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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347775
    작성자 : 익명Z2dkZ
    추천 : 3
    조회수 : 122
    IP : Z2dkZ (변조아이피)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5/02/09 00:08:42
    http://todayhumor.com/?gomin_1347775 모바일
    그 시는 제 시가 아닙니다.
    이미 끝난 일이고, 이제 제가 뭐 어떻게 손 쓸 방도는 없겠지만,
    그냥.. 자꾸 생각이 날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해서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어 적어봅니다.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상금은 없는, 누가 봐도 교지에 실릴 글이 모이지 않아 상장을 미끼로 내건 대회였습니다.
    논술과 수능으로 대학 진학을 계획 중인 저에게 상장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으나,
    워낙 시, 산문, 소설 등의 글짓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공부로만 채우려 노력했던 일상에 활기를 불어놓고자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게 있어 이 대회는 글자 그대로의 '경쟁'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상장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거든요.
    제가 시에 담아놓은 그 무수한 감정들을 남들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니까요.

    문제는 며칠 전 발생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교지에 실릴 글을 쓴 학생들을 복도로 불러
    오타나 맞춤법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찬 기가 가시지 않은 그 복도에서, 저는 제가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확인을 부탁한 시는
    제 시가 아니었습니다.

    시적허용을 고려한 부분은 맞춤법 교정이라는 명목 하에 바뀌어 있었고,
    읽는 독자가 잠시 숨을 멈추고 시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하고 싶었던 부분은
    선생님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워졌습니다.
    여운을 남기고 싶었던 부분은 형식에 맞지 않다며 삭제되었고,
    절절한 감정을 한 번만 더 느끼게 하고싶어 반복해서 쓴 부분은
    "초등학생이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제가 유리멘탈이라 유난을 떠는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음대로 수정하신 그 시,
    제가 원래대로 고쳐달라 요구하니
    귀찮다는 어투로 거절하셨죠..

    ...


    선생님, 시는 창작입니다.
    답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살며 맞이한 경험이 다른 만큼,
    모두가 같은 내용의 같은 형식의 같은 마음의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봤을 때, 제 시가 부족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 '부족함'은 대체 누가 결정하나요?

    시는 제 나름의 멋이 있습니다.
    서툰 시에는, 잘 정제된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툰 시대로의 투박함과 거칠지만 순수한 멋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이상 시인의 시는 답답해서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형식을 그렇게 중요히 여기시는 분이니, 읽으시며 상당히 불쾌하셨을까요.
    형식을 지키지 않은 시라, 문학적 가치가 없다 비난하셨을까요.

    선생님, 저는 시 한 편을 써 내려갈 때 마다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릅니다.

    손으로 써 보고, 눈으로 읽어보고,
    소리내어 말해보고, 가슴으로 담아보고...

    그 순간만큼은 마치 도자기 장인이라도 된 것마냥
    성에 차지 않는 글들은 쳐내고,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이며
    그렇게 어렵사리 공들여 글을 탄생시킵니다.

    시는 제 자식입니다.

    시 뿐만이 아니더라도 제가 제 손으로 온 마음을 바쳐 탄생시킨 저의 작품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제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 띄어쓰기 하나...
    그 어느 것도 아무 생각 없이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이냐는 비난에 멍해져 선생님의 말에
    아무 말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던 제가 혐오스럽습니다.
    제 자식 하나 지키지 못 한 것만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저는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제가 쓴 글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교지를 받게되면 펼쳐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제 이름 석 자 아래 담겨진 그 시는

    제 시가 아니거든요.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5/02/09 00:10:19  121.154.***.10  Hinabee  556525
    [2] 2015/02/09 00:11:29  114.201.***.133  함함하다  546540
    [3] 2015/02/09 00:37:24  121.145.***.151  쌍크미  247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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