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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3959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9
    조회수 : 3337
    IP : 210.99.***.18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1/04/12 10:44:05
    http://todayhumor.com/?panic_13959 모바일
    [펌][단편,브금]장미의 마술사


    "자! 이번 순서는 세계최고의 관통 마술사 리처드 브라포드입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마술사 리처드는 두명의 미녀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경쾌한 스페인 음악이 울려퍼지며 화려한 조명이 작렬했다. 검은 색 정장과 실크햇 차림으로 등장한 리쳐드는 환호하는 관객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특유의 얼큰하게 술에 취한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점잖은 차림과 콧수염, 적당히 취한 핸섬한 중년신사라는 캐릭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리처드는 마술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통관통 전문 마술사였다. 그의 옆에는 20살 정도 되어보이는 앳된 소녀 루시아와 마흔 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왕년의 미모를 간직한 수잔나가 섹시한 수영복 차림으로 미소지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리처드는 능숙한 솜씨로 루시아를 관에 눕히고 뚜껑을 닿았다. 루시아는 관에서 얼굴과 팔다리만 내 놓은 채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물론 각본에 짜여진 대로였다. 리처드는 시끄럽다는 표정으로 루시아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수잔나에게 손짓을 했다. 수잔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미리 준비된 12개의 긴칼을 내놓았다.

    리처드는 수잔나에게 칼을 하나씩 넘겨받아 차례로 루시아가 갇힌 관에 찔러넣었다. 칼은 관을 그대로 관통하여 반대편으로 삐져나왔고 그때마다 루시아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리처드의 통관통 마술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루시아의 배 부위에서 위에서 아래로 곧장 칼을 찔러넣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각도 상 인체를 관통하지 않고는 어떤 트릭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에 다른 마술사들 사이에서도 신비로 통했다.

    그러나 리처드가 관에 꽂힌 12개의 칼을 모두 뽑고 관 뚜껑을 열자 루시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상큼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에는 칼날이 스친 흔적조차 없었다. 학대당하는 미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쾌감에 취했던 관객들은 정신을 차리고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주었다. 리처드가 두 미녀 사이에서 음탕하게 웃음지으며 마무리 인사를 하자 스테이지의 커튼이 닫혔다. 커튼 뒤로 요란한 박수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와하하하 수고했네 대성공이야! 리처드! 자네는 정말 천재적인 마술사야. 어떤가? 아예 우리와 일년 전속으로 계약하는게?"

    뚱뚱한 단장은 얼굴 가득 희색을 띄우며 흡족해 했다. 지난 일주일동안의 공연으로 리처드가 이 라스베거스 마술쇼에서 벌어들인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내년 2월달 까진 공연예약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달 말까지라면 가능하겠군요"

    리처드는 공손하게 사절을 했다. 사실 리처드는 일년에 200회가 넘는 공연으로 숨돌릴 틈조차 없었다. 거기다 세계각국의 텔레비전 방송출연까지. 한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그의 앞날엔 황금빛 성공만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정말로 그의 손은 돈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리는 듯 했다.

    "흠..이번달 말? 아쉽네만 어쩔 수 없지. 내일도 오늘같이만 해 주게. 가능하면 관통마술 말고 다른 레퍼토리도 하는 것이 어떤가? 돈은 당초 계약보다 50%를 더 주겠네"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팀에는 우수한 젊은 매지션이 많이 있으니까요. 이봐 알렉! 굼벵이 같은 녀석! 썩 오지 않고 뭘 꾸물거리는 거얏!"

    리처드의 호통에 20살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달려왔다. 리처드가 운영하는 마술극단의 청년 마술사였다. 검은 곱슬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잘생긴 청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무거운 마술자재를 정리하느라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맷혀 고불고불한 앞머리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녀석이 아직 나이는 어려도 실력은 왠만한 프로마술사보다 낫습니다. 제 밑에서 배운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었으니까요. 알렉! 연습은 충분히 했나?"

    "아..네..거..거의.."

    "거의? 거의라고! 그런 말이 어딧어! 멍청한 자식! 마술사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카드를 떨어뜨릴 바에야 차라리 팬티를 벗는게 덜 치욕스럽지! 완벽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를 생각도 하지 맛! 알았나? "

    "네..넷!"

