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영구야 뭐 하니?" "보면 몰라? 샌드위치 먹는 중이잖아." 달봉이가 군침을 흘리며 다가오자 영구가 몸을 살짝 돌렸어요. "샌드위치가 무슨 말인지 알고나 먹니?" "그딴 거 알아서 뭐 해. 맛만 좋으면 되지..." "바보야, 샌드위치는 원래 사람 이름이야." 달봉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는 체를 했어요. 정말 샌드위치가 사람 이름일까요?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은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온종일 쫄쫄 굶은 채 카 드를 할 정도로 카드놀이를 좋아했답니다. 식사를 담당한 백작의 하인은 골치가 아팠지요. 백작이 카드놀이에 빠져 번번이 식사를 미루는 바람에 음식이 식어 버리곤 했으니까요. 하인은 보다못해 백작이 카드를 하면서도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도록 음 식을 만들었지요. 그게 바로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딴 샌드위치예요. 샌드위치 외에도 드라큘라, 산타 클로스, 보이콧, 강태공 같은 말 역시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태조 이성계에 얽힌 함흥 차사나 선조 임금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도루묵 같이 역사가 깃든 말도 있지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일화에서 따온 것도 있어요. '노아의 방주'나 '바벨 탑' 같은 표현이 그것이지요. 그밖에 땡전, 시치미 떼다, 철면피, 만우절, 십 팔번 같은 말에도 재미있는 유래가 숨어 있답니다. 우리가 말이 생겨난 유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말의 올바른 쓰임새를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십팔번이 일본에서 건너온 말임을 안다면 더 나은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 력을 기울일 것이고 '을씨년스럽다'란 말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역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면 그 뜻이 더욱 깊게 다가올 거예요. 여러분은 간혹 왜 금을 '노다지'라고 부를까? 왜 지독한 구두쇠를 보고 '자린 고비'라고 할까? 또 여자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친구를 왜 '숙 맥'이라고 부를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나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여러분이 궁금하게 여겨 왔던 것들을 하 나하나 풀어보세요.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자기도 모른 사이 세상을 보는 눈이 커졌음을 느낄수 있을 거예요. 이 책에는 말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지혜와 삶의 진실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차례
1. 세상을 꼬집는 재미있는 말 마녀 사냥...8 배수진...11 마이더스의 손...14 도루묵...17 악어의 눈물...19 면죄부...22 사족...25 판도라의 상자...28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30 토사 구팽...33
2.웃음이 담긴 재미있는 말 꿔다 놓은 보릿자루..36 십년 감수..39 내 코가 석자...42 찻잔 속의 태풍...44 숙맥..46 시치미를 떼다...49 삼십육계 줄행랑...52 돈 키호테형 인간...54
4. 조상들의 삶이 담긴 재미있는 말 함흥 차사...78 자린 고비...81 안성맞춤...84 보릿고개...86 을씨년스럽다...89 땡전...91 계란의 뼈...94 행주치마...97 노다지...100 강강 수월래...103
5. 역사가 있는 재미있는 말 사면 초가...106 백일 천하...108 마라톤...111 마지노선...113 주사위는 던져졌다...116 디데이...119 메이 데이...122 스파르타 교육...124
6. 이름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말 샌드위치...128 드라큘라...130 아킬레스건...133 클레오파트라의 코...136 콜럼버스의 달걀...139 산타 클로스...142 햄릿형 인간...144 보이콧...147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50
7. 이야기가 있는 재미있는 말 백년 하청...154 천리안...157 철면피...160 양상 군자...163 유언 비어...165 오십보 백보...168 강태공...170 출사표...173 홍일점...176 건곤 일척...178
8. 사물에 빗댄 재미있는 말 백미...182 다크 호스...185 십팔번...187 청개구리...190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192 모순...195 카리스마...198 만우절...201 미궁...203
1. 세상을 꼬집는 재미있는 말
마녀 사냥
"아니, 도대체 어디 간 거지? 내 삐삐가 없어졌어!" 얄숙이는 금방 울상이 되었어요. 그 때 짝꿍인 유미가 얄숙이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어요. 얼마 뒤 얄숙이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왈자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소리쳤어요. "왈자야, 너 내 삐삐 가져갔지!" "무슨 소리야!" "너 아까 체육 시간에 화장실 간다면서 교실에는 왜 들어갔니?" "그건 휴지를 가지러 잠깐 들어갔던 거야!" "거짓말 마! 그 가방이나 이리 내 봐!" 결국 둘 사이에는 싸움이 벌어졌어요. 마침 수업 시작 종이 울리는 바람 에 싸움은 그쳤어요. 유미는 수업 시간 내내 마음이 불안했어요. 자기가 그만 경솔하게 입을 놀린 바람에 일이 이렇게 커졌거든요. 유미는 잘못하다간 친구들에게 망신 을 당하겠다 싶어 확실하지도 않은 소문을 퍼뜨렸어요. "왈자가 훔쳐 간 게 틀림없어! 아까 혼자서 뭘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슬 쩍 보니까 후닥닥 가방에 감추더라고. 언뜻 봐서 잘 모르겠지만 꼭 삐삐 같았어." 마침내 아이들은 왈자를 도둑으로 믿게 되었어요. 왈자는 너무 억울해서 엉엉 울었어요. "왜 모두들 애매한 사람을 도둑으로 모는 거야!" 하지만 삐삐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어요. 그 날 저녁 얄숙이가 집에 돌아 오자 어머니가 말했어요. "얘, 얄숙아! 너 오늘 삐삐 두고 갔더라. 방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내가 잘 놔 뒀다." 순간 얄숙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했어요. 낮에 학교 에서 왈자와 싸웠던 일이 생각았거든요. 다음 날 학교에 가자마자 얄숙이 는 왈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다행히 왈자는 누명을 벗었지만, 옛날 서양에서는 한번 마녀로 몰리면 죽음을 면치 못했어요. 기독교 사상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의 교회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지킬 것을 강요했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 고 악마에게 홀린 자라 하여 모조리 처형했어요. 중세 시대에는 이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희생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 어요.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 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답니다. 잔 다 르크가 나라를 구하고 영웅 대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이 그녀를 모 함한 것이지요. 한번 마녀로 몰리면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리고 마녀 재판에는 잔인한 고문이 뒤따르게 마련이었지요. 죄없는 사람 들은 악독한 고문에 못 이겨 자신이 마녀라고 자백을 하고 화형을 당했어 요. 오랜 세월에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처형되었으며 이런 일을 '마녀 재판' 혹은 '마녀 사냥'이라고 부르지요. 마치 아무 잘못도 없는 왈자가 도둑으로 몰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배수진
호르르륵... "작전 타임!" 달봉이네 담임 선생님이 보다 못해 작전 시간을 신청했어요. "이대로 가다간 우리 반이 지겠다. 여기서지면 결승 진출의 꿈은 사라지 는 거다. 모두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힘껏 뛰기를 바란다. 자 파이팅!" 파이팅을 외친 선수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 운 결과 마침내 축구 시합을 승리로 이끌었어요. "와아, 이겼다. 결승 진출이다!" 달봉이네 반 아이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요. 담임 선 생님도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정말 잘 싸웠다. 너희들이 배수진을 치고 싸웠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결 과를 얻게 되었어. 이담에 결승전에서도 그런 각오로 싸운다면 틀림없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와아, 우리 반 만세...!" 이 때 달봉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선생님, 아까 배수진을 친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음... 그건 말이지. 옛날 중국 한나라에서 한신이란 분이 있었어. 항우와 싸워 이긴 유명한 장군이야. 어느 날 한신은 제대로 된 훈련 한 번 받지 못한 군사를 거느리고 엄청난 대군과 싸움을 하게 되었지. 그 때 한신의 군사들은 큰 강물을 등지고 진을 쳤단다. 이건 커다란 모험이었지. 병법에 는 배수진, 다시 말해 강을 등지고 싸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쓰여 있거 든." "왜요?" "왜냐 하면 후퇴할 수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한신은 병법을 어기고도 열 배도 넘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어. 그러자 싸움이 끝난 뒤 부 하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어. '병법에는 강을 뒤로 하고 싸우지 말라고 했 는데 장군께서는 그 말을 어기고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어찌 된 노릇입니 까?' 그러자 한신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지. '자네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 르는구먼. 우리 군사들은 훈련 한 번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뤄졌네. 만약 원래의 병법대로 싸웠다면 서로 먼저 도망치기 바빴을 걸세. 그런데 뒤에 강이 있으니 필사적인 각오로 싸울 것이 아니겠나. 병서에서도 죽기를 각 오하고 싸우면 이기고 살기를 바라고 싸우면 진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이 바로 배수진일세.' 한신의 말을 듣고 모든 장수들이 감탄을 했지. 아까 너 희들이 결승전에 나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똘똘 뭉쳐 힘껏 뛴 결과 승리를 거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야." '배수진'이란 병법의 상식을 깨뜨렸던 명장 한신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서,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필사적인 각오로 싸움에 임한다는 뜻이지요.
