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못나가니까 룸에서 끝낸다"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인 서울 '청량리588'. 지난해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래 '청량리588'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매일 경찰 5~6개팀이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단속의 고삐를 바짝 죄는 통에 영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별단속기간이 지나며 이곳에도 최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부 업주들이 과감히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월 19일 밤, 하지만 업주들의 기대와 달리 영업이 제대로 이뤄지진 않고 있었다. 아가씨들이 아무리 애타는 눈길을 보내도 지나가는 남성들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 호기심 어린 눈길로 골목을 지나는 남성들도 쉽게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아가씨에게 "영업하는 도중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다 방법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믿고 선뜻 용기를 낼 남성은 별로 없을 듯싶었다.
관할 청량리경찰서 전농지구대 관계자는 "특별단속기간처럼 일일이 돌아다니는 단속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전체 150개 가량의 업소 가운데 3분의 1 이하의 업소가 문을 열고 있지만 영업실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창촌 주변 상권 관련 산업 붕괴
그렇다면 성매매특별법은 애초 의도한 바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동안 경찰이 거둔 실적은 상당하다. 경찰은 9월 23일부터 10월 22일까지 1개월간의 특별단속기간에 모두 1222명의 성매매 사범을 검거해 이 가운데 63명을 구속했다. 특히 이 가운데 성매매 남성은 633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경찰의 한 핵심관계자는 "지난해 성매매 사범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통해 특히 집창촌 업주들에 대한 초기 분위기 제압에는 확실히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이 몰고 온 그늘도 분명히 있다. 집창촌의 몰락은 주변 상권이나 관련 산업의 붕괴를 낳았기 때문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여성은 "이곳이 여의도와 가깝다보니 여의도 룸살롱에 다니던 아가씨들이 거의 매일 머리하러 왔는데 특별법 시행 이후 이 손님들이 뚝 떨어졌다"면서 "사실상 일자리를 잃은 이 아가씨들이 최근에는 네일아트를 배우는 등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45)는 "특별법 시행 이전에는 오후진료시간의 대부분을 룸살롱에 다니는 아가씨들이 채워줬는데 요즘은 너무 한가하다"면서 "경기불황과 맞물려 지난해 초-중반과 비교해볼 때 매출의 40% 정도 하락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성매매특별법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내놓은 입증자료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상 특별법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별법 시행으로 경제계의 원성이 가장 드높던 11월 4일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특히 모텔산업과 지방경제가 다 죽었다"며 특별법에 대해 비판한 뒤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서울에서만 대딸방 70여곳 성업중
사정이 이렇다보니 민간연구소에서도 특별법에 관련된 연구결과를 일절 실시하지 않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성매매특별법과 관련된 이슈는 우리로서는 다루기도 애매하고 안 다루기도 애매한 사안"이라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민간경제연구소의 또다른 한 관계자 역시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민간연구소에서는 조사한다고 해도 선뜻 발표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장 '용감하게' 나선 대한상의에서도 11월 29일 특별법이 경제에 미친 악영향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지방경제 회생을 위한 전국상공회의소 공동건의'라는 이름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자료에 따르면 특별법 시행 이후 지방에 소재한 영세숙박업소의 16%인 2800여개 업소가 휴-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업의 경우 지방 음식점의 85%가 적자이거나 겨우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최악의 경영 상황이라고 자료는 설명했다.
대한상의 경영조사팀의 강석구 과장은 "조사결과 성매매산업과 간접적으로나마 연계된 지방의 서비스-숙박업은 계속 침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통계청에서 발표되고 있는 소비자생활지수 역시 음식-숙박업은 최근 20개월 동안 연속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산업의 침체와 함께 특별법의 이면에서 드러나고 있는 현상은 신종 성매매산업의 출현이다. 검찰이 최근 단속한 속칭 '대딸방' 업소는 바로 특별법의 허점을 파고든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이동호 부장검사)는 1월 1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여성 20여명을 고용, '○○스포츠피부클리닉'이란 상호를 내걸고 남성 손님들에게 손으로 자위행위를 해주고 그 대가로 1인당 6만원씩을 받은 업주 정모씨를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그동안 현행법과 대법원 판례에서는 유사성행위의 범위를 구강 및 항문 등 신체 내부로의 삽입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손으로 하는 행위'는 처벌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대신 검찰은 '손으로 하는 행위'에 대해 음란행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풍속영업규제법을 적용해 단속해왔지만 이 법은 목욕탕이나 숙박-이용업소 등에서 이뤄지는 음란행위만 규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성매매특별법과 풍속법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 바로 '대딸방'인 셈이다. 대딸방은 이처럼 법망을 비집고 서울에서만 70여개가 성업 중인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아가씨와 2차 나가기 엄두못내
특별법은 유흥업소의 영업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속칭 '2차' 중심의 고급 룸살롱 문화가 사라지고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술값에 보다 화끈하게 즐기는 서울 북창동 단란주점이 각광받게 된 것.
서울 북창동 ㅂ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는 문모 상무는 "특별법 시행으로 북창동식 유흥주점은 오히려 각광받고 있는 추세"라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북창동에서 많은 돈을 번 ㅍ단란주점과 ㅁ룸살롱, 그리고 또다른 ㅍ주점은 최근 강남으로 진출해 '북창동식' 영업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상무는 본인도 곧 강남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고 귀띔했다.
방송장비 판매업체에 다니고 있는 이기문씨(37-가명) 또한 "평소 접대할 자리가 많아 룸살롱을 자주 다니는데 이제는 '2차'를 못나가니까 웬만하면 룸에서 모든 것을 끝낸다"면서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앞에서 2차 나가는 취객들을 촬영해 신고하는 파파라치까지 등장해 아가씨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법으로 인해 관련산업의 붕괴와 음성-편법적인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자 단속 주체인 경찰로서도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제적 악영향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입증자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려할 부분도 아니다"라는 강경한 목소리가 있는 반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와 관련 경찰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 시행 이전에는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법안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성매매를 통제해왔다"면서 "특별법 시행 이후 재경부나 법무부, 행자부 등 관련부처에서 특별법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아무도 밝히지 않고 있어 공연히 경찰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검찰, '대딸방' 놓고 난상토론
검찰이 의욕적으로 단속에 나선 속칭 '대딸방'. 과연 현행법으로 대딸방 업주를 처벌할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대딸방 업주에 대해서는 처벌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매매특별법과 풍속법으로 대딸방에 대한 단속이 불가능하게 되자 검찰은 최근 대검을 통해 풍속영업규제법의 적용대상에 스포츠마사지업소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법개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경제계가 아우성인데 또다른 규제를 더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이번에 대딸방 업주 정모씨를 기소하면서 검찰은 이례적으로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형사부장단 등 7명의 검찰 고위관계자가 참가한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과연 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검찰 관계자들은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치열한 찬반논란 끝에 결국 다수결로 결정했는데 4 대 2로 '업주를 기소해야 한다'는 쪽이 많았다"면서 "나중에 무죄가 나오더라도 일단 기소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검찰이 가까스로 기소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과연 법원에서 업주 정씨에 대해 유죄가 인정될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기소 단계에서는 업주와 남성 고객, 그리고 손으로 남성 고객에게 유사성행위를 제공한 아가씨들의 자백이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들이 진술을 번복할 경우 과연 검찰이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성행위의 경우 콘돔이라는 증거가 있을 수 있지만 손으로 유사성행위를 도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길은 오직 자백뿐이기 때문이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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