    알렉이 자기자리로 돌아가고 나자 리처드는 단장과 함께 술을 한잔하러 밖으로 나갔다. 리처드의 옆에는 루시아가 팔짱을 끼고 종종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수잔나는 대기실 한쪽 구석에서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수잔나가 리처드를 처음 만난 것은 20년 전이었다. 당시 풋풋한 20대였던 수잔나는 늙고 가난한 마술사의 아내였고 그녀보다 1살 연하였던 리처드는 남편의 제자였다. 그는 노름빚 때문에 고향에 아내와 갖난 딸을 남겨두고 도망치고 방랑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거리 공연에서 늙은 마술사의 공연을 보고 반해서 제자가 되기를 청했던 것이다. 리처드의 재능은 뛰어났다. 채 일년도 지나기 전에 그는 늙은 마술사의 대부분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그 한가지는 장미꽃을 이용한 화려한 마술이었는데 아무 장치도 없는 손에서 커다란 장미꽃다발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지곤 하는 마술이었다. 그 비법은 늙은 마술사만이 알고 있었다. 이 마술만큼은 공연준비도 리처드나 수잔나의 도움없이 혼자서 할만큼 비밀유지에 철두철미 했다. 눈썰미가 뛰어난 리처드로서도 도저히 이 비법만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어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빚을 갚고 아내와 딸을 되찾아야한다는 삶의 목적이 있었다. 늙은 마술사는 마술 기술은 뛰어났지만 돈버는 수완은 별로였다. 마술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길 뿐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달랐다. 그는 야심만만했고 실력도 있었다. 장미 마술의 비법만 알아내면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수완으로 세상의 돈을 긁어모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우선 수잔나에게 접근해서 유혹했다. 한창 나이에 늙은 마술사와의 가난뱅이 떠돌이 생활에 진력이 난 수잔나는 젊고 멋진 리처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남편 몰래 리처드와 정을 통한 수잔나는 틈이 날 때마다 장미 마술의 비밀을 캐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쉽게 알아낼수 없었다.

    조급해진 리처드는 수잔나와 짜고 늙은 마술사를 죽여버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늙은 마술사만 죽어버리면 젊고 예쁜 수잔나와 마술사의 약간의 재산은 모두 그의 차지가 될 터였다. 리처드의 장밋빛 약속에 눈이 멀은 수잔나는 남편 몰래 장미의 가시에 맹독을 발라놓았다.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마비되고 곧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예상했던 데로 늙은 마술사는 장미마술을 준비하다가 가시에 스쳐서 독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병든 코끼리처럼 쓰러졌다. 수잔나가 달려갔을 때 마술사는 이미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그는 생명의 불빛이 꺼져가는 눈빛으로 수잔나를 바라보았다.

    늘어진 눈꺼풀 속의 에메랄드빛 맑디 맑은 눈동자 속에는 어떤 원망의 빛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눈빛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수잔나와 리처드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수잔나의 마음속에 연민의 정과 후회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오..내가..내가 무슨 짓을..흑 여보 잠시만 기다리세요 해독제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늙은 마술사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간신히 움직이는 입술을 열어 뭐라고 말했다. 그의 입에 귀를 대고 듣던 수잔나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리처드가 뒤늦게 들어왔을 때 마술사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리처드는 장미 마술의 트릭을 알아내려고 창고를 온통 헤집어 놓았지만 독이 묻은 장미다발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늙은 마술사의 죽음과 함께 장미 마술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수잔나와 리처드는 유럽전역을 떠돌며 싸구려 마술쑈로 연명했다. 언젠가 리처드가 자신의 고향에 들른 적이 있지만 이미 아내는 홧병으로 자살하고 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리처드는 그의 모진 삶을 지탱해주던 실이 모두 끊어진 듯 자포자기한채 술로 인생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술만 먹으면 수잔나를 때리고 학대했다.

    수잔나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홀몸이 아니었다. 싸구려술집에서 만삭인 몸으로 리쳐드와 마술쑈를 끝내고 그날 저녁 여관방에서 태어난 아이가 알렉이었다. 알렉은 리처드의 아들이 아니라 늙은 마술사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간 분신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리처드는 알렉이 태어난 후 수잔나를 더욱 못살게 굴었다. 하물며 알렉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알렉은 리처드를 아버지로 알고 또 마술사로서 존경하고 따랐으나 리처드는 알렉을 기르는 개만도 못하게 여겼다. 사사건건 트집잡고 야단을 쳤지만 그럴수록 알렉은 행동거지가 똑바르고 마음씨가 고운 청년으로 자라났다.

