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시장주의자로 개종 시켰다고 믿은 게 가장 큰 실수”
노 대통령 경제교사 지낸 최용식의 회한 (신동아 2006.07.01 통권 562 호 (p224 ~ 235))
"돼지목의 진주였나? 이런 사람에게 경제를 배우고도 이런식이라니... FTA는 왜 이리 서두르는 거죠?? 그리고, 최용식씨가 이야기하는 한국경제의 낙관적인 근거가 노무현 정권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는 몇몇 찌질이님들에게 말씀드리는데,경제의 체질은 몇십년의 노력에 의해 좋아지지만, 망가트리려면 일이년이면 충분하다는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공부랑 똑 같죠.. 전교 꼴등이 전교 10등이 되려면 최소한 2년은 죽었다고 공부만 해야하지만 전교 1등이 놀기 시작하면 한두달만에 전교 꼴등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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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경제분야 ‘개인교사’를 지낸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이 ‘옛 제자’에게 회한 어린 충고를 했다. “성장의 역사를 다시 배우고, 정책의 경중(輕重)을 제대로 따지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에서 실패한 것으로 증명된 정책을 추진했고, 그런 정책을 내놓은 관료들을 다시 기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노 정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진단한다. 실패를 성공의 계기로, 부정을 긍정의 시작으로 전환시키려는 회생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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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은 5월31일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행태가 패배를 부르는 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눈에는 경제정책의 실패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성과로 어느 것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아니, 가혹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경제 성장률이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도 낮았다는 사실만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집권 첫해 3.1%, 둘째 해 4.6%, 셋째 해 4.0%를 기록해 연평균 성장률은 고작 3.9%였다. 이는 환란을 겪은 김대중 정부 때보다 낮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의 성장률 -6.9%를 포함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의 연평균 성장률은 4.3%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노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최악이다. 2000년부터 경기부진에 시달리던 싱가포르, 대만, 홍콩은 2004년부터 성장률이 부쩍 높아져 지금은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도 지속적인 호경기를 누리고 있으며, 독일이나 일본 등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던 나라도 최근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몇 가지 낙관적 근거
혹시 우리 경제의 체력(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과 경제여건이 나빴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낮은 성적을 양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 높은 성장잠재력과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물려받았다. 지금도 우리 경제의 장래는 매우 낙관적이다. 근거를 꼽자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수출은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3년 이상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 호조를 보인 것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1980년대 말 이후 처음이다. 2004년 수출증가율은 30%를 웃돌았는데, 이는 1960∼70년대에나 가능하던 수준이다. 환율이 떨어졌는데도 수출이 증가한 것은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이 그만큼 높음을 의미한다.
둘째, 국제경쟁력이 높으면 잠재성장률은 당연히 높다. 1999년 9.5%, 2000년 8.5%, 2002년 7.0% 등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때도 물가불안이나 국제수지 악화 같은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높은 성장률은 앞으로 얼마든지 지속 될 수 있다(지속가능한 성장률=잠재성장률).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최소한 7%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한국의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우리 과학자들의 논문이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세계적인 전문지에 한 달이 멀다하고 실린다. 10년 전만 해도 1년에 한 건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 결과 우리나라 과학논문 발표건수는 2003년 말 현재 세계 14위로 부상했고, 증가율은 세계 2위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특허 등록건수는 세계 4위이며, 증가율은 세계 1위다. 2005년 국제특허협력조약(PCT) 총회에서는 한국 특허문헌을 사전에 조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른 나라에서 특허를 인가하려면 사전에 한국의 특허를 조사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의 특허가 세계적으로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넷째, 소재부품산업이 지금처럼 왕성하게 일어난 적이 없다. 예컨대 삼성이 지난 3년 동안 협력업체와 함께 개발한 소재부품은 300개에 달한다. 현재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반도체가 64%, 휴대전화기 70%, 자동차 90∼95%, 선박은 80%다. 과거와 비교해 월등하게 높아졌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업체가 부품소재를 개발하면 일본의 경쟁업체가 제조원가보다 더 싼 가격으로 공급해 그 싹을 잘랐다. 이제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다. 개발품목이 워낙 많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부품소재 업체가 한국에 직접 진출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에 몰린 ‘아시아 성장기업’
다섯째, 기계장비산업도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와 선박 등 수송기계류를 제외한 일반기계류의 수출증가율이 다른 수출품보다 높다가 최근엔 수출 5대 품목으로 부상했다. 얼마 전까지는 주로 중국으로 수출했으나, 최근엔 일본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처를 넓히고 있다. 선진국형 산업으로 알려진 기계장비산업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계산업의 꽃인 정밀기계부문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얘기도 된다.