마이더스의 손
'내가 손으로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옛날 그리스 신화에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미다스(영어로는 '마이너스'라고 함)는 프리기아의 왕이었어요. 그의 궁전 에는 잘 가꾸어 놓은 장미 동산이 있었어요. 어느 날 시종들이 장미를 손질하기 위해 그 동산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한 시종이 놀라 소리쳤어요. "앗! 이게 뭐야? 모두들 이리 좀 와 봐!" 여러 시종들이 우르르 몰려갔어요. 그 곳에는 한 늙은이가 술에 취해 잠 들어 있었어요. "여보세요. 좀 일어나 보세요." "음냐... 누구야...저리 가..." 시종들이 흔들어 깨웠지만 늙은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어요. 할 수 없이 시종들은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려 미다스 왕에게로 데려 갔 어요. 왕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았어요. "아니, 당신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 세일레노스가 아닙니까? 어쩌 다 여기까지 오셨소?" 그러자 세일레노스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어요. "허허, 이거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군. 술에 취해서 그만 정신 없이 헤매 다가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네." "음,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어쨌든 이왕 오셨으니 며칠 푹 쉬었다 가십 시오." 왕은 그를 정성껏 대접하여 돌려 보냈어요. 그러자 디오니소스는 크게 기뻐하면서 미다스에게 말했어요.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내가 무엇이든 들어 주겠노라." "손으로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해 주십시오." 잠시 후 미다스는 나뭇가지를 시험삼아 부러뜨렸어요. 그러자 그것은 곧 황금으로 변했어요. "아니, 이럴 수가! 이제 난 부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욕심은 무서운 재앙을 몰고 왔어요. 식사 시간이 되어 스푼을 들자 스푼은 곧 황금으로 변했어요. 이어서 스 푼으로 수프를 뜨자 그것도 황금으로 변했어요. 마실 물도 나무도 풀도 심 지어 사랑스런 딸까지도 그가 손을 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 덩어리로 굳 어 버렸어요. 그제야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어요 '아,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처음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왕은 다시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사정을 했어요. 디오니소스는 팍토로스 에 가서 손을 씻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일러 주었어요. '마이더스의 손'은 여기서 생겨난 말이에요. 요즘 야구에서 인기 있는 투수들을 일러 황금 팔이라고 하는데 이를 마 이더스의 손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도루묵
옛날 조선 시대 때 섬나라 일본은 호시 탐탐('주역'에 나오는 말로 범이 눈을 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 우리 나라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선조 임금 때 드디어 전쟁을 일으켰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지요. 우리 군사와 의병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어요. 하지만 신식 무기 인 조총을 앞세운 왜군을 당할 수는 없었지요. 이윽고 왜군이 한양 근처까지 밀고 올라왔어요. 선조 임금은 하는 수 없 이 피난길에 올랐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작스레 떠난 길이라 피난처 에서의 생활은 형편없었어요. 잠자리는 물론이고 음식도 초라하기 짝이 없 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백성이 생선 꾸러미를 들고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찾아왔어요. "상감마마께옵서 이런 생선을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신하들은 크게 기뻐하며 그 생선을 요리해서 임금께 바쳤어요.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선조 임금은 생선의 담백한 맛에 홀딱 반했어요. "음...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이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생선 이냐?"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임금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 했어요. "상감마마, 그것은 어떤 백성이 가져온 건데 저희도 처음 보는 생선이옵 니다." "오, 그런 충성스런 백성이 있었다니! 짐이 그 백성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이윽고 생선을 바친 백성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어요. "음, 네 덕분에 별미를 맛보았구나. 그런데 그 생선의 이름이 무엇인고?" "예, 묵이라고 하옵니다." "허어, 맛에 비해 이름이 보잘것 없구나." 선조 임금은 한동안 생선을 살피더니 무릎을 탁 쳤어요. "옳지, 고기의 배 쪽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것이 아주 고귀해 보이니 앞 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드디어 임진왜란이 끝났어요.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훌륭한 장수 들이 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쳤기 때문이지요. 다시 궁궐로 돌아 온 임금 은 어느 날 피난길에 먹었던 맛있는 물고기가 생각났어요. "여봐라, 오늘 저녁에는 은어 요리가 먹고 싶구나." 그런데 상에 올라온 은어를 맛보던 선조 임금은 얼굴을 찌푸렸어요. 예 전의 그 담백한 맛이 온데간데없어진 거지요. "이런 맛이 형편없구나. 은어가 이렇게 맛 없는 고기였다니... 도로 묵이 라 불러라." 이래서 묵이라는 고기는 '도로묵'이 되었다가 나중에 '도루묵'으로 바뀌었 어요. 흔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처음 상태로 되돌아갔을 때 '말짱 도 루묵이다.'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지요.
악어의 눈물
심술이는 우산을 쓴 채 교문 앞에 서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그 때 왈자가 나타났어요. "어? 심술아. 너 왜 여기 서 있니?" "응, 너랑 같이 들어가려고..." 둘이 사이좋게 운동장을 걸어갈 때였어요. "이크, 이게 뭐야!" 왈자는 신발과 양말이 엉망이 되었어요. 한쪽 발이 진흙 구덩이에 빠졌 거든요. 누군가 장난치려고 일부러 파 놓은 것 같았어요.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심술이는 울상이 다 된 왈자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어 요. 그 날 아침 그 진흙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왈자말고도 다섯 명이나 더 되었어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심술이의 장난이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심술이를 불러 따끔하게 혼을 냈어요. "넌 오늘부터 한 달 간 화장실 청소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화장실 청소만은..." 심술이는 선생님에게 싹싹 빌며 우는 시늉까지 했어요. "이 녀석, 화장실 청소 안 하려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군. 한번만 용서 해 줄 테니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해라." 악어는 잔인하고 징그럽게 생겼지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마음에도 없이 흘리는 거짓 눈물을 빗대어 '악어의 눈물'이라고 해요. 이 말은 '악어가 물 가에서 사람을 만나면 물어 죽인 다음,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 가며 먹을 것이다.' 라고 한 데서 인용한 표현이에요. 요즘 정치권에서 온갖 부정을 저지른 고위층 인사가 국민들 앞에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며 '악어의 눈물'이라 꼬집기도 해요. 또 악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말 중에 '악어 논법' 이란 게 있어요. 이 말 은 이집트의 전설에서 비롯되었어요. 옛날 이집트의 한 여인이 아이를 악어에게 빼앗겼어요. "제발 불쌍한 제 아이를 돌려주세요!" 여인이 악어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정하자 악어가 말했어요. "내가 아이를 돌려 줄지, 안 돌려 줄지 어디 한번 맞춰 보아라. 알아 맞 히면 돌려 주마!" 여인은 기가 막혔어요. 만약 돌려 준다고 말하면 안 돌려 줄 거라고 대 답할 것이고, 안 돌려 준다고 말하면 돌려 줄 생각이었노라 대답할게 뻔했 으니까요. 어떻게 대답하든 잡아먹히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이처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마음대로 해석이 되는 말장난을 가리 켜 '악어 논법'이라고 하지요.
면죄부
"...제6조, 교황은 하나님이 용서한 바를 선언하는 것 외에, 어떠한 죄도 용서할 수 없다...제27조, 영혼이 천당에 가기 위해선 돈을 내야 한다는 거 짓 설교를 하지 말아라...제37조, 참다운 크리스트교인은 면죄부가 없어도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가진다..." 이것은 마르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맹렬히 비난하며 내건 <95 개조 반박문> 중의 일부예요. 면죄부란 돈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준다는 뜻으로 교황이 발행하던 증서를 말해요. 쉽게 말해 우리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차표를 끊듯이 천당으로 가는 차표를 돈을 주고 예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할 수 있지요. 중세 말기 교회당 건립과 포교를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해지자 교회는 헌금을 권하면서 속죄 증명서, 즉 면죄부 발행을 남용하여 많은 폐해를 가 져왔어요. "면죄부는 산 사람들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죄를 많이 진 자들의 죽 은 영혼이 천당에 못 가고 구천을 떠돌고 있습니다. 자,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면죄부를 삽시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렇게 이미 죽은 사람들의 면죄부까지 만들 어 팔았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 뒤 이러한 악습은 더욱 심해져서 교황 레오 10세 때에는 면죄부의 대대적인 판매 활동에 나섰어요. "자, 싸구려 싸구려. 면죄부를 사세요. 자 20% 파격 세일. 오늘부터 한 달 간 면죄부도 가격 파괴에 들어갔습니다. 천당에 가기 위한 확실한 보증 수표! 이 기화를 놓치지 마세요. 면죄부만 있으면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교회는 종교적 기능을 잃고 면죄부를 판매하는 곳으로 전락 하고 말았어요. 성직자는 판매를 담당하는 장사꾼이 되어 버렸구요. 다시 말해 면죄부는 중세 교회의 타락의 상징이 된 것이지요. "쯧쯧, 교회가 저렇게 썩어서야..." "그러게 말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배를 불리는 자들이야!" 점점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마르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부르짖게 되 었어요. "성서에는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 반대가 되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들은 면죄부를 사 천당에 가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전당 갈 엄두도 못 내게 되었습니다. 썩어 빠진 종교를 개혁해야 합니다!" 루터의 개혁 운동은 큰 호응을 얻어 순식간에 유럽 전체에 퍼져 나갔어 요. 이렇게 구교(천주교)에 대항하여 생겨난 것이 바로 기독교(신교)이지요. 요즘도 신문지상에 '면죄부'란 말이 종종 눈에 띄지요. 비리를 저지른 고 위층 인사를 적당한 명분으로 눈감아 주는 것을 두고 이런 표현을 쓰곤 해 요.
