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12월에 개인전을 열게 된 최승윤작가입니다
위치는 위에 포스터에도 나와있지만
대전입니다
'고양이 낮잠'이라는 카페 안에 갤러리 공간이 따로 마련 돼있습니다
작은 갤러리지만
제 작업 전시를 가능하게 해줘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전사시는 오유분이 혹시 계시다면
카페에서 차도 한잔 하시고 (이쁜 고양이도 많아요 ㅎ)
전시도 한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어요 ㅎ
위치는 이곳입니다~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ㅎ
현재 저는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중입니다
010-5025-7263
작가노트는 꼬릿말에 써놓을게요~ㅎ
세상의 시작은 물질적인 시작은 아니었다. 물질이 폭발해서 지금의 우주가 생겨났다면 그 물질이 존재하기 전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의 시작 전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無 ’가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개념은 반대인 ‘有’의 개념이 있어야만 존재가 가능하다. 반대로 ‘有’가 없다면 ‘無’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당연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인 관계인데, 이러한 개념적인 역설을 풀지 못해 세상은 깨어진 균형 속에 태어났고 현재까지도 이 개념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세상은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팽창 중인 우리의 현실은 두께가 없는 ‘완벽한 평면’ 속에 존재한다. 無와 有사이에는 서로를 대립하기 위한 개념적으로 가장 완벽한 평면이 존재하는 데 그 안에 실존할 수도 있고 허상일지 알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존재한다. 사실 극우와 극좌는 한끝차이고 생과 사는 같은 것이듯 無와 有는 서로 반대지만 본질을 같이 한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반대의 성질이 합쳐진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밀려고 해도 균형은 다시 맞춰지려 한다. 마치 시소처럼 찰나의 순간에만 균형이 맞게 되는데 그 잠시가 탄생의 시발점이 된다.
때문에 우리 세상은 ‘역설’에서 시작해 ‘역설’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 생명을 탄생시키고, 암흑 공간 속에 불타는 항성이 있고 그 사이 절묘한 위치에 있는 행성만 생명을 만들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육체와 만질 수 없는 정신이 만나 인간을 이룬다. 생과 사는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잠(간접적 죽음)을 자며 삶과 죽음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내 그림은 이러한 세상의 질서를 담고 있다. 역설의 균열에서 시작된 그림은 균열을 메우기 위해 확장되고 자신이 영원할 것처럼 생명력을 뽐낸다. 하지만 탄생은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림을 나는 정지시키려 한다. 그 정지의 느낌이 완성됐을 때,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정지와 활동의 느낌을 동시에 담은 역설의 존재가 되며 다시 생명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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