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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야기 제 1 화
-대여행기 고기만두에서 김치만두까지-
굵은 글씨는 현재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얇은 글씨는 어제있었던일을 주인공이 계속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여행은 아주 짧다.
고기 만두에서 김치만두까지 그뿐인 여행이다.
아침일찍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츄리닝에 다구겨진 지페쪼가리 몇장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나왔다.
날씨가 춥다.
다시 들어가서 양말을 신고 자켓을 걸쳐입었다.
따습다.
두손을 자켓주머니에 넣었나 손가락 마디 마디에 차가운
느낌이 서려온다.
'아뿔샤~ 자켓에서는 열이 안나지~'
그래서 얼른 두손을 겨드랑이 밑에 끼웠다.
'아뿔샤~ 자켓이 겨드랑이의 열을 차단하지~'
그래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장갑을 찾다가 못 찾아서
핏덩어리를 한움큼 틀어막은듯한 빨간 목장갑을 끼고 나
왔다.
쪽팔릴만도 했지만
'자켓안에 넣으니 안심~' 이라고 웅얼거리며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만두집까지 걸어왔다.
동네 만두집이라서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두다.
그리고 이 만두를 먹기 위해서 이렇게 부산을 떨으며 와야 했었다.
만두집에서는 열심히 찜통의 만두의 김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이~ 아주매에~ 여기 김치만두랑 고기만두좀 골고루 5천원어치만 싸주이소."
한껏 소리를 내지르자 이내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만두김과 어울러져 하늘로
사라진다.
드르륵~
문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인가 낯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아 모예? 또 김치만두랑 고기만두인교? 총각은 맨날 그거만 먹네예?"
"와? 요기서 사묵는게 뜹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형용할수 없을정도로 반가웠다.
"아이다. 아이. 좋치. 총각같은 손님이 있으니까 우리
만두집도 좋은거고 나도 이렇게 반가운거지.
군말말고 만두나 많이 싸주이소."
"하모하모 마이 싸드리지. 총각이 단골손님이잖소."
아줌마는 늘 이런식이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그래도 이 만두집을 자주
애용하는 이유라면 맛있고 양이 푸짐해서이지.
찜통의 뚜껑을 들어올리자 따뜻하고 하얀 찜통의 수증기
가 이내 내 주위를 감쌌다.
고소하면서도 감칠만 느껴지는 고기내음과 또 새큼하면
서도 알쌀한 김치내음이
내 코를 자극했다.
"아~ 아주매에~ 오늘 만두는 참 맛나겠네예?"
"총각~ 우리집 만두가 언제 맛이 없었던적 있었나?"
"아입니더."
이렇게 수긍해줘야지 저 말많은 만두집 아지매가 또 속
사총처럼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한번 말꼬투리라도 잡히다가 잘못 감정싸움되다가는 맛
있는 만두를 많이 얻어가지 못할것이다.
일단 아줌마의 마음을 잘 사로잡아야 아줌마가 만두를
많이 줄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꼭 면접시험장에서 취직이 되기
위해서 면접관앞에서 거짓웃음과 아부을 떠는 모습이 겹
쳐졌다.
"34341번 김득동님 입실하십시오."
"아예! 김득동 입실합니다.
"다시한번더 문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져보며 결사의 항전
을 준비하듯 문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덜컹~
복도에서의 어둡고 깊이가 낮은 조명의 초조함에 익숙해
있다가 문을 열자 마자 창문에서 날카롭게 내리꽂는 빛
과 눈앞에 펼쳐진 전장터에는 탱크가 눈앞에 서 있는 것
처럼 역광으로 검게 드리워진 면접관들이 위엄있게 책상
에 앉아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역광때문에 자세한 표정을 알수도 없었고 죽음의 공포에
저린 이등병처럼, 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다가 감시관
의 써치라이트에 온몸의 주위를 옥죄고 있는 듯했다.
"자네 뭐하나? 빨리 의자에 앉아야지!"
순간적으로 얼어붙어서인지 내가 무엇하러 여기에 왔는
지 조차 목적의 이유조차 상실해가고 있었다.
'정신차려야 해. 정신차려야 해.'
주변을 둘러보니 딱딱한 의자가 애초로이 나를 기다리
고 있었다.
면접관을 쳐다보며 손을 더듬거려 의자를 잡고 앉고서야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이미 손등에는 땀
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구두 속의 양말은 흠뻑 젖어서
장대같은 소낙비를 방금 뚫고 달려온 듯했다.
고개숙인 눈앞에 보이는 땀에 젖은 손을 양복소매에 스
윽 문질렀다.
잠시 마음을 달랜후에야 서서히 면접관의 모습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이 총각! 뭐하노?"
"아예~ 저는 김득동입니다."
"무신 소리인교? 자~ 만두! 만두 사러왔잖아? 총각이 아
침부터 정신이 빠져서 되겠나?"
아줌마의 억센 손에는 두툼하게 쌓인 봉다리를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총각 늘 좋아하는데로 고기만두 김치만두 1:1비율로 넣
었고 또 총각 좋아하는 양념장도 봉다리에 넣어줬다. 단
무지는 안 먹지예?"
"아예~"
"뭐하노?"
아줌마의 말이 떨어지자 이내 알아차리고 주머니에서 꾸
깃꾸깃해진 천 원짜리 다섯장를 꺼냈다.
여기...
"하~ 이 총각 왜 또 이러노? 평소 이러는기 참 요상스럽
단 말이야,.....뭐 오늘이야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구겨진 메모지같은 천원짜리를 아줌마는 내 목장갑안에
서 낚아채고 대신 만두가 가득 들어있는
봉다리를 얹어주었다.
