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보니 모르는 개 한마리가 집에 난입해 있었다. 심지어 덩치도 좀 크다. 이야, 이것 참 난감한걸. 우리 원룸은 애완동물 금지인데. 아니,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온거야? 여긴 5층인데? 문도 잠가뒀는데? "아가, 넌 대체 어디로 들어온거야?" "멍!"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갈색 털이 긴 멍멍이는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멍멍 짖을 뿐이었다.
…이걸 확 던져버릴 수도 없고.
일단 오밤중에 당장 내쫓는 건 사람으로서 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 오늘밤만 재워주고 내일 학교 가는 길에 유기견 보호센터에 데려다놓아야겠다. 그나마 다행이네, 내일 강의는 오후수업밖에 없으니까. "아가, 그럼 오늘만 여기서 자고 내일은 나가라. 알았지? 또 들어오고 그러면 안된다?" "멍멍!"
…알아들은거야? 아니면 못 알아들으면서 멍멍 짖는거야? 말도 안 통하는 개새끼니… …아니 분명 맞는 말인데 어감이 이상하다. 개아가…? 강아지? 근데 저건 강아지치고는 좀 큰것같은데. 고양이들은 캣초딩, 캣중딩 하던데 개는 뭐라고 부르지? 잠시 상념에 빠져있으려니 개가 무릎을 연신 핥았다. 간지러워 죽겠네. 그나저나 얘 저녁은 먹었나? 언제 씻었으려나. 털 때깔을 보면 유기견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가. 밥은 먹었니?" "…끼잉…." 이건 분명 안 먹었다는 뜻이렸다. 이놈 참 신기하네, 사람 말도 알아듣고. 손을 들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니 좋다고 꼬리를 연신 흔들어댄다. 이것 참, 애완동물 금지만 아니면 키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털이 굉장히 폭신하고 보들거리는 것이, 배만 고프지 않았으면 노냥 쓰다듬고 싶을 정도였다.
근데 개는 뭘 줘야하지…?
"맛있어?" 대답은 없었다. 멍멍이는 챱챱 밥먹느라 바빴다. 아주 코를 그릇에 박고 먹을 기세다. 어차피 한끼인데 뭐 어떠랴 싶어 흰밥에 날계란 하나 풀어 찌개에서 건진 고기랑 비벼줬더니만 참 맛있게도 먹는다. 보고있으려니 나까지 배가 고파져, 나는 어제 세일상품으로 사온 빵을 야금야금 뜯으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집밥 밥선생이 엄마손 함박스테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네, 맛있어요! 밀레시안님이 주신건 다 맛있는걸요!" "…내 귀가 이상한건가, tv에서 왜 내 이름을……" 하하, 참 이상하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이것 참 병원을 가야하나, 하하. "환청 아닌데요?"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 전까지 열심히 밥을 챱챱 먹던 멍멍이는 어디 가고 웬 벌거벗은 소년이 앉아있었다. 적갈색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의 청소년이었다.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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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꿈을 꿨어." "…묘한 꿈이네요." 알터는 기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밀레시안님의 꿈에 자신이 나온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멍멍이었다는 것에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밀레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알터." "네? 뭐가요, 밀레시안님?" 밀레시안은 목걸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저건 라브의 개목걸이다. 예전에 밀레시안이 플레타는 대체 왜 이딴걸 자기한테 구해오라 시키는거냐고 투덜거린 것을 몰래 엿들었던 적이 있었다. 대체 저건 왜……. 알터의 의문이 더 커지기 전, 밀레시안이 말했다.
"착하지? 멍멍아, 손."
"…멍!"
============== "…오늘도냐…." "…냐옹."
금빛 털의 고양이가 마치 제 자리인양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작게 울고는 제 앞발을 챱챱 그루밍하는 모습이 제법 도도했다. 갈색 강아지는 제 자리를 빼앗긴 것이 억울한지 기운없는 모습으로 구석에 콕 쳐박혀 있었다.
----------------- 낮에는 강아지, 밤에는 사람 이런 설정을 좋아합니다. 톨비쉬는 강아지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늑대...면.... 야생동물센터 신고감일 것 같길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양이로...(..). 사실 톨비쉬는 넣을까 말까 하다가 알터가 축 쳐진게 쓰고싶어서 넣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