사족
"삼촌, 뱀도 발이 있어?" "이 녀석아, 뱀이 무슨 발이 있어!" "그럼, 사족(蛇足)이란 말은 뭐야?" "그건.... 뱀의 발이라는 뜻이지...." "에이, 삼촌은 엉터리야! 뱀은 발이 없다면서?" 엉뚱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엉뚱이 삼촌은 당황했어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햐, 이 녀석이 삼촌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네...." 엉뚱이 삼촌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어요. "사족이란 뱀의 발이란 말이긴 하지만 그 뜻은 쓸데없이 엉뚱한 일을 하 다 낭패를 본다는 거야." "왜 그런 말이 생겼어?" 엉뚱이의 질문이 계속되자 엉뚱이의 삼촌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잘 들어 봐! 옛날 초나라 때 어느 집에 잔치가 벌어졌는데 마침 귀한 술 한 병이 손님들 상에 나왔대. 손님이 여러 명이라 한 병을 나눠 마시자 니 술이 너무 부족했지. 그래서 땅바닥에 뱀을 가장 먼저 그린 사람 혼자 서 술을 마시기로 했어. 술은 적고 사람은 많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거지." "나도 뱀은 잘 그리는데...." "조용히 하고 듣기나 해! 그래서 사람들은 내기를 시작했지. 손님 중에 그림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장 빨리 뱀을 그렸어.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사람은 반도 채 그리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그 사 람은 자기 솜씨를 뽐내고 싶어 멋지게 네 개의 발도 그려 넣었지." "히히.... 삼촌 그 사람 정말 엉뚱하다 그치?" "인석이 조용히 하라니까!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은 어깨에 힘을 주고 그 림을 쳐들었어. '이제 술은 내 것이오.' 하면서 말이야. 그 사람이 술병을 들고 막 마시려는 순간 두 번째로 빨리 그린 사람이 나서서 술병을 가로챘 어. 그리고는 말했지." "뭐라고...?" "'아니, 이게 무슨 뱀의 그림이오? 뱀이 발이 어디 있소? 이건 뱀이 아니 니 이 술은 내 거요.' 결국 그는 찍소리도 못 하고 고스란히 술병을 빼앗기 고 말았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채 말야.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사족을 단다고...." "삼촌, 그 사람 정말 멍청하다. 히히...." 엉뚱이가 낄낄대며 웃자 삼촌이 한 마디 했어요. "이 녀석, 제가 한 일은 모르고.... 지난번에 너 자연 숙제한 거 보니까 개구리 꼬리를 그렸던데 뭐. 으이구, 그래 놓고도 웃음이 나오냐?" 순간 엉뚱이는 뜨끔했어요. 사족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사족을 달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거지요.
판도라의 상자
"에이, 판도라의 상자가 따로 없군!" 촉새네 아빠는 신문을 보다 말고 혀를 끌끌 찼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 비하던 엄마가 돌아보았어요. "무슨 얘기가 실렸길래 그래요?" "이번에 터진 정치권 비리 얘기지, 뭐.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했는데 파헤 치면 파헤칠수록 떳떳지 못한 검은 돈 거래와 여러 가지 부정한 일들이 마 구 쏟아지고 있군 그래."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촉새가 끼여들었어요. "아빠, 판도라는 무슨 과일이에요?" 촉새의 뚱딴지 같은 질문에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저도 TV에서 봤어요. 사과 상자에 뭉칫돈을 담아서 검은 돈 거래를 했 다면서요. 근데 사과 상자는 알겠는데 판도라는 무슨 과일인지...." "하하하...." "호호호...." 촉새의 말을 듣고 엄마와 아빠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판도라는 과일 이름이 아니야.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 초의 여자란다." "그럼, 그 여자의 상자 속에도 돈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허허허.... 이 녀석이 점점 엉뚱한 소리만 하네. 신화에 보면 맨 먼저 만 들어진 인간은 남자였어. 인간들은 처음에는 신의 말에 잘 따랐지. 그런데 점차 난폭해져서 전쟁을 일삼게 되었던 거야.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화가 났지. 그래서 인간을 혼내 주려고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아 버렸던 거야.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어.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큰 벌을 주었지. 그런 다음 인간에게도 벌을 주기 위해 여신의 모양을 본떠 흙으로 판도라라는 여자를 빚게 했어. 그리고는 그 여자에게 아름다운 얼굴뿐 아니라 간사한 마음씨 와 말재주도 함께 불어넣었어. 그런 다음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 스에게 데리고 갔는데,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보고 첫눈에 반해 판도라 를 아내로 맞이했던 거야.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받은 선물 상자를 하나 갖고 있었지. 그 상자는 절대로 뚜껑을 열어 봐서는 안 되는 상자였어. 그 런데 판도라는 호기심이 많았어. 어느 날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그 뚜껑 을 열어 보았던 거야. 그랬더니 거기서 괴상한 연기와 함께 온갖 고통과 재앙, 질병 등이 튀어나왔지. 놀란 판도라가 얼른 뚜껑을 닫는 바람에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게 되었어. 오늘날 인간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 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란다. 그 상자는 제우스가 인간을 벌주려고 만든 것으로 괜히 건드렸다가 온갖 재앙과 나쁜 일들이 수두룩하 게 생기는 것을 보고 판도라의 상자라고 말하는 거야. 아빠가 아까 신문에 서 본 정치권 사건도 만찬가지고.... 이제 알겠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TV를 보던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어요. "저런, 쯧쯧쯧.... 회사에서 모범 사원으로 알려진 사람이 회사의 공금을 가로채 도박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따로 없군." 이 때 촉새가 끼여들었어요. "아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무슨 말이에요?" "응,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인격자를 말하는 거야." "응.... 그러니까 착한 척하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 말이군요." "그렇지." "그럼 둘은 어떤 사이였어요? 친구 사이였어요?" "아냐, 틀렸어." "아, 알았다! 둘이 애인 사이였는데 성격이 안 맞아 매일 싸웠구나?" "에구.... 녀석이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네.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 라 같은 사람이야. 평소엔 인품이 훌륭한 지킬 박사로 지내다가 어떤 때는 흉악한 하이드 씨로 변하는 거야. 그러니까 한 마디로 두 얼굴을 가진 사 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아아, 그럼 우리 반 뺀질이 같은 애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겠네요?" "아니, 왜?" "걔는요, 청소 시간에 뺀질뺀질 놀다가도 선생님이 오시면 열심히 하는 척하거든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원래 영국의 소설가 스티븐슨이 1886년에 발 표한 작품 제목이에요. 작가가 열병을 앓고 있을 때 꾸었던 꿈을 기초로 쓴 소설이라고 해요. 과학자인 지킬 박사는 어느 날 선인과 악인 사이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약을 발명하게 되지요. 지킬 박사는 원래 덕망이 높은 분이었지만, 악 인으로 변하는 약을 먹으면 아주 추악한 하이드 씨로 변하여 오만 가지 추 하고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요. 그러다 결국 선인으로 돌아오는 약이 떨어 지자,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자살에 이르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 야기예요.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커다란 인기를 얻었어요. 그래서 흔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중 인격자를 나타내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지요. 부랑자와 고아들을 위해 맡긴 성금을 개인 호주머니에 챙긴 종교인을 비 롯하여 간첩으로 판명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대학 교수, 어느 날 갑자기 강도로 둔갑한 경찰관, 밀수꾼 노릇을 한 무역 회사 사장 등 우리 주변에서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토사 구팽
이 말을 풀어 보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이에 요. 옛날 한신이란 명장은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에요.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한신의 공을 높이 사 그를 초나라 왕으로 봉했어요. 그런데 한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힘이 점점 커지자 유방은 은근히 불안했 어요. 게다가 한신이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도 떠돌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이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내가 오랜만에 사냥을 즐기고 큰 잔치를 열 생각이니, 모든 제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이도록 하시오." 사냥과 잔치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한신을 체포하기 위한 계략이었어요.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어요. '나를 노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를 어쩌면 좋지? 가지니 붙잡힐까 두 렵고 안 가자니 더욱 큰 의심을 받을까 걱정이고...." 그 때 한신의 부하 하나가 말했어요. "종이매를 처치한 다음 그의 목을 유방에게 갖다 바치면 의심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이매는 본래 항우 밑에 있던 뛰어난 맹장이었으나 항우가 죽은 후 항 복하고 한신의 밑으로 들어온 장군이에요. 그런데 유방은 종이매에게 원한 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한신의 밑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의 목을 베어 올 리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어요. 하지만 한신은 여전히 종이매를 숨겨 둔 채 명령을 따르지 않았어요. 항 복한 장군을 죽이는 것은 도리가 아닐 뿐더러 함부로 죽이기에 너무도 아 까운 장수였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한신은 종이매를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어 요. 그러자 종이매는 몹시 화난 얼굴로 말했어요. "유방이 그 동안 당신을 치지 못한 것은 우리 둘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 오. 그런데 이제 유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를 잡아 갈 생각이라니....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겠소. 하지만 내가 없어지면 그 다음은 당신 차례라는 걸 명심하시오!" 이렇게 말하고 종이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유방을 만나러 갔어요. 그것으로 유방의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유방은 종이 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한신을 붙잡아 묶었어요. '아, 종이매의 말이 맞았구나!" 한신은 뒤늦게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어요. "과연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 지면 활을 부러뜨리고, 적국이 망하고 나면 장수들을 내친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내 그 동안 유방을 도와 전쟁에 큰 공을 세웠건만 이제 천하가 평 정되었다고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가!" 결국 한신은 토끼몰이가 끝난 사냥개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따라서 '토사 구팽'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고, 필요가 없게 되면 가차 없이 버리는 비정한 인간 세상을 꼬집는 말이에요.
