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오래 못 살 수도 있습니다."
1990년 6월 4일,
이 보통의 아이에 비해 너무나 작고 여린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이 여자아이는 몽골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에서 가장 적은 인구밀도를 가진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첫 프랑스인으로
그녀의 부모 알랭 더그래와 실비에 로버트는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트후크에서
아프리카의 야생을 찍는, 이른바 야생동물 사진작가였다.
한편 부모로부터 티피라는 이름을 받은 이 여자아이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서 잔병치례 없이
야생을 누비는 소녀로 성장해갔다.
아프리카의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티피의 생애 첫 친구인 코끼리 '아부'
티피는 이 28살 연상의 5톤짜리 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랐고
아부 역시 티피가 자신에게 기대어 낮잠을 잘 때면
피부를 찔러대는 아프리카의 파리들을 열심히 쫓아내 주었다고 한다>
<아부와 함께 티피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던 표범 'J&B'
어느 날은 가족과 함께 산책하러 가려던 티피를 J&B가 담장을 넘어 따라나선 적이 있었는데
그런 J&B를 보고 놀란 두 명의 아프리카 소년들이 겁에 질려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이에 야생성이 되살아난 J&B가 이빨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티피는 아빠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J&B에게 다가가서는
"그만둬, J&B!"라고 외치며 콧잔등을 힘껏 내리쳤고 J&B의 눈빛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티피의 친구 새끼사자 '무파사'
함께 낮잠을 자던 중 무파사가 티피의 손가락을 빤 채 잠에 들기도 했다>
<티피는 4살 무렵 새끼 비비원숭이 '신디'와 함께
우유병을 바꿔먹으며 그야말로 가족처럼 함께 자랐다고 한다
한편 비비원숭이 무리들은 티피의 우유병을 낚아채 나무 위로 올라가 놀려대길 즐겨했다고
사진은 비비원숭이 무리의 대장>
<티피의 친구 타조 '린다'
린다는 티피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면 행여 떨어질라 몹시 불안해하며 꼼짝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타조와 함께 빠르게 달리고 싶었던 티피는 이점을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티피의 친구 치타 누슈카>
<티피가 7살 무렵 친구가 된 카멜레온 '레옹'
티피와 레옹은 매일 밤 침대에서 함께 잤으며
티피는 그런 레옹에게 항상 메뚜기를 잡아다 주었다고 한다>
<티피는 악어를 다른 동물들만큼 좋아하진 않았다
"악어는 먹는 생각밖에 하질 않아">
<티피에겐 아프리카의 야생동물들이 곧 테디 베어였다>
머리카락을 모자 삼아 아프리카를 누비며
수십 종의 야생동물들과 우정을 나눈 티피,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의 주변 우려와 달리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스스로 즐거운 성장 과정을 보내서일지도 모르겠다.
티피는 절대로 아프리카 야생에서 길을 잃지 않았으며
어느 늪에서든 수영을 즐겼고 아프리카의 강력한 파리떼로 인해 부모님이 고생할 때에도
티피는 단 한 번도 파리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티피는 공기로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1개월 정도를 병마와 싸워야 했으나
그 자신은 반나절 만에 완치되어버렸다고 한다.
프랑스인이자 백인인 아이가 문자 그대로 아프리카가 되었던 것이다.
티피의 이야기에는 그 내면에 다소 현실적인 부분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티피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나미비아와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우리의 생각처럼 '인간과 접촉이 없던 무자비한 맹수'들만 있던 곳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의 첫 번째 친구인 아부는 미국 태생으로 서커스단에서 공연을 하던
코끼리였으며(이 때문에 티피는 아부에게 말을 걸 때면 영어를 사용했다.)
타조 린다는 타조농장 소속(?)이었던 것이다.
물론 J&B는 그 흉포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던 표범이었으며
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영양 등과 같은 동물들이 티피와 기꺼이 교감을 나눈 것은 사실이다.
티피는 아프리카와 교감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식들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던 아이였다.
야생동물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공격적이 되는지,
그들 앞에서 겁을 집어먹거나 방어적인 제스추어를 취하면 안 된다는 점이나
(뭐, 티피는 천성적으로 야생동물들에 겁을 먹지 않았지만)
어떤 종들에는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던 지의 지식들 말이다.
그렇게 티피는 자신이 야생동물들의 눈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부주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티피는 주변의 원주민인 힘바인족과 피그미족들로부터 서바이벌 지식을 배웠으며
(이 원주민들은 놀랍게도 마치 다른 야생동물들이 그러했듯 티피를 그들의 일원인 양 받아들였다.)
새로운 야생동물들과의 접촉은 반드시 부모로부터 주의사항과 허락을 받은 뒤에야 가능했다.
분명 티피의 이야기에는 낭만에 맞지 않는 에피소드들도 존재한다.
티피가 악어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에는 그 악어의 입을 봉한 뒤에야 촬영이 이루어졌으며
잠시 프랑스 파리로 갔다가 돌아왔을 때에는 여전히 코끼리 아부가 반겼던 반면
비비원숭이 신디는 티피의 머리를 공격적으로 헤집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티피가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경이로운 교감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티피와 교감을 나누었던 야생동물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티피가 행여 다칠까 걱정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며
태어날 때만 해도 작고 볼품없던 이 아이가 10년 가까이 아프리카 대지를 누볐으니 말이다.
한편 티피는 10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끝으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학교생활을 시작했는데 적응이 힘들어 개인교습으로 기초교육을 마쳐야 했다고 한다.
현재 티피는 파리 제3대학교, 즉 소르본 누벨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 중이며
졸업 후에는 나미비아로 돌아가 그곳의 외교관으로 활동하길 꿈꾸고 있다.
* 참조문헌: Tippi Degré&Alain Degré&Sylvie Robert's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