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서씨의 '천사·악마' 두 얼굴
낮에는 자선단체에 기부금 내는 '지킬박사'
밤에는 엽기·변태 일삼는 '하이드'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요즘 대구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엽기 치과의사 서모씨’ 이야기로 말문을 튼다.
“5년 전에 공직에까지 출마했던 그 잘 생긴 의사 양반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다노?”
“내가 한 달 전에 이 때우러 그 병원에 갔을 때 보니, 눈빛이 게슴츠레하니 이상하더라고.”
“아이고, 이제 말만한 우리 딸 데리고 병원도 못가겠데이.”
이들 대화의 주인공인 대구의 치과의사 서모(46)씨라는 인물은 1998년에 공직에 출마하기도 해 이름이 꽤 알려진 지역 인사로 지난 5월 17일 수십 차례에 걸쳐 젊은 여성 7명을 자신의 병원으로 불러 전신마취제를 주사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원장실 금고에 나체·비디오테이프 수두룩
게다가 서씨와 연인 관계에 있는 미모의 음대 대학원생 최모(여·25)씨는 서씨가 성폭행 하는 장면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나중에 이를 함께 보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한 것으로 드러나 사람들의 좋은 ‘안주거리’가 됐다.
이렇게 대구를 휩쓸고 지나간 서씨 소동은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강한 여진(餘震)을 남겼다.
지난 5월 23일 오후 사건을 맡았던 대구지방경찰서 기동수사대에는 일주일 전에 진을 쳤던 수많은 취재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려 썰렁한 분위기로 변했다. 담당 형사만이 170여명의 여성 이름이 담긴 서씨의 ‘전화번호 리스트’를 뒤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들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는 있지만 모두들 펄쩍 뛰며 ‘나는 아니다’고 한다”며 “하긴 이렇게 사건이 크게 보도가 되고 나니 누가 나서서 ‘나도 피해자’라고 하겠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건 이후에도 이름없는 제보전화는 끊이지 않는다”며 “어제도 앳된 목소리의 여성이 5년 전에 서씨한테 똑같은 방식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전화를 걸어왔길래 경찰서로 나오라고 했더니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고 말했다.
경찰서뿐만이 아니다. 서씨 사건을 보도했던 기자에게도 제보성 전화와 이메일이 줄을 잇고 있다. 한 50대 여성은 전화를 걸어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 딸도 2년 전에 그 사람한테 당했었다”며 “지금까지 딸 아이한테 피해가 갈까봐 참으며 울화병을 앓아왔는데 이렇게 까발려져서 내 속이 다 시원하다”고 소리쳤다.
또 서씨의 선배라는 한 중년 남성은 전화로 “그와는 친한 선후배 사이로 1991년 어느 날 저녁에 우연히 일반 커피숍을 함께 갔는데 갑자기 여종업원에게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옷을 벗어봐라’고 하길래 황당했던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씨와 동종업계 종사자이며 친분이 있다는 한 남성은 “언론에 공개된 서씨의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좀더 어리게 나왔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몇 년 전 서씨는 딸(21)과 아들(20)을 미국으로 유학보낸 뒤 정숙한 대학교수 부인과 함께 지내며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등 선행도 베풀어 주위의 존경도 받아온 인물인데 변태 같은 행동을 해서 업계 동료들이 경악한 상태”라고 전해왔다.
하지만 그의 일부 ‘신사적인’ 사회적 이미지와는 반대로 이 사건 속의 서씨는 밤이면 밤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늑대인간’과 다름이 없었다.
경찰이 서씨 병원을 압수수색하자 원장실 금고에서는 피해여성들의 나체 사진과 성폭행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자궁 검사’에 필요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다루는 기계, 돋보기, 주사기, 여자 수영복과 속옷 등 엽기적인 기구들이 섞여 있었다. 또 촬영 장면 중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까지 보였는데 이들은 마취제를 맞아서인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서씨가 미인대회 수상자들과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도 시선을 끌었다. 담당 형사는 “이 여성들 신분이 노출될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막대하니 보도에 최대한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마약 혐의 포착… 투약 확인은 못해
사건의 본질과는 별도로 여전히 서씨 주변에 대한 궁금증은 남는다. 먼저 서씨와 연인 관계에 있는 25세의 최씨에 관한 의문이다. 그녀는 도대체 서씨와는 어떤 사이인가?
사건이 한풀꺾이는 기세를 보이자 담당 형사는 “한 달 전 대구 시내 중심가 일대에 ‘치과의사’가 젊은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다닌다는 제보를 접수했을 때만 해도 ‘치과의사를 사칭하는 인물’로 생각했었는데 잡고 보니 예상외의 인물이어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며 몇 가지 뒷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서씨와 최씨 관계도 묘해요. 성폭행 장면도 촬영했지만 둘이 서로 관계하는 장면을 스스로 비디오카메라를 병원 구석에 고정해 놓고 찍은 것도 보이거든요. 이들은 서로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데 연인 관계인 것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최씨가 한때 서씨의 피해자에서 내연 관계로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전에 나한테도 이랬어?’ 뭐 이런 내용도 들리고….”
하지만 최씨와 서씨는 모두 “한때 ‘가해자 대 피해자’ 관계였느냐”는 질문에 강력하게 “아니다”고 대답했다.
“최○○와는 2년 전에 의사와 환자로 만났다. 그녀는 예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는데 그 뒤로부터 ‘나는 미스코리아가 못됐지만 대신 미스코리아 매니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녀와 나의 미스코리아에 대한 철학(?)이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 잘 통했다.…”
경찰은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최씨와 서씨의 행동에서 함께 마약을 한 혐의를 포착하고 시약검사 등을 실시했지만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투약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는 의사인데 허투루 했겠냐”며 “최씨가 서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어쩌면 약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서씨와 더불어 자동적으로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게 된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2남매와 지방 대학 교수인 아내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서씨 아내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성은 이메일을 통해 “당신 기사를 읽어보니 서씨를 잘 모르고 쓴 것 같다”며 “그 사람은 철저히 이중 생활을 하는 위선자이며 당신이 기사에 쓴 것처럼 호감형의 얼굴도 아니니 참고하라”며 서씨의 얼굴 사진을 첨부해 보내기도 했다.
또 서씨 부부와 친분이 있다는 한 교수는 “현재 서씨 부인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러워 하고 있다”며 “그녀를 괴롭히려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서씨는 철저하게 아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침묵했다.
일주일 지나도록 여전히 ‘안주거리’
지난 5월 17일 경찰이 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서씨는 계속 “나는 간암에 걸려 감옥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의가 “간에 작은 혹이 나 있긴 하지만 수형생활에는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해 그에 대한 영장이 그대로 발부됐다.
이 사건을 두고 서씨 못지 않게 ‘미인대회에 출전시켜 준다’는 말에 덥석덥석 그를 따라가 너무 쉽게 속아버린 여성들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을 맡았던 담당 경찰은 “처음엔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건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는 “유명 병원의 실제 원장이 ‘배경’이 되어 준다고 나서고 음악대학원에 다니는 언니뻘 되는 미모의 여성이 ‘매니저’를 자청하며 피해 여성들도 ‘나 정도면 미스코리아 가능하지’라는 솟아오르는 자신감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며 “이런 3박자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이같은 엽기 사기극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대구=신지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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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