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보내도 면접연락 없는 나날들에 옴팡 지친 상태...
5시간 밖에 못자고 유리멘탈을 이끌고 아침 스터디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집가려고 잠실역 도착해서 지하상가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웬 아줌마가 롯데시네마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 거예요.
첨엔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아 요새 세상살이 퍽퍽한데 나라도 친절해지자 싶어서 알려줬어요.
그리고 내 갈길 가려는데....
막 말을 걸기 시작하는 거예요. 딱 촉이 왔죠.
아 또 도를 아십니까구나 -_- 그래서 어떻게든 피할라 그러는데 절에서 왔다고 하대요?
제가 좀 붙들려 본 경험으론 절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이래서 음.. 아닌가 싶어서 좀 더 얘기를 들어보기로.
관상을 좀 보더라구요.
뭐 일반적인 때려맞추기 식이 아니라 굉장히 잘 맞았어요.
(심성부터 시작해서 뭔가 할 때 활활 타오르다가 축 쳐지면 한없이 쳐진다 이런 얘기도 들어맞고)
그러더니 소원이 뭐냐고 묻데요?
순간 제 귀를 의심하고 -네?;; 소원요??? 그러니까 -ㅇㅇ 길알려줘서 고마워서요. 소원이 뭐예요? 이러는거예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엔 살면서 여태까지 읽었던 모든 판타지 콘텐츠가 촤라라라락 하고 펼쳐졌어요.
왜 옛날얘기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귀인이나 도인이 뜬금없고 이상한 부탁을 하는데
주인공이 엄청난 귀찮음을 무릅쓰고 들어주면 하늘까지 닿는 나무가 자라는 콩을 준다거나,
성공하는 비법을 알려준다거나, 정말 짠! 하고 소원을 들어준다거나 =_=
아님 -내 특별히 자네에게만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알려주겠네 라고 한다거나...
네.. 전 아줌마가 소원을 묻는 그 순간 잠시 망상의 나래로 빠진 겁니다 ㅜ
시네마에서 사람 만나기 전에 잠깐 시간이 있다, 그러니 차 한잔만 얻어마실 수 있냐, 소원을 말해봐라 그러길래
전 순진하게 그 아줌마와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가서 차 시키고 자리에 딱! 앉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그 분의 말이 횡설수설 하더군요. 차 사달래놓고 건들지도 않고 자꾸 말하는데
키워드는 딱 세 개였습니다. 절, 공부, 조상
이야기 맥락도 기승전조상. 뭐가 어쩌고저쩌고 그게 다 조상신이 알아달라고 티를 내서 악영향이 있는거다. 그런 맥락요.
그러더니 정월대보름에 만난것도 인연이라며 자기 다니는 공부방이 성수쪽에 있는데 40분만 시간내서 불공을 드리러 가자고...
소지 태우기를 해서 집안의 길을 잘 닦아놔라. 그러는 거예요. 이때부터 빠져나가야겠다 싶어서
대만에서 비슷한 거 이미 했다, 이러니까 그럼 정말 미안한데 불교용품점에서 불공드리는 초 하나만 사주면 안되냐고
그 초 팔뚝만한 건데 엄청 비싸다고 알고 있어요. 안된다 그랬죠. 그랬더니 뒤쪽 마트에서 마시는 차 티백이라도 시주하면 안되냐 하길래
나 취준생이고 돈없다 3처넌도 힘들다 그랬더니 그럼 동전이라도 달라고. 동전 모으지 말라고 안좋다고 그러길래
그때쯤엔 배고프고 귀찮고 실망해서 걍 지갑에 있던 동전 털어주고 집에 왔습니다.
거의 1시간을 시간낭비했어요 -_- 가뜩이나 바쁜데....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더이상 도를 아십니까 우주의 진리 어쩌구 하면 걍 무시하니까 수법을 바꾼거 같아요.
대학동기한테 말했더니 -니가?! 뉴스감인데? 하고 놀라워 하던데.. 저 진짜 평소에 이런거 잘 낚이는 사람 아니거든요.
근데 정말 그 순간에는 -와... 휘밤 나 해리포터 되는건가?! 이랬다구요
잠실역에 9와 3/4승강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ㅜㅠ 참나.. 소원이라니...
하.... 취준살이가 고되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봐요 (훌쩍)
혹시라도 순진하고 친절하신 분들 저처럼 당하실까봐 글 남깁니다 ㅜ
키워드 세 개예요. 절, 공부, 조상. 길가다 말걸고선 자기는 절에서 공부하시는 분이라 하면 걍 피하세여
마음 먹먹하고 살기 힘드신 분들 낚이지 않길 바래요!
모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