2. 웃음이 담긴 재미있는 말
꿔다 넣은 보릿자루
연산군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소홀한 채 술과 놀이만 일삼던 임금이 었어요.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자 나라는 점점 어지러워졌어요. "허어, 왕께서 허구한 날 술과 계집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오." "그러게 말이오. 옳은 말을 하는 신하는 멀리하고 간신들의 아첨에만 귀 를 기울이니.... 원, 참." "뜻 맞는 사람끼리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임금을 몰아 내든 지 해야지, 원." "쉿! 누가 듣겠소. 자,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한 데서 얘기합시다!" 연산군의 그런 행동을 보다못한 몇몇 신하들이 비밀리에 일을 꾸미기 시 작했어요. 그들은 성희안, 박원종 등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 고자 뜻을 모았어요. "오늘 밤 모두들 박원종의 집으로 모이시오.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점검해 보아야겠소."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성희안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자 각자 어떤 일을 맡았으며, 준비에 차질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말해 보시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오직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달빛 도 없는데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촛불도 켜지 않은 터라, 그가 누 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성희안은 가만히 모인 사람들을 세어보았어요. 놀랍게도 모이기로 한 사 람보다 한 명이 더 많았어요. "박 대감, 엄탐꾼이 들어와 있소." 박원종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염탐꾼이 있다면 내일 벌이기 로 한 큰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염탐꾼은 보이지 않았어요. "성 대감,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 성희안은 말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성희안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던 박원종은 껄껄 웃었어요. "하하하! 성 대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내일 큰 일을 위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요." 정말 자세히 보니 보릿자루였어요. 그런데 거기에 누군가 갓과 도포를 벗어 놓아 영락없이 사람으로 보였던 거지요. "허허, 내가 너무 긴장했나 보군. 꿔다놓은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하 다니...!"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그저 듣고만 있는 사람 을 가리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해요.
십년 감수
말 그대로 풀어 보면, 십 년이나 수명이 줄었다는 뜻으로 매우 놀랐을 때 쓰는 말이지요. 구한말 고종 황제 때 유성기가 왕실에 처음 들어왔어요. 유성기는 오디 오의 할아버지뻘 되는 기계로, 미국의 에디슨이 발명한 녹음기예요. 이 기 계를 처음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어요. "음.... 이 기계에서 정말 소리가 난단 말이지?" "예, 그렇사옵니다.... 폐하!" "허, 거참.... 괴이한지고. 여봐라, 누가 가서 얼른 박춘재를 데려 오너라!"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명창이었어요. 고종 황제는 그를 불러 이 기계가 정말 소리를 내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폐하, 부르셨습니까." "오, 어서 오시오. 이게 바로 이번에 서양에서 가져온 소리나는 기계요. 어서, 여기에 대고 노래를 불러 보시오." "예에? 기계에 대고 노래를 부르라구요?" 박춘재가 머뭇거리자, 고종 황제는 다시 한 번 재촉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한 곡조 해 보시오." 박춘재는 도통 입이 안 떨어졌지만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내 박춘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뽑았어 요.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처음엔 어색하던 것이 가락이 깊어 갈수록 절로 흥이 나 단숨에 한 곡조 를 마쳤어요. "자, 그럼 춘재의 노래가 끝났으니 어서 기계를 돌려 보시오!" 고종 황제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를 재촉했어요. 기술자가 기계를 만지 작거리자 드디어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유성기 소리에 귀를 기 울였어요. 신기하게도 유성기에서는 방금 불렀던 노랫소리가 똑같이 흘러 나왔어요. "허허, 기이한 일이로고!" 고종 황제는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고종 황제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어요. "아...아니, 이...이럴 수가! 내 목소리가 저...저 기계에서 나오다니!" 그 때 박춘재의 놀란 모습을 지켜 보던 고종 황제가 입을 열었어요. "춘재, 그대의 수명이 십 년은 줄었겠소(십년 감수)." 고종 황제는 박춘재의 혼이 녹음기에 빼앗겨서 십 년쯤 수명이 줄었겠다 고 생각한 거지요. 이 때부터 '십년 감수'란 말이 생겼어요.
내 코가 석 자
신라 시대 때 방이 형제가 살았어요. 동생은 부자였지만 형은 몹시 가난 했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형 방이는 농사를 지으려고 동네에 한 마음씨 좋은 사 람에게 땅을 빌렸어요. 그러나 형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뿌릴 씨앗조차 없 었어요. '옳지! 동생에게 가서 부탁해 보자.' 형 방이는 동생을 찾아가 씨앗을 얻었어요. 그런데 심술궂은 동생은 싹 을 틔울 수 없도록 씨앗을 삶아서 주었어요. 형 방이는 그것도 모르고 씨앗을 심고 정성껏 돌보았어요. '이상하다. 왜 싹이 안 트지? 정성이 부족한 걸까?' 방이는 전보다 더 열심히 물을 주며 밭은 가꾸었어요. 방이의 정성에 하 늘이 감동했는지 어느 날 밭에는 딱 하나의 싹이 텄어요. 그 싹은 점점 자 라더니 엄청나게 큰 이삭을 맺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새 한 마 리가 날아와 그 이삭을 잘라 물고 달아나는 게 아니겠어요? "앗! 거기 서라, 거기 서!" 방이는 죽을 힘을 다해 새를 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어요. 날이 저물 자 방이는 바위 틈새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어요. 막 잠이 들 무렵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붉은 옷을 입은 도깨비들이 춤을 추 며 놀기 시작했어요.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휘두르자 신기하게도 금이 생겼어요. "술 나와라, 뚝딱!" 그러자 또 술이 나왔어요.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두들겨 술과 음식을 만 들어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놀았어요. 새벽녘이 되자 도깨비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방망이만 남았어요. 방이는 그 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도깨비들이 한 것처럼 그대로 따라 해 보았어요. "금 나와라, 뚝딱! 옷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그러자 금덩이가 와르르 쏟아지고, 비단옷이 나오고, 대궐 같은 집이 생 겨났어요. 마침내 방이는 큰 부자가 되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동생은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형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은 동생은 그 날 밤 당장 그 골짜기로 달려가 바위 틈에 몸을 숨겼어요. 밤이 깊어지자 정말 형의 말대 로 도깨비들이 몰려 나와 방망이를 두드리며 놀았어요. 그 때 느닷없이 동 생은 방귀를 뽀-옹 뀌고 말았어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도깨비 중에서 험상궂게 생긴 놈이 눈을 부릅떴어요. 마침내 동생은 도 깨비에게 붙들리고 말았어요. "에잇, 이놈 혼 좀 나 봐라. 코야 커져라, 뚝딱!" 욕심을 부리던 동생은 코가 코끼리 코만해져서 돌아왔어요. 이러한 이야기에서 나온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은 자기 처지가 급하게 되어 남을 도와 줄 여유가 없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찻잔 속의 태풍
'3.1운동에 참가한 독립 유공자를 찾습니다.' 어느 날 순돌이네 마을 게시판에 이런 공고가 나붙었어요. 당시 희생자 가 많이 난 마을이라 나라에서 보상을 해 주기 위한 것이었어요. "독립 유공자라면 순돌이 아버지가 으뜸이지." 순돌이의 아버지인 김애국 씨는 한쪽 팔이 없어요. 3.1운동 ㄸ 앞장 서서 만세를 부르다 일제의 총칼에 잃었거든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가장 먼 저 애국씨를 독립 유공자로 추천했어요. 이윽고 담당 공무원이 애국씨를 찾아왔어요. "안녕하세요? 이 마을에서 어떤 분이 3.1운동에 참가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나왔습니다." 애국씨는 오래 된 기억을 더듬었어요. 생각만 해도 일본놈들의 만행에 소름이 끼쳤어요. "...그러니까 당시 죽은 사람이 수도 없지요.... 일본놈들이 얼마나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못 살게 굴었으면 힘 없는 백성들이 맨손으로 일어났겠어 요? 하지만 일본놈들은 아주 잔인했어요. 맨손에 태극기 하나만 들고 만세 를 부르는 사람들을 마구 총으로 쏘고 칼로 찔렀지요. 어린아이나 노인, 아 낙네라고 봐 주는 것도 없었어요.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잡아 갔으니까요.... 그 ㄸ 내 친구 하나도 일본놈들에게 맞아 죽었어요. 나는 다행히 팔만 하 나 잃고 살아났는데 죽은 사람들한테는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 때 이웃집 얌체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문을 열고 들어섰어요. "저어.... 여기 독립 유공자를 조사하러 나온 공무원이 있다고 해서 왔는 데...." 얌체씨는 쪼르르 다가와 조사 나온 공무원 곁에 앉았어요. "아, 사실은 저도 3.1운동 때 독립 만세를 부른 사람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저한테도 물어 보세요. 그 당시에...." 얌체씨는 얘기를 하면서 애국씨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어요. 사실 얌체 씨는 만세 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보다못한 애국씨가 따 끔하게 한 마디 했어요. "여보게, 자네가 만세를 불렀다는 소리 처음 듣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참여할 때 자네만 혼자 빠지지 않았나?" "아니, 무슨 소린가. 나도 그 당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했네." "그게 정말인가? 그런데, 왜 본 기억이 없지?" "우리 집 뒷간(화장실) 있지 않나. 그 안에 들어가 목이 터져라 대한 독 립 만세를 불렀네." 옆에서 듣고 있던 공무원은 어이가 없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그렇게 했다면 그건 '찻잔 속의 태풍'이군요. 그건 독립 운동으로 보기가 어렵겠는데요." 얌체씨는 결국 창피만 당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찻잔 속의 태풍'이란 아주 큰일 같지만 넓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를 비유한 말이지요.
