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팅 당했을때 내가 누굴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고 혼내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자기 성향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원래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학교에서 전학 얘기를 할때 불같이 화냈다 내 딸은 잘 못 한 게 없다고
그 뒤로 내 연애관계에 대해 지지를 해주면 해줬지 뭐라고 한 적이 없었다
스무살이 되서 남자친구가 생겼다 엄마는 싫어했다 몸만 다친다고 결론적으론 그게 맞았다
아직 이십대 중후반인데 불임이 됐고 돈은 돈대로 잃고 사람을 못 믿게 됐고 날이 조금이라도 추우면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만큼 아프다
26살 때 첫사랑이었던 여자와 다시 만났다 팔구년을 애타게 얘만 기다렸던 것 같다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난 가진게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다른데선 걸레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괜찮다고했다 잠깐 의견이 안 맞을 때 몸부터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처음 알려준 사람이 이 여자다 자기 기분만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을 아끼라고 얘기해준다
남자와 사귈땐 들어 본 적도 없던 얘기를 이제서야 들었다
엄마는 잘됐다고 했다 내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안심된다고 했다 그저 둘이 잘 지내라고 돈은 둘이 행복해지기 위해 쓰라고
내 동생들도 오히려 잘 됐다고 했다 남자와 연애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갔던 걸 아니까 아팠던 걸 아니까
난 우리 엄마가 아니었으면 당당해질 수도 없었을 거고 멋도 모르고 남들이 정상이라고 하니까 나도 얘가 어설프게 좋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겠지 남자하고 연애할 때 난 반쯤 미쳤었고 절망했고 아팠다 아웃팅 당했을 때보다 더 치욕적이었고 굴욕적이었으며 사랑한다는 것 자체에 확신이 없었다 이래야하나보다 남들 하는 거 나도 하는데 손가락질 안 당한다는 게 행복했지 예전엔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기본적인 것으로도 손가락질 당했으니까 남자와의 관계에서 난 그저 욕망밖에 모르겠더라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배신과 비수뿐이더라
너무 괴롭고 숨을 못 쉬겠더라 그저 불쌍하더라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꺼진 생명들만 애처롭더라
농약먹고 죽어버릴까라는 생각만 몇번을 했는지 멋도 모르고 순진하게 남자에게 당해서 내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근데 이 여자 하나면 세상과 맞짱떠도 내가 이기겠더라고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건 내 가족 내 엄마 내 동생들 때문이겠지
다른 누구보다 축복해주고 내가 행복하면 됐다고
지금도 내 여친에게 우리 엄마는 고마워한다
내가 살던 가족이라는 틀이 참 다행이다 우리 엄마아빠 내동생들이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