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사람은 금술
좋은 부부였으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원했습니
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고, 할아버지는 난로의 불을 뒤적뒤적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난 듯이 할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이런 때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이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
야. 다른 집은 저렇게 잔치집 같이 즐거운데 우리 집은 밤낮 절간처럼 조용
하니, 어디 사람 사는 집 같아야 말이지."
"정말 그래. 요 엄지 손가락만한 아이라도 좋겠어. 눈앞에서 꼬물거리는
애가 있다면 우리 둘이서 얼마나 귀여워하겠소."
할아버지도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서 할머니의 몸이 달라지더니 일곱달 만에 아이를 낳
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엄지 손가락만한 사내아이였습니다. 할머니
는 갓난아이가 엄지 손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해서 할아버지
께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소리를 했기 때문이예요. 손가락만한건 당신 거시기로 충
분하잖아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어 사내아이에게 '엄지둥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키
웠습니다.
엄지둥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불평을 늘어
놓고, 할아버지는 그 불평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마침내 엄지둥이
를 내쫓기로 하였습니다. 엄지둥이를 보면 할머니는 일부터 방귀를 뀌고,
할아버지는 재채기를 할 적마다 콧물을 큉겼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손끝만
큼도 받지 못하는 엄지둥이는 하루라도 빨리 집을 뛰쳐나가 자기를 귀여워
해 주는 집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바늘 한개를 칼 대신
으로 차고 기사다운 차림을 갖춘 다음 밥그릇을 배로, 젓가락을 노로 삼아
서 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엄지둥이는 고생 끝에 임금님이 사는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개와 고양이에게 쫓기고, 아이들에게 밟힐 뻔하면서 큰길을 따라 내려갔더
니, 크고 화려한 집이 있었습니다. 엄지둥이는 현관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
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이 열리고 문지기인 듯한 사내가 나왔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신발 위에 엄지 손가락만한 사람이 서서 어엿한 젊은
이의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외치고는 이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자꾸만 부탁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지기는 엄지둥이를 손끝으로 들어올려 임금님
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임금님은 엄지둥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돋보기로 찬찬히 관찰하였습니
다. 허리에 실을 둘러 감아 바늘칼을 찬 기사복 차림의 젊은이가 엎드려 있
었습니다. 작지만 수염까지 기르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 임금님은 그만 웃음
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엄지둥이라고 했나, 몸이 작아서 애송이인가 했더니 훌륭한 어른이구나."
임금님이 말하였습니다.
"황송하옵니다. 아무쪼록 저를 신하로 삼아 주십시오. 반드시 한 몫 해 보
이겠습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춤을 추어 보아라."
엄지둥이는 임금님의 손바닥 위에서 익살스럽게 춤을 추었습니다. 모든 사
람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자 엄지둥이는 품속에서 버들피리를 꺼내 멋지게
불면서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임금님은 엄지둥이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공
주의 놀이 상대로 선물했습니다.
공주님은 나라에서도 소문난 미인이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남자를 싫어해서
나이가 되었는데도 혼담에는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애하는
귀공자에게는 가시돋힌 시를 지어 물리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공주님은
책 읽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해서 읽을거리가 없어지면 자신이 직접 붓을 들
어 이야기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진기한 동물처럼 생
각했는지 예쁜 종이로 조그만 집을 마들어 조개껍질에 솜을 깔아서 엄지둥
이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때에는 엄지둥이를 손바닥에
올려노혹 새에게 모이를 주듯이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젓가락으로 집어 주
고는, 엄지둥이가 밥알을 양손으로 들고 먹는 모습을 싫증도 내지않고 바라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공주님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없
는 곳에서 입 밖에 내던 것을 이제는 엄지둥이를 상대로 말을 하게 되고,
엄지둥이가 재치있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왕과 왕비에게 조차 말하지 않은
은밀한 생각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공주님은 나
무랄대 없는 아름다운 미인으로 스스로도 그것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갖
고 있는 반면, 자기 몸의 가장 중요한 곳에 부끄러운 결점이 있지는 않은가
자주 걱정하기도 하고, 세상의 남자들을 우둔하고 패기없는 따분한 동물이
라고 헐뜯는가 하면, 귀신같이 아주 무서운 것에게 당해서 몸이 찢겨보았으
면 좋겠다는 둥 터무니 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지둥이에게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게 하면서 한참 책을 읽다가는 그런
망상이 솟구치면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 높이까지 쳐들
면서 되묻곤 했습니다.