"아~ 춥다. 총각 반가웠소. 총각 잘 가이소."
손에 든 지폐를 흔들며 간략한 인사를 한다.
드르륵 탁~
날씨가 춥긴 추웠나 보다.
어느때같으면 내가 가는 걸 쳐다보며 궁얼궁얼 대며 또
저런다고 말을 해댈텐데....
그나저나 맨날 단골로 손님인데 거기다 오늘 첫손님일텐
데 손님 배웅하는게 이게뭐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경사진 골목길이다.
이 골목길은 아스팔트로 자동차를 배려해서 포장되었기
때문에 아무 허가도 받지 않고 가는
나 또한 심심하게 지나다니는 자동차에게 길을 배려해줘
야 했다.
아스팔트 주변의 흰선은 다 지워지고 더러운 오물떼로
얼룩덜룩해져 있고 오히려 중앙에 사고표시를 하느라 스
프레이로 덕지 덕지 그려놓은 낙서들로 더럽혀져 있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자주 들리는 동네, 동네 양아
치들이 깽판 부리는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로 얼룩져진
동네, 언덕이라서 올라가기는 힘들어보이지만 다들 저
아래의 고층아파트를 꿈꾸고 탈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 사는 동네,그리고 그속에 살고 있는 내 인생이 이런
것인가?'
바닥의 스프레이자국 위의 언제 치어서 뭉게진지 확인할수 없는
납작해진 고양이 사체들과 누군가가 구토하고 얼어붙어서
어지럽혀진 아스팔트바닥을 애써 외면하고 피해가며
슬 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간다. 한발자국 내딜때마다 만두가 가득담긴 비닐봉
지가 무릎에 부딪힌다.
현실의 답답함 생각들을 단 번에 흩날리듯
무릎에 부딪히던 진동과 함께 만두의 맛난 냄새가
코를 진동시켰다.
'그럼 그렇지..... 왠 철학적인 생각이람. 먹는 것에 약
한 것이 나이고 그저 본능에 이끌어 사는것이 나인
데.....'
만두가 깨지지나 않았나 봉지쪽을 확인해보았다.
봉지안에서 나오던 뜨거운 김이 사그라 들고 물방울이
맺힌것이 내 입김과 대비된다.
식기전에 먹으면서 가야 겠다.
오른손을 미동없이 살아있다고 믿는 심장을 지나 왼쪽
겨드랑이에 넣고 신발을 벗듯이 손을 잡아당겨서 목장갑
을 벗었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끼워둔 장갑을 뽑아서 자켓의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다.
이어 봉지에 손을 넣어서 만두를 집어 본다.
아직 뜨겁다.
'큰거는 집에서가서 먹고 집에 걸어가는 동안에는 작은
걸로 하나 집어 먹어야 겠다.'
더듬어 보니 대충 집히는 크기가 있다. 아마 고기만두일
거다.
한쪽을 잡고선 한쪽으로 한입 베어 물어본다.
만두안의 고린듯하면서도 고소한 고기맛이 퍼진다.
주체할수 없이 뜨거운 증기가 입밖으로 새어나온다.
"허... 우우웁음... 쩝쩝...."
뜨거워서 입천장이 대는 줄 알았다.
남은 조각의 고기 한알이라도 떨어질까 조심스레 들고
차가운 공기를 한모금 물었다가 후하고 분다.
뜨거운 고기냄새가 확 퍼지면서 뿌옇게 공기를 흐려놓는
다.
"김득동씨 제 질문을 이해못하셧습니까?"
분명 뭐라고 했는데 긴장을 해서 못 알아들었다. 아니
알아 들었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까먹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분명 의자에 앉았는데도 다리가 후
들거린다.
그 진동이 의자를 흔들고 파장을 일으켜 머리 속까지 흔
들어 놓는다. 내가 내 뱉어야 할 한마디마져 분해시켜버
렸다.
"예,,,, 저,.,., 그...."
분해되어 버린 말은 면접관들의 주의마저 분해해버리고
있었다.
시간은 바위가 으깨지고 모래가 될 정도로 길고 길게 느
껴졌다. 하지만 한마디로 꺼낼 수가 없었다. 나의 시선
은 면접관의 일그러지는 눈빛을 읽으며 나락으로 계속
추락하고만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가셔도 좋습니다."
이런걸 바란것이 아니었는데 ....파행의 끝으로 향해 갈
목적지를 미리 예견한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
었다. 그저 주저앉고만 싶었다. 하지만 뭔가를 말해야만
했다. 지푸라기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아...예.... 감사합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도 놀란다. 그만두고 나가고
싶었던 것이었던 것이 본심이었었나......
생각하기도 전에 의자에 앉아있을때마도 후들거렸던 다
리에 언제 힘이 생겼는지 일어서서 문앞으로 가고 있다.
문앞에 서고 말릴 시간도 없이 문 손잡이를 돌리게 된다.
아 나는 개미인가 보다. 면접관뒤의 창문은 돋보기이고
돋보기의 햇빛에 타죽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개미인가 보
다.
"김득동씨!"
나를 불렀다...... 불렀다..... 말 잘듣는 아이처럼 바
로 돌아서서 면접관을 바라보았다.
"지갑이 빠졌네요..."
애써 웃는다.... 바보같이 웃는다. 울고 있는지도 모른
다..
재빨리 의자에서 지갑을 집어 들고 창피함과 쪽팔림 모
든거....를 지갑과 함께 뒷주머니에 넣고선 문 손잡이를
다시 잡는다....
덜컹.... 문 손잡이를 열자 복도에서 대기하던 대기자의
웅성거림이 쏟아진다.
