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주연대가 펴내는 격월간 <사람이 사람에게>에 실린 글입니다. 2002년 2월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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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증오비와 위령비 사이에서 서성이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루고 있다. ‘나와 우리’(이 단체는 ‘경계없애기’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난 3년 동안 발로 일군 베트남전쟁(베트남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진실 찾기의 1차 보고서이다. 김현아 지음, 책갈피 펴냄, 13000원.
이 책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사연이 어떻든 우울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 죽음이 학살이라면…. 학살. 난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두렵다. 그 속에 짙게 밴 피냄새와 야만을 감당할 강단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리. 언어는 세계의 반영이자 세계를 규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와 맹호부대(수도사단)가 베트남전에 투입된 1965년 10월, 나는 그때 세상에 나왔다. ‘귀신잡는 해병’이 미국의 용병이 되어 아무런 원한도 없는 베트남의 인민을 도륙하고 산천을 유린해야 했을 때, 나는 젖먹이 갓난아이였다(박정희 정권은 65년부터 73년까지 32만여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전에 투입했다). 그때 내가 이미 청년이어서 ‘먼 남쪽 나라’(월남)에 쫄병 군인으로 가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역사적 우연에 나는 너무도 감사하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태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트남전의 총성은 멎었지만, 한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말의 바른 뜻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의 미래가 현재라면, 더군다나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르다면, 현재는 서로 다른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쟁투의 장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간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그 (서로 다른) 기억들 사이의 ‘전쟁’.
베트남 꾸앙응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에 가면 마을 들머리에 증오비라는 게 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도대체 누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그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문장으로 증오를 만대까지 이어가려 하는 것일까. 증오비의 내용을 간추리자. “1966년 12월5일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해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죽였다. 다음날 그들은 꺼우안푹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였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한국군은 이런 식으로 너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뜨거운 베트남의 태양 아래 이뤄진 수많은 잔혹한 죽임/참혹한 죽음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책을 꼼꼼히 읽기 바란다.
잔혹함이 하늘 끝에 닿을 정도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가보다. 흔히 미군에 의한 밀라이학살로 알려진 손미마을 학살사건을 겪은 뒤 34년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피냄새가 심해, 나는 어떤 것을 먹어도 역겨움이 생겨. 담배를 펴야만 해. 밥 시간이 될 때부터 담배를 피지.” 난 세월의 강물에 씼겨 떠내려가지 않을 힘을 지닌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평소의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베트남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간혹 민간인이 한국군에 의해 죽었을지라도 그건 고의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때 베트남은 전선없는 전장이었고, 누가 ‘베트콩’(베트남 공산주의자의 비칭인 이 말의 지칭대상을 베트남 사람들 식으로 표현하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전사 정도 될 것이다)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65년 12월10일 푸옌성 뚜이호아현 남호아히엡사 붕따우마을에서 한국군의 총격에 의해 두 아들을 잃고 뱃속의 아이도 사산하고 또 다리가 잘리고도 살아남은 릉 티 퍼이 할머니. 이 할머니는 열사도 전사도 아니어서 그후로도 지금까지 베트남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군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베트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나.
“너무 못살았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소 한 마리 또는 논밭 몇마지기를 사드리기 위해 영문도 모르고 ‘머나먼 남쪽 나라’로 전쟁을 하러 갔던, 배달민족의 착하디 착한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저지른 것일까.
“부락은 모두 적 활동의 근거지이다. 게릴라의 보급, 인적 자원 및 정보 수집의 근원은 부락에 놓여있으며 베트콩 하부구조의 기반은 부락과 주민이다.” 66년 5월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펴낸 전훈집의 한 구절이다. 이런데도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살해에 고의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사실’과 ‘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베트콩’이 아니라 ‘베트콩으로 의심하고 싶은 사람들’을 죽인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중 군인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아서는 안된다는 국제법 위반이다. 인류가 다른 생명체와 공존할줄 모르고 아무리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도덕률은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한번만이라도 ‘민간인 죽이지 마라. 아이나 노인이나 여자는 죽이지 마라. 강간하지 마라’. 한번이라도 얘기했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겁니다. 단 한번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월남 가는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배 안에서, 월남에 도착해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강간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말썽이 생긴다. 아이들도 베트콩이니까 다 죽여야 한다’였습니다.”
그 후로도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던 한 참전군인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봤어야 했는데”라고 뒤늦게 후회를 하며 울부짓는다.
베트남전이 전선없는 전장이었다는 세간의 평가는 역설적으로 그 전쟁이 바로 ‘인민의 전쟁’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미국이 그렇듯이 한국 또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뛰어든 셈이었다.
붕따우 마을의 쩐 반 호아는 말한다. “한국군에 대해 기억나는 건 동료가 죽거나 다치면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이다”. 한국군은 단지 더 잘 먹고살기 위해 아무런 원한도 없는 전장에 뛰어들었기에, 그 먼 나라의 정글을 헤매는 내내 두려움에 휩싸여야만 했다. 거기에 약간의 본능적 분노가 덧붙여졌을 게다. 그리하여 한 참전군인의 증언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지금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참전군인들과 그들을 전장터로 내몰아 ‘살인자’가 되게 한 박정희 정권의 정책결정자들을 단죄의 법정에 세우려 하는 것인가. 그게 바라는 바의 일부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전부는 아니다.
이유없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베트남의 인민들은 베트남 정부의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는 정책방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떻게 과거를 닫을 것인가. 지금 베트남과 한국에 사는 이들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과거의 불행과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서로 달라도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열기 위해.
이 책이 살아 숨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화해롭게 공존하기 위해 부여쥐어야 할 가치와 삶의 태도를 함께 일궈내야 한다고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권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세상에 흩어져 있는, 때로는 무의식 저편에 깊숙이 감추어진 사실의 편린들을 찾아 진실이라는 조각맞추기를 해야만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칼날보다 날카로운 사실의 조각에 온몸에 생채기가 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그 험난하고 고통에 찬 먼 여행에 함께 나서자는 작은 목소리에 다름아니다. 책이 먼 길 같이 가자고 호소하는 대상엔 참전군인들, 그러니까 힘있고 빽있는 자들은 다 빠져나간 자리에 부모에게 소한마리와 논 몇 마지기를 사 드리기 위해 사지에 뛰어든 이 땅의 힘없는 젊은이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설혹 한국의 많은 이들이 이 책의 권고를 외면한다 해도 진실이 영원히 은폐될 수는 없다. 35년 만에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의 진실이 서서히 햇볕아래 드러나고 있는 요즈음의 사태 변화가 웅변하고 있듯이. 시간이 문제겠지만, 결국 한국인은 30여년 전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반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힘에 강제당할 것인가, 그 사이에 선택이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자. 지금이라도 한국인의 씻을 수 없는 잘못이 아로 새겨진 베트남의 산하에 위령비를 세우며 용서와 공존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증오비 앞에서 영혼의 안식을 잃을 것인가.
요즈음 많은 한국인들에게 베트남은 장동건이 나오는 <의가형제>가 대박을 터뜨린 이른바 ‘한류열풍’의 나라이거나, 한국정부와 대기업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 몸피작고 못사는 사람이 넘쳐나는 나라 정도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간절히 호소하듯이, 그곳에서 30여년 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후로도 오랜 세월 베트남과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왜 홀로 슬픈 운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만 하는지, 도대체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했듯이.
책장을 덮으며 ‘문화방송의 <!느낌표>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덧없는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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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예기가 조금씩 와닿는것 같습니까?
특히 아까전 제글에 성심껏 리플을 달아주신 분들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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