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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3798
    작성자 : 계란§
    추천 : 11
    조회수 : 3847
    IP : 180.230.***.171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1/04/06 18:04:51
    http://todayhumor.com/?panic_13798 모바일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 (GP에서의 실화)
    2005년 여름이었다.

    나는 이등병이었고, 소대에서는 유탄수이자 깍새(이발병)였다.




    당시 내가 있던 GP와 매우 가까운 GP에서 

    한 일병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총기를 난사하여

    소대원들 중 1/3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후로 내가 있던 GP에서도 총기와 탄 분배가 더욱 깐깐해졌다.

    예전에는 소대장이나 부소대장이 없이도, 각자가 알아서 근무시간이 되면

    상황병에게 보고하고 탄을 가져간 후 다시 자진반납하는 식이었지만

    이후로는 소대장과 부소대장이 반드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각 부대의 대대장이나 중대장이

    GP를 돌며 1박을 하면서 GP를 지키는 수색대원들의 고충을 듣는 '위로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우리 소대는 군기가 과도하게 세지도 않았고,

    소대원들끼리 형과 동생처럼 매우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별 고충은 없었다.



    그러나 모든 GP원들이 GP 지하에 있는 8 벙커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8 벙커에서 있었던 2 가지 사건과

    그 사건 이후 계속되는 이상한 일들 때문이었다.




    첫번째 사건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인데,

    여자친구에게 차인 모 상병이 차단작전 시간이 되도록 나타나질 않고, 내무실에도 없어서

    부소대장이 이상히 여기고는 벙커를 돌아다니다가 8 벙커에서

    케이블타이를 목에 메고 숨져 있는 모 상병을 발견한 사건이다.


    이후로 8 벙커에 가는 병사들은

    이상하게도 숨이 막히고 답답한 증상을 겪었다고 한다.



    두 번째 사건은 2002년 월드컵 때,

    GP에서 기르던 번개라는 잡종견이 소대원들의 월드컵 시청 도중 미친듯이 짓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서 짬 딸리는 소대원 두 명이 잡으러 따라갔는데

    번개가 8 벙커로 가서 막 짖더란다.

    소대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번개를 놔 두고 다시 와서 고참을 불렀는데

    고참과 함께 8 벙커로 가 보니 번개가 뒤집어진 채 죽어가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가래가 낀 듯 목을 그르렁거리며 숨을 못 쉬고 있었단다.

    그래서 번개를 들고 벙커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생생하게 살아났고,

    번개를 안고 다시 8 벙커로 가려고 하자

    번개가 낑낑거리며 오들오들 떨었다고 한다.


    당시 GP원들은 그곳이 예전에 자살한 모 상병의 원혼 때문이라 믿고,

    건빵과 담배 등으로 자신들만의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한다.




    이후 8 벙커는 너무 구석진 곳이라 좋지 않은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물론 사실은 흉흉해진 소대 분위기 때문이지만)

    2003년 11월에 가까운 GP에서 북한 GP와 작은 교전이 일어난 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모든 벙커들 중 유일하게 장마철에도 물이 안 고이고 배수로가 잘 되어 있었던 곳이라

    고양이가 참 많이 살았다.

    발정기가 되면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8 벙커로 모여들어서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 때문에 신병들은 크레모어 격발기를 설치하러 갈 때도 8 벙커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상병장들은, 덕분에 한산한 8 벙커에 짱박혀서 담배를 피곤 했다.

    게다가 아까도 말했듯이 8 벙커는

    우리 GP에서 유일하게 물에 잠기지 않는, 배수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장마철에 짱 박히기엔 최고의 자리였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옆 GP의 총기난사사건 이후,

    우리 GP에 '위로 이벤트'로 대대장님이 들어오신다고 예정된 그 날은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덕분에 대대장님이 들어오신다고 청소를 하거나 잡초를 제거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언제 들어오실 지 모르는 대대장님과, AM(약식근무)에서 FM(정식근무)으로의 근무 전환, 그리고

    한낮에도 밤과 같이 어두운 날씨와 강한 바람, 그리고 정말 폭포같은 비로 인해

    GP원들의 기분이 매우 울적했었고

    내무실이 있는 벙커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침상 아래 놓아둔 슬리퍼가 떠다닐 때 쯤에는

    모든 수색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당일 아침만 해도 소대장 이하 모든 대원들은

    비 때문에 대대장님께서 안 오실 줄 알았지만 

    오전 10시, 대대장님께서 GOP 통문을 통과하여 GP로 오고 계시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은 유난히도 비구름이 짙었고,

    낮인데도 경계등을 켜야 할 만큼 날씨는 매우 어두웠다.