여섯째,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성장동력산업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2004년 말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500개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우리 기업 109개가 순위에 들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7배 큰 일본은 70여 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도 80여 개가 선정되는 데 그쳤다. 이는 한국의 성장동력산업이 왕성하게 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일곱째, 세계 최대시장,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비관적이고 수동적인 시각으로만 중국을 볼 일이 아니다. 중국 경제는 10년째 성장이 지속됐고, 앞으로도 10년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중국의 산업예비군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베트남이 성장하고 있고, 인구 12억의 인도도 깨어나고 있다. 러시아도 외환보유고가 2000억달러를 넘을 정도로 경제가 회복됐고,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도 우리에게 도전하라며 손짓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겐 ‘특수(特需)’이고 성장의 기회다.
사실 1960년대의 베트남 특수, 1970년대의 중동특수와 해외건설특수, 1980년대 말의 3저(低) 호황 특수 등은 몇 년 가지 못했다. 지금처럼 해외특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적도 없다. 우리 경제가 일찍이 이런 호기를 맞았던 적이 있는가. 지금이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기회를 놓친다면 도리어 재앙으로 보복할지 모른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를 보노라면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을 줄기차게 매입한 것은 우리의 경제체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익을 많이 남길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인은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앞으로도 계속 양호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처럼 좋은 조건 속에서 우리 경제는 왜 이 지경이 됐는가. 과거에는 수출증가율이 10%만 넘어도 성장률은 7%를 넘는 등 경기가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집권 이후 수출이 지속적인 호조를 보여도 국내 경기는 장기간 부진을 거듭했다.
준비된 실패, 증명된 실패
‘참여정부’는 경제성장의 측면에서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정부가 내세운 다른 국정목표들도 대부분 실패했다. 우선 노무현 정부는 정권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동반 성장’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양극화나 빈부격차는 오히려 심화됐다.
부동산 투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잡겠다고 천명했지만, 실적은 역대 정권 중 최악이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오히려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이밖에도 실패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으나,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위에 열거한 것만으로도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제부터는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자.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실패를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노무현 정부는 출범부터 실패를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할 고위당국자의 인선(人選)부터 문제였다. 학계에서 기용된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실패한 것으로 증명된 정책방향을 선택했다. 이들은 소위 ‘영미식 시장중심형 경제’에 대비시켜 ‘유럽식 사회통합형 경제’를 내세웠다. 이게 우리 실정에는 더 잘 맞는다고 주장했고, 제법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경제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항상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풍년이 들면 농민에게 좋을 것처럼 보이지만, 공급과잉이 일어나 가격이 폭락해 오히려 큰 손실을 입기도 한다. ‘사회통합형 경제’도 마찬가지다.
원래 ‘사회통합형 경제’는 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미국이 추진한 정책이다. 유럽 대륙의 산업시설은 세계대전 때 철저하게 파괴됐지만, 영국과 미국은 피해가 비교적 가벼웠거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전쟁에 참여한 영국의 하층민과 미국의 유색인은 사회적 지위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되는 복지정책과 기간산업 국영화 등을 추진했고, 미국은 흑인 등 소수인종의 인권을 향상시키고 복지지출을 확대했다.
반면 산업시설이 거의 초토화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은 성장을 앞세우는 ‘시장중심형 경제’를 추진했다. 그 결과 1970년대부터 독일과 일본이 영국과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서게 됐다. 반면 영국은 ‘영국병(病)’에 걸려 1976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미국은 록펠러 빌딩과 컬럼비아 영화사 등이 일본기업에 팔리는 등 ‘제2의 진주만 폭격’을 당했다.
환란 책임자 재기용
이처럼 경제위기에 직면하자 영국은 1970년대 말부터 대처리즘을, 미국은 1980년대 초부터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워 ‘시장중심형 경제’로 돌아섰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두 나라 모두 초장기 호황을 누리게 됐다. 영국경제가 독일경제를, 미국경제가 일본경제를 다시 앞지른 것이다.