"엄지둥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그런 때 엄지둥이는 눈 앞에 있는 두개의 보름달 같은 눈동자에 빨려들 것
같은 기분좋은 떨림을 느꼈습니다. 엄지둥이는 공주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공주님 앞에서
익살스런 얘기를 하거나 재롱을 떨면서 기분을 맞추었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에 엄지둥이는 공주님과 한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
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위험한 은혜로 엄지둥이에게 몹시 귀찮은 일이었
습니다. 왜냐하면 무심코 공주님의 겨드랑이에 들어가 잠들었을 때, 잠버릇
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공주님이 몸을 뒤척이는 통에 깔려 죽을 뻔한 일이 여
러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지둥이는 공주님이 잠들 때까지는 귓가
에 있으면서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고, 허락을 받아 젖가슴 사이에 들어
가 놀다가 공주님이 잠든 후에는 자기의 조개껍질 침대로 돌아가곤 했습니
다.
어느 날 엄지둥이는 공주님의 젖가슴 언덕에 올라가서 언덕위에 있는 조그
마한 탑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공주님은 그것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지 매일 똑같은 장난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공주님의 신체를
탐험하며 무슨 장난을 쳐도 좋다는 허락까지 얻었습니다. 엄지둥이가 호기
심에 이끌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이따금 공주님의 입에서
안타가운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대지진 같은 떨림이 몸을 지나가기도 했
습니다. 그래도 공주님은 엄지둥이의 장난을 막기는 커녕 '멈추지 말고 계
속해 줘.'라고 말하며 다음날 밤에는 더욱 노골적인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공주님을 잠재우기까지의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엄지둥이는
엄지 손가락만하기 때문에 시키는대로 공주님의 드넓은 몸 위를 돌아다니며
희롱거리기란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남모르는 사랑을 품
고있는 엄지둥이는 내일도 또 내일도 정성을 대해 밤시중을 들며, 아름답기
로 이름난 공주님이 여러가지 맛있는 요리를 혀에서 혀로 옮겨 먹여 주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고 지냈습니다. 혀로 옮겨 먹여준다는 것은 공
주님이 잘게 씹은 음식을 혀 끝에 얹어 내밀면 그 부드러운 고기 식탁에 엄
지둥이가 달라붙어 먹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날 공주님은 엄지둥이를 허리띠 사이에 넣고 시종들을 데리고 교회로
예배를 보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산길을 걷고 있는데 불쑥 두마리의
도깨비가 나타나 공주님 일행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
깨비가 혀바닥을 낼름거리며 달려들자 시종들은 기겁을 하고 달아나버렸고,
공주님은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엄지둥이는 정신없이 공주님의 옷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히 알고 있던 공주님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몸을
숨겼습니다. 밖에서는 도깨비들이 이를 갈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쩔 셈인지 공주님을 도깨비 소굴로 업어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대로 공주님도 나도 도깨비에게 먹히는 것일까? 먹힌다면 나야 도깨비
뱃속에서 한바탕 난리를 쳐보기라도 하겠지만 그 전에 공주님을 구할 방법
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엄지둥이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으로 도깨비의 몸
뚱이 같은 빨간 고기가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엄지둥이는 죽을 힘을 다해
미친듯이 바늘로 마구 찔렀습니다. 그러자 왁 하고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물건이 공주님의 은밀한 곳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이어서 또 다른
녀석의 물건이 나타난 것을 엄지둥이는 힘껏 찔렀습니다.
"가시가 돋혀 있다."
"귀신이야."
