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극단 선택
그는 소문난 천재였다. IQ 152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상을 휩쓸었다. 모 과학고등학교를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고, 19세 나이로 한국 최고 연구기관에서 생물학을 전공 중이었다. 그의 자살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언론에서는 그의 죽음을 학업에 지친 스트레스라고 조심스럽게 보도했지만 구명시식 후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수한 학업 성적, 밝은 성격에 효자였던 그가 투신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 한번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천재 아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부모님은 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고 아들 역시 항상 부모님께 전화를 해 안부를 물었다.
죽기 불과 5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부모님께 전화를 했고 전화를 끊은 뒤 디지털카메라로 장난스러운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기숙사에 머물고 있어 늘 볼 수 없는 부모님의 그리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들이 새벽에 자살을 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부모는 아직까지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자살할 이유가 없는 아이입니다. 정말 저희에겐 과분한 자식이었습니다." 부모의 눈물에 내 가슴이 아파왔다. 아들이 남긴 마지막 사진에서도 죽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속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자 놀라운 장면이 염사됐다. 만약 그가 살았더라면 향후 10년에서 15년 사이에 인간의 수명을 20~25년 정도 연장시킬 수 있는 최첨단 생명 연장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을 발명해 낼 대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보인 것.
그의 자살은 1900년대 일본 닛코폭포에서 투신자살한 천재 소년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이 세상이 너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은 왜 자살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일찍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세상이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천재가 설 자리는 없다.
세계적인 발명왕 에디슨이 태어나 활동했던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는 과학이 그 나라의 국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했다. 당시 미국의 국력은 유럽의 강대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었으나 전기, 영화, 축음기 등 에디슨의 경이로운 발명품은 미국을 과학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시대적 요구와 천재의 탄생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
그러나 현 지구 시스템은 생명 연장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을 발명해낼 미래의 과학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 인류의 생명이 20~25년씩 연장된다고 생각해보자. 지구는 줄지 않는 인구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지구 시스템이 그의 발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먼 미래를 위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현생을 쉬게 만든 것이다.
중대한 영적 범죄인 자살이 용납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