숙맥
주희는 중국 송나라의 훌륭한 학자예요. 훗날 사람들은 주희를 높이 기리어 '주자'라 부르며 공자, 맹자의 뒤를 잇는 유교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지요.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조성 500 년 통치의 바탕이 되는 등 우리 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어요. 어느 날 주희는 형을 앉혀 놓고 방바닥에 콩과 보리를 주르르 쏟았어요. 주희와 달리 주희의 형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모자랐어요. "형님, 잘 보십시오. 요렇게 크고 둥들둥글하게 생긴 게 콩이란 말입니 다." 주희는 콩을 들고 자세히 설명했어요. 형은 질질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 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아니.... 그건 보리 아닌가?" 주희는 답답했지만 형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어요. 주희가 이번에는 보 리를 들고 찬찬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어요. "형님, 이게 보리입니다. 보세요. 콩보다 작고, 생긴 것도 콩은 동글동글 한데 보이는 납작하죠." 주희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콩과 보리를 설명했어요. 콩과 보리를 번 갈아 가며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던 형은 그제야 구별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음, 이제 알았어. 둥글고 큰 것이 콩이고, 약간 납작하고 작은 것이 보 리지?" "예, 형님 맞습니다." 주희는 가르친 보람이 있자 마음이 흐뭇했어요. 다음 날이었어요. 주희가 형에게 부탁했어요. "형님, 창고에서 콩 좀 꺼내다 주실래요?" 형은 얼른 창고로 들어가 주희가 얘기한걸 부대째 가져왔어요. 그런데 부대를 들여다본 주희는 할 말을 잊고 말았어요. "형님...!" "아니, 뭐가 잘못된 거야?" "어제 그렇게 얘기해 주었는데도.... 형님, 이건 보리잖아요, 보리!" 형은 무안을 당하자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한자 숙어에 '숙맥 불변'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 한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콩과 보리를 한자말로 하면 '숙맥'이에요. 즉 주희 의 형처럼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숙 맥이라고 해요. 요즘에는 이 말을 서로 친숙한 사람끼리 애정이 깃든 핀잔으로 쓰기도 하지요.
시치미를 떼다
옛날 어느 마을 사람들이 매사냥을 나섰어요. 우리 조상들은 야생의 매 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하곤 했어요. "앗, 꿩이다!" 그 순간, 날쌘 매 한 마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꿩을 향해 발톱을 내 려꽂았어요. 꿩은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어요. 매의 주인이 축 늘어진 꿩을 주우려 하자 얌체 같은 사람 하나가 불쑥 나섰어요. "이건 내 매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이건 내 매라구!" 둘 사이에는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매 주인은 어처구니가 없었지 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매들의 생심새가 비슷했기 때문에 남의 매를 탐내 자기 매라고 우겨도 뾰족히 할 말이 없었어요. "그러지 말고 매와 꿩 중에서 하나씩 고르게. 그리고 앞으론 시치미를 꼭 달게나." "시치미라구요?" "그렇다네. 시치미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매의 꽁지에 달아 놓은 이름표지. 그러면 이런 일로 아옹다옹 다툴 일이 없을 것 아닌가?" 그 날 노인 덕분에 매 주인은 매를 찾을 수 있었어요. 며칠이 지난 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매사냥을 나왔어요. 물론 이번에 는 쇠뿔로 얇게 만든 이름표를 매의 꽁지에 하나씩 붙들어 매고서 말이에 요. "시치미만 보면 누구 매인지 쉽게 알 수 있겠지? 이젠 싸울 일이 없겠구 나!" 매의 주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매를 쓰다듬었어요. 그러나 오 늘 역시 매 주인과 얌체 사이에는 또 싸움이 벌어졌어요. "이 매는 내 거야!" "시치미를 뗀다구 모를 줄 알고? 이건 내 매라구!" 매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번에도 매를 탐낸 얌체가 매의 시치미를 떼고서 자기 매라고 무구 우기고 나선 것이지요. 노인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 어요. 이렇게 해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은 알고도 모른 척 딱 잡아뗄 때 쓰 는 말이 되었어요. 우리 주변에도 얌체처럼 시치미를 떼는 뻔뻔스런 사람을 간혹 볼 수 있 어요. 이런 사람은 시치미를 떼면 동시에 자기 마음 속의 양심도 함께 떨 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지요?
삼십육계 줄행랑
소곤소곤.... 쑥덕쑥덕.... 왈자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동네 꼬마들이 모여 서 뭔가를 귓속말로 주고받다가 지나가던 왈자를 힐끔 쳐다보며 킥킥거렸 어요. 이상한 낌새를 챈 왈자는 아이들의 얘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요. "킥킥.... 저기 왈자 누나 있잖아. 오늘 왜 학교에서 늦게 오는 줄 아니?" "아니, 몰라...." "아까 심술이 형이 그러는데 .... 수학 시험에서 빵점 맞은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오는 거래." 왈자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쳤어요. 사실은 새 학기를 맞아 선생님 과 교실을 꾸미느라 늦었던 거예요. '심술이 녀석이 또 나한테 괜한 심술을 부리는구나. 어디 만나기만 해 봐라!' 때마침 왈자는 오락실에서 막 나오고 있던 심술이와 마주쳤어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왈자는 심술이를 잔뜩 노려보았어요. "어! 와...왈자야, 지금 오니? 나 그만 가...갈게." 심술이는 왈자의 눈길을 피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쳤어요. "심술이, 너 각오해! 그냥 안 둘 거야." "그게 말야.... 에라 이럴 때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심술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까지 도망쳐 버렸어요. "야, 너 거기 서지 못해!" '삼십육계'는 <육도>라는 병법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군사를 이끌고 싸 움을 할 깨의 36가지 계략을 말하죠. 그 중 마지막인 36번째는 상대방이 너무 강할 때는 달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쓰여 있어요. 제나라의 장수 왕경칙이 군사를 일으켜 도성으로 쳐들어갔어요. 임금의 눈밖에 나자 선수를 쳐 반란을 일으킨 거지요. 그가 진격하는 도중 임금의 군사들이 퍼뜨린 소식을 들어 보니 왕경칙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 어요. 이에 왕경칙은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어요. "단도제 장군은 갖은 계략 중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으뜸으로 삼았다더 군. 네놈들이야말로 달아나는 게 상책일 것이다!" 단도제는 송나라의 명장으로 싸울 때 늘 도망치면서도 번번히 승리를 거 뒀기 때문에 '단공 삼십육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어요. 그러나 자신만만해하던 왕경칙은 임금의 군사들로부터 역습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그 후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 로 전해지면서 후세까지 이어졌지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면 비겁한 행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 망치는 게 무조건 비겁한 건 아니지요. 일단 위험을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싸우는 것도 한 전략이 될 수 있으니까요.
돈 키호테형 인간
"세르반테스가 누구야?" "이런 바보! 거 있잖아, 돈 키호테 쓴 사람...!" '세르반테스' 하면 갸웃거리던 사람도 '돈 키호테' 하면 고개를 끄덕일 거예요. 그만큼 돈 키호테는 동서양에 걸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겨 읽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소설의 원래 제목은 '재치 있는 기사 돈 키호테 라 만차'이며,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돈 키호테의 본명은 '캐사더'이며, 스페인의 라 만차라는 마을에 사는 귀 족 출신의 늙고 가난한 지주예요. 우연히 '기사 이야기'를 읽다가 그 재미 에 푹 빠져, 즐기던 사냥도 농사일도 팽개치고 밤낮없이 이야기에 파묻히 지요. 그러다 마침내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스스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리곤 세상의 악을 몰아내기 위한 모험을 떠나지요. 그는 이름도 기사답게 '돈 키호테 라 만차'로 고치고, 조상 대대로 내려 오던 낡은 갑옷을 창고에서 꺼내 입고, 늙고 초라한 말 로시난테에 올라탔 어요. "나는 악한 자를 무찌르고, 착하고 약한 자를 돕는 용감한 기사이다. 자, 나를 따를 자 없느냐?" 이 모험길에는 이웃의 농사꾼이며 정직하지만 어리석은 산초 판사가 따 라 나섰어요. 돈 키호테가 산초에게 어느 섬의 영주를 시켜주겠다고 꾄 것 이지요. 돈 키호테는 가는 것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요. 돌아가는 풍차를 난폭한 거인으로 알고 달려들다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양 떼를 적군으로 잘못 알고 창을 휘두르기도 해요. 또 놋대야를 뒤집어쓴 이발사를 기사인 줄 착각하고 싸움을 걸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봉변을 당하기도 하지만, 정작 돈 키 호테 자신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지 깨닫 지 못해요. 오히려 정의를 사랑하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 는 용감한 기사라는 환상에 젖어 있어요. 돈 키호테의 이러한 모습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흥미와 논란이 되었어요. 흔히 생각이 깊고 행동이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을 '햄릿형 인간'이라고 하는데, 이 햄릿형 인간과 정반대의 인간형이 바로 '돈 키호테형 인간'이에 요. 현실을 무시하고 맹목적인 정의감에 이끌려 이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행동주의자를 말하죠. 이런 말은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투르게네프가 처음 썼어요. 그는 '햄릿을 사랑하기는 힘들지만, 돈 키호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이다.'라고 해 돈 키호테에 더 깊은 애정을 보였지요.
