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당췌..
객관적 전력이 딸리는 팀이 전력이 훨씬 강한 팀을 상대할 때엔 그런 팀만의 전략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주전선수들의 노쇄화로 인해 후반 중반 이후의 체력저하가 약점이다.
벌써 2대회째 계속되고 있는 월드컵 골가뭄과 첫경기의 무승부로 인해 선수들이 모두
조급해하고 있다. 앙리, 지단등의 주요 선수들에게 밀착 수비와 보이지 않는 신경싸움등으로
화를 돋우면 쉽게 흥분상태에 빠져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것이다..
세계최강급의 공격라인을 자랑하는 프랑스에게 무실점, 최소실점으로 전반전을 지킨 후
후반 조커 안정환 등의 투입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이정도는 모두 예상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우리의 전략은 어느정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앙리의 빠른발에게 위협을 당하고 또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
이전 인터뷰등에서 보아왔듯 초조한 심정의 앙리는 경기도중 신경질적인 반응을 여러번 보였죠.
지단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 침착하고 신사적이라는 지단이 신경질을 내며 우리 수비수를 밀쳤다가
경고를 받았죠(향후 토고전 필승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을 정도로 흥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 베테랑의 노쇠화와 신진급의 경험부족으로 많은 빈틈을 허용해오던 한국의 수비진이
프랑스의 막강 공격진에게 한골만을 허락했다는 것에 이미 충분히 감동했습니다.
조재진 홀로 나가있는 적진에게 우리 수비가 공을 뻥뻥 날리는 뻥축구를 했다구요?
결과적으로 슛으로 연결되진 않았고 추가적으로 받쳐주는 선수가 없어 좋은 찬스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다급해진 마음으로 공격 올인을 펼치는 프랑스에게 나름대로 위협을 주면서 전반 시간을 끌기에 충분히
좋은 전략으로 보였습니다.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궈준 볼을 누군가 달려들며 중거리슛을 날렸거나
조재진이 잘 컨트롤해 슛이라도 날렸더라면 프랑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수도 있었을테죠.
(물론 프랑스의 견고한 수비진이 잘 막아냈지만 말입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철저하게 전반을 막고 후반 중반이후 승부를 걸겠다는 자신의 전략을 지켜갔습니다.
초반 실점을 만회하려고 다급하게 전략을 수정하기보다 그저 꿋꿋이 한순간의 반격기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었다고 해야겠죠.
예상외로 프랑스의 체력이 오래 버텨줬고, 전반 초반의 실점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져나왔지만
이 경기는 전체적으로 봤을때 전반 초반에 다량실점이후 체력을 비축하며 후반을 버티겠다는 도메네크
감독의 '초전박살'전략과 초반부의 무수한 펀치를 급소만을 피하며 지구력으로 이겨낸후, 때리다 지친
상대에게 필사의 한방을 노리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이 맞붙은.. 상당히 볼만한 경기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 감독의 전략은 서로 어떤 수를 쓸지 뻔히 보이면서도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변수가 생겨나고 그걸 필드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이 어떻게 대처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치열한 머리싸움이었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이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건 믿고 넣어준 교체 선수들과
전후반 무더운 날씨에도 죽자사자 뛰어다닌 선발 선수들의 노고 덕이죠.
자, 그럼 뭐가 불만일까요? 결과에 운운하지 않고 재미있는 축구를 원한다구요? 이건 재밌는 축구가
아니고 뭡니까? 축구는 분명 화려한 개인기와 강력한 슛이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경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축구는 발로만 하는게 아닙니다. 지략도 필요한 경기입니다. 그리고 발재간이
떨어지는 팀일수록 지략싸움으로 그것을 커버해야하는게 당연한 일일겁니다.
우리가 한번 4강에 갔다고 해서 브라질이나 프랑스가 우스운 팀이 되는것 아닙니다. 여러번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 같은 나라도 프랑스같은 강국을 만나면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쳐야 함이
마땅할겁니다. 하물며 그보다 한수 아래인 우리나라가 승리에 대한 집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총력전을 펼치지 않고 단지 관중의 재미를 위해 말도 안되는 전략으로 슬렁슬렁 패배만 안고
돌아와야할까요?
분명 우린 프랑스보다 한수 아래입니다. 우리 선수들에겐 앙리와 같은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매서운 슛,
지단과 같은 정확하고 날카로운 패스, 슛 같은 게 없습니다. 그럼 어찌해야하나요? 그냥 져야하나요?