    마술사의 피를 타고 나서였는지 알렉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깨너머로 마술을 익혀서 어느새 리처드와 버금하는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남다른 알렉의 재능에 위협을 느낄수록 리처드는 알렉과 수잔나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리처드가 수잔나와 헤어지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더할 나위없이 유능한 마술 조수였기 때문이었다. 관속에 누워서 칼로 몸을 관통하는 마술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면 안심할 수 없었다. 리처드는 관통 마술을 특기로 삼아 점차 독보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리처드의 기술은 더욱 세련되어졌고 그의 이름도 차차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이 수잔나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미모는 세월과 함께 시들어 갔고 리처드는 늘 새로운 여자조수들과 바람을 피웠다. 요즘은 어린 루시아에게 흠뻑 빠져서 수잔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루시아는 조각처럼 야무진 얼굴에 성격도 대차고 똑 부러졌다. 루시아만 무대에 서면 남자 관객들은 쑈도 시작하기도 전에 자지러 졌다.

    수잔나는 자신의 축 늘어진 몸매과 루시아의 생기 넘치는 늘씬한 몸매을 비교해 볼 때마다 심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얼마전 수잔나는 창고에 자재를 가지러 왔다가 우연히 리처드와 루시아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리처드가 루시아의 어깨를 끌어안으려고 하자 루시아는 한사코 거부하다가 결국 그의 품에 안겨 얼굴을 부볐다. 수잔나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지도 모르는채 두 주먹을 꼬옥 움켜 쥐었다. 그날 이후로 마술쑈에서 관 속에 들어가는 역할은 수잔나에서 루시아로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루시아의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겉으로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잔나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수잔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리처드에게 아들 알렉을 통해 복수하는 것이었다. 리처드보다 뛰어난 마술 솜씨로 자존심이 강한 그를 망신주는 것 말고는 가슴에 맷힌 한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루시아를 위한 복수는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수잔나는 어느날 아무도 몰래 알렉을 불러서 낡은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어머니 이게 뭐죠?"

    알렉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이란다. 네 아버지가 알고 계시던 모든 비법이 다 적혀 있어. 그분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장미마술까지도."

    "네? 저의 아버지는 리처드가 아니었나요?"

    "..네 아버지는 그런 망나니와는 비교도 안되는 훌륭한 분이셨단다. 그 분은 숨은 거두는 순간마저도 자신이 평생 연구한 마술이 사라지는게 두려워 이 책이 있는 곳을 나에게만 말씀하셨단다. 알렉, 이 책의 비법들을 연마해서 어서 리처드 그 놈을 이겨주렴. 너라면 할 수 있단다. 넌 천재적인 마술사의 자식이니까"

    수잔나는 알렉에게 그동안 숨겨두었던 비밀을 짧게 말해주었다. 물론 자신이 리처드와 짜고 남편을 죽인 부분은 빼고 상당히 각색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알렉은 한가지 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서 실력을 키워서 리처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그래서 자신만의 마술로 일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알렉은 밤낮으로 마술연습에 몰두했다.

    공연 바로 전날, 알렉은 수잔나에게 말했다. 보름달이 밝게 뜬 청명한 밤이었다.

    "어머니, 내일은 제 일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날이 될 거예요"

    "나도 네가 자랑스럽단다"

    수잔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디어 내일이면 20년 전의 그 화려했던 장미마술을 다시 볼 수 있다! 아들의 얼굴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20년전 배신했던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 그이의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저는 내일 공연을 끝내고 중대한 발표를 할거예요"

    "그게 뭔지 나한테만 말하면 안되겠니?"

    "비밀이예요, 내일이면 아시게 될 거예요"

    알렉은 두 뺨을 붉히며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알렉, 준비는 완벽히 됬겠지?"

    "네, 완벽합니다"

    리처드의 물음에 알렉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고 대답했다. 드디어 오늘은 자신이 수없이 연습한 마술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리처드조차도 할 수 없었던 전설의 장미마술을 자기 손으로 펼쳐보일 수 있는 날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자 한편으론 존경의 대상이었던 리처드를 넘어 설 수 있는 한번뿐인 기회였다. 알렉은 미리부터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뻐근해 져 옴을 느꼈다. 준비도 연습도 완벽했다. 실수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관통 마술을 하고 나면 너는 앞쪽 무대에서 대기하다가 바로 올라오거라.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관객의 주의가 분산되니까 신속하게 하란 말이야, 알겠지?"