<다시 현재>
우우웅~
"어...."
다시 뒤돌아보니......자동차가 크게 보인다.
한손에는 먹다 남은 만두조각이 쥐어져 있었고 한손에는
만두가 들어 있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재빠르게 길옆으로 비켜섰다.
더 빠르게 만두봉지가 내 무릎을 친다.
만두봉지를 이렇게 세게 치면 만두가 깨질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다가오고 지나가는 만큼 나의 움직임도 격렬해
지고 정신을 깨운다.
더러운 담벽 옆으로 비켜서자 자동차는 요란한 엔진소리
를 날리며 앞으로 앞으로 올라간다.
"와 저 사가지 없는 새끼를 봤나!"
왠지 모를 몰상식한 운전자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
랐다.
'아 맞다. 먹던 만두.....'
손에 쥐고 있던 만두가 생각났다. 바라보니 다른 손의
만두는 속의 고기알들을 도망가버린채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남은 만두피를 입에 우겨넣으며 떨어진 고기알들을 바라
보았다.
고기알들은 내가 금방 뛴 궤적을 따라서 떨어져 있었다.
밸런스가 맞지 않는 만두피를 씹으며 땅에 떨어진 고기
부스러기들을 바라본다.
'아까 그 자동차만 아니면 저것들이 다 내 입에 있을텐
데.'
"아 뭐꼬?"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죽어버린 듯한 골목길에는 차가운
바람만 불뿐이다.
"여기! 여기봐라. 니가 그렇게 무릎으로 쳐대던 여길 보
라고."
고개를 숙여서 무릎을 바라보자 내 손에 매달린 봉지에
만두만 보인다.
"여길 보라고."
"으악!"
너무 놀래서 봉지를 던져버렸다.
"아이쿠~ 뭐하는 거야? 아까는 잘도 뒤적거리면서 만지
작 거리고 쳐먹더니 기껏 소행이 말씀한마디 했다고 그
렇게 놀래시나?"
분명 그랬다. 봉지안에서 말하고 있었다. 아까전까지만
해도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던 봉지였다.
먹기만 했었다. 봉지에서 만두만 꺼내 먹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봉지안에서 말을 한다.
왜 갑자기 말소리가 나는 거지? 아줌마가 담아준것은 만
두뿐이었는데.............
만두가 말을 할수 있나? 이미 잘개 다져질대로 다져지고
만두가게 아줌마가 찜통에서 익히기 까지 했는데 살아났
나?
"야! 나좀 꺼내봐. 아까는 잘 쳐먹더니 왜 그래?"
얼마전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갔을때
아줌마가 만두를 싸주시면서 하는 말이꿈에서
만두를 먹었는데 깨고보니 바퀴벌레를 먹었다 것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말을 하는 존재를 먹었다는 것에 속에서부터 밀려옴이
느껴왔다.
'분명 내가 잘못 듣는 것일게야.'
내가 잘못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조심스레 던져
서 봉지 밖으로 튀어나온 만두근처로 다가갔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만두에서 꺼져가는 촛불처럼 증기
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저 일상적으로 보는 만두들이다. 조
심스레 만두들을 손가락으로쳐봤다.
일반적인 만두다.
"잘못 골랐어."
"분명 소리가 들린다. 봉지안에서 나는 소리다. 봉지를
조심스럽게 벌려본다."
"짜잔~"
"으악!"
다시 봉지를 덮어버렸다.
만두 봉지가 갑자기 꿈틀거린다.
만두에서 소리가 나온다.
금방이라도 만두가 튀어 나올것만 같다.
"이새끼가 압사시킬려고 요동을 치는 구나. 형이 좋은
말 할때 너의 그 피래미같은 손을 치워라."
봉지안에서는 들리는 소리다. 하지만 너무도 당당하게
우렁찬 목소리를 듣자 말잘듣는 강아지가 주인의 말을
듣는것처럼 아주 빠르게 다시 봉지안을 열어주었다.
"이런 아름다운 새끼를 봤나."
봉지안의 만두는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이새끼가 대답을 안하냐? 대답을 해야지."
"옛..."
만두한테 이렇게 대답을 하는게 어처구니없었지만 대장
의 부름에 대답하듯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횽이 봉지 안에서 밀폐된 공기만 마셨더니 좀 불편하구
나. 좀 환기 좀 시켜주라."
두렵기도 했지만 봉지안을 벌려주었다. 봉지 안에는 김
치 만두와 고기만두가 있었다. 평소에보던 그런 만두들
이었다. 도대체 이런 만두들이 어떻게 말을 한거지. 그
때였다.
"여기를 보라고 여길!"
그중에 만두 한개가 갑자기 들썩인다.
그러더니 그 만두는 만두피가 터지는가 싶더니 한쪽면이
찢어지더니 벌어졋다가 닫혔다를 반복한다.
"나를 보란말이다."
벌어지는 만두피속으로 말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벌릴떄마다 그안으로 만두속이 보인다.
입에 씹던걸 잔뜩 머금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냐? 형은 아주 특별한 만두란다."
밥먹던 사람의 입에서 밥풀이 튀어나올듯
금방이라도 만두속이 쏟아질 듯 말듯하다.
"예에....."
"형이 너무 오래동안 환기를 했나보다. 밖이 너무 추워
서 몸이 다 식으라고 그런다. 자세한 내막은 차근 차근
설명해줄테니 빨랑 너의 집으로 가자."
잘 모르는 아이에게 어른이 시키자 아이가 말을 듣듯이
봉지를 들었다. 봉지 안으로 만두가 다시 뒤섞이는 무게
가 전해온다.
"야 이놈아! 조심조심 들어!"
"아 예...."
