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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3354
작성자 :
계피가좋아
★
추천 :
4
조회수 : 3264
IP : 121.170.***.95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1/03/24 00:43:54
http://todayhumor.com/?panic_13354
모바일
브금주의]신(the god)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 태초의 울음을 세상밖에 내뱉을 때부터 신은 내 옆에 존재했다.
내가 보았던 신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강했으며, 영리하고 다재다능했다. '그'의 거대함은 마치 하늘 위에 우뚝 솟은 바벨탑의 그것과 흡사햇고, '그'의 호통은 제우스의 번개보다 강렬하고 무서웠다.
나는 어떤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또는 주위에서 내게 원하는 그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항상 나의 신에게 기도를 구하곤 했다. 그때마다 신은 내가 생각해낼 수 없는 계시로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비록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내 능력의 부족을 원인으로 치부하면서 '그'를 맹신했다. 어렸을 무렵의 나에겐 '그'의 존재가 마치 강한 태풍에도 굳건히 견뎌내어 새로운 잎을 키워내는 커다란 나무처럼 강하게 느껴졌고, 그리스 신화에서나 등장하던 전쟁의 신 아레스와 같이 그 어떤 풍파와도 싸워 이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조금씩 커가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그렇게나 강인하고 천의무봉의 존재처럼 보이던 신은 내 눈에 검은 그림자를 하나둘씩 꺼내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던, 또는 내가 옳다고 믿었던 관념들이 '그'에 의해 부정되어질 때, 나는 예전과는 다른 모멸감을 맛 볼 때가 많았고, 신의 생각이 틀렸음이 입증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우월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럴때마다 내 안에서의 신은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드워프처럼 점점 작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갔고, 어느순간부터는 지금까지 '그'가 강요해 온 신의 섭리가 나에겐 그저 오만한 자의 아집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그'의 호통은 더이상 제우스의 번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나에게 '그'의 존재 자체가 피하고 싶은 위험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그'에대한 믿음의 맹세를 지워가는 선로의 위에서도 위기의 상황이 닥칠 때마다 신은 나에게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해주었지만, '그'의 방안은 예전처럼 강단이 있지도 않았음은 물론, 나에게 그 계획이 성공할 거란 믿음조차 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신의 말을 따르기 보다는 나의 합리적인 이성에 의한 결정으로 모든 일을 행하였고, 그럴때마다 '그'는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하여 그에 대한 갖은 욕설과 비방을 퍼붓듯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말은 더이상 나에겐 신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조언은 나에게 있어 트로이의 목마처럼 헛점 투성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신이란 존재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비합리적이고 꽉 막혀있으며, 누구보다 쉽게 좌절하는 그저 나약한 존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신은 더이상 커다란 나무가 아니었고, 전투의 신이 아니었으며, 바벨탑처럼 높은 위용을 자랑하지도 못했다.'그'는 오히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버섯과 같았으며 전투의 신에게 무릎 꿇는 그리스의 병사들과 같았고, 무너져가는 석탑의 돌덩이가 더 어울릴 뿐이었다. 물론 이와같은 나의 생각에 비례하여 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자신감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져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완전 무결한 존재는 더이상 '그'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신을 무시하고 경멸하기 시작하자 신 역시 더이상 나에게 손길을 뻗지 않았다. 가끔씩 '그'는 자신의 찬란했던 시절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을 회복하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조차 종래에는 끊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더이상 신을 만날 수 없었고, 딱히 만나고자 할 의향조차 없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안에 아직도 신의 무엇인가가 남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고민했으며, 곤란한 상황에서는 '그'의 손길을 찾게 되었고, 나의 모든 오만과 편견과 아집이 결국 내가 '그'에게 갈구했었으며 종래에는 경멸하기까지했었던 '그'의 사상이란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달갑지 않은 사실...외면하고 싶은 진실...어쩌면 나에게 있어 '그'의 존재가 그랬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내 안에서 점점 '그'의 재림을 원하던 그 무렵, 신은 영영 나에게 작별을 고하고야 말았다. '그'는 나에게 있어선 신이었지만 그 전에 인간이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신탁을 원하던 나는 '그'가 떠나기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갈구하던, 아니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경멸했을지 모르는 '그'의 편견과 아집과 오만을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편견과 아집, 그리고 끝을 모르던 오만의 근원이자 목적이 세상에게서 나를 지켜내기 위한 '그'만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절대로 커서 이 아버지처럼 살지 마라...."
신은, 아니 아버지는 내가 태초의 숨을 이 세계에 뿜어냈을 무렵부터 내 곁에 있었다.
출처
웃대 - hero창정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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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03/24 01:17:18 118.34.***.19
[2]
2011/03/24 06:08:07 203.226.***.40
[3]
2011/03/25 20:44:47 211.176.***.103 김까프린스☆
[4]
2011/03/26 16:59:34 119.69.***.179 mok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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