    "네"

    자주색 커튼 뒤에서 사회자가 호명하는 소리가 나왔다. 리처드는 모자를 고쳐쓰고 특유의 술취한 웃음을 지으며 수잔나, 루시아와 함께 무대로 나아갔다. 환한 조명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루시아는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관 뚜껑을 닫았을 때 현실로 드러났다! 관의 내부 구조가 평소와 다르게 되어있었다. 원래 관에 꽂는 칼은 매우 얇아서 자유자재로 구부러졌다. 관 내부 구조에 적절한 방해 장치만 있다면 휘어진 칼날이 루시아의 몸을 돌아서 뒤쪽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매우 쉬웠다. 루시아가 몸을 유연하게 움직일 공간확보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오늘은 달랐다!!! 관 뚜껑을 덮자마자 루시아는 몸을 옴쭉 달쭉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고의로 관 내부에 조작을 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루시아가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곧 수잔나의 손에 의해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쑈의 정해진 순서였다. 수잔나가 힐끗 내려다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루시아의 두려움으로 둥그렇게 커진 두 눈에 하얀 칼날이 비추어졌다.





    "자 신사숙녀 여러분 이 예리한 칼날을 보십시오 과연 이 칼이 이 아름다운 소녀의 몸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네? 진짜로 찌를거냐고요? 물론이지요! "

    리차드가 수잔나에게서 건네받은 칼을 공중에서 멋지게 두바퀴 돌리더니 루시아가 갇힌 관에 가져다 대었다. 루시아가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재갈 때문에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수잔나가 건네준 칼은 평소보다 두껍고 보다 예리한 것이었지만 리차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 잘 보십시오 이렇게 쑤욱-!"

    리처드가 루시아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넣었다. 칼 끝이 갈비뼈에 닿아서 막히는 느낌이 전해져 왔지만 리처드는 그저 관속에 장치에 부딪혔다고 생각했다. 루시아가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뜨며 몸부림쳤지만 리처드는 그저 오늘따라 루시아의 연기가 리얼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박히다 만 칼의 손잡이를 수잔나가 건네받았다. 수잔나는 칼끝을 옆으로 눕혀서 루시아의 갈비뼈 사이의 틈새로 쑤셔넣었다. 루시아는 숫제 관 전체가 들썩 거릴 정도로 몸부림 쳐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잔나는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이 여우같은 년, 한번 당해보라지'

    수잔나가 건넨 두 번째 칼이 다시 루시아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루시아는 돼지가 멱따는 듯한 소리로 처절하게 울부짖었으나 요란한 스페인 음악에 묻혀 관객에게까지 전달되지는 못했다. 세 번째 칼이 다시 4번과 5번 갈비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을 때 루시아는 혼절해 버렸다. 그리고 다섯 번째 칼날이 들어갔을 때 다시 고통으로 정신을 차렸다가 여섯 번째 칼날로 다시 혼절하고..이런 식으로 11개의 칼이 차례로 루시아의 몸에 꽂혔다.

    희미하게 역겨운 피냄새가 피어올랐다. 쇼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느새 루시아의 끈적 끈적 한 붉은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가엾게도 루시아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더욱 가여운 것은 정신도 멀쩡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곱던 얼굴은 어느새 공포와 고통으로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이제 수잔나의 손에 남은 칼은 단 한자루였다. 그것은 루시아를 위해 수잔나가 특별히 골라놓은 가장 튼튼하고 예리한 칼이었다.

    "자 이 마지막 칼은 저 대신 제 조수가 박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저 배 위에다가 말이죠!!!"

    리처드의 말에 수잔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수잔나는 천천히 루시아의 배 위에 칼을 수직으로 세웠다. 루시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통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켜야 한다는 처절한 호소였다. 그러나 수잔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체중을 실은 칼날은 푸-욱 기분나뿐 소리를 내며 루시아의 아랫배에 쑤셔박혔다. 이것으로 끝났다. 루시아의 생명도..그 아이의 뱃속에 잉태된 저주받은 생명도..




    "자 이번에는 반대로 칼을 하나씩 뽑아보겠습니다"

    웬걸, 평소처럼 칼이 잘 뽑히지가 않았다. 안간힘을 쓴 후에야 첫 번째 칼을 뽑아든 리처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칼 끝에 빨간 피가 범벅이 되어 묻어있었던 것이다. 리처드의 손이 덜덜덜 사정없이 떨렸다. 그러나 아직 쑈는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무대 위에서 수습을 해야 했다.

