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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323148
    작성자 : 익명Z2NmZ
    추천 : 13
    조회수 : 1009
    IP : Z2NmZ (변조아이피)
    댓글 : 152개
    등록시간 : 2015/01/18 01:15:21
    http://todayhumor.com/?gomin_1323148 모바일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15살이었다.
    처음에 아저씨를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새벽에 컴퓨터를 하다가 인터넷 방송을 들었던 것이다.
    아저씨의 방에는 사람이 2명 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새로운 손님을 반가워했고, 내가 중학생이라는 사실에도 평온했다.
    어른스러웠지만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맞장구도 성실하게 쳐주셨다.
    나는 점점 아저씨의 방을 찾게 되었고, 고정 손님이 되었다.
    그 때 아저씨는 내 나이의 정확하게 두 배였었다.
     
    아저씨의 방송은 아무것도 안 하는 방송이었다. 
    아저씨는 그냥 멍하니 방송을 켜두고 사람들이 오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수다를 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송이었다.
    손님이 아예 없을 떄도 많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았고,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없을 때를 굉장히 좋아했다.
    아저씨를 독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나는 아저씨랑 핸드폰 번호도 교환을 하게 되었다.
    새벽에 나는 심심하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저씨 역시 귀찮은 기색 없이 받아주셨다.
    아저씨는 가끔씩 자기 어릴 때 이야기도 해주셨다.
    아저씨는 부산 분이셨는데, 어릴 때는 완전히 시골에서 자라서
    밤에 누워서 별을 보기도 하고 누렁이랑 뒷마당에서 뛰어놀았다는 둥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가끔 아저씨는 본인의 추억에 너무 심취해서 내 반응은 살피지 않으시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땐 아저씨의 나긋하면서도 들뜬 목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기도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 끊긴 건지도 모르겠는 전화기가 달구어진 채로 내 귀에 찰싹 붙어있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나랑 통화하는 걸 좋아해주셨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집과 학교 학원을 무한반복하는 시스템이 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아저씨와 멀어질..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직도 새벽에 나와 틈틈이 통화를 해주셨고,
    나는 아저씨에게 고등학생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징징댔다.
     
    아, 나는 아저씨와 만난 적이 있었다.
    아저씨가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다고 하셨을 때 나는 아저씨를 한 번 뵙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아저씨는 다 늙은 아저씨가 뭐가 보고 싶냐고 핀잔을 주셨지만
    역시 나의 투정에 아저씨는 나를 밤에 만나기로 해주셨다.

    처음에는 그 날이 그렇게 기다려졌었는데..
    막상 만나는 날 아침이 되자 뭔가 무서워졌었다.
    무서운 사람이면 어떡하지?
    그리고 아저씨를 이성으로 본 적은 없었지만 또 동시에
    배가 볼록 나오고 머리가 빠진 볼품없는 아저씨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굉장히 철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밤이 돼서 아저씨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는 삼십 분을 일찍 도착했었다.
    근처 편의점 안에서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며
    앞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들리는 모든 발소리가 아저씨일 것 같았고,
    지나가는 모든 남자들의 뒷통수가 아저씨의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약속시간도 넘어가고 있었다.
    초조함은 짜증으로 변질되었고, 나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뛰어오고 있다고 헉헉거리며 전화를 받으셨고,
    나는 편의점 창문 바깥으로 웬 뚱뚱한 아저씨가 전화기를 들고 뛰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환상속 아저씨는 뭔가 미중년일 것 같았다.
    나는 늘 그를 이정재와 비슷한 느낌으로 상상하고는 했는데,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 오자 꽤나 실망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편의점에 들어왔는데,
    그제서야 나는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아저씨와 다른 목소리였다.
    동시에 스스로가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따르던 아저씨였는데, 외모가 별로라고 하면 어떠한가.
    나는 아저씨의 목소리와 말투와 성격이 좋았다.
    그와 사귀고 싶다 혹은 잘되고 싶다라는 느낌도 없이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와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겠다고.
     
    기분좋게 다시 전화기를 제대로 잡고 아저씨에게
    "저, 편의점에 있어요."라고 말하며 문 밖을 보는 순간,
    모자를 쓴, 그리고 아저씨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앳돼보이는 남자가 편의점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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