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사단
* 늘 그러하듯 망상주의, 긴 글 주의, 오글주의
사기당한 조장님(로간 ver.)
" 무슨 일 있으십니까? 조장님. "
" 앗.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요. "
"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안색이 안 좋아보이십니다. "
" 비밀 지켜줄 수 있어요? "
" 물론입니다. "
깊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나의 귓가에 나직히 속삭였다. 머뭇거리며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얼마 전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이 북적이는 던바튼 광장에 갔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잘 팔리는 의장을 싼 값에 주겠다며 골목 안 쪽으로 그녀를 유인한 사기꾼은 자신이 크게 밑지고 파는 거라며 그녀에게 물건을 떠맡기듯 넘기고 수표를 챙겼다고 했다. 예상 외의 행운에 그녀는 신나게 거래 상대방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했고, 의장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그에게서 그녀가 구매한 의장이 사실은 지불한 가격의 1/3도 채 되지 않는 물품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장사 잇속에 밝지 않은 어리숙한 그녀가 충분히 겪을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눈에 띄게 기가 죽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야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그녀는 사람을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있는만큼, 악의를 가진 인간들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고작 의장 하나로 교훈을 얻었다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사기꾼이 단순히 금전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그녀가 무사히 캠프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모든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나서 그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그녀는 꼭 사고 싶은 것들이 있었노라고 덧붙이며 울상을 지었다. 기가 죽은 그녀가 안 되어보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네는 것 뿐이기에 조금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며칠 간 캠프로 돌아오는 그녀에게선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늘 화려한 장신구며 고급스러운 의장을 챙겨입곤 하는 그녀의 행색이 다소 남루해진 것이다. 어떤 날은 상처를 입고 찾아오기도 했다. 강한 밀레시안인 그녀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갔다. 걱정되어 물어보면 오는 길에 곰을 만났다느니, 약탈단을 만났다느니 둘러대며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녀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그녀가 크게 다쳐 돌아왔다. 나과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둥의 헛소리를 하며 치료소 침상에 앓아 누운 그녀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던 슈안씨가 나에게 살며시 귀띔을 해주었다. 그녀가 사기로 인한 금전적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처분했고, 하물며 그렇게 아끼던 무기 역시 싸게 팔아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사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녀를 위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얌전히 앉아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약초학 수련을 위해 캠프를 떠난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사기를 당했다던 던바튼에 들렀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쪼그려 앉아 여러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사기꾼이 아직 던바튼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를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사기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가판대를 한 바퀴 돌고 소득없이 캠프로 귀환하려 할 때,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 들려왔다. 어리숙한 여자. 스쳐지나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그들이 말하는 어리숙한 여자는 그녀가 분명해 보였다. 그들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가가려는 찰나, 무리 중 한 명이 개인 상점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형씨. 뭐 찾아? 형씨 딱 보아하니 뉴비인 거 같은데. 맞지? "
" 저 뉴비..아닌데요. "
" 에이, 딱 보니 그렇구만 뭘. 내가 이 바닥에 오래 있어봐서 뉴비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어. 그 칭호하며, 입은 뉴비웨어까지. "
" ...그냥...좀. 쓰던 무기를 수리하려고 했다가 내구도가 0이 되는 바람에...새로 하나 장만하려고.."
" 그럼 바로 찾아왔네. 형씨. 혹시 축복의 포션이라고 알아? 이게 말이지, 내구도 걱정 없이 평생 무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희귀한 물품이거든? "
" 정말요? "
" 그럼. 내가 뉴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겠나. 이게 요정의 눈물로 만든 희귀한 물건이에요. 근데 형씨가 뉴비니까 내가 특별히 싼 값에 줄게."
" 우와, ...근데 제가 100숲 밖에 없어서.."