3. 교훈이 깃든 재미있는 말
엎지른 물
"허구한 날 낚시질만 하면 어디서 쌀이 나와요, 돈이 나와요? 에구, 내 팔자야. 이젠 더 이상 못 살아!" 아내는 참다못해 보따리를 싸서 힁허케 집을 나가 버렸어요. 하지만 남 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낚싯대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강가로 나 갔어요. 그 남편이 바로 강태공이에요. 그는 주나라 문왕을 도와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강가에 나온 강태공은 낚싯대를 드리웠어요.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었 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어요. 강태공의 낚싯바늘은 여느 낚싯 바늘과 달랐기 때문이지요. 고기를 잡으려면 끝이 약간 구부러진 낚싯바늘 로 고기가 입질할 때를 노려야 해요. 그러나 강태공의 낚싯바늘은 곧아서 고기가 아무리 미끼를 물어도 낚아 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는 백발 노인이 될 때까지 고기를 잡을 셈도 아니면서, 매일같이 낚싯 대를 메고 강가로 나갔어요. 빈 낚싯대를 한가에게 던져 놓고 자기를 알아 줄 군왕을 기다리며 세월을 낚아 올리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강태공의 인물 됨됨이를 알아본 사람이 나타났어 요. 바로 주나라 문왕이었어요. 문왕은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강태공을 만났는데 첫눈에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본 거지요. 그 길로 강태공은 낚싯대를 거두고 문왕을 따라가 높은 벼슬길에 올랐어요. 집을 나갔던 아내가 이 소식을 듣고 궁궐로 강태공을 찾아왔어요. "잘못했어요. 속 좁은 아녀자의 짓이니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를 다 시 받아 주세요."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빌고 또 빌었어요. 그러자 강태공 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내에게 발했어요. "그럼, 나가서 물 한 그릇만 떠 오시구려." 아내는 속으로 몹시 기뻤어요. '아, 이제 됐다. 날 용서하시는 모양이구나.' 아내는 서둘러 물을 떠 와 공손하게 강태공에게 바쳤어요. 그런데 강태 공은 대접에 담긴 물을 바닥에 주르르 쏟아 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아내는 몹시 긴장했어요. 이윽고 강태공이 조용히 입을 열었어요. "이 엎지른 물을 그대가 도로 주워 담을 수 있다면 다시 아내로 삼겠 소." 말을 마치자마자 강태공은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아내는 바닥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어요. 뒤늦게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지요. 이처럼 '엎지른 물'은 다시 바로잡거나 돌이킬 수 없게 된 일을 두고 쓰 는 말이에요.
맹모 삼천지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 야.... 어 야...." "북망산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산일세, 어 야...."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맹자의 집은 공동 묘지 근처에 있었어요. 그래서 맹자는 동네 아이들과 매일같이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지요. 맹자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고 따끔하게 말했어요. "맹자야! 사내 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큰 뜻을 품고 학문을 갈고 닦아 이 름난 학자가 되든지, 아니면 무예를 익혀 세상을 호령하는 장수가 되든지 해야지. 매일같이 장례식 놀이나 해서 무엇에 쓰겠느냐?" "어머님,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또 아이들과 어울려 장례식 흉내를 내는 것이었 어요. '안 되겠어.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니 말야.' 생각다 못해 맹자 어머니는 이사를 결심했어요. 새로 집을 옮긴 곳은 장 터 근방이었어요. "자, 여기로 오세요. 싸구려! 싸구려!" "골라, 골라! 두 장에 삼천 원!" 장터로 이사 오자 이번엔 아이들과 어울려 장사꾼 흉내를 냈어요. 맹자 어머니는 이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어요. '여기도 살 만한 곳이 못 되는구나.' 맹자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러자 맹자는 글방 학동들을 본받아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그제야 맹자 어머니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맹모 삼천지교'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이나 옮겨다녔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지요. 이 밖에도 '맹모 단기지교'란 말도 있어요. 맹자가 어머니 곁을 떠나 멀리 공부를 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 아왔어요.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있는 것을 본 맹자는 반가운 마음에 어머 니에게 달려갔어요. "어머님 제가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본 체 만 체하더니,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나를 찾아왔느냐!" 하며 대뜸 짜고 있던 베를 칼로 끊어 버렸어요. 공부를 채 마치기도 전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 화가 난 것이지요. "보아라,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면 마치 이렇게 길쌈하던 베를 잘라 버리 는 것과 같으니라!" 맹자는 그 자리에 엎드려 사죄하고 그 길로 돌아가 오로지 학문에만 전 념했다고 해요. 이런 어머니의 교육 덕분에 맹자는 훗날 공자에 버금 가는 훌륭한 학자 가 되었지요.
망부석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의 이야기에요. 왕에게는 보해와 미해라는 두 아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보해 왕자는 고 구려에, 미해 왕자는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가 있었지요. 볼모란 나라간에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담보로 왕자를 그 나라 에 맡겨 두는 걸 말해요. 눌지왕은 두 왕자가 늘 마음에 걸려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한 신하가 나서서 말했어요. "제가 가서 왕자님들을 모셔 오겠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사람은 박제상이었어요. 그는 충성 심이 강하고 지혜로운 신하였어요. 왕은 너무나 기뻐 박제상을 꼭 잡고 부 탁했어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공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소." 박제상은 곧 고구려로 떠났어요. 뱃길로 고구려 땅에 들어간 박제상은 변장을 하고 보해 왕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어요. 몰래 고구려 궁성을 빠 져 나오다 고구려 군사들에게 들켜 쫓김을 당하지만 군사들이 보해 왕자를 가엾이 여겨 살려 보내 주지요. 보해 왕자를 모시고 신라로 돌아온 박제상은 왕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 어요. 그러나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엔 일본으로 떠나야 했어요.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는 미해 왕자를 데려와야 했거든요. 그런데 일본왕 은 그렇게 다루기가 쉽지 않았어요. 벌써 고구려에서 보해 왕자를 데려갔 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왕이 혹시 미해 왕자를 데려가지 않을까 하고 박제 상을 무척 경계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박제상은 일본왕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신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 을 쳤다고 말이에요. 일본왕은 그 말을 그럴 듯하게 여겼는지 박제상을 믿 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박제상은 미해 왕자와 같이 배를 타고 낚 시를 하러 가는 것처럼 꾸몄어요. 그리고는 그 길로 곧장 미해 왕자를 신 라로 도망치게 했어요. 그런 다음 자기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어요. 왜냐 하면 미해 왕자가 무사 히 도망칠 구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지요.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일본왕은 불같이 화를 냈어요. 마침내 박제상이 끌려오자 일본왕은 호통을 쳤어요. "이놈, 네가 나를 배신하다니.... 지금이라도 내게 굴복하고 일본의 신하 가 된다면 호강을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이다." 이에 박제상은 눈을 부릅뜨고 일본왕에게 대들었어요.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결국 박제상은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한편,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이 일본땅으로 건너간 뒤 하루도 빠지지 않 고 바닷가로 나가 남편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남편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 자리에서 서서 그만 돌이 되고 말았어요. 사람들은 그 돌을 망부석이 라고 불렀답나다.