봉지를 들고 서자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봉지에서 쏟아진 두개의 만두가 나뒹굴고 있었고 아까
그 곳 그자리이다.
"아 뭐해! 빨리 가자고."
"예...... 만두 좀 줍고요...."
"너 임마 봉지좀 열어봐라."
다시 봉지를 열자 그 만두가 꿈틀거리며 다른 만두들을
제끼고 올라오더니
"너 임마! 니가 만두에 집착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 너 그래서 아까 고기부스러기 떨어
진거 아까워서 그거 줏어먹을려고 쳐다본거냐? 으~거지
새끼. 빨랑 주워."
"예..."
떨어진 만두 두 개를 주워 봉지에 넣으려하자.
"이 개념없는 새끼를 봤나.... 그 만두는 니 자켓주머니
에 넣어."
'졸지에 만두의 말을 듣게 되고 만두의 명령에 움직이다
니........'
줏어든 만두 두 개를 자켓에 넣고 다시 언덕길로 발걸음
을 옯기기 시작했다.
자켓 안으로 축축하고 따쓰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래도 왼손에 들린 봉지에서 전해오는 꺼림칙한 진동보
다는 낫다.
<다시 회상>
면접실에서 나와서 복도를 걸으며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
마다 전해오는 진동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것 같
았다. 나를 쳐다보는 대기자들의 모습들이 나를 불쌍하
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뭐라고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시선을 마주치기 싫었다. 또 모르게 흘릴 눈물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가능한 빨리 그 건물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다.
'그래..... 일단 여기서 나가자.'
발걸음이 재촉하며 이 미로같은 건물에서 나갈 출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계단을 지나 긴 통로를 지나 저쪽 끝에
서 빛이 쏟아지고 있다. 더 걸어가면 밖으로 다니는 자
동차가 보이는 유리문이 보인다. 손을 뻗어 유리문을 밀
어연다.
<다시 현재>
양동이에 담아놓은 찬물같은 바람에 정신이 든다.
말도 안되는 경험......현실에 맞도록 해석해야 했다.
진짜 만두일까? 누가 장난을 친건 아닌가?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왼손에 끼운 장갑의 거칠은 느낌과 함께 네손가
락마디를 아래로 잡아당기거 있는 것은 분명 비닐이다.
만두가 가득찬 비닐.
곁눈질하듯 봉투를 본다.
얼핏 사이로 만두가 가득차 있는게 맞다.
말하는 만두라...... 그걸 들고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
가......
'아까전에 버리고 도망올 껄.......'
그래도 소중한 몇천원과 맞바꾼 만두를 포기할수는 없었
다. 그리고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만두다.
그러나 그 말하는 징그러운 놈이 다른 만두에도 닿아서
먹기가 꺼름칙했다.
'만두피는 벗겨내고 안에 들은것이라도 먹을까?
뭐....... 어차피 만두피보다도 만두 속이 더 맛있긴 맛
있지.'
그순간 오른쪽 자켓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에 미지근하게
물컹이는 만두가 느껴졌다.
아까 바닥에 떨어뜨렸다가 주은 만두 두개다.
이제 만두피랑 같이 먹을 온전한 만두보다도 벗겨내고
만두속만 먹어야 만두가 더 늘었다.
아무리 삼겹살이 맛있다고해도 상추쌈에 싸먹는 맛이 더
땡기듯이 만두는 만두답게 같이 베어먹어야 맛있는 법인
데 영락없이 만두속만 먹어야 할 노릇이다.
'이렇게 된거 먹을만큼만 잽싸게 들고선 나머지는 버릴
까? 그걸 들고 집에 들고가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걸을때마다 봉지에 다리가 부딪힌다.
걸음을 멈추면 봉지는 다리에 부딪히지 않고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다 멈출것이다. 그러면 만두가 다시 기어오를지
모른다.
가능한 빨리 버릴곳을 물색한뒤에 먹을것만 집은 후에
봉지전체를 던져버리면 어떨까?
하지만 그러면 아까운 만두를 많이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만두만 집어서 던져버릴까?'
'아까 이빨도 없었는데 설마 물지는 않겠지? 물어봤자
밀가루껍데기잖아.'
하지만 쫓아올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쫓아올지 모
르지만 그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가능한 멀리 던져야
할것이다.
가능한 멀리 던지고 전력을 다해서 도망치면 못 쫓아 올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서 만두 껍데기만 벗겨내고
만두 속만 먹으면 될것이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은 잊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될것이다.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경사를 이룬채 바닥에 온갖 낙서와 함께 위로 뻗은 아스
팔트, 그리고 좌우의 삶에 찌들어 버린 집들이 박혀있고
걸음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좌우로 뒤로 떠내려간다. 자
꾸 흘려보내면 안된다.
'경덕이는 바보'라고 낙서된 담벼락
이제 집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빨리 실행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보인다. 음식물 쓰레기통, 음식물로
의 가치를 잃어버려서 버려지는곳. 먹고 싶지 않은 존재
를 버리는 곳이다. 딱 어울리는 장소다.
멀리 던질 필요도 없다.
미안하지만 니가 있을 곳은 거기다.
거기에 넣고 뚜껑을 닫아버리면 멀리 던질필요도 없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다리를 치던 봉투가 멈췄다.
미세하게 떠는 두 다리 옆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다.
만두가 담긴 봉지의 손잡이중 한쪽을 놓자 봉지가 벌어
진다.
<다시 회상>
유리문을 열고 나와 걸어가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해 걸어
간다. 주머니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오른손으로 받쳐들고
왼손으로 벌린 지갑 안을 들여본다.
