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서울을 뒤덮은 지난 일요일 삼삼이는 일어나자마자 나가자고 생떼를 쓰고 있었다.
"삼삼아 밖에 미세먼지가 많아서 나가면 안 돼." 라고 설명해봤자 3살 아이는 알아듣지 못하고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결국 삼삼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어흥 아저씨 (TV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마술하는 사람을 우연히 본 뒤 그는 삼삼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다.)를 이야기하며 설명했다.
"삼삼아 지금 밖에 어흥 아저씨가 돌아다녀서 나가면 큰일 나!"
"어흥 아찌 없어.. 어흥 아찌 없어.."
아차.. 이 녀석 시력이 나보다 좋지.. 와이프는 본인은 간만에 주말의 여유를 만끽해볼 테니 한 두어 시간 내게 동네에 있는 키즈카페에 삼삼이를
데려가라고 했다.
"오늘 같은 주말에는 큰 애들도 많을건데 삼삼이 제대로 못 놀아."
"아니야. 그 키즈카페는 130cm 이상 아이들은 출입금지라 데려가도 돼. 나도 몇 번 데려가 봤는데 삼삼이 잘 놀고 좋아하더라고."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지.."
"무슨 소리야?"
"내가 130cm가 넘잖아. 키즈카페 입장하기에는 너무 장신이야.."
와이프는 연애할 때는 나의 큰 키를 보고 듬직해 보인다고 좋아했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골고루 때리기 편하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남자는 나이 먹어도 애라고 맨날 애 취급하면서 이럴 때는 왜 어른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와이프에게 맞은 뒤통수를 만지며 삼삼이의 손을 잡고 키즈카페를 찾았다.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와우를 할 때 공격대 던전에서 긴장하는 마음으로 스페이스 바를 연타하고 있는 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앞에 파킹된 다양한 브랜드의 유모차를 보며 '제정신 꼭 차리자! 호랑이 굴에 가도..'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그 공간에는 수십 명의 삼삼이가 있었다. 뛰는 삼삼이, 편백 블록을 먹고 있는 삼삼이, 과자를 먹겠다고 엄마에게 떼쓰고 있는 삼삼이
그리고 삼삼이도 자기도 그 대열에 끼겠다고 신발을 벗겨 달라고 몸을 낑낑대고 있었다. 삼삼이의 신발을 벗겼을 때 연못에 방생한
한 마리의 거북이처럼 빠르게 삼삼이는 아이 천국 아빠 지옥을 향해 질주했다.
"삼삼아 아빠랑 같이 가야지!"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지 삼삼이는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놀고 있는 편백 블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더니 블록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싸우지 않고 잘 어울려 놀고 있는 삼삼이를 바라보며 잠시 주변을 살펴봤다.
아빠들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에라 모르겠다. 핸드폰이나 해야겠다.' 하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고, 엄마들은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나도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할 때 삼삼이는 내 손을 잡고 "삼삼이 아빠 저기 가자!" 하며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 무리가 놀고 있는 미궁의
입구로 달려가는 것을 봤다.
"삼삼아 아빠랑 같이 가야지!" 나는 폴짝폴짝 뛰어가는 삼삼이를 쫓아 달려갔다.
쿵...
낮은 천장에 머리를 제대로 부딪친 뒤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천장에 쿠션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충격이 상당했다.
사실 아픈 것 보다 쪽팔린 게 더 컸다. 누운 상태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을 때,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아빠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엄마들도 '어머 저 아저씨 어떡해..머리숱도 없어서 충격이 더 클 건데..'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걱정하고 있을 때 삼삼이는 아빠의 탁월한 몸개그에 감탄하며 깔깔거리면서 "아빠! 한 번 더! 한 번 더! 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아들 바보 아니 그냥 바보지. 아들이 기분 좋게 웃는데 이 정도쯤이야..' (그리고 마치 내가 한 번 더 같은 모습을 연출하면 아이를
웃기려고 천장에 부딪혔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큰소리로 "으악!" 하며 넘어졌다. 삼삼이가 더 크게 웃고 있었다.
"삼삼이 아빠!! 한 번 더 한 번 더!"
"삼삼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 다른 거 하고 놀아야지!"
삼삼이의 큰 웃음소리 때문인지 몇 명의 아이들이 '저 아저씨 뭐해?' 하는 눈빛으로 우리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삼삼이를 비롯한
그 아이들의 "아저씨 한 번 재롱 좀 부려보세요!" 하는 초롱초롱 눈빛 공격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위해 내가 한 번 희생하자!"
나는 두 번째 부딪칠 때보다 더 큰 리액션을 하며 천장에 부딪히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이들의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보다 진지했던 어린 시절 영구 아저씨를 보며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바보짓을 할까?" 생각했는데 영구 아저씨가 왜 그렇게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학수준의 몸개그를 했는지 이해가 됐고 이 순간만큼 나는 3~6세 사이 아이들에게 뽀통령 각하만큼은 아니지만 인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아이가 삼삼이를 앞세워 한 번 더 내게 몸개그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자!"
천장을 향해 다시 달려 "쿵" 하고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면서 마치 곰을 만난 사냥꾼처럼 "억!" 소리를 내고 죽은 척했다.
삼삼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내가 쓰러질 때 큰소리로 깔깔거리고 웃다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조용해졌다.
삼삼이는 웃음을 멈추고 내게 다가와 "삼삼이 아빠? 아빠!" 하며 얼굴을 만지고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완벽한 반전 연기를 위해 심장은 멈출 수 없었지만 숨을 멈추고 삼삼이의 손길이 간지럽긴 했지만 참고 있었다.
그리고 삼삼이는 뭔가 아빠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울먹이다 큰소리로 "아빠~~" 하며 울기 시작했다. 웃음의 전파속도만큼이나 울음의
전파속도 또한 빨랐다. 삼삼이 또래의 한 여자아이가 울기 시작하더니 내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다 같이 대성통곡의 장을 열고 있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삼삼아 아빠 괜찮아! 아가들아 아저씨 괜찮아!" 라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 부모들이 달려오고 그날 난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에서 아이를 울리는 나쁜 아빠가 되고 말았다.
그때 '아이에게 이런 장난을 하시면 어떡해요!' 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앞으로는 아이와 놀 때 좀 더 신중하게 놀아야겠다고 몸으로 배운 하루였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