읍참 마속
촉나라 제갈공명은 위나라와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었어요, 공명이 위나 라를 물리칠 작전을 세우다 보니 꼭 한 곳이 불안했어요. 다름 아닌 촉군 의 식량 수송로인 가정 땅이었어요. 가정 땅을 위군에게 빼앗긴다면 촉군 은 독 안에 든 쥐 꼴이라 이 곳을 누구에게 맡길지가 큰 고민 거리였어요. 이 때 한 젊은 장수가 나섰어요. "공명 선생, 제가 그 땅을 지키겠습니다. 위나라 군사의 그림자도 얼씬거 리지 못하게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이렇게 용감하게 나선 사람은 마속이었어요. 젊지만 재주가 뛰어나 공명 이 앞으로 큰 재목이 될 인물로 점찍은 부하였지요. 하지만 공명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러자 마속이 다시 간청 했어요. "저도 오랫동안 병법을 배웠는데 가정 땅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제가 싸움에서 패한다면 군법에 따라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니 믿고 지 켜 봐 주십시오." 음, 자네의 각오가 정 그렇다니 한번 맡겨 보겠네. 하지만 만에 하나 실 패하는 날이면 자네의 목이 달아날 줄 알게나." 그리고 공명은 곧바로 계략을 일러 주었어요. "가정산은 삼면이 절벽이니 산기슭에 진을 치고 막고 있으면 위나라 군 대가 절대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네." 마침내 마속은 군사를 이끌고 가정 땅에 도착했어요. 지세를 가만히 살 펴보던 마속이 빙그레 웃었어요. '음.... 이 곳은 적군을 유인하여 역습하기에 꼭 알맞은 곳이군. 그렇다면 산기슭에 진을 칠 것이 아니라 산 꼭대기에 진을 쳐야겠어. 이번에 큰 공 을 세워 공명 선생께 내 실력을 보야 드려야지.' 마속은 제갈공명의 명령을 어기고 결국 산 꼭대기에 진을 쳤어요. 그러 나 마속의 작전은 빗나갔어요. 위군이 산기슭을 포위하여 식량을 수송하던 길을 막자 마속은 궁지에 몰렸어요. 마속은 하는 수 없이 군사를 이끌고 쳐내려왔으나 이를 미리 눈치채고 있던 위군에게 역습을 당하여 크게 패하 고 말았지요. 그 결과 군법에 따라 마속이 벌을 받게 되자 신하들은 말렸어요. "마속은 유능한 인재입니다. 그를 잃는 건 나라의 큰 손실이니 공명 선 생께서 한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마속이 아까운 인재라는 걸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군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하오. 그를 잃는 것도 나라의 큰 손실이지만 그를 용서하면 군대 의 기강이 서지 않아 더욱 큰 손실이 올 것이오. 아까운 인재일수록 엄중 히 죄를 벌해야만 대의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겠소?"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공명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자리에 엎드려 통곡했어요. 이를 본 모든 신하들도 공명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라서 울었 어요. '읍참 마속'이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말로, 큰 목적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지요. 혹 여러분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님이 매를 든다면 이는 읍참마속의 심정 이라 할 수 있겠지요.
노아의 방주
하나님이 처음 아담과 이브를 만들 무렵 세상은 아주 평화로웠어요. 그 러나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세상은 악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뒤늦게 하나님은 후회를 했어요,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람을 만들지 않는 건데...." 그런데 아담의 자손 중 단 한 사람 노아만은 믿음이 두텁고 의로운 사람 이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이 노아를 불렀어요. "내가 장차 큰 홍수를 일으켜 악으로 가득 찬 세상과 가람을 모조리 멸 망시킬 작정이다. 너는 산 꼭대기에 올라가 잣나무로 방주(큰 나무배) 한 척을 만들어 이 재난을 피하여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꼭대기에 올라가 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이를 보고 모두 비웃었어요. "노아가 갑자기 이상해졌어. 산 꼭대기에서 배를 만들다니!"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없이 노아는 세 아들을 데리고 열심히 일한 끝에 드디어 배를 완성했어요. 그러자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노아야, 네 가족들을 데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거라. 또한 이 땅에 살 아있는 모든 짐승들을 각각 암수 한 쌍씩 태워 목숨을 잇게 하여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먹을 것을 충분히 마련해서 배에 싣고 홍수에 대비했어요. 하지만 일 주일이 지나도록 비는 오지 않았어요. "노아가 이젠 아주 돌아 버렸나 봐. 이 멀쩡한 날씨에 배 안에 들어가 꼼짝도 않으니 말이야."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어요. 번쩍! 우르르 꽝! 장대 같은 비가 억수처럼 퍼붓기 시작했어요. 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내려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어요. 마침내 산 꼭대기에 있던 노아 의 방주도 물 위에 둥둥 떴어요. 이 대 홍수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멸망 하고 만 것이지요. 어느 날 노아는 비둘기 한 마리를 배 밖으로 날려 보냈어요. 물이 얼마 나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지요. "이것 봐, 나뭇잎이야! 이제 홍수는 끝났어!" 얼마 후 노아는 배에서 내려 땅을 밟을 수 있었어요. 한편, 하나님은 악한 세상을 벌주기 위해 홍수를 내렸지만 몹시 마음이 아팠어요. "노아야, 새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거라. 이제 다시는 홍수를 일으 켜 이 땅의 생명을 모두 쓸어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구름 속에 무 지개를 숨겨 둘 터이니, 이것이 내 약속의 표시이니라." 이 때부터 비가 내리다가도 무지개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노아와의 약속 을 생각하고 비를 멈추게 한다고 해요. 이처럼 '노아의 방주'는 험난한 상 황 속에서 찾은 안전 지대를 뜻하지요.
바벨탑
하나님은 큰 홍수로 사악한 세상을 벌한 다음, 노아의 자손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열게 했어요. 그런데 노아의 자손들도 그 수가 불어나자 차 츰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고리타분해. 우리 맘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없어." 인간들은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진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뛰어났어요. 그들은 벽돌로 집도 짓고, 성도 쌓았어요. 벽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만들 수가 있었어요. 그러자 차츰 오만한 마음 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자, 우리의 도시를 세웁시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탑을 쌓읍시 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후세에 빛냅시다." "좋소!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 줍시다." 그 날부터 사람들은 탑을 쌓기 시작했어요. 몇 달이 지나자 탑은 엄청나 게 높아졌어요. "우아, 정말 굉장하다!" "조금만 더 쌓으면 하늘까지 닿을 거야." 사람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움으로써 인간도 하나님 못지않게 위대 하다는 것을 뽐내고 싶었어요. 하늘에서 이것을 내려보고 있던 하나님은 마침내 화가 났어요. 인간의 오만함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인간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벌을 내리기로 했어요. 하지만 노아의 홍수 같은 큰 재앙은 내릴 수가 없었어요. 오랜 고민 끝 에 하나님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내, 너희가 하는 말을 뒤섞어 알아듣지 못하게 하리라." 그 때까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 느 날 아침 갑자기 말이 달라졌어요. 곧 이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어요. "저기 벽돌 좀 가져와!" 하지만 일꾼이 엉뚱하게 각목을 가져왔어요. 또 각목을 가져오라고 하면 벽돌을 가져오고, 망치를 가져오라고 하면 톱을 가져왔어요. "알라돌라니 닐달디로라...." "dopdkaey dkfjsk doxevj...." "아니,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사람들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말이 통하 지 않자 마음도 갈라졌어요. "에이, 도저히 같이 일을 못하겠군!" 마침내 사람들은 탑을 쌓는 일을 그만두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요. '바벨'이란 말은 히브리 어로 '혼란'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날은 보통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나 일 따위를 두고 '바벨탑'이라 부르지요.