누렇게 떠버린 분홍 색 천원짜리 일곱장과 고등학교 졸
업기념으로 받은 국가가 나를 인식하는 신분증과 얼마들
어있는지도 모르는 교통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
하지만 잃어버릴뻔 했다. 면접실 문밖으로 나갈려는 순
간에 바로 가져가라고 해서 지금 내손에 있는 것이다.
그대로 뛰쳐나와버리고 나중에서야 지갑을 잃어버린걸
알아서 주변에 기웃거리다가 집까지 걸어갔을 생각을 하
면....집에 도착하고 하루 이틀 지갑 잃어버린것도 까먹
었을 무렵.....전화가 올것이다.
그리고 경병산업이라고 할것이다.
그러면 기뻐서 좋아하겠지..... 드디어 합격인가?
근데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지갑 가지러 오라는
.....실망하고 쪽팔리고......그리고 힘들어 하
고.......오히려 더 잘된일이다.
무엇보다도.....지금은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이 돈마저 잃어버리지 않은게 중요했다.
'그래....새옹지마라 했듯이 면접은 그렇게 했지만 이거
라도 건진게 어디야.....좋은일! 좋은일이 생길거
다.....바로 생길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
적.....주변에 좋은 일이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방금전에 버스가 다녀갔는지 정류장에
줄이 없다. 혼자서 서 있다.
'버스가 올려면 좀 기다려야 겠구나.'
그 순간 정류장 옆의 정류장판매소에 매달린 녹색원형의
LOTTO라고 새겨진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갑안에서 한장을 집어 꺼낸다.
그리고 지갑은 뒷주머니에 넣는다. 잃어버리지 않게 한
번 더 뒷주머니를 만져본다.
천원짜리를 꼭 쥔채 승차권 판매소 앞으로 간다.
아직 정류장엔 사람이 없으니 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로또OMR용지가 작은 탁자위에 놓여 있다.
한장을 집어들었다.
"오에말펜주소...."
'못들었나.....'
"로또하게 OMR펜주...세...요."
탁자와 유리사이로 구멍뚫인 곳으로 마치 기다렸다듯이
OMR펜이 삐죽나온다. OMR싸인펜으로 숫자칸을 검게 채워
나간다.
'오늘이 며칠이었더라......'
집으로 갈 버스번호와 오늘 날짜를 조합해서 채워넣는다
. 그리고 OMR싸인펜과 천원짜리, 로또OMR용지를 승차권
판매소 유리틈사이로 넣는다.
"로또요 로또......"
유리 구멍 아래로 알수 없는 손이 안으로 끌고 간다.
잠시 뒤에 유리틈 사이로 번호가 찍힌 로또용지와 기입
한 로또OMR용지를 내민다. 두 용지를 받아 들고선 번호
가 제대로 찍혔는지 양손에 들고 바라본다. 틀린그림 찾
기다. 틀린것이 없어야 한다. 내게 희망은 그것밖에 없
어보였다.
<다시 현재>
벌어진 봉지 사이로 보이는 만두들은 고난이도의 틀린그
림 찾기처럼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구분할수 있을 뿐이었다. 마음을 굳게 다짐
하고선 찾고자 하였던 말하던 만두는 보이지 않았다.
'밑에 숨어 있나? 가만히 있을리가 없는데.........'
장갑을 벗은 상태의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만두를 집어가
며 뒤적거려보았다. 그러나 조금만 건드리면 튀어나올것
같은 말하는 만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혼란
스럽게 했던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내가 잠깐 홀렸었나?'
귀찮은 존재가 될수도 있었던 만두가 쉽사리 사라지니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헛것을 본것이 아
니었나 생각이드니 도리어 내 자신의 정신상태가 걱정스
러워졌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눈 앞에서 실황처럼 펼쳐지던 일들이 모두 헛것이었다니
. 그나마 오늘따라 사람들이 보지 않아서 다행이지 동네
사람들이라도 보고 있는데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을까?
'그래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는 법이지.'
이제 만두를 버릴 필요도 없고 만두피만 제거해서 만두
속만 먹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안해도 된다. 어
서 발걸음을 재촉하자는 생각뿐이다. 어차피 잠깐의 헛
것이 보였을지라도 문제가 될일은 없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도 헛것을 보며 살아갈것이다. 다만 다른 사
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일것이다. 나도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말할 사람도 없지만........'
<다시 회상>
틀린그림을 찾기를 끝내고 로또용지를 지갑속에 집어 넣
고 몇분 지났을까..... 내 뒤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의 줄이 제법 길어졌다. 길이 막히는지 버스의 배차간격
이 약간 길어진 듯하다. 좀 더 빨리 정류장에 왔으면 이
전에 갔을지도 모를 버스를 탔을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기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줄의 맨 앞에 섰
으니 버스에 자리가 한자리라도 남아 있다면 제일먼저
앉아 갈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로또를 구입할수
있지 않았는가? 이 로또가 당첨이 된다면 굉장한 기회가
될것이다.'
면접장에서 겪었던 혼란스러운 마음은 모두 잊어 버리기
라도 한것처럼 로또 한장에 괜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
갔다.
로또에 정신이 팔려 있을때 뒤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
르르 나를 제치고 지나간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
생각할 겨를은 없다. 나도 뒤따라오는 군중을 헤치며 버
스 안으로 올라섰다.
<다시 현재>
방금전에 겪은 만두의 환상을 뒤로 한 채 집안으로 들어
오자 훈훈한 공기가 밖의 냉랭한 공기와 대비되듯 한결
마음도 밖에서보다 더 안정되었다.
