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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306458
    작성자 : 익명Z2VoZ
    추천 : 10
    조회수 : 1705
    IP : Z2VoZ (변조아이피)
    댓글 : 50개
    등록시간 : 2015/01/02 02:55:14
    http://todayhumor.com/?gomin_1306458 모바일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각장애인 성인 남성입니다.

    사실 고민 글은 아닙니다. 익명의 힘이 필요해서 이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일단 글 쓰는 목적은 갑자기 저의 주체인 청각장애에 대해, 저의 삶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새벽에는 인간의 뇌가 센치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왕이면 자주 들리던 오유에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청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인데 장애정도에 따라 거기서 또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청각장애는 일단 유아 때부터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어릴 때부터 각자 다른 체계의 교육을 받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기도 한답니다. 

    1. [경증] 잔존 청력을 살려 보청기를 통해 상대방의 입모양+소리에 의존하여 일정 부분 대화 가능한 구화 청각장애인이 있고 
    → 주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받고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자라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2. [중증] 청력이 거의 없어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수화 청각장애인이 있습니다.
    → 특수교육대상자로서 청각장애인들만 모여있는 특수학교(수화) 에 진학하여 같은 것을 공유하며 자라옵니다.

    청각장애라는 같은 틀임에도 서로 다른 세상,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1번에 속합니다. 그래서 1번의 청각장애인에 대해,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어릴 땐 귓속 보청기를 끼다가 20살 이후로는 귀걸이 보청기를 끼고 있구요. 훈남 스타일이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였습니다 (....어..음)

    10대 때 좋아하는 여자애와 연애를 하지못하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지 못한게 가장 큰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그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었고 그들에게는 장애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맑고 투명하고 순수했던 10대들이였기에 가능했었습니다.

    (물론 어딜가나 미성숙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였고 저더러 '보청기' 라고 부르던 친구도 있긴 했었죠. 곧 그만두긴 했음)

    현재 성인이 된 지금은.. 상대방에 대해 계산하게 되고, 조건을 보게되고, 현실적으로 보게 되지요.

    옛날의 10대, 20대 초반처럼 생각없이 그저 그사람만 보고 사랑을 하고 정을 나누고 그런건

    성인이 되어 나이를 먹어가게되면 현실적으로 조금은 어려워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저는 중학교 때 까지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잘지내고 고등학교를 일반 인문계를 진학했었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자퇴를 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장애가 있는데 안될꺼야" "여기서 나만 다르다" 라는 편협된 생각, 자괴감 정도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자퇴하고는 3년간은 집에서만 지내며 나는 장애가 있으니까 안될거야.. 라는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했었습니다.

    (사실 집에서만 지낸건 아니였구요. 주 1-2회 정도 친구들하고 축구하거나 놀거나 축구동아리에서 공차긴했어요. 축구를 워낙에 좋아해서)

    저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여기서는 부모님에 대해 항상 아쉬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철 없었던 그 시절의 나보다 나의 청각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데 부모님은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그게 부모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결국 그게 10대 때는 누군가와도 공유할 수 없는 스스로의 '고립' 으로 이어졌습니다.

    부모님 이외에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내 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에대해 조금 알기 시작하면 '장애' 가 큰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발음이 좀 어눌하고 상대방에게 몇 번 더 말하게 하는 것 빼고는 거의 정상인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통화도 기본적인 대화,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하고 

    (평소 잘 듣지 않은 단어이거나 생소하거나 어려운 단어는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최근 통화에선 '흑돼지' 를 알아먹지 못함)

    사실 시끄럽지 않은 곳에서 1:1 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게되면 

    입모양이나 소리에 의존해서 거의 무리없이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오해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주로, 다 알아듣고 있는거 같은데 안들리는 척한다. 못들은 척한다. 내 말 무시한다. 가 대표적이였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 형님이 제가 "네?" 할 때마다 "아 또 불리하니까 안들리는 척하네" 장난 아닌 장난스러운 말을 건넵니다.)

    (서로 안지 1년 넘었고 처음에 몇 번은 서로 장난으로 웃어넘겼는데 최근 이 형님이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로 바뀌시는 것 같아

    조만간 진지한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를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나 진짜 안들린다고.)