도깨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도망쳤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엄지둥이가 쓰러져 있는 공주님의 귓가에 말하자, 공주님은 차츰 정신을
차리며 황홀한 기분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곁에는 도깨비들이 떨어뜨리고 간 요술방망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요술방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걸로 내 키
를 늘려 주세요."
엄지둥이가 부탁하자 공주님은 방망이를 들고 엄지둥이의 머리르 가법게
두드렸습니다.
"키 나와라 뚝딱. 키 나와라 뚝딱."
엄지둥이는 쑥쑥 키가 커져서 공주님보다도 머리 하나 정도가 큰 훌륭한
체격의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두사람이 성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먼저 달아났던 시종들의 말
을 듣고 비탄에 빠져있던 임금님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엄지둥이를 공주
님의 신랑감으로 정했습니다. 남자를 싫어하던 공주님도 이번에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일인지 공주님은 우울해하고 즐겁지 못한 모습이 두드러졌고, 엄지둥이도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보였습니다.
괴이적에 생각한 임금님이 그 까닭을 묻자 공주님은 엄지둥이하고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왜?"
"그 사람은 엄지둥이예요."
"지금은 저렇게 체격이 좋은 젊은이가 아니냐?"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엄지둥이 그대로예요."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하다 엄지둥이라고
놀림을 받은 엄지둥이는 화가 나서 요술방망이를 꺼내서 공주님의 머리를
두드렸습니다.
"엄지둥이가 되어라 뚝딱."
공주님도 지지않고 요술방망이를 빼앗아 다시 엄지둥이를 두들겼습니다.
두사람이 서로 욕을 하면서 요술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사이에 새끼 손가
락 보다도 작게, 벌레 보다도 작게, 먼지 보다도 작게,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도깨비의 요술방망이만이 뒹굴고 있
었습니다. 벌레 보다 작아진 두사람이 그 후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았는지
어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교훈 - "Smoll"은 "Beautiful"이 아니다!
[민철] 여기서... 'Smoll'은 오타가 아닙니다. (책에 분명히 'smoll')
제 생각에 'small'이 'smoll'로 인쇄가 잘못된 것 같아요.
이런 책을 파본이라고 그러던가? 바꿔줄지 모르겠네요.
< 12. 개구리 왕자 >
옛날 아주 먼 옛날, 무슨 소원이나 다 이루어지던 꿈같은 시절의 이야기입
니다.
어느 조용한 마을, 마을에서 제일 크고 멋진 집에 꽃같이 아름다운 아가씨
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가씨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자 아버지가 곧 새 장가
를 들어 마음씨 나쁜 계모가 들어왔습니다. 계모는 전처 딸이 친딸보다 훨
씬 예쁜 것이 화가 나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아가씨를 못살게 괴롭혔습니
다. 입는 것도 먹는 것도 하인과 똑같이 나쁜 것만 주었으며, 하인과 똑같
은 일을 시켰습니다.
어느 날 계모는 의붓자식을 내쫓기로 마음먹고, 아가씨에게 소쿠리를 주면
서 말도 되지않는 생트집을 잡았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이 세상 끝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오너라. 시키는대
로 하지 않으면 당장 내쫓아 버릴테다!"
집을 나온 아가씨는 세상 끝에 있는 샘을 찾아 정처없이 걸어갔습니다. 누
구에게 물어보아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샘을 찾을 수 없자 아가씨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못생긴 노파가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노파는 아가씨가 우는 이유를
묻고 그곳이라면 자기가 알고 있다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노파의 말대로 광야를 지나가자 하얀 뼈와 같은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세
상 끝에 있는 샘이 나왔습니다. 아가씨는 샘물을 소쿠리에 떠올렸지만 물은
한방울도 남김없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아가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또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샘 속에서 강아지만큼 큰 개구리가 나타났습니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개구리가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어머님이 시킨대로 이 세상 끝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가야만 하는데 도
저히 이 소쿠리로는 풀 수가 없어요."
개구리가 개구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와 결혼해서 내 말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면 물깃는 방법을 가르쳐 줄께
요."