슬리퍼를 털어내듯 벗어던지고 만두 봉지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주어온 만두 두개를 꺼
내서 바닥에 놓는다. 왼손에 끼우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옷걸이로 다가가서 자켓을 던지자 옷걸이 위로 간당간당
하게 매달린다.
싱크대로 달려가서 물을 튼다.
얼얼하게 차가운 물이 두 손에 닿자 정신의 속까지 깨우
는 듯하다. 퐁퐁을 로션바르듯이 한쪽 속에 살짝 털어낸
뒤에 비벼낸다. 미끄러움을 문질러 지우나 차가운 물때
문에 견디기가 쉽지만은 않다. 미끄러운 기미가 제거되
자 수도꼭지를 잠그고 막 비상하련느 새처럼 물기를 털
어냈다.
"으~ 추워."
식사하기전에 하는 기도처럼 두손을 심하게 비벼대며 차
가운 물에 놀랜 두손을 달랜다.
'꼬르르륵'
두손만 달래주는게 못마땅했듯이 자기도 알아달라듯 신
호를 보낸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못
먹었다. 만두를 먹겠다고 돌아다녔으니 그런 법도 하다.
빨리 사온 만두를 먹어야 겠다. 바닥에 내려놓은 만두를
향해 걸어간다.
<다시 회상>
버스에 올랐으나 방금전에 로또에 정신이 팔려서 뒷줄의
사람들이 먼저 올라타서인지 자리가 없었다. 집까지 서
서가야 한다. 면접을 본 곳에서 집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어서 한참을 서서 가야 했다. 여기까지 온 고생치고는
별로 좋은 일이 없었다. 한손에 매달린 손잡이를 꼭 부
여잡는다. 난폭한 버스 운전에 흔들릴수록 손잡이를 더
꼭 부여잡는다. 전쟁이다. 전쟁. 그 전쟁속에서는 오직
잡을껀 총 밖에 없는 신세다. 전쟁터로 향하는 트럭안의
병사들처럼 서로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차창 밖
으로 보이는 고층빌딩과 건물들을 지나 저멀리 저멀리
가야 한다. 내 앞에 앉은 아줌마는 오늘 일상을 잊으려
는듯 창밖도 눈을 감은채 잊으려 한다. 그 뒤에 앉은 학
생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다들 무관심이다.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이고 현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저 그
렇게 버텨가고만 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난 손잡이를 부
여잡고 서있을뿐 그들에게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학생이 휴대폰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줌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할아버지는 어디를 갔다오는 것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고 싶은게 아니라 내 삶을 버
티는 것조차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다시 현재>
바닥에 내려놓은 만두부터 처리해야 했다. 우선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 만
두의 껍데기를 찢었다. 조금 찢어내자 만두안에 맛있는
고기가 있다. 입을 붙이고 핥아가면서 한개라도 흘릴까
먹어갔다. 아까운 고기만두이다. 정신없이 먹었다. 조금
의 허기를 채워가며 나머지 만두도 마찬가지로 찢어서
안의 내용물을 먹어갔다.
<다시 회상>
한참이 지나서야 버스에서 내리고 또 환승을 했다. 그리
고 마을버스로 환승하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내 지하
단칸방, 아무도 없는 불꺼진 지하방으로 환승을 했다.
입고 있던 정장을 옷걸이에 내팽기치듯이 던져 올리고
바닥에 때가 꼬질꼬질해지고 해질대로 해진 츄리링으로
갈아 입었다. 이제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허기로 밀려온
다. 정신없이 보내느라 점심도 못 먹었다. 생각해보니
밥솥에는 먹을 찬밥덩어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찬장에도 라면 한조가리조차 없었다. 오늘만큼은 이렇게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무엇인가 만찬을 벌이고 싶었다.
그때 떠오르는 것은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였다.
'그래, 오늘 저녁은 김치만두하고 고기만두하고 지갑에
있던 돈을 다 써서 먹는거야.'
아직 저녁시간이고 그 만두아줌마는 늦게까지 영업을 하
신다. 변두리동네에서 영업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마 가게
안에서 TV를 보면서 지키고 있으실께 분명하다. 갖고 있
는 만두도 팔아야 하고 이런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이 집에 가면서 가장많이 사갈때이기도 하다. 집
에서 만두가게까지는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땅거미가
질 무렵의 핏빛 하늘이 저물기 전에 빨리 가야한다.
장갑을 찾아보지만 장갑이 보이지 않는다. 급한마음에 신발장에
쑤셔놓은 목장갑을 손에 끼우고 집밖을 나선다. 밖에는 도
둑고양이 우는 소리뿐 적막하다.
<다시 현재>
떨어뜨렸던 만두를 다 먹고 나서 봉지속에 있던 만두를
이제 먹을 차례였다. 같이 싸준 양념장에 제대로된 만두
를 먹는 거다. 이미 입안에는 고기만두맛과 김치만두맛
으로 흥건했으나 아직도 나는 배고팠다. 끊임없이 채워
넣어도 부족할만큼 배고팠다. 몇개남지 않았지만 봉지로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열었다. 그리고 난 얼어버렸
다.
<다시회상>
한참을 내려 갔을까.....
저쪽에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우리만두네'라고
써있는 간판 내가 자주 가던 만두집이다. 집에 오를때만
해도 무거웠던 발걸음이 먹을 것을 앞에둔 파블로의 개
처럼 본능에 이끌려 신나게 내딛는다. 하지만 만두집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옆의 가게와 달리 간판에 불이 들어
오지 않은게 의아스러웠다. 애써서 나왔는데 혹시 문 닫
는 건 아닐까.... 아줌마가 전기가 아까워서 간판에 불
을 켜지 않을리도 없고 이해할수가 없었다. 혹시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문을 닫은건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을 했지
만 내가 면접을 보러온 날을 떠올려보고 오늘 있었던 일
을 떠올려보면 분명 금요일이다. 바로 옆의 슈퍼마켓도
간판에 불이 켜져 있는것과는 대비되게 만두집은 간판에
불도 켜져 있지 않았고 만두김도 나오지 않았고 만두냄
새도 느끼기 어려웠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만두집은 문이 잠궈져 열려 있지도 않
았다.
