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렵게 어렵게 하루를 그냥저냥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타박타박 지친 발걸음을 옮기며 힘없이 바라본 분식집 통창 너머로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나름대로 허기를 달래는 것이 보이더군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후후 불어 먹는 학생들...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친구들이
입시에 노예가 되어 고작 라면으로 허기를 채운다고 생각하니 제 가슴은 찢어 지는것
같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저도 먹고 싶어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초저녁에 동료들과 간단하게 소주 한잔 하며 안주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제 빈속의 솔직한 마음이었으면 두말하면 목젖 따갑습니다.
혼자 사는 처지에 집에 간다 해도 누가 따뜻한 밥 챙겨 줄리가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란 사실보다
더 명확한 사실인건 옆집 강아지도 아는 사실입니다.
입안에 군침 한가득 품고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라면을 사서 끓여 먹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에서 말이죠.
참 라면의 종류도 많더군요.
마치 신부에게 줄 예물이라도 고르 듯 한참을 라면매대 앞에서 장고를 거듭한 가운데
전 컵라면을 하나 고르고 맙니다.
맛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먹고나서의 설겆이 걱정은 없을거란 장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자랑스럽게 그리고 뿌듯하게 컵라면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컵라면의 뚜껑을 깝니다.
잠시 당황하고 수초 후 전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피자의 꽃이라면 토핑과 치즈에 있을 터...
라면의 궁극의 맛은 스프에 있어야 함 이라고 그다지 짧지 않은 삶속에서
느껴왔고 배워 왔건만...
안 보이더군요...아니 없더군요.
그저 희고 둥그런 딱딱한 면만 보일 뿐...
좌절과 절망은 라면에게서도 당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라면 제조회사의 소비자보호센터에 전화를 겁니다.
안받더군요...
밤이 늦은 탓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구입한 마트에서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전 외출후 집으로 돌아오면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약속이 있었기에
그 약속을 깰 수 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안먹고 버리자니 아쉽고 또 배도 고프고...
결국엔 생으로 먹자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과자삼아 말이죠.
한입에 먹기좋게 그리고 소화도 잘되게 볼펜으로 생라면을 사정없이
절단내고 조사부렀습니다.
먹을만 합디다...
고소하니...
싱거울거란 판단에서 맛소금을 약간 쳐준 것이 맛의 깊이를 한층 높인것 같았습니다.
새우깡도 아닌것이 자꾸만 손이 가더니 어느덧 밑바닥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제 손끝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비닐의 촉감에 저는 그만
아까 스프가 없음에 경악했던 것과와는 다른 또 다른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스프 봉다리가 라면 덩어리 밑에 다소곳이 깔려 있더군요...
닝기리...
스님이 드실 냉면밑에 고기 깔은것도 아니고.
스프를 라면밑에 왜 까는 건지...
그리고 전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라면 다 부셔 먹은 컵라면 용기에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정확히 4분후에 국물을 마셨습니다...
"세상에서 못익은 라면아 내 뱃속에서라도 익어라"라면서 말이죠.
바로 30분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웃대가 많이 바뀌었네요...
꼭 남의 집 놀러온 듯 하는 뻘쭘함이...;;
by hy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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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웃대
....피식하셨으면.. 추천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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