막강한 산업경쟁력을 자랑하던 독일은 1980년대부터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등 ‘사회통합형 경제’로 돌아섰고, 프랑스도 그 뒤를 쫓았다. 그 결과 1990년대 장기 경기부진에 시달려야 했고, 실업률이 10%를 오르내리면서 국민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됐다. 결국 독일과 프랑스는 2000년부터 ‘시장중심형 경제’로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배했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명색이 노무현 후보의 경제교사였던 필자는 그를 시장주의자로 개종시켰다고 믿은 게 가장 후회스럽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노무현 정부가 외환위기 발발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주로 기용한 사실이다. 외환위기는 경제정책의 중대한 실패로 인해 발생했는데,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기용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처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혹여 명예훼손 시비를 일으킬 소지가 있으니 어떤 정책이 외환위기를 일으켰는지만 밝히자.
외환위기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초래된 국가경제의 파국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외환보유고의 고갈을 불렀는가. 국제수지 적자다. 1996년 한 해의 국제수지 적자가 무려 231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외환위기 직전 4년간의 누적적자는 43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쌓아둔 외환보유고의 두 배다.
이 같은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의 원인은 무엇인가. 수출 부진? 아니다. 1995년 수출 증가율은 30%를 넘길 정도로 좋았다. 수입이 수출에 비해 더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국내 생산능력보다 더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다. 내수경기가 과열됐고, 수출은 움츠러들었다. 내수경기가 좋은데 어떤 기업이 위험부담이 크고 이익도 적은 수출에 나서겠는가.
이제 내수경기의 과열을 부른 경제정책만 찾아내면, 외환위기의 원인과 책임자를 찾을 수 있다. 경제지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1993년 말 화폐발행잔액(민간에 유통되는 돈) 증가율을 무려 41.6%에 이르게 한 정책이다. 1980년대는 증가율이 20% 전후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평균 10%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무모한 정책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친 짓”
다른 하나는, 재정팽창이다. 화폐증발에 의해 잠시 상승했던 내수경기가 다시 하강할 조짐을 보이자 김영삼 정권은 재정을 대대적으로 팽창시켜 경기를 부양하려고 했다. 공공자금관리기금을 설치해 각종 연기금의 여유자금까지 끌어들여, 1996년에는 재정 증가율이 42.5%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반의 재정팽창률이 대체적으로 20%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무모한 정책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랬으니 어찌 내수경기의 과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참고로 필자가 줄기차게 이 책임을 묻기 시작한 뒤, 한국은행이 연말기준으로 발표하던 화폐발행잔액을 어느 날부터 연평균 잔액으로 바꿨다. 재정경제부는 재정지출 증가율을 대여금 순계기준으로 발표하다가 대여금을 제외한 통계로 바꿨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것으로 보이자 김영삼 정부는 외채를 들여와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즈음 외채도입을 어렵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보사태’였다. 당시 한보그룹은 금융권에 약 6조원의 부채를 졌는데, 한보가 무너지면서 금융기관이 보유한 한보채권은 모두 부실채권으로 전락했다. 그 바람에 금융기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과 지급준비율(예금인출에 대비하기 위한 금융기관 준비금의 비율)이 크게 낮아졌고, 이것을 확충하거나 대출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래서 차환대출(기존 대출을 상환함과 동시에 대출해주는 것)이나 추가적인 대출이 불가능해졌고, 이게 신용수렴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즉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된 기업들은 사채시장으로 쫓아갔고, 사채시장에서는 은행예금을 인출했다. 예금을 인출당한 금융기관은 대출을 더욱 축소해야 하는 악순환이 거듭된 것이다. 당시 화폐발행액에 대한 총유동성의 신용승수가 약 35배였으므로, 한보 부실채권 6조원은 210조원의 총유동성을 축소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6조×35=210조).
그 결과 삼미, 대농, 진로, 한신, 기아 등 재벌이 줄줄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외국자본을 들여와 국내에 대출해주던 종금사였다. 외국자본은 당연히 종금사에 대한 대출금 회수에 나섰고, 외환보유고는 고갈됐다. 이 같은 사태가 전개될 때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아 위기를 초래한 정책당국자들이 외환위기 발발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당시 환율방어에 나섰던 당국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외환당국이 환율방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면서 외환보유고를 소진시켰고, 이것이 외환위기 발발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이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5년 12월호에 실린 ‘환율방어 포기해야 제2의 외환위기 막는다’ 제하의 글에서 충분하게 다룬 바 있다).
