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작성자분의 마음에는 심히 공감이 많이 갑니다. 어떤 기분인지도 알 거 같구요.
그렇지만 댓글로 이어지는 글들은 공감하기 어렵더군요.
특히 "자녀들에게 돈 얘기 하는 거 아니다. "
뭐 이런 댓글이 추천을 많이 받았더군요.
일단 하도 댓글에 돈없다는 소리 안들어봤으면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제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농사를 몇십년간 하셨는데
단 한번도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신 적이 없습니다. 남의 땅에서만 지었죠.
소작농으로 지내시며 3명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셨기에 돈은 정말 없는 편이었습니다.
돈없다 소리를 듣는 것도 듣는 거지만
어릴때는 가마솥에 나무를 주워와서 불을 피워 물을 끓여서 부모님이 농약과 땀에 젖은 몸을 씻으시도록 미리 데워놓곤 했었죠.
집도 농장 한 가운데 딸린 집에서 살았던 관계로 마을이 아니라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살았습니다.
돈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돈이 없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돈이 없는 게 서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돈 없다는 이야기가 문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원글 작성자분의 이야기는
돈이 없는데 없다고 하지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다면, 자녀들에게 그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돈이 없는데 돈없다는 소리조차 하지 않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저도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어요. 공무원 하시는데, 외벌이 부부입니다.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항상 돈 없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평범한 가정이죠.
자녀가 음악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아서 음악공부 하겠다고 하니 저한테 상담을 하셨어요. (제가 관련된 부분이 좀 있어서...)
돈이 많이 드는 거라서 음악아니 연예인 이런 거는 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자기는 애들한테 경제 상황을 다 설명하는 편인데도 애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그분한테 차마 말 못했지만, 사실 그 말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 분이 그 일 있기 얼마 전에 가족끼리 2주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오셨거든요.
자기도 가보고 싶었고 더 늦으면 가기 힘들다고, 그리고 아이들 어릴 때 해외여행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돈이 없다면서 가족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과연 그 아이들은 '정말 우리집이 돈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할까요?
저는 그 아이들이 정말 원해서 세상을 보고 싶을 때 세계여행을 갔다오는 게 낫지 그 시기에 간 거는 "설령 그것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더라도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요.
오히려 아이들은 유럽여행 가본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갔다왔다면서 자기 집이 좀 괜찮게 사는 줄 알겠죠.
실제로도 그 정도면 제가 생각할 땐 꽤 괜찮게 사는 거죠. 여행에 그 정도 돈을 쓸 수 있다면요.
이런 분들이 돈 없다는 말을 할 때가 문제라는 겁니다.
물론 그 분들 기준에서 돈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아이들 기준에서의 '돈이 없다'라는 게 대단히 이상한 기준이 된다는 거죠. 친구들 만나서 '돈 없다' 하고 자기 쓸 건 펑펑쓸만큼 쓰는 그런 아이로 자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짜로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아이들과 사실대로, 그리고 서로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 댓글 분들 말씀대로, 그리고 제가 위에 쓴 내용처럼,
어릴 때 어렵게 살았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돈을 쓰는 게 상당히 어려워요.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장 오늘 내일 굶어죽을 것 같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1년에 옷 몇벌 사입는 것도 손이 떨립니다.
5만원이 넘는 옷을 제 손으로 사본 건 30중반이 다 되어가는 인생에서 아마 작년이 처음이겠네요. 그 전에는 누구 결혼식때문에 맞추거나 친척분들이 한 두벌 사주셨을 때 밖에 없었죠. 아, 지금 와이프가 연애할 때 사준 것도 몇 벌 있구요.
제가 돈 쓰는데 벌벌 떠는 것에 대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펑펑 써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버는 거 별로 없지만 명절에는 부모님 용돈도 챙겨드리고, 가끔 전화해서 돈이 급하다 하시면 드리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로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집은 저희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으시던 과정에서 생긴 빚도 남아있고, 오랜 농사일에 몸이 병드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아프시지만 집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도 돈 벌러 다니시는 어머니도 계시구요.
그 글 작성자님 상황은 저와 다를 겁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도 가고 공감도 가요. 제가 평소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 부분도 있고...
하지만 그걸로 경제관념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명확하지 못한 경제관을 주려고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공감을 많이 받아서 한마디 해봅니다.
"아직 기회도 갖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벌써 고민하고 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고민은 지금껏 오랜 시간과 기회를 가져온 어른들이 해야할 몫이다"
라는 생각은 이 사회가 고도의 복지사회일 때에만 가능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충고를 하시려면 일단 이 사회를 고도의 복지사회로 만들어주세요. 지금의 우리 나라에서는 적어도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명확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후에 겪을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괴리를 극복하게 만들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