아니면 한수 아래일게 뻔한 똑같은 수법으로 맞서야 할까요? 그건 '승리'가 아니라 '관중의 재미'를
위해서겠죠. 이건 '쑈'가 아니라 '승부'입니다. 함부로 '정정당당'이란 소리 내밀지 마세요.
정정당당이란 말은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것을 걸었을때 할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약점이 있으면
다른 강점으로 그것을 커버하려고 말그대로 처절한 발악을 해야하는 겁니다. 단지 관중의 즐거움을 위해
패배가 뻔한, 겉멋만 든 '쑈'를 하는게 뭐가 정정당당이란 겁니까?
우린 개인기가 밀리고, 따라서 개인기vs개인기로 덤벼봐야 승산이 없다는게 뻔하다면 머리싸움으로
그걸 커버하려 드는게 맞는 겁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우리 팀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그게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란것도 알고 있기에
그걸 커버할 다른 방법을 고심하며 찾아가는 겁니다. 선수들은 거기에 따라 죽자사자 뛰고 있구요.
그리고 그게 지금 우리에게 조 1위, 1승 1무, 원정 월드컵 첫 1승이란 화려한 성과로 돌아왔습니다.
대체 뭐가 문젭니까? 우리가 왜 브라질같은 축구를 못하냐구요? 그럼 그냥 브라질 응원하세요.
한국은, 분명히 말하지만 그리 약하지도 그리 강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대회 4강이란 업적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득이 되면서도 부담이 되는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상대는 절대 만만한 팀들이 아닙니다.
토고가 우스워보였나요? 월드컵 본선진출국 32개국은 본선 진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팀들입니다.
어느누구도 얕잡아볼수 없습니다. 세네갈이 프랑스를 꺾었던 지난 대회를 잊었나요?
스위스가 우스워보이나요? 유럽팀치고 무섭지 않은 팀이 있나요? 프랑스와 계속해서 승부를 가리지 못할
만큼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입니다.
프랑스가 우스워보였나요? 98년도 월드컵 우승국에 지단, 앙리, 트레제게 등등 대다수의 선수들이
세계적 스타입니다. 방송에서 늙은 수탉 운운하니 우스워보였나보죠?
어느팀도 만만한 팀은 없고, 우리보다 강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약자에겐 약자만의 싸우는 방식이 있습니다.
한가지 말하자면, 야구 볼줄 모르는 사람은 투수전을 재미 없다고 말합니다.
하긴.. 펑펑 안타 홈런 쳐대며 점수가 나는 난투전이 볼거리야 많겠죠. 하지만 정말 야구의 참맛을
느끼게 만드는건 투구 하나하나에 치열한 긴장감이 감도는..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균형을 깨뜨리는
살얼음판 위에서 감독들의 긴장된 머리싸움과, 선수들의 처절한 호수비가 빛나는 투수전입니다.
4번타자가 번트를 대고, 단 1점을 내기 위해, 지키기 위해 피를 말리는 전략싸움 말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원정월드컵에서의 16강, 그이상의 성적입니다. 또한 2대회 연속
결승 토너먼트 진출, 바로 이겁니다. 한국 축구가 왜이리 개인기도 딸리고 재미가 없냐구요?
좀더 참고 기다리세요. 16강 이상의 성적이 나면 이제 더이상 지난 대회 4강 성적이 운이네 홈빨이네
이런 소리도 듣지 않을테고, 많은 젊은 선수들이 해외 빅리그로 진출할 기회를 얻을겁니다.
이런식으로 2~3대회를 지나다보면, 언젠가 우리도 23명의 대표팀 전원이 박지성, 이영표처럼 빅리그
주전들로 채워질 날이 오겠죠.
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린 미래를 위해서라도 1승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우린 절대 상대국들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약자에겐 약자의 싸움방식이 있는겁니다.
토끼와 사자가 싸워야한다면 토끼의 발톱으로 사자의 발톱과 맞붙을순 없습니다.
단지 치명상을 피하며 기회를 노리다 지친 사자의 급소를 물어뜯는 수밖에 없겠죠.
자.. 토끼가 사자와 비겼습니다. 전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우린 최선을 다한 우리의 자랑스런 대표선수들과 코치진,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기만 하면
될겁니다.
뭐가 문젭니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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