'무슨날인가? 왜 만두집이 닫혀 있지?'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면서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나
지도 않았고 날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집밖에 나왔는데 라면이라도 사기 위해서 슈
퍼마켓에 들어섰다.
드르륵
슈퍼마켓 문을 열자 석유난로의 냄새와 따뜻함이 밀려왔
다.
"빨리 들어와서 문 닫으래이."
TV를 보던 주인아줌마가 열기가 나갈까봐 문을 닫으라고
한다.
"총각 올만이네."
츄리링바람에 자주 올수밖에 없는 나에게 농담을 건넨다
.
"근데 표정이 와 그랐노? 뭔 일이 있나보네? 하긴, 오늘
참 이상한 날이긴 이상한 일이 많다."
아줌마의 말에 별로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라면을
한 개 집고선는 천원짜리를 주며 말을 이었다.
"와 무신 날인교? 근데 옆집에 만두 가게는 와 문을 안
열었십니꺼?"
그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줌마의 눈빛은 약간 침울하면서
도 그걸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듯 생동감있게 움직
였다.
====================================================
=
"마, 총각이 말한대로 옆가게 만두댁때문에 그런긴데,
아침에 평상시대로 의자에 앉아서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
는데 밖에서 왠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거야. 냅다 나가
봤더니 만두집에서 왠한 아가씨가 문을 열고 나오는데
사람이 죽었다하지 않는기야. 그래서 들어가보니까 만두
댁이 쓰러져 있는 거야. 그래서 119인가 뭔가 신고를 하
고 가족들한테도 전화하고 생 난리를 부리고 그랬는데도
와~ 사람의 명이란게 그리 허망하니..... 평상시 심장이
안 좋다 하더만 오늘 날씨도 추운데 난방도 제대로 안된
가게에 들어와서 가게 개점준비하다가 쓰러진거라는데
한참 뒤에야 손님이 와서 발견했으니 와 그러니 나도 손
쓸수가 있나.... 총각도 날씨도 추운데 조심하그래이."
아줌마의 설명에 다소 놀랐기도했지만 그말에 별로 반응
을 보이지 않고 잠시뒤에 가게를 나왔다. 하지만 나는
침울해져 있었다. 자주 보던 아줌마의 죽음보다도 내가
좋아하던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저렴한 가격에 먹기 힘
들어졌다는 사실에 이기적인 슬픔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다. 더구나 오늘만큼은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먹고 싶
었었다. 꼭.... 그랬었다......
오른손에는 라면하나를 들고 터벅터벅 이미 어두워질대
로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져 끝도 보이지도 않는 언덕으로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오늘하루의 일만큼이나
무거웠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집에 간다. 한참
을.....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
을 하며 걷는다.
<다시 현재>
봉지 속의 만두중에는 아까 그 말하던 만두가 있었다.
'분명 아까 집에 들어오기전에는 없었는데.....어떻게
다시 그 만두가 있는거지?'
"왜 떯냐?"
입안으로 금방이라도 고기조각이 튀어나올듯 만두는 말
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아까는 분명....."
"뭐가 아까는 분명이야? 이 한심한 놈아! 아니지 기억력
3초짜리 붕어야! 니가 그러니까 인생 낙오자인거야."
만두의 인식공격적인 말보다도 있을수 없는 일의 반복에
대해서 나는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니야..... 또 환상을 보고 있는 거일거야......더구
나.... 오늘 생각을 해보니까 오늘 어떻게 만두를 사온
거지...... 아니...... 분명 어제 아줌마는 죽었다
고......."
"하하하하하.... 야.... 슈퍼마켓 아줌마가 거짓말한거
야...."
"아 그래....."
방금전에 만두를 사올수 있었던 이유가 가능하다는 것에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여전히 만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는 것이 날 두렵게 하였다.
'그러면 어제 아줌마는 왜 문을 안 열었었지? 그리고 슈
퍼마켓 아줌마는 왜 거짓말을 했었지?'
수많은 의문과 생각과 놀라움으로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
일수가 없었다.
<다시회상>
어둑어둑해진 언덕을 오르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
다. 낮에는 들을수 없던 도둑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다. 지금의 고양이 울음소리는 어렸을때 귀엽게 보이던 야옹이 아니
다. 기괴한 소리라 지독한 현실만큼이나 싫다.. 특히나 추운 겨
울이 되면 춥다고 우는 고양이 소리는 계속 어디선가 울
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싫다. 술먹고 마누라
를 두들겨 패고 집안을 때려부수는 소리나 살기 힘들다
고 우는 여자나 아이의 울음소리는 얇고 부서질듯한 벽
에 하나둘 분해되고 답답하게 만든다. 빨리 이곳을 떠나
고 싶다고 자꾸만 재촉하지만 나는 이 언덕을 오를때마
다 이곳을 벗어날수 없다는 사실에 더 절망감을 느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언제 다가올 죽음도 대비하지 못한
채 하루 하루 불행에 찌들어 가며 살아야 한다. 빠져나
올수 없는 함정..... 인생의 불평등....... 그리고 서로
에 대한 무관심과 더이상의 발전없는 장소........그리고 사
람들......오늘도 만두집 아줌마는 죽었지만 나는 그 사
실을 별로 슬퍼하기보다도 다시는 그 만두를 먹을수 없
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문
제를 해결할 수없다는 것보다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이
곳을 떠나고 싶다고 자꾸만 되내이고 또 되내인다.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올라가는 밤길.