아가씨는 뒷일은 생각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약속이라도 할테니까 제발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럼 가르쳐 드리죠. 소쿠리의 눈을 이끼로 막고 진흙으로 발라 굳히면
돼요."
아가씨는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져 개구리가 말한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랬
더니 정말로 물을 얼마든지 길어도 소쿠리 사이로 바져나가지 않았습니다.
아가씨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개구리가 샘 속에서 얼굴을 내
밀고 다짐을 했습니다.
"약속을 잊으면 안돼요."
"걱정말아요."
아가씨는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속으로는 저런 개구리와 결혼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소쿠리에다 길어온 물을 내놓자 계모는 몹시 당황했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가씨가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
다.
"아가씨! 아가씨! 저와 약속한 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계모는 어떤 남자와 어떤 약속을 했느냐고 캐물었습니다. 아가씨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계모는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서 말했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돼요. 상대가 아무리 개구리
라고 해도. 자 어서 신랑을 안으로 데리고 오너라."
아가씨가 문을 열어주자 이 세상 끝에 있는 샘에서 온 개구리가 팔짝팔짝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의 다리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 무릎에 앉
혀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가씨가 얼굴을 찡그리자 계모가 말했습니다.
"무릎에 앉혀 드려라. 약속대로 해야지. 여자는 약속을 지켜야한단다."
개구리는 아가씨의 무릎을 끌어안고 기쁜듯이 개구리 소리로 울다가 사람
의 목소리로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가씨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밥을
그릇에 담아 개구리에게 주었습니다. 개구리는 불만스러운 듯이 개구리 소
리로 울더니 갓 짠 우유와 갓 구운 빵을 먹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신기하게
인색하기로 소문난 계모가 사위를 위해서라면서 기분좋게 우유와 빵을 내놓
았습니다.
잔뜩 먹고 난 개구리는 아가씨 무릎 위에 올라가 말했습니다.
"이제 침대로 데리고 가주세요."
"그것만은 싫어요."
아가씨가 몸서리를 치자 계모가 호통을 쳤습니다.
"약속대로 하거라! 여자는 자고로 약속을 지켜야 하는 법이다. 네가 데려
온 훌륭한 신랑이잖니!"
어쩔 수 없이 아가씨는 개구리를 데리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될 수
있는 한 떨어져 자려고 했지만 개구리는 아가씨 가슴에 몸을 바짝 갖다 대
었습니다. 개구리의 피부는 차갑고 끈적거렸으며, 게다가 징그러운 사마귀
마저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소름이 끼쳐 온 몸에서 진땀이 흐르는 것 같았
습니다.
아가씨에게는 악몽같은 밤이 깊어 갔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어둠
속에서 이 세상 끝에 있는 샘을 가르쳐준 노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노파
는 아가씨의 침대로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있는 개구리는 실은 이웃 나라 왕자님이다. 네가 삼년 동안 이 개구
리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여 부부의 정으로 지내면 마법이 풀려 왕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거다. 그게 싫으면 당장 개구리의 목을 잘라도 왕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그러자 개구리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애원했습니다.
"아가씨, 제발 목을 자르지 말아요. 그렇게 끔찍한 짓은 하지 마세요. 개
구리 모습인 채로 나를 삼년간 사랑해 주세요."
그러나 아가씨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민첩하게 개구리 목을
잘라서 한시바삐 왕자를 본래 못브으로 되돌려 놓을 작정이었다. 아가씨는
벌떡 일어나 도끼를 들고 와서 개구리를 향해 내리쳤습니다.
무서운 비명과 함께 개구리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침대에는 목과 몸뚱이
가 떨어진 왕자의 시체가 누워 있었습니다.
비명소리를 듣고 계모가 달려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난 계모는 아가씨
의 어리석은 선택을 듣고 망연자실했습니다. 미운 의붓딸이 행운을 놓친 것
은 기쁜 일이지만, 왕자님과 자기 딸을 맺어줄 기회도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붓자식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소쿠리로 떠온 이세상 끝에 있는 샘
물을 컵으로 떠서 한모금 마셨습니다. 샘물은 입이 비틀어질 정도로 짰습니
다.
