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떼가 억대 인삼 먹어치웠다
[문화일보 2004-10-12 12:23]
(::경북 영주 재배농 분통...사냥금지로 개체수 급증::) “서울에 살면서 향수에 젖어 생태계 보존만 외치는 공무원들이 농민의 아픔과 농촌의 실정을 알기나 합니까.” 수확기를 맞은 경북 북부지역 농민들이 수렵 금지 조치로 최근 몇년사이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산짐승들의 잦은 ‘농작물 습 격 사건’으로 인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야생조수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옥수수와 고구마, 감자에다 사과 와 배까지 잘 익고 알이 찬 것만 골라먹는 바람에 일년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 과일나무 가지를 찢는 등 온갖 행패로 이듬해 농사까지 망치게 하면서 농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 농작물에 피 해를 주는 야생조수는 멧돼지와 고라니, 너구리, 까치 등 10여종 . 특히 ‘과수원의 폭군’ 멧돼지가 최근에는 인삼밭까지 털어 피 해 농작물 범위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10일 오후 경북 영주시 안정면 여륵리 안승직(56)씨의 1600여평 짜리 4년생 인삼밭. 해발 800m 고지인 용암산을 뒤로한 채 남쪽 을 향한 안씨의 계단식 밭자락엔 여느 인삼밭처럼 햇빛을 가리는 재배사가 검정 차양막을 뒤집어 쓴 채 열을 맞춰 겉보기엔 평화 로운 농촌 풍경 그대로였다.
그러나 밭 둑 가까이 다가서자 인삼향이 코를 찔렀다. 최근 여러 차례 멧돼지 가족이 떼로 몰려와 주둥이와 발로 이랑을 마구 파 헤친 뒤 굵은 삼은 삼키고 가늘고 병든 삼은 지근지근 씹다 버려 1600평 인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름전쯤 삼밭을 찾아 맛보기로 몇뿌리를 캐 먹고 간 멧돼지 암 수 한쌍이 일주일 뒤 새끼들과 다른 멧돼지 가족들까지 대규모로 인삼밭을 습격하는 바람에 튼실한 4년근 인삼 절반을 잃었다.
‘한번 맛보면 중국인들도 반한다’는 풍기 인삼을 맛 본 멧돼지 는 나머지 인삼도 가만두지 않았다. 사흘뒤에는 사람이 캔 것처 럼 쓸만한 인삼만 골라 먹어치워 아예 수확을 포기하도록 했다.
수확기가 다 된 4년근 삼을 인삼 도매상에게 넘기기로 하고 선돈 까지 받은 안씨는 멧돼지떼에 인삼을 몽땅 빼앗겨 배상금을 물어 줄 걱정에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풍기인삼’으로 잘 알려진 이 지역의 상등급 인삼은 평당 10만 원, 중등급은 6만~7만원에 팔리고 있어 안씨가 멧돼지에게 털린 인삼 값은 중등급으로만 계산해도 1억원이 넘는다.
안씨는 “공무원들이 특정 산짐승들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규제만 하는 바람에 돈 없고 힘없는 농민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 정도”라며 “농민은 굶어죽을 판인데도 감상 적으로 산돼지만 떠받치면 될 일이냐”고 하소연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멧돼지가 인삼밭을 깡그리 먹어치운 피해는 보고되지 않아 안씨가 멧돼지떼로 인한 인삼밭 피해 1호인 셈이 다.
그러나 아직 멧돼지의 습격을 받은 인삼농가는 자연재해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씨도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단 한푼의 재해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농촌을 등질 생각마저 하고 있다.
영주시 관계자는 “야생조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자연재해로 분류되지 않아 아직 보상의 길은 없다”며 “인삼도둑에 노이로 제가 걸린 농민들을 위해 최근 주요 길목마다 폐쇄회로 TV(CCTV) 까지 설치해 줬는데 한숨을 놓을 만 하니까 이젠 멧돼지가 속을 썩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상주시 외서면 연봉리 김덕배(38)씨 3000여평 과수원도 멧돼지로 인해 사과나무 가지가 찢어지고 양 지쪽 잘 익은 사과들이 모두 피해를 보았으며, 지난 여름에는 청 송군 현동면 인지리 박은환(50)씨와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함병 영(54)씨도 각각 3000평과 5000평의 과수원이 멧돼지떼의 습격을 받아 엽사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같은 멧돼지 피해는 경북지역에만 지난해 686건에 22억5000만 원에서 올해는 9월말 현재 1106건에 18억여원으로 집계되는 등 피해건수와 피해액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농작물의 유해조수 피해 대부분은 개체수가 급증한 멧돼지 피해”라며 “현재 각 시·군에서 발생하는 멧돼 지 피해 면적은 정확한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영주〓김용태기자
[email protected] 멧돼지 잡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