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현장에 붙은 포스트잇이나 유인물 속의 글귀들 중에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듯한
글귀들이 여럿 보입니다. 그들은 정말 대다수의 선량한 남성들까지 잠재적인
살인범으로 몰아붙여 남성 혐오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시위나 운동을 할 때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을 두고 일부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지만,
그들이 현실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합리적인 대처입니다.
하야 요구는 상징적인 구호에 불과합니다. 다만 대통령이 계속 무관심이나 탄압으로 일관한다면
상징적인 구호가 현실적인 요구로 번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강남역 사건으로 인해 확산되는 남성 혐오 여론도 그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일부 여성들이 당장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 혐오에 맞서 남성 혐오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살女주세요”, “남자라서 살았다” 등
눈이 번쩍 뜨이는 강렬한 문구를 통해, 여성 혐오 앞에 잠자는 남성들의 어깨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길 계속 거부한다면 상징적 구호가 현실적 요구로 번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여시, 메갈 회원들이 남성 혐오 여론을 퍼트리기 위해 이번 사건을 악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다수 여성들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일베 회원이 대다수의 남성을 대표하지 않듯, 여시, 메갈도 대다수의 여성을 대표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를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피라미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남성은 잠재적인 살인범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은 잠재적인 피해자입니다.
공용 화장실에서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여성은 우리의 딸이자 동생이자 친구였습니다.
여성들은 잠재적인 피해자로서 때로는 감정에 북받쳐 왜곡된 비난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남성들은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왜곡된 비난에 맞서지 말고
오히려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비난이 사실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아픔을 함께하고 이를 함께 이겨나가기를 바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성 혐오 여론에 대처하는 오유의 여론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 혐오 타파라는 사회적 담론이 이뤄지기는커녕, 여시, 메갈에서 퍼 온 글이 넘쳐나며,
심지어 일부 회원은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까지 끌어 오고 있습니다.
일베 회원이 조롱의 의도로 사건 현장에 보낸 화환의 리본엔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현재 일부 오유 회원들이 내세우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성 혐오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무조건 감내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남성 혐오 여론에 전도되어 그 구호 속에 숨은 함의를 무시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오유를 흔들고 있는 여론에 부디 변화가 오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