그 후 계모의 목에서는 개구리와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 교훈 - 참사랑은 추한 것을 사랑하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이다!
< 13. 세개의 반지 >
옛날, 동방의 회교도 나라에 현명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
은 많은 돈이 급히 필요하게 되어 그 나라 제일의 갑부이자 현명하기로 소
문난 유태인에게 돈을 조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국왕의 힘을 빌어서 협박한다든지 재산을 몰수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치에 닿는 구실을 찾아내 유태인 스스로 돈을 내놓지 않고는 배기
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임금님은 유태인
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은 그대가 무척 현명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겠는데 이 세상에는
스스로 참종교라고 칭하는 세개의 종교가 있다. 그 가운데에서 진짜 참종교
는 어느 것인가? 그대라면 반드시 바른 답을 들려주리라 믿네."
유태인은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라고 대답하면 왕의 종교를 모독하게 되므로 신상에 해롭
다. 그렇다고 회교라고 대답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답이 되고, 그리스도교라
고 대답하면 왕의 종교를 경멸하고 동시에 조상의 종교를 배반하는 것이되
므로 어떤 대답을 해도 화를 면할 길이 없다.'
그래서 유태인은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폐하! 감당키 어려운 질문이라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이야기
하나를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해보게."
임금님이 재촉했기 때문에 유태인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신이 내렸다는 반지를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반지는
무척 아름다운데다가 숨겨진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을 믿고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면 그 사람과 신이 연결되어 그 사람의 신앙심을 지켜준다는 것
이었습니다. 남자는 반지를 영원히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자식 중에서
가장 아끼는 자에게 주었으며, 그리고 반지를 가지고 있는 자가 재산을 상
속받아 집안의 가장이 되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반지는 자식에게, 자식의 자식에게 전해졌으며 결국 세명의
아들을 둔 남자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 남자는 세명의 자식을 똑같이 사
랑했기 때문에 세명 모두에게 반지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침내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이 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직
도 어떤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인지 결정을 못했고, 또 한사람에게만 물려준
다면 자신의 말을 믿고 있는 다른 두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므로
아버지는 무척이나 괴로워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솜씨 좋은 장인에게 부탁해서 가지고 있는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두개 더 만들게 했습니다. 완성된 가짜반지는 아버지의 눈에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
버지는 자식을 한명씩 불러 반지를 건네 주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세명의 아들은 제각기 자기
반지를 보이며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상속인이라고 주장하며 다투기 시작했
습니다.
"저런 어리석은 것들. 그래 결론은 어떻게 났느냐?"
"세명의 자식은 진짜 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고 누가 정당한 상
속인인가를 판정해 달라고 재판소에 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라."
임금님은 유태인의 말을 중지시켰습니다.
"그건 무척 재미있는 소송이다. 재미삼아 그리스도교도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의견을 알아보기로 하자."
임금님은 재빨리 이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교 법률가 열두명을 불러들였습
니다.
첫번째 법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사람 중에 진짜 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참신앙을 가지고 있는 아들
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진짜 반지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반지, 아니 그리스
도교만이 진정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기분이 상한 듯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 의견은 본건의 재판과는 관계가 없다."
그리고 첫번째 법률가를 끌고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두번재 법률가는 진짜 반지에는 특별한 효력이 있기 때문에 그 효력이 나
타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 효력은 본인 밖에는 모른다."
임금님은 그 법률가도 물리쳤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될 것입니다."
세번째 법률가가 말하자 임금님이 반문했습니다.
"어떻게 들을 수 있느냐?"
침묵이 흐르자 임금님이 소리쳤습니다.
"어리석은 놈, 썩 물러가라!"
네번째 법률가는 이 이야기의 아버지는 신이며 반지는 아버지, 즉 신이 베
푸신 기적에 의하여 세개로 늘어난 것이기 때문에 세개의 반지는 모두 진짜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얼버무리는 말은 자식 모두가 믿지 않을 것이다."
임금님이 일축했습니다.
