뇌이기 때문입니다. 뇌에서도 나라고 불릴 수 있는건 학습기억기능이 있는 부위입니다. 이 부위만 쏙 바꾸어 놓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바꾸는건 상관이 없지만 기억을 하는 학습부위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게 가능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관점은 아직 유물론을 따릅니다.
요즘 불교공부를 하면서 불교사상과 인도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공통되는 윤회라는 개념과 그 윤회를 주관하는 정체에 관해서 명확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고대의 넉넉한 생활과 시간으로 하루종일 명상에 잠겨있던 현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겪고 무엇을 깨달았던 걸까요.
또한 나를 이루는 수많은 세포를 어떻게 보아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 세포들도 주체가 있는 '나'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 그렇게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몸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처럼 '저'는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무엇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요.
자연을 이루는 먹이사슬처럼, '나'는 과연 다시 어딘가로 돌아오게 될까요
자, 여러분의 '나'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