    게다가 그 전날 새벽에 번개가 치는 바람에 GP 주변에 심어두었던 크레모아가 터지기도 했기에

    소대장님은 매우 긴장해 있었다.


    그 와중에 머리가 일반인처럼 길었던 한 말년 병장이 소대장님의 눈에 띄었고

    소대장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깎새였던 나에게 그 고참의 머리를 깎으라고 했다.





    말년 병장이... 하늘같은 고참인 자신의 머리를 깎아야 하는 이등병의 심정을 알까?

    게다가 머리를 깎는 곳으로 쓰였던 체력단련실은 이미 물에 잠겼기에

    우리는 유일하게 물에 안 잠긴, 거울도 없는, 조명도 없는,

    게다가 흉흉한 소문이 도는 8 벙커에서 머리를 깎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 고참은 나의 떨리는 마음을 알아챘는지, 못 깎아도 좋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전역하면 어차피 기를 머린데 그냥 바리깡으로 짧게 깎아라."라고 하며 웃던 그 고참의 얼굴이 기억난다.

    이등병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고마운 말년 병장...

    이게 평소 우리 소대의 모습이었다.




    여하튼, 내가 빗과 가위로 머리를 깎기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서,

    대대장님이 곧 들어오실 거라는 방송이 들려왔고,

    병장 고참은 나중에 제대로 깎고 지금은 대충 정돈한 티만 나도록 바리깡으로 길게 밀라고 했다.

    자기는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을테니 넉넉하게 18mm 바리깡으로 밀라고 했다.

    (나를 포함, 병장이 아닌 소대원들은 으레 9mm로 밀곤 했다)

    어두운 벙커에 가위와 빗과 6mm와 9mm 바리깡만 들고 왔던 나는

    8 벙커에서 담배를 피는 고참을 뒤로하고 손전등과 18mm 바리깡을 가지러 

    GP의 반대쪽 벙커에 있는 체력단련실까지 뛰어갔다왔다.




    다시 8 벙커로 가는 길에 8 벙커를 보니 그렇게 어두울 수가 없었다.

    마치 모든 빛이 그 주변에서 증발한 듯 한 모습이었다.

    나 같으면 흉가같은 포스가 풍기는 8 벙커에는 격발기 가지러도 가기 싫은데...

    말년병장은 어떻게 그곳에서 혼자 담배를 피며 기다리는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8 벙커 입구에 도착해서 안을 보자

    안에는 아직도 고참이 입구를 뒤로 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심심했던지 망원경을 들고 손바닥만 한 벙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8 벙커 창문 정면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북한군의 GP가 있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잠시 시야가 어둡다.

    그래서 8 벙커에 도착한 나는 시간이 없음을 알았기에,

    바로 손전등을 켜고, 바리깡을 들고 고참의 뒤에 섰다.




    - 위이이잉잉




    그리고 바로 바리깡으로 고참의 머리를 뒤통수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뭐 하는 짓이야 임마!"



    뒤에서 소대장님의 찢어지는 듯한 고함소리가 들렸고, 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는 소대장님과, 내가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던 말년병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서 죽은 전우의 시체'를 바라보는 병사의 표정 같았다.



    아니, 전쟁터에서 죽은 전우의 '혼령'을 바라보는 병사의 표정이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머리를 깎아 주던 그 사람을 보았다.





    어두운 8 벙커의 의자에 앉아...





    밖을 바라보던 그는...

































    대대장님이었다.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긴다.

    다만, 대대장님은 허허 웃으시며 나를 용서하셨으나,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일병이 꺾일 때까지의 내 군생활은

    기억이 도저히 나질 않는다는 것만은 밝히고 싶다.



    (웃대펌)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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