정책실패를 초래한 자들을 기용했으니 노무현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어떻겠는가. 그들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수행한 정책들을 들여다보자. 노무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정책과제로 채택했으나, 이게 장기간 경기부진을 불러온 결정적 원인이었다. 가계대출 비율과 신용카드 사용한도를 대폭 축소한 것이 실책이었다. 2003년 가계신용(가계대출과 신용카드사용액) 증가율은 2% 미만에 그쳤고, 2004년은 6% 미만, 2005년은 9.9%에 그쳤다. 이런 정책은 마치 성장하는 아이의 심장동맥을 강력하게 죔으로써 피가 충분히 돌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성장률과 가계신용 증가율의 탄성치는 경제상황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2∼3배다. 성장률이 7%를 기록하려면 가계신용 증가율이 최소한 15%는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가계신용을 극단적으로 억제했으니, 내수가 부진해지고 경기는 하강할 수밖에.
물론 김대중 정부가 2001년과 2002년에 국내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가계신용 증가율을 무려 28%까지 끌어올린 것은 잘못이었다. 이것이 가계부채 문제와 신용불량자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계신용을 극단적으로 줄인 것은 분명한 정책 실패다.
나는 노 대통령에게 후보시절부터 이 사태에 대해 미래형으로 경고한 바 있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이것을 먼저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경기가 나빠지고,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호조를 유지하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이 자연스럽게 완화될 수 있으므로, 선순환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의 성공사례를 들면서 말이다.
미국은 1980년대에 가계부채 비율이 50%대에서 70%대로 급등했고, 저축대부조합(상호저축은행과 유사)들이 거의 무너졌을 정도로 심각했지만, 선순환 정책으로 풀었다. 먼저 경기를 살려서 가계부채 문제가 점진적으로 완화되도록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1990년대에 초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가계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의 90%를 넘었지만, 이것이 국가경제를 결정적인 위기에 빠뜨릴 것으로 보는 미국의 경제전문가는 아직 없다.
‘정책의 輕重을 모르다니…’
노무현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05년 8월 대통령이 TV 방송에 출연해 ‘국민과의 대화’를 하기 며칠 전, “2001년에 최용식이라는 사람이 무슨 예언가처럼 말했는데, 모두 맞아떨어졌다. 그 논리를 찾아서 준비해달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당시의 기록을 정리해 청와대에 전해줬는데, 핵심내용은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처리문제다.
경제정책의 실패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정규직 문제와 신용불량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로 선정하고 국력을 총동원했는데, 이것은 정책의 우선순위와 기준도 모르는 행위다. 비정규직과 신용불량자가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인가. 이들보다 우선적으로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없었을까. 비정규직과 신용불량자의 목소리가 커서 이들을 다독일 필요가 있었는지 몰라도 정책당국은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냉정한 자세로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복지제도를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일하고 싶어도 일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가가 보호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중증 장애인, 의탁할 곳 없는 노인과 장기 질환자, 부모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어린이 등이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대부분 자기가 책임질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생활은 국가가 보살피는 것이 도리다.
그 다음으로 국가가 지원해야 할 대상은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노인성 치매나 중증 장애인 가족을 보살피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자기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어려움도 국가가 어느 정도 해결해줘야 한다. 그래야 이들 가정의 구성원이 언젠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밖에 아이를 키우느라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국가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보육시설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을 돕고 나서 일할 능력도 있고 의사도 있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실업자보다 사정이 훨씬 더 나은 비정규직과 신용불량자를 더 중요한 사회현안으로 내세웠다. 신용불량은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애써 근검절약해온 사람들에겐 뭐라고 할 것인가.