    저 같은 청각장애인들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거의 못듣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바라보고 있다하더라도 100% 알아들을 수 없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50%를 알아들은 청각장애인이 되묻는다면 인내심을 갖고 여러 번 다시 이야기해주시면 

    60%..70%..90%.. 채워지면서 100%에 근접할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알아듣는 척 한적이 많습니다. 끄덕이기만 하면 쉽게 끝나니까요.

    다수와 이야기를 할 때는 한 편의 드라마가 물 흐르듯 잘 진행되고있는데 굳이 나 혼자 하나 때문에 그것을 정지시켜가며 

    되감기 해가며 그것을 망칠 필요가 있을까? 나만 가만히 있고 들은 척하면 모든게 제 자리이고 완벽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못 들은 것도 들린 척 한 적도 많았습니다. 나 때문에 계속 드라마가 일시정지되고 되감기 되는 것은 같이 시청 중인 누군가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고 불편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척하는 모습이 한 편으로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런 저의 모습에 본인도 적응을 하고 다른사람들도 적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것을 사회생활하며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저는 부분 부분 들은 것들을 나중에 1:1로 '무슨 얘기했었죠?' '아까 그 얘기는 무슨 이야기죠?' 이런식으로 되묻곤 한답니다. 



    그리고 모이는 자리가 있을 때, 수다 떠는 자리가 있을때 너무 조용히 있는 것 같다고 나보고 말 좀 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을 안하는게 아니고 못하는겁니다. (님아.. 저 청각장애인이거든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배려에서, 저를 신경써주는 것에 비롯해서 생기는 말이지요)

    1:1 에서는 쉽게 이야기를 캐치 가능하지만 3명이상 다수의 모인 자리에 가게되면

    여러 사람들의 입이 동시다발성으로 이야기를 쏟아내기 때문에 

    주제를 캐치해내어 맞장구를 치거나 이야기에 끼어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수와 자리를 가질 때는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이야기 중에서 가끔 누군가 내 얼굴을 봐주며 다른 화두의 질문을 하면 그에 답변해주는 식입니다.

    조용히 있는 그사람이 신경 쓰이시겠지만 그 사람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좋을 뿐입니다. 

    그래서 내버려두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가끔 그 사람의 얼굴을 봐주며 일상적인 안부의 질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까 부모님 이외에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내 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불알 친구들 마저도 제가 장애로 인한 크게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대합니다. 

    계곡에 놀러갔을때 제가 보청기를 낀다는 사실을 잊고

    한 친구가 장난으로 등을 밀어 저를 물에 빠뜨린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도 웃으며 그 때를 이야기합니다)

    영화관에 가면 서스럼 없이 한국 영화를 보자는 친구들입니다. 

    (사실 스토리 맥락 이해 불가입니다. 한국영화, 한국드라마는 자막이 없으면 잘 보지 않습니다.) 

    (영어 자막이 있으면 이해가 되는데 듣기가 부족하신 분들이 자막이 없는 상태에서 부분 부분만 알아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친구들은 그저 저의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음.. 조금 어렸을 적엔 뭐가 서글펐냐면요. 사람들과 이동하게 되면 저는 일렬이 아니라 항상 뒤로 쳐지게 됩니다. 

    뒤에서 그들을 졸졸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는 형태이지요.

    근데 어쩔 수 없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야기를 캐치해내기 어려울 뿐이더러 밖에서는 소음 때문에 알아듣기 어렵거든요.

    걷고 있을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에.. 자연스레 그들과 동화 되어 이동되지 않고 배제되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과, 사람들과 같은 길을 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서글프지만 이게 제 자리입니다. 익숙한 자리이니까 걱정하거나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아.. 어디까지 이야기 했지..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네요. 

    분명히 글을 쓰기 시작한지 12시 반 쯤이였던거같은데 옛날 생각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EPL 축구경기도 동시에 관람하면서 글을 쓰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단 한 분이라도 저같은 청각장애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셨으면 하는 바람에 작성한 글이니

    나중에 청각장애인과 인연이 되셨을 때 이 글이 작게나마나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렇게 마무리 해서 죄송합니다. 



    청각장애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인 '나는 귀머거리다' 한 번 쯤 훝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보는 아니고 제가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구독하고 있는 몇 안되는 웹툰입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구요)


    그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5년에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떤 일이든, 어떤 시련이든

    꿋꿋이 이겨내시길 바라며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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