.....하지만 가로등 등불하나 없는 이 길을 겨울
의 추위가 더욱 한적하게 만든다. 계속 울려퍼지던 고양
이 울음소리가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교차되
고 교차되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미로처럼 귀신의 집처
럼 언제 어디서 무엇인가가 뛰어나올지도 모른다. 바로
저 구석에서 동네 양아치가 칼을 휘두르며 내손에 남아 있
는 몇쪼라리 지폐를 뺏기위해 날 죽일지도 모른다......
점점 스산해지고 슬퍼간다. 몇번째일지도 모르는 교차하
는 길을 지나서 걷는다. 그때 갑자기 오른쪽 담벼락위에
서 무엇인가가 뚝하고 떨어져 내 앞을 지나간다.
난 너무 놀래서 라면 봉지를 던지며 뒤로 자빠져 버렸다.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보세요.
<다시 현재>
"이 새퀴 존나 웃기네.... 내가 말한걸 그걸또 믿냐?"
만두는 비웃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걸 믿냐? 슈퍼마켓 아줌마가 왜 거짓말을 하냐?"
"응? 아까는 거짓말이라며......"
"하하하하하...... 농담한걸 그걸 믿냐?"
농담이라고 비웃는 것보다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자체
에 더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 어떻게 아까전에 만두가게의 아줌마는
어떻게 설명을 할낀데?"
만두는 아주 웃기다는 듯이 들썩이며
"하하하하 야.... 바보야.... 너는 그걸 설명을 하라면
서 내가 만두인데도 불구하고 너한테 말을 한다는 게 더
설명이 안되다는 것을 모르냐? 어렸을때부터 곰인형하고
이야기하고 사물하고도 이야기하는 바보였냐? 이거 완전
히 바보네. 하하하하하."
바보라는 소리와 아까부터 비아냥 거리는 소리에 나는
두려움도 잊고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 내가 왜 바보야? 너같으면 이 상황이 이해가 되겠
냐! 그리고 니가 말을 거는데 어떻게 말을 안하냐! 그리
고 아까 분명 아줌마가 만두를 팔았었다고!"
"와~ 대단한데? 화도 낼줄 알고? 근데 너는 아직도 못
꺠달은게 있어. 그게 뭔지 모르겠니? 넌 지금 니가 누군
지 모르니? 왜 현실을 인정못하니?"
만두의 말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넌 말야.... 어제 골목이 교차된 곳을 지나고 있을때였
어. 그때 바로 옆의 담벼락에서 뛰어나온 도둑고양이를
보고 놀라서 뒤로 자빠지더라고.... 하하하하하 그 놀라
는 모습도 얼마나 웃긴지....."
웃던 만두는 곧 다시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자빠질때 운명의 장난이었나.....
골목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오더니 니 머리를 쳐 버리더라.
그 양아치새끼도 어두울대로 어두웠고 또 골목에서 갑자기
자빠지는 널 발견하기가 어려웠나봐.
근데 웃긴건 그 새퀴 라면은 왜 집어드냐? 하하하
그리고는 더 확인사살하는것인지 다시 치고선 가더라고
참 몹쓸 동네에 몹쓸 인간들이다. 넌 그곳에 사는 바보고."
<다시회상>
그리고 이어서 흐리게나마 보이던 회색빛 공기에 투영된
검은 밤하늘도 점점 흘러내리는 끈쩍끈쩍한 액체로 눈조
차 뜰수 없어서 볼 수 없었다. 인내할수 없는 고통과 함
께 의식은 점점 스며 들어갔고 손마디 마디에서 머리 속
뇌까지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도 개같은 도둑고양이에 대
한 원망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망각한 양아
치에 대한 분노나 세상에 대한 실망감보다도 떠오르는
것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박하고 웃기게
도 코끝과 입 언저리에 도는 김치만두와 고기만두에 대
한 미련을 떨며 점점 세상에 대한 의식을 잃어 갔다.
그리고 나서 세상이 또렷해지고 사물을 의식할 수 있을
때 내가 있었던 곳을 바라봤을때 난 나자신이 어떠한 상
황에 처했는지를 알수 있었다. 꼬질꼬질해진 츄리링을
입고 알아볼수 없을만큼 뭉개진 얼굴.... 과 그 위로 목
장갑을 끼운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머리....... 바로 나
였었다......
보기가 싫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차에 치어 뭉게진 도둑고양이를 본적이 있었다. 온몸이
소름이 돋는 듯 얼어붙지만 그 자리를 뜨면 잊혀진다.
잊는 방법은 그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갔
다. 그리고 문을 닫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간
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갑자기 만두가 먹
고 싶어졌다.
'그래 난 만두가 먹고 싶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제 저녁만큼은 먹으려던
했던 만두에 대한, 마지막 미련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난 사실을 망각해가고 있었다. 꼬깃꼬깃했던 지
갑 속의 천원짜리들을 찾아서 집밖으로 나선다. 이제 또
다른 하루이다. 어서 만두를 사 먹으러 가자. 만두를 사
먹으러 가자.....................
<다시현재>
나는 떠날때 알고 있었었다. 이 여행은 짧다고.......
그리고 이제 망각했던 일마저 이 만두에게서 다시 깨닫
게 되었다.
대여행기 고기만두에서 김치만두까지.....
역설적이게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했던 짧은 여행은 실
패로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날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먹었으
니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재밌는 이야기
제1화
대여행기 고기 만두에서 김치만두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