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석의 축구 한잔지난해 말 초대형 유망주가 K리그에 데뷔할 것처럼 비치다 난데없이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겨 크게 논란이 야기됐다. 그 유망주는 더군다나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까지 받은 선수였다. 우수 선수를 기르기 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많은 돈을 들이는 K리그 클럽의 여건을 감안하면 지탄받아야 할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 말 많은 이적을 두고 정작 당사자는 어떠한 말도 없었다. 포항에서는 간략한 사실을 적시하며 선수가 팀을 떠났다고 공식 발표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잡음은 더 커졌다.이 유망주는 바로 포항제철고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클럽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이적한 황희찬이다. 최근 황희찬 부친을 만나 이적에 얽힌 전말을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단독- 황희찬 이적 속사정 ①] 황희찬 측, “포항이 먼저 약속을 깼다”라는 제목 아래 기사로 다뤘다.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단독- 황희찬 이적 속사정 ②] 포항, “몸값 벌려고 선수 키우는 게 아니다”라는 제하로 포항 스틸러스의 공식 견해도 받아 전했다.규정 내에서는 저마다 주장이 틀리다고 볼 수 없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몫은 독자들에게 넘기려 했다. 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느 측이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니다. 다만 주어진 상황을 놓고 왜 이런 상황이 빚어졌는지 짚을 필요는 있다고 봤다. 해외 진출 여부에 대한 약속은 양측 간 이견이 커 넘기고자 한다. 대신 논란 중 하나인 포항과 잘츠부르크의 협상을 놓고만 얘기하겠다.
포항보다 먼저 칼자루를 쥐고 있던 잘츠부르크
양 구단이 주고받은 얘기와 황희찬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잘츠부르크가 지난해 9월경에 포철고(포항 U-18팀) 3학년 선수 황희찬에게 관심을 보였다.
② 잘츠부르크는 FIFA(국제축구연맹) 선수 이적 규정 중 미성년 아마추어 선수 영입에 관한 조항에 의거해 포철고에 육성 지원금과 훈련 보상금 등만 지급하고 데려갈 수 있었다.
③ 선수 측은 그대로 떠나면 도의가 아니라 여겨 잘츠부르크에 이적료 협상을 벌일 것을 설득했다.
④ 잘츠부르크가 선수 뜻을 존중해 하지 않아도 될 이적료 협상을 포항과 벌였으나 이견 차가 너무 커 결렬됐다
⑤ 잘츠부르크가 선수 측이 직접 나서서 포항을 설득하도록 했으나 실패했다.
⑥ 잘츠부르크가 정한 선수 영입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선수 측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⑦ 잘츠부르크는 FIFA 선수 이적 규정에 의거해 육성 지원금과 훈련 보상금만 지급하고 황희찬 영입 작업을 종료했다.
포항은 유럽행 열망을 내비친 황희찬을 왜 잡지 못했을까? 일각에서는 포항이 공들여 키운 유소년에게 이적료 책정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냐고 말한다. 포항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옳은 얘기다. 포항은 1년에 20억 원에 달하는 많은 예산을 유소년 육성에 쏟고 있다. 황희찬에게 이 예산이 모두 들어간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쨌든 이와 같은 대형 유망주를 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선수 신분이 아마추어라는 게 문제다. 선수 이적 규정상 이적료는 프로 계약된 선수에게서만 책정된다. 황희찬이 포항의 품안에서 큰 선수는 맞긴 해도 엄연히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그리고 클럽은 미성년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계약할 시 육성 지원금과 훈련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좋은 선수를 길러 줘 감사하다’라는 명목으로 주는 돈이다. 이는 전 세계 클럽 모두에 통용되며 당연히 K리그에도 적용된다. 참고로 K리그에서는 신인 선수 계약 시 이전 소속 아마추어 팀에 이 육성 지원금과 훈련 보상금을 주도록 되어 있다.
즉 포항이 공들여 키우려고 했던 황희찬이 아마추어 신분이라 선수의 몸값을 주장할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가 이미 손에 칼자루를 쥐고 안 해도 될 협상을 벌였다는 뜻이다.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출신으로 두둑한 이적료를 안기고 떠난 지동원의 사례가 있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황희찬과는 사안이 다르다. 지동원이 황희찬처럼 전남에서 공들여 키운 유소년 출신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동원은 전남과 프로 계약을 했고, 그 계약에 따라 팀에 이적료를 남기고 떠났다. 당시 전남이 지동원의 몸값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기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전남은 지동원을 소유한 구단이며, 따라서 지동원의 몸값으로 얼마를 부르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포항은 황희찬의 몸값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없었다. 프로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협상에서 굉장히 불리한 처지에서 잘츠부르크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포항 처지에서는 굉장히 불편한 협상이었을 듯싶다. 선수의 마음까지 떠난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협상에 임해야 했던 터라, 속된 말로 잘츠부르크가 ‘이거 먹고 떨어져라’는 식으로 이적료를 제시해도 대응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희찬이 2015 K리그 프로 신인 드래프트서 우선 지명된 상태였으니 포항 소속이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맞다. 황희찬은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되어 포항에 입단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드래프트 우선 지명이 선수에 대한 구단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장치는 아니다. 인정하다손 치더라도 K리그 내에서 통용되는 로컬룰이다. 즉 포항에 입단하기로 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타 K리그 구단에 가 버리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해외 클럽이 끼면 다른 얘기가 된다. 이 상황에서 포항이 황희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드래프트 우선 지명이 아니라 프로 계약을 한 상태였어야 했다. 하지만 황희찬은 포항과 프로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였다. 잘츠부르크가 보기에는 그저 대성할 수 있는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였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황희찬을 영입함에 있어 K리그 드래프트 우선 지명 여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잘츠부르크 이적에 대한 황희찬 측의 도의적 책임은 따질 수 있다. 유럽행 열망이 아무리 뜨거웠다고 한들 포항이 공들여 키운 선수 신분이었다면 떠날 땐 떠나더라도 깨끗하게 매듭지어야 했다. 구단에 누차 부탁했다고는 해도 말없이 비행기에 올라 잘츠부르크와 계약한 건 사유야 어쨌든 보기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선수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황희찬처럼 해외 클럽이 바라볼 정도의 유망주는 앞으로도 계속 발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제도적 문제점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포항이 유소년 선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K리그 로컬룰이나 우리 민법 혹은 노동법과 FIFA 선수 이적의 차이 때문에 빚어진 규정의 사각지대라고 봐야할 성싶다.
따라서 "예산을 얼마나 들여 선수를 길러 내는 줄 아느냐" 혹은 "선수에게 은혜를 배신으로 갚느냐"라는 감정적 호소를 하는 것보다 구단이 이 유소년 선수들에게 대한 권리를 제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더 현명한 처사다. 최근 노르웨이 신성 마르틴 외데가르드가 200만 유로(한화 약 25억 원)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고 한다. 황희찬보다 두 살이나 더 어린 이 선수도 이적료를 안겨 주고 떠날 수 있는데, 왜 K리그 구단에서는 그게 안 되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만약 민법 혹은 노동법 등 법리적 문제라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이나 대한축구협가 나서서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