소돔과 고모라
어느 일요일, 심술이는 아빠와 함께 교회 예배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고 있었어요. "아빠, 소돔과 고모라는 서로 원수였어요?" 느닷없는 심술이의 질문에 심술이 아빠는 잠시 머뭇거렸어요. "응? 그게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아까 목사님이 설교할 때 아빠도 들으셨잖아요. 북한 동포들이 지금 굶 주리고 있으니까 도와 줘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모 두가 망할 거라고요. 그래서 아빠도 북한 동포 돕기 특별 헌금을 내셨잖아 요." "하하하하.... 이 녀석아, 소돔과 고모라는 사람 이름도 아니고, 원수 사이 도 아니야." "그럼, 뭔데요?" 심술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건 아주 옛날 그러니까 지금의 팔레스타인(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땅 으로, 1948년에 이스라엘 공화국이 세워짐) 부근에 있던 두 도시의 이름이 란다." "그럼, 두 도시가 서로 싸우다 망한 거예요?" "그것도 아니다. 아빠가 옛날 얘기 하나 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보려무 나." 심술이는 아빠 곁으로 바짝 붙어 귀를 기울였어요. "처음에 두 도시는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번창을 하다가 점점 사람들이 타락하기 시작했지. 어려운 이웃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이 모두들 자기 욕 심만 채우느라 싸움을 일삼았지.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는 악으로 가득 차 버리고 단 열 명의 의로운 사람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단다." "그래서 벌을 받은 거예요?" "그렇단다. 하나님이 크게 노하시고는 이 두 도시에 불과 유황의 세례를 내리신 거야. 하나님의 저주로 모두 불타 버린 두 도시는 결국 사해라는 바닷속에 잠겨 버렸지. 이런 까닭에 소돔과 고모라는 단 열 명의 의인도 없어 하나님의 벌을 받은 본보기로 성서에 자주 나오게 된 거란다." "아아,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굶주린 북한 동포를 모른 체하고 자기만 잘 살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인정 없고 메마른 사회가 된다 그 말이군요?" "그렇지, 허허허.... 우리 심술이가. 제법인걸." 심술이 아빠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웃었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집 앞에 이르렀어요. 심술이는 집에 들어가 기가 무섭게 자기 방으로 달려가 돼지 저금통을 가져왔어요. "아빠, 저도 이 저금통에 모인 돈을 북한 동포 돕기 성금으로 내겠어요." "허허허.... 우리 심술이가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더니 착한 일을 할 때도 다 있구나." 심술이 아빠는 심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4. 조상들의 삶이 담긴 재미있는 말
함흥 차사
"어휴, 더워라! 날씨가 푹푹 찌는구나." 덜렁이네 가족은 모두 선풍기 앞에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어요. "아빠, 우리 수박 사다가 시원하게 얼음을 띄워 먹어요." "좋지, 내가 얼른 사 가지고 올 테니까 엄마랑 기다리고 있거라." 덜렁이는 엄마와 함께 아빠가 사올 수박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어요, 그 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덜렁이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휴, 하여간 네 아빤 어디만 가면 함흥 차사야!" "함흥 차사가 뭔데요?" "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알지?" "예, 활을 잘 쏘았다는 사람 말이죠?" "그래, 이성계는 나라를 세워 임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단다. 아들들이 서로 임금이 되려고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야. 그 싸움의 장본인은 다섯째 아들 방원이었는데, 이성계는 형제들끼리 서로 죽이기까 지 하는 다툼이 일어나자 세상에 뜻을 읽고 임금의 자리를 내놓았지. 그리 고는 한양을 떠나 송도에 가 있었단다." "그럼 다음 임금은 누가 되었어요?" "뒤를 이어 정종이 왕위에 올랐지.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동생 방원이 임 금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태종이야. 그 소식을 들은 태조 이성계는 매우 노여워하며 송도를 떠나 먼 함흥 땅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어 버렸지." "그럼, 태종은 아버지를 찾지도 않았나요?" "아니야, 태종은 아버지를 다시 한양 땅으로 모셔 오려고 무진 애를 썼 어. 왕의 심부름꾼인 차사를 수도 없이 함흥으로 보냈단다. 그런데 함흥으 로 떠난 차사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지." "왜요?" "왜냐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태조가 아들 태종이 보낸 차사를 오는 족족 잡아 죽였기 때문이야. 서로 왕이 되려고 형제끼리 피를 부른 싸움을 지켜 본 태조의 심정이 오죽했겠니. 심부름꾼만 애꿎게 목숨을 잃 은 거지. 그 때부터 심부름을 가서 아무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거나 더디 오는 것을 가리켜 함흥 차사라고 부르게 된 거야." "아, 그렇구나. 정말, 재밌다!" "그나저나 네 아빠는 정말 왜 아직도 안 오시니...?" 덜렁이 엄마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눈치였어요. "엄마, 재가 나가서 한번 찾아볼까요? 대신 아이스 크림 사 먹게 돈 좀.... 히히히." 덜렁이는 엄마에게 돈을 받자 부리나케 달려나갔어요. 그런데 30분이 지 나도록 덜렁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휴, 이 녀석. 아이스 크림 사 먹을 돈으로 오락실 간 게 틀림없어. 수 박 사러 간 사람이나 찾으러 보낸 아이나 둘 다 함흥 차사군."
자린 고비
옛날 충청도 충주에 이씨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어요. 이 부자네 식구들 은 날마다 소금 하나를 반찬삼아 밥을 먹었어요. 어느 날 아이가 소금에 질려 반찬 투정을 했어요. "우리 집은 맨날 반찬이 이게 뭐야!" "허허.... 인석이 밥맛이 없나 보군. 여보 오늘 장에 가거든 굴비 한 마리 를 사다가 맛있게 구워 올리구료." 아내는 눈이 동그래졌어요. 평소 같으면 불호령을 찰 남편이 순순히 굴 비를 사 오라고 하자 깜짝 놀란 거지요. 점심때가 되자 노릇노릇 구워진 굴비가 밥상에 올라왔어요. 그러자 이 부자는 굴비를 실로 묶어 천장에 꽁꽁 매달아 놓고 말했어요. "자, 밥 한 숟갈 먹고 굴비 한 번씩만 쳐다보거라." 이 부자는 아들이 연거푸 두 번 굴비를 쳐다보자 뒤통수를 쳤어요. "이 녀석아, 한 번씩만 쳐다보라니까! 자꾸 쳐다보면 짜서 물을 먹게 되 잖아!" 아들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꾹 참고 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잠시 후 이 부자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어요. 굴비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거든 요. "이런 고얀 놈!" 파리가 날아가자 이 부자는 파리채를 들고 쫓아갔어요. "이놈! 도망가기는 어딜 도망가!" 이 부지는 결국 파리를 이웃 마을까지 끈질기게 쫓아가 잡았어요. 그리고 그 파리를 헹군 불로 국을 끓여 먹었다고 해요. 그 뒤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이 부자의 집에 부모님의 제삿날이 돌아왔어요. 이 부자의 아내는 제사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참다못한 부자의 아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요. "여보, 제사 음식은 어떻게 하지요?" "내가 이미 다 준비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마오." 그 날 밤 제사상을 본 아내는 어이가 없어 입이 딱 벌어졌어요. 상위에 는 음식 대신 사과, 배, 곶감 등 음식 이름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기 때 문이죠. 그렇게 제사를 마친 이 부자는 지방을 들고 한참 망설였어요. 지방이란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이름을 적어 붙이는 것인데 제사가 끝나면 곧 태워 버리는 것이 예법이에요. "작은 종이 쪽지일망정 태워 버리기는 아깝군." 이 부자는 결국 그 종이를 기름에 절여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다시 꺼 내어 썼다고 해요. 자린 고비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어요. '고비'란 '돌아가신 부모님'을 일컫는 말이에요. 그 후 '절이다'라는 말이 '자린'으로 변해 '자린 고비'란 말이 생겨났지요. 따라서 자린 고비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까지 인색한 구두쇠 중의 구두 쇠란 뜻이지요.
안성맞춤
고려 시대 공민왕 때 성은 안씨고 이름이 소목인 선비가 있었어요. 소목이란 한자로 작을 소자에 눈 목자이니 즉 눈이 작다는 뜻이에요. 유 난히 눈이 작아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지요. 그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담벼락에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어요. '무슨 일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라에서 과거 시험을 치른다는 방이 붙어 있었어 요. '음.... 내 실력을 시험할 좋은 기회구나.' 평소에 열심히 학문을 갈고 닦은 안 선비는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여 벼 슬길에 오르게 되었어요. 얼마 후 임금은 과거에 급제한 안 선비를 불렀어요. "오, 장하다! 그대가 이번 과거 시험에 급제를 했다고?" "예, 그렇사옵니다." "그래,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고?" "예, 안소목이라 하옵니다." "소목이라...? 눈이 작다는 뜻인데 이름으로 쓰기에는 영 좋지 않은걸.... 내가 그대를 위해 이름을 지어 주겠노라." "황공하옵니다." "음....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공민왕은 갑자기 무릎을 탁 쳤어요. "옳거니, 좋은 생각이 있다. 소목이란 두 글자를 한 글자로 합치면 어떻 겠는가? 그러니까 소자와 목자를 합쳐서 살필 성자로 하면 원래 이름도 버 리지 않으면서 뜻은 훨씬 좋아지지 않겠는가?" 평소 자기 이름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안 선비는 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 어 주자 무척 기뻤어요. 그래서 선비의 이름은 안성이 되었는데, 임금이 '안성'이란 이름을 맞춰 줬다고 해서 '안성맞춤'이란 말이 나왔다고 해요. 또 다른 얘기도 있어요. 예로부터 안성 지방에서 만드는 놋그릇은 튼튼하고 질이 좋기로 유명했 어요. 안성 놋그릇은 다 만들어진 것을 장에 내다 파는 '장내기'와 주문을 받고 만드는 '맞춤'이 있었는데, 부자들은 그릇을 맞춰 썼다고 해요. 그래서 안성에서 맞춘 그릇처럼 잘 만든 물건이나 잘 된 일을 가리켜 '안성맞춤'이 라 부른다고도 해요. 그 밖에 갖바치에게서 비롯된 말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갖바치란 옛날에 가죽으로 신을 만들던 사람이지요. 안성에서는 갖바치들이 완성된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맞출 수 있었죠. 안성맞춤은 여기서 비롯된 말이라고도 해요.
보릿고개
"덜렁아, 너 밥을 먹는 거니, 안 먹는 거니?" 덜렁이는 입맛이 없는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으로 장난만 치고 있었어요. 엄마가 꾸중을 하자 덜렁이는 몇 술 뜨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어요. "엄마, 저 그만 먹을래요. 피자 먹고 싶어요." "이 녀석이 아침부터 웬 밥투정이야. 보릿고개를 한 번 겪어봐야 그런 투정을 안 하지...." "보릿고개는 어디에 있는데요?" "이 녀석이.... 자꾸 엉뚱한 소리 할 거야? 어머님, 얘 좀 혼내 주세요." 덜렁이 엄마는 한동안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덜렁이 할머니에게 구원을 청했어요. 그런데 덜렁이 할머니의 대답은 덜렁이 엄마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어요. "덜렁아, 사실은 네 엄마도 보릿고개가 뭔지 잘 모른단다. 실제로 보릿고 개를 겪어 보지 않았거든." 이 말은 사실이었어요. 덜렁이 엄마도 어른들의 얘기를 들었을 뿐 직접 겪지는 못했거든요. 덜렁이는 할머니가 또 무슨 재미난 옛날 얘기나 해 주지 않을까 싶어?/texta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