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이나 많은 오빠.
너무나 똑똑해서 말하다 보면 내가 많이 바보같아 보이는 그런 오빤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나한테 다정한 그 모습에 고맙고, 편하고 그랬어요.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모성애가 폭발하는 바보같은 나는 그 모습에 바로 넘어가고 말았네요.
모르겠어요.
원래 임자 있는 사람은 이성으로 보지도 않는 나라서,
오빠가 전 여친과 헤어지고 나서야 내가 원래부터 좋아하던 내 마음을 깨닫게 된 건지,
아니면 그냥 그 때부터 시작이었던 건지.
여친과 헤어지고 나서 예뻐하는 동생이라며 잘해주는 모습에 한 번 더 반하고..
친동생, 남동생이라고 부르는 모습에도 그냥 나는 좋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철벽에도 불구하고, 그냥 고백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그래서 많이 미안해요.
오빠가 나한테 여지를 줬던 것도 아니고,
그냥 오빠가 상냥한 사람이라서 나한테 잘 해 준다는 거 너무나 잘 알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고 나면 밤잠 설치면서 고민할 사람이라는 거 너무나 잘 알면서,
그리고 사실은 그런 고민하기엔 너무 바쁜 사람이라는 거 너무나 잘 알면서,
그러면서도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떄부터 잠들 때까지 종일 생각하는 게 너무 답답해서,
그래서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 버렸어.
.
술먹고 고백하는 거 반칙인데.
고기 사준다고 우리 동네 불러서 밥 멕이고, 여느 때처럼 한참을 놀리다가,
오늘 밖으로 나올 때부터 다짐했던 고백을 해 버렸네.
고기 먹으면서 나 혼자 술 한 병 비우고.
그래도 술 다 꺤 다음에 말했으니, 반칙 아니지?
울거나, 육탄전을 벌이거나 그런 짓 하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그렇게 생각해 줘......허허
평상시에 그렇게 많이 재잘거리던 우리.
그리고 언제나 엄청나게 웃던 나.
오늘 그 벤치에서는 내가 어울리지 않게 어색어색, 잠깐만 옆에 앉아 있으라며 분위기를 잡았어요.
말하기도 전에 이미 눈치를 챌 정도로 나는 어색하게 굴었어.
오빠는 눈도 못 마주치고.
사실 '좋아한다', 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지.
이미 오빠가 눈치를 채 버렸고, 나는 이미 서론을 신나게 깔았으니까.
이 정도 말했으면 눈치 채지, 라고 오빠가 말했어요.
그래서 사실 나는 좋아한다,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
그래도, 그냥, 오늘은 말하고 싶었어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평상시에 배가 아플 정도로 웃던 내가, 엄청나게 웃던 내가,
정말 웃음이 나오지 않아서, 입꼬리만 겨우 올리고,
오빠 소매를 붙잡고, 오빠, 좋아해요, 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말 하는 게 아무 의미 없을 거라는 거 잘 알면서도,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이미 내 마음 다 알 정도로 분위기 만들어 놓고서도, 이미 다 알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좋아한다, 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그리고 차이고 싶었어요!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그랬잖아요.
대답 안 해도 좋고, 못 들은 척 해도 좋고, 거절해도 좋다고.
그거 진심이었어요.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너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잖아, 라는 대답.
맞아요.
알아요.
친동생, 남동생.
나 친동생 아닌데.
코흘리개 취급 맨날 해도, 나 27살인데...하하
나 어린 애 아닌데. 알 거 다 아는데.
맨날 자기 늙었다는 이야기 해도, 나는 정말 신경쓴 적 한 번도 없는데.
돌아보면 내가 자초한 일일 지도 모르겠네.
어린애 취급하면서 그냥 예뻐해주는 걸 너무 가만히 받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뭐, 아무래도 좋다.
이 일로 어색해지지 말자, 라고 말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신나게 웃으면서 그럼요! 라고 말했어요.
오빠 차를 타고 집 앞에 내려준다고 하는데, 집 앞 초등학교에 내려 달라고 해서,
한 시간 가까이 달리고 집에 돌아왔어요.
이럴 땐 내 체력이 참 맘에 들어.
내 마음이 개운해 질 때까지 신나게 달려줄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 체력 떄문에 남자 취급을 받았는 지도 모르지만...헤헤
한참을 달리면서 혹시 오빠가 와주지 않을까,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끝까지 다정한 카톡을 남기는 오빠.
어색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요.
나도 계속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내가 먼저 전화하는 건 역시 오빠에게 부담스러울 거지.
오빠가 나한테 먼저 전화하는 건 나한테 미안해서 오빠 성격에 못 할 거고.
밤에 몇 시간씩 통화하면서 인생 이야기 했던 것도,
서로의 연애사를 이야기하면서 씁쓸해 했던 것도,
아마 예전처럼을 못 할 거겠지만, 그래도,
오빠 얼굴 봤을 때, 예전처럼 언제나처럼 크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꼭 그렇게 할 거에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엄청나게 친해지고,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지냈던 시간.
그 시간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고, 길지만은 않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보내줘서,
그 시간에 나를 아기처럼 잘 보살펴 줘서 고마워요.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나를 예뻐해주고 돌봐준 건 처음이었어.
오빠가 아까 그랬잖아요.
동생으로 너무 좋아해서, 잘 해 줬는데,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그렇지 않아요.
그냥 고마운 일일 뿐.
오빠가 여지를 준 게 아닌 거, 나한테 그런 장난친 거 아니라는 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요.
정확하게 선을 그어주고, 정말 친동생처럼 잘 해 주었어.
그럴거면 왜 잘 해 줬어!, 라는 이야기를 하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 정도로 어리진 않거든요.
그리고 나이를 빌미로 투정부리는 건 반칙이니까.
운동장을 달리면서 처음에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근데 이제 숨이 턱에 차면서부턴 별 생각 안 나더라구요.
마침 전화온 친구와 이야기하는데, 왜 너 그렇게 냉정하냐, 울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 라는 말 들었어요.
그건 반칙이야! 20대 후반을 달리면서 그런 짓 하기 싫어!, 라고 말하는데, 친구가 그러데요.
굳이 거기서 반칙을 피할 필요가 있냐고.
뭐, 잘못인가.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6년이라는 긴 연애, 그리고 상상도 못한 끔찍한 마무리.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처럼 마구 지나가던 예상치 못한 실망스럽던 이성들.
내 인생 최대의 고난. 제일 지긋지긋하던 시기.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나를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남자따위 다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고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나에게,
내 인생에 이제 로맨스 따위는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나에게
아직도 남은 내 삶에 로맨스가 있을 거라고 알려줘서 고마워요.
제목에는 오빠미워, 라고 썼지만, 하나도 안 미워요.
독하게 차지 않아서 고마워요.
동생으로 정말 예뻐한다는 거 알아서 고마워요.
잘 되라고 기도해주고, 언제나 예뻐해 줘서 고마워요.
내일부턴 더 열심히 살게요.
고백해 버리니까 고민 토스해 버린 것 같아서 개운하고, 오빠가 그만큼 고민할 거 알아서 미안하고.
나쁜 그 전 여친은 내가 끊임없이 저주해 줄게요.
이제 그 여자랑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최선을 다해서 디스해 줄게요.
언제나 힘내는 거예요, 오빠.
운동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오빤 하나도 안 늙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