    "아..아하하..피..피가 묻어있네요..그쵸? 진짜같죠? 진짜 피예요 피!"

    리처드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갑자기 오줌이 마렵더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것도 연출된 쇼인줄 알고 손뼉을 치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두 번째 칼도..세번째 칼도 마찬가지였다..네번째 칼은 내장을 찔렀는지 피와 함께 더러운 오물이 묻어있었다.

    "으 으흐흐흐..피..피입니다 피..으하하하"

    리처드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칼을 하나씩 뽑아냈다. 그러다가 바닥에 흐른 피에 미끄러져서 콰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와아-하고 박장대소를 했다. 정말 리얼한 연기라고 생각하면서.

    "으흐흐흐 피가..욱..우욱.."

    리처드가 바닥에 개처럼 업드린 채로 토하기 시작했다. 양손바닥에 피의 시냇물이 철벅거렸다. 뭔가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챈 단장이 신호를 보내서 커튼을 빨리 닫았다. 관객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나!"
    알렉은 커튼이 닫히자마자 미리 계획했던 대로 무대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한 손을 가슴에 모으고 로미오처럼 멋들어지게 소개 인사를 올렸다.

    "장미의 마술사, 알렉입니다"




    "아아..루시아..어..어떻게 이런 일이..내손으로..너..너를.."

    리처드는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대 뒤에서 루시아의 시체를 껴안고 흐느꼈다. 마지막에 박았던 칼날은 루시아의 배를 뚫고 등뼈 바로 옆으로 관통해 있었다. 원한이 서린 수잔나의 무서운 힘이었다.

    "흥 그깟 어린 계집아이 하나 죽었다고 울다니 당신도 별 수 없군, 나나 다른 여자들은 수도 없이 농락했던 당신이 말야!"

    수잔나는 리처드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으으..루..루시아는.."

    리처드는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문채 말했다.

    "루시아는 내 딸이었어!!!"

    "!!!"

    "20년을 찾아 헤맨 끝에 만난 내 딸..처음엔 나와 함께 있길 거부했어..당연했지.. 갖난아기였을 때 도망간 못난 아빠였을 테니까..그러다가 겨우 얼마 전 마음을 열고 내 품에 안겼었는데..아아 내 딸..루시아..흐흐흑..난...난 당신과 알렉이 싫어할까 봐 숨긴 채 곁에 두고 싶었어...천천히 서로 시간을 두면서 알리고 싶었단 말이야..이젠..이젠..다 끝났어..너..너 때문이야! 네가 이 얘들 죽인거야! 이 악마같은 여자!!"

    리처드가 고함을 지르며 방금 전까지 루시아의 배에 박혀있던 칼을 들고 수잔나에게 달려들었다. 수잔나 자신이 준비했던 가장 예리한 칼날은 그대로 그녀의 목젖을 꿰뚫었다. 수잔나는 울컥 피거품을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죽은 그녀의 두 눈에선 후회인지, 슬픔인지 모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뒤를 이어 리처드도 자신의 목에 칼을 댄 채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콰직 하는 섬득한 느낌과 함께 칼날이 그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리처드의 흐려져가는 의식속에 커튼 뒤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지금쯤 알렉이 공연을 하고 있으리라..녀석의 멋진 솜씨를 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나를 능가하는 훌륭한 마술사로 만들려고 그렇게 엄하게 키웠건만..리처드의 동공이 힘을 잃고 탁 풀어졌다. 그와 동시에 관객의 박수소리가 크레센도로 화악- 커졌다.




    알렉의 마술은 환상적이었다. 아버지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에서 춤을 출 때마다 붉은 장미꽃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입을 떡 벌린채 구경하던 관객은 알렉이 한아름 가득한 장미 꽃다발을 허공에서 만들어내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보다 훌륭한 마술을 그들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선가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알렉은 자랑스러웠다. 알렉은 장미다발을 품에 안은 채 사회자의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데뷔 공연을 맞아 저 알렉은 중대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저 커튼 뒤에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루시아가 있습니다. 흠흠 이건 비밀입니다만 제..아이도 함께 있습니다..흠흠...오늘 이 자리를 빌어 루시아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고싶습니다. 루시아.. 무대로 나와서 내 꽃다발을 받아주겠어?"

    관객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격려의 박수를 쳤다. 커튼이 좀처럼 열리지 않아도 박수소리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한아름의 붉은 장미 꽃다발처럼..

    출처 : www.muzachi.com 작가 : 안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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