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면서 한국 무대나 공연이 있다면 당연히 관심이 가게 된다. 얼마 전 시내를 걷다가 문득 코리아란 단어가 보이길래 되돌아봤더니 신춘향 안은미의 공연이 있다는 극장 포스터였다. 아마도 잘 했으리라 기대하지만 왠지 한국 공연이 있다면 갑자기 괜한 걱정으로 가슴이 다 두근거린다. 표는 좀 많이 팔릴까. 극장에 사람들은 많이 올까.
이년 전인가 한국의 전통 음악 공연이 런던에서 있었다. 대영박물관 한국관과 템즈강 근처 극장에서 있었는데 옥스퍼드에서도 공연이 있었다. 같은 공연이지만 대학가이기도 하고 시내가 아니고 또 평일이라 표값이 싸서 꾸역꾸역 옥스퍼드까지 찾아갔다. 비는 내리고 작은 공연장은 썰렁하니 드문드문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날렵한 한복을 차려 입은 공연자들의 무대는 훌륭했고 모두 대가급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과 ‘혼’으로 집약되는 한국 전통음악이 유럽인들에게 밀착하기엔 너무 겉도는 게 많은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이다. 그래도 한국에서라면 대극장에서 조명 받아가며 박수 받았을 이들이 무대조차 변변치 못한 곳 몇십명 안되는 유럽인들 앞에서 반응도 별 없는 두어 시간 공연을 위해 비싼 비행기삯 들여가며 열세시간 날아온 걸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류. 이 단어에 이젠 한국의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특히 유럽과 미국에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류의 원류는 바로 가까운 아시아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잊어선 안될 것 같다. 정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시아는 한국 문화와 아무래도 동질감이 많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해도가 훨씬 높을 아시아보다는 한국 문화에 감정이입이 힘든 유럽이나 미국에만 고개를 빼고 눈도장 하나라도 찍으려고 안달인 것 같다. 같은 비용들여 멀고 먼 영국이나 미국에 가기보단 몽고 티벳 처럼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나라에서 문화공연을 한다면 훨씬 반응도 크고 효과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민자나 국제결혼으로 우리와 인연을 맺은 아시아 나라들이 훨씬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을 텐데 말이다.
‘한국 문화를 세계로’ 라는 구호는 언론이 가장 앞장서 부추긴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같은 아시아 각국에서 무대공연이 있다면 조그만 박스 기사감도 안되지만 런던이나 파리, 뉴욕 같은 데서 공연했다 그러면 ‘한국 문화, 세계인들이 갈채’ 이런 식으로 대서특필하고 인터뷰까지 이어진다. 동남 아시아에서 무대 공연한 것은 예술인의 경력에 올리지도 않는다. 공연자의 활동을 보면 늘 유럽 미국 같은 서구에서 공연한 것만 앞세워 나열할 뿐이다. 언론은 벌써부터 한류를 ‘아시아를 넘어 미대륙으로 유럽으로 세계로’ 가야 한다고 부추긴다. 유럽 미국이 포함되지 않으면 ‘세계’가 아닌가. 아시아는 왜 항상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토록 부르짖는 ‘문화 콘텐츠’가 가장 풍성한 곳이 아시아라고 정작 유럽인들은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가지만 더 거꾸로 생각해본다. 한류. 이건 순전히 ‘예술인’에게는 비주류로 취급당하는 대중 연예인들이 아시아에서 일궈낸 바람이다. ‘대중문화’엔 선을 딱 긋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점잖으신 한국 ‘예술인’들이 정작 잘 알아주지도 않는 서구에만 목을 빼고 있을 때, 아시아 청중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대중 문화인이 먼저 아시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류가 정부의 주요 문화정책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고급예술’의 해외 공연을 장려하는 육성책도 많으리라 짐작한다. 이 틈에 재주는 곰이 넘고 떡은 엉뚱한 놈이 집어먹지 않을는지 걱정이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고생하며 개척했던 사람들 노력과 과정은 싹 무시한 채 한류 열풍에 편승한 주류 문화예술인 집단들이 모든 것에 비싸게 구는 미국 유럽 나라에만 가서 ‘갈채’를 동냥하지 않길 바란다.
아시아의 한류를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우리 문화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웃 나라에서부터 한땀씩 한류를 꿰어 만들어온 대중 문화인들에게 머리 숙여 그 노하우를 단단히 배우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를 넘어서기에 급급하기보단 구석구석 좀더 풍성한 한류를 아시아에서부터 만들고 보여주기 위한 애정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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