다섯번째 법률가가 말했습니다.
"반지는 세개 다 진짜입니다. 왜냐하면 세사람은 아버지의 말을 믿고 자신
의 반지야말로 진짜라고 확신하며,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본건을 해결할 수 없다."
임금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여섯번째 법률가는 진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가 진짜 반지의 소유자라고
하는 견지에 서서 누구의 신앙이 진짜인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사람 모두, 혹은 두사람이 진짜 신앙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
"올바른 신앙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느냐?"
이 질문에 대답을 못했기 때문에 그 다음 법률가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일곱번째 법률가는 진짜 반지는 아버지가 감췄든지 버렸을 것이라고 추측
했습니다.
"그럼 세개 다 가짜란 말이냐?"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대담한 의견이지만 증거가 없다."
여덟번째 법률가도 비슷한 의견이었는데, 진짜는 솜씨 좋은 장인이 훔쳐서
자기가 가졌을 공산이 크며 아버지도 분간을 못했던 것은 그때문일 거라는
추론을 덧붙였습니다.
아홉번째 법류가는 재판소가 우선 세개의 반지를 보관한 후 전문가에게 감
정을 의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열번째 법률가는 세사람이 계
속 싸운다면 재판소가 반지를 세개 다 몰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열한번째 법률가는 이유는 어쨌든간에 반지는 전부 다 가짜라고 간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국 재판소는 세사람에게 화해를 권할 수 밖에 없다
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열두번째 법률가는 세사람이 싸우고 싶을 때까지 싸우게 하고 서로
죽여도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신의 가호에 의해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자가 진짜 반지를 가진 자라는 무책임한 말을 해서 임금님을 화
나게 했습니다.
"법률가들 모두가 나름대로 적절하게 처리했다."
임금님은 다시 유태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의 얘기에서는 재판소 판결이 어떻게 되었느냐?"
"그전에 먼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유태인이 말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교 법률가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나라에서 추방했다."
"아, 그렇습니까? 실은 재판소에서는 세사람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문
앞에서 돌려 보냈습니다. 다만 몇마디 충고와 경고를 덧붙여서."
"그랬을거다. 내가 재판관이었다면 이렇게 처리했다. 본관은 소송에서 말
한 반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애초에 문제의 반지가 실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허위 혹은 상상 속에 있을 뿐이다. 이런 성질의
고소는 재판소에서 관여할 게 아니다. 만약에 반지가 진짜라고 믿는 자에게
만 효력이 있고 제삼자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이라면 그런 물건은 어리석
고 약한 자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각자 자기 전용의 반지를 끼고
구원을 바라면 된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당 재판소에서 간섭할 바가
아니다. 요새말로 '네 멋대로 해라!'라고나 할까."
"참으로 적절한 충고이십니다."
유태인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재판관이 덧붙인 말도 그 말씀과 틀린 바가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삼
형제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봐라."
"마지막 그리스도교 법률가가 말한 것처럼 됐다고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신의 가호를 받아 자신의 신앙과 반지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없
고, 세사람 모두 싸우다 생명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반지의 행방은 어떻게 됐느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대는 반지를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습니다. 보여드릴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떤 반지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황공하오나 임금님......"
유태인은 미소를 띠우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반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 반지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도 관심 밖입니다."
"실은 나도 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믿기 어렵겠지만."
임금님이 빙그레 웃으며 강력한 권력에 걸맞는 커다란 손을 들어 유태인에
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말투를 바꿔 말했습니다.
"자!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임금님이 필요한 금액을 말하자, 유태인이 기꺼이 빌려드리지요 라고 대답
해 거래는 그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몇년 후 임금님은 약속대로 이자를 얹어서 빌린 돈 전액 돌려주었고, 두사
람은 서로 존경하며 언제까지나 친구로 지냈습니다.
↕ 교훈 - 현명한 사람은 반지를 끼지 않는다!
-유자게에 올려서 죄송합니다.
럭키의 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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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진입니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버섯을 꾸셨다고 했죠.
울 누난데. 내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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