이들을 구제하지 말아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을 구제하는 데에 들인 노력을 일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과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할 처지가 아닌 사람들에게 먼저 돌려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할 뿐이다. 이것이 정책의 경중(輕重)을 따지는 자세이며 복지제도의 원칙이다. 이런 원칙에서 벗어난 경제정책을 펼쳤으니,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책임 회피의 극치
노무현 정부가 끊임없이 ‘일자리 창출’을 외친 것도 경기부진이 장기화하는 데에 적잖은 몫을 했다.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국민소득이 증가해야 소비가 증가해 내수가 회복된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논리였으나,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만약 경기가 부진에서 벗어나 상승하려고 할 때 노동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아나려던 경기는 노동력 부족으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일자리 창출’은 경기부진을 촉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는 ‘일자리 나누기’까지 해가면서 일자리를 창출했고, 독일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실업률이 10%를 넘나드는 최악의 취업난을 겪었고 장기 경기부진을 겪었다. 이런 독일과 프랑스를 본받아 ‘사회통합형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으니, 이 정권의 경제 성적은 보나마나다.
정책실패가 이어졌다면 당연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최소한 반성이라도 해야 하건만, 정책당국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지난 2월23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참여정부 3년 경제운용 평가 및 과제’ 자료와 국민경제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제하의 ‘대통령께 드리는 경제보고서’는 변명과 책임회피의 극치다. 요약하면 잠재성장률이 4% 후반대로 낮아져 부진한 성적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고, 석유가격이 폭등하고 환율이 크게 떨어져 우리 경제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잠재성장률이 실제로 4% 후반대라면 실현한 성장률도 그 수준을 넘을 수 없으므로, 아주 좋은 변명거리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진실이 아니다. 자가당착이다.
석유가격 폭등과 환율 하락이 국내경기를 하락시키고 있는 것처럼 변명하는 데에는 어이가 없다. 만약 석유가격 상승이 국내경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면 이미 벌어졌어야 했다. 석유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2001년 말, 1배럴당 20.9달러이던 것이 2002년 말에는 31.3달러로 뛰었다. 불과 1년 사이 상승률이 49.7%에 달했다. 2004년과 2005년에도 연간 상승률은 각각 33.5%와 41.2%였다.
원인 진단에 실패한 이유
그러나 석유 가격 폭등이 아직까지는 국내경기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도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으나,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과거 석유파동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부진과 물가불안이 심각했고, 실업률도 높았다. 이런 문제는 석유가격 폭등과 함께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 석유파동 때는 공급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수요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석유가격이 상승하자 물가가 상승했고, 이에 따라 구매력이 떨어졌으며, 경기는 하강했다. 지금은 수요부문이 석유가격 상승을 불렀다.
특히 인구 13억인 중국의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연평균 40%를 넘고, 인구 11억의 인도의 에너지 소비율도 연평균 20%를 넘는다. 중국과 인도의 비약적 성장으로 다른 나라들은 해외특수를 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석유가격 상승은 산유국의 구매력을 향상시켰다. 그래서 세계경기는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환율하락도 마찬가지다. 하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부터다. 원화가치는 2002년에만 10.5%가 상승했고, 2004년에는 한 해 동안 14.8%가 올랐다. 지난해 연말 환율은 2001년에 비해 30.9%나 상승했다. 따라서 환율하락이 문제라면 벌써 난리가 났어야 맞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였고, 수출기업을 포함한 국내 기업은 사상 최대 수익률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합병증 치료할 당국자는 어디에?
장차 국내경기가 하강한다면, 그것은 석유가격 상승이나 환율 하락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오히려 경제정책의 실패가 경기를 더 크게 하강시켰다고 해야 하며, 또한 비관적 분위기를 차단하지 못한 것이 이에 가세했다고 해야 한다.
이 정부는 기업과 부(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키웠다. 국민적 반감으로 기업이 위축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당연히 고용과 생산과 투자는 위축될 것이다. 또 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면 부는 반감이 없는 곳으로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경기흐름은 작은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매우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기초적인 인식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경기흐름에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를 일까지 함부로 자행하는지 모르겠다. 혹,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위기가 물밑에서 상당히 진행됐고, 여기에 합병증까지 가세해 단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종합처방이 필요하지만, 이걸 해낼 정책당국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변명과 책임회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이 어떻게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겠는가. (끝)
崔用植
● 1952년 광주 출생
●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민주당 정책위원,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행정관, 한전산업개발 감사 역임
● 現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저서 : ‘사상과 경제학의 위기’ ‘경제역적들아 들어라’ ‘대한민국 생존의 경제학’‘2017 한국경제 후지산 정상에 태극기 휘날리며’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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