" ...그럼 이거 내가 형씨한테 100숲에 팔게. 이거 원래 한 500숲은 하는 거거든. "
아무래도 찾은 것 같다. 나는 금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모은 돈을 꺼내 포션과 맞바꾸려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놀란 남자와 당황한 사기꾼 사이에서 나는 남자에게 사실을 일러주었다. 놀라며 재빨리 자리를 떠나는 남자를 붙잡으려던 사기꾼은 화를 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일반인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순간 치료소에 앓아 누워 앓던 그녀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칼자루로 그의 배를 치려던 차에 다소 힘이 들어갔다. 남자는 그 자리에 웅크려 가쁜 숨을 토했다. 무고한 사람을 치네 어쩌네 소리를 지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던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 여기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면 불리한 쪽은 누구일까요? 관청까지 같이 가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아까 당신이 말한 어리숙한 여자, ... 아니, 우리 조장님이 피해본 금액 그대로 변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면, 관청이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뒷골목으로 갈까요? "
그는 판이 커지면 자신이 불리해질 것을 알았는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큰 금화 주머니 몇 개를 내 앞에 내려놓고 급히 자리를 떴다. 얼추 금액을 헤아리니 모자라지는 않는 듯 했다. 수근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캠프로 돌아오니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슈안씨와 대화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작 그런 놈들 때문에 그녀가 며칠 간 마음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 그녀 앞에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가 말없이 그녀의 두 손에 금화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금화주머니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 웬 돈이냐고 물었다.
" 관청에서 얼마 전에 조장님에게 사기 친 사람들을 잡았다고 연락이 와서요. 임무에서 돌아오는 길에 받아왔습니다. "
뛸 듯이 기뻐하며 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 번부터 거래를 할 때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일러주었다.
* * *
" 이게 뭡니까? 조장님. "
" 열어봐요. 빨리요. "
얼마 뒤, 캠프로 들어선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커다란 상자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나의 질문에도 빙긋빙긋 웃기만 하는 그녀 앞에서 천천히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반짝이는 새 옷과 함께 장인의 손길로 개조된 식칼, 그리도 도마가 들어있었다. 어리둥절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선물이라고.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이 아마도 이것이었을까? 무언가 뜨거운 것이 왼쪽 가슴 안에서 절절 끓었다. 고작 나에게 선물을 전하기 위해서?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는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다. 무언가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하는데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나를 보고 그녀는 뾰로통하니 입술을 내밀며 옷을 꺼내 손수 나의 앞에 펼쳐 보였다.
" 로간씨, 맨날 옷입는 센스가 없다고 디이한테 한 소리 듣는다면서요. "
" ... 조장님. "
" 게다가 제가 로간씨한테 조원이 되어 달라고 말하고 나서 100일 정도 지난 거 알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얼추 맞을 거예요! 나는 로간씨 생일도 모르고 하니까 이런 날이라도 챙기고 싶었거든요. 기념할만한! 제 첫 조원의 백일이라구요. 아. 그 식칼이랑 도마는 제가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거니까 고마우면 그걸로 맛있는 거 만들어주세요. 우리, 오늘 저녁에 캠프파이어라도 할까요? 고기도 굽고! "
그녀는 분명 내가 건넨 돈으로 다시금 던바튼에 뛰어가 나에게 줄 선물을 골랐을 것이다. 무엇을 고르면 내가 좋아할지 고심했을 것이고, 어렵게 찾은 돈을 스스럼없이 선물을 사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가슴에 피어오르는 간질간질한 이 느낌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떨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했을 때.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수그렸을 때. 매일같이 찾아와 건넸던 말들. 그녀가 내게 준 추억들이 찰박이며 내 안을 가득 메워간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사기꾼을 찾아나서 그녀의 돈을 찾아온 일이 아닌, 그녀를 만나 그녀와 함께 조를 꾸린 것에 대해.
" 로간씨. "
" 네? "
"..힛.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
"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방출로 울렸으니 이번엔...좀 좋게 좋게.
....어. 음. 기사단한테 옷 선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서 나온 망상입니다만.
이번에는 로간씨 편만..써봤어요. 이건 망상이니 같이 즐겨주시면 좋...좋겠지만
오글거림은 언제나 다리미로 펴드립니다.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