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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6월이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라는 낯선 땅에 홀로 온 나는 언어교환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인연의 시작은 내가 올린 구인광고를 보고 날아온 문자 한통이었다.
원어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대학을 나왔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한 그녀는
나와 언어교환을 하기를 원했고 나는 흔쾌히 그녀와의 만남을 수락했다.
도서관내에 자리한 작은 커피숍, 그 앞 의자에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작고 아담한 체구에 똘망똘망한 눈.
그리고 조금은 경계하는 듯한 태도.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 본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겁먹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다부져보이려 애쓰는 듯한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여리고 착한 아이겠구나.
첫 인상만으로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녀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사이였음에도 나는 그녀가 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보다 머리 한, 두개는 더 큰 나를 무척 조심스러워했지만
어느새 그녀가 편해진 나는 내 전매특허인 바보같은 웃음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게 느껴졌고 그래서 상대방을 대하는데 편암함을 느꼈을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혹은 두 번씩.
주말마다 우리는 서로의 공부를 도와줬다.
날이 지날 수록 처음에는 내 앞에서 작은 미소도 잘 보여주지 않던 그녀가
어느순간 나처럼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는걸 알았다.
그녀도 내가 자기와 같은 바보라는걸 알아본 까닭일까.
그렇게 우리는 언어교환이라는 목적을 떠나서 순수한 친구가 되었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혹은 무척 심심할때만 나를 찾던 그녀는
차츰 나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마주앉아 같이 공부하는 것 조차 어색한 사이였는데
이제는 항상 그녀와 만나면 같이 밥을 먹었고
보수적인 문화때문에 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 없다는 그녀와
펍에서 맥주 한, 두잔을 같이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아니, 모르겠다. 그래, 나도 그 당시의 내 감정을 잘 몰랐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또 다른 언어교환 친구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서로 바쁜 일정상 원하는 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니
한국어를 보다 열심히 공부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야속하지?
내가 그녀의 수 많은 친구 중 흔한 하나가 되는게 싫었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녀가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데?
결국 나는 제대로 자각도 못한 내 감정,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그런 것들을
그녀에게 말해버렸다.
요약하자면 나 말고는 만나지마!
그녀는 친구를 잃을까 두려운 그 감정을 잘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소풍을 제안했다.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요리도 못하면서 도시락을 만들어 갔다.
전발부터 재료구입, 손질등을 하며 온갖 수선을 떨고 만든 샌드위치.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냥 친구 아니었던가.
소풍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는 그녀에게 한 참은 늦은, 혹은 너무 이른 질문을 했다.
혹시 남자친구 있어?
내 질문에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아이스크림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멍때리고 있었다.
그때 그런 내게 그녀의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이래 처음으로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아, 농담이었구나. 장난이었구나.
멍청한 나는 그녀의 장난에 그대로 속았고, 내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체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고 만 것이다.
사실 나도 당시 내가 그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건, 그녀의 웃음 소리가 내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이미 그녀가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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