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소 문
장관님께
너무나도 억울하고 황당하며 도대체 이런 일이 하늘아래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평화롭던 한 가정을 이렇게 풍지박산을 만들수 있다니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듯 합니다. 지금 제 자식은 병원에서 한쪽 팔을 절단하고 온몸에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30여년을 넘게 살아오며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지만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슬하에 2녀 1남을 두고 있는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어느덧 3대 독자인 아들이 성장하여 군대를 갈 나이가 되어 저는 하루라도 빨리 국방의 의무를 마치라고 다니던 학교를 휴학을 시켜 군대를 보냈습니다. 간혹 지상이나 방송 매체에서 돈있는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군대를 안보내려 할때 저는 못된 사람들이라고 비판을 해왔던터라 제 자식만큼은 나라를 위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당연히 국방의무를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리하여 제 자식은 파주에 있는 1사단 통신대대 운영중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언 제 자식이 군대간지 2년이 다되어가고 1달여만 있으면 그토록 기다리던 만기 제대를 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무슨 청천 벽력이란 말입니까? 정확히 3월 9일 오후 4시 50분 부대 중대장으로부터 저희 아들이 2만2천볼트에 감전이 되어 일산 백병원으로 후송중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제 자식은 온몸이 시커먼 숯덩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루 말할수 없는 분노와 내 자식의 생명의 위태로움이 내 머리속을 휘감았습니다. 저는 분노보다 침착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같이 와 있던 인사참모나 기타 간부들에게 욕설한번 안하고 내 자식을 빨리 화상전문 병원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며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하였습니다.
한강성심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난 후 저 스스로 냉정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애 엄마는 거의 실신하여 응급실에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저마저 무너진다면 내 자식은 누가 돌볼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연합통신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취재하는 과정에 눈치를 챈 인사참모(1사단 인사참모 이찬욱)가 취재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럴때도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제 큰 딸이 방송매체에 찬욱이의 소식을 알리려 할 때도 인사참모는 “누나가 이러면 우리는 행정법으로 밖에 처리할 수 없다며 사단의 위로금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협박아닌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희 가족들의 마음은 “정말 그러면 어떻하지.”라는 마음이 들고 내 자식, 내 동생 어차피 되돌아 올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내 자식, 내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모든걸 감수하려 참으며 인사참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식 이렇게 된 마당에 당신들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고 욕을 하며 멱살을 잡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다고 내 자식 원래 모습으로 오지도 못할텐데 앞으로 사단에서 법적으로가 아닌 도의적인 충분한 보상이 된다면 나도 가만히 지켜 보겠다고 말입니다. 저의 앞에 인사참모는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너무나 순진하고 순박하고 어리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사고 3일후 인사참모와 사단 수사과장이 피해자 가족에게 수사 상황을 한다며 병원으로 왔습니다. 그날부터 병원에는 두명의 행보관이 24시간 교대로 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저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위로차 손님이 오면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들으며 상부에 보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략적인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단의 담장이 무너져 새로 쌓기 위해 통신선을 이동하던 중 고압선 탑위로 올라가 신참이 작업을 하는데 작업을 잘 못하자 저의 자식이 내가 도와줄께 하며 올라가 작업중 감전 당했다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장관님
이것이 정말 있을수 있는 일입니까? 일반 가정집에서도 전기 수리를 할 때는 두꺼비집을 내리고 작업을 하는데 하물며 2만2천볼트를 옆에 두고 전기차단은 커녕 방전옷도 입히지 않은채 작업을 시킨다는 것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사람의 지휘관의 안일한 생각으로 이제 갓 피어나려고 하는 젊은 청춘을 불구의 몸으로 만들어 놓다니요? 사단 수사과장이 국방부에 올렸다는 사건 진술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대략 읽어 보니 지휘관이 무엇무엇을 잘못하여 감전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소상하게 밝히며 쓴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의 불리한 것은 삭제한체 단순 작업하다 감전당한것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사고 일주일이 지나도 사고 대대의 대대장은 얼굴 한번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어 병원에 파견나온 행보관에게 항의을 하였더니 그 다음날에야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저희 자식이 입원한지 10일째 되는 날 그 전날 미군부대에서 작업중 불이 났다고 하며 언론에도 기사가 나왔는데 그 곳의 인부들이 저희 아들과 같은 중환자실에 오게 되는 날 미군사령관과 한국군 부사령과님이 중환자실까지 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 큰딸이 미국 사람들은 자기네 부대에서 일하던 노무자가 다쳤는데도 오는데 우리 찬욱이는 그 보다 더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사단장이 한번 오지도 않는다고 항의하는 것을 한국군 부사령관 부관이 그 광경을 보고 마침 자기 부인이 1사단에 근무하는 중대장이기에 집에가 당신부대 1사단 병사도 감전되어 입원해 있는데 사단장 한번 오지도 않는다고 원망한다고 하더라 하였더니 그 다음날 사단장(황중선 소장)이 병원에 왔습니다. 사단장은 1000만원을 위로금이라며 전달하려 하였으나 제 큰딸이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럼 좋은 것 없다, 법대로 하는 수 밖에 하며 저에게 다시 권하면서 어디까지나 위로금이고 가족들 식사, 교통비로 쓰라며 앞으로 2차 3차 위로금이 있으며 아직 걷지도 않은 간부들이 있다고 하며 받을 것을 재차 권하므로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차라리 찬욱이가 죽었으면 깨끗한데 살아서 자기도 가슴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정말 사단장이라는 사람이 피해자 부모 앞에서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그분의 인격이 의심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후 사단장이 자이툰부대로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급했습니다. 사단장이 떠난다면 물론 행정적인 문제야 후임 사단장도 지원을 하겠지만 사단장이 먼저 말한 2차 3차 위로금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답답하여 대대장에게 항의를 하여 사단장이 가시기 전에 사단장이 말한 위로금에 대한 결말을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자기가 말한 2차 3차는 국방부에서 나중에 주는 보상금과 연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한 국가의 장군이, 사단장이 자기가 내뱉은 말을 그렇게 쉽게 뒤집을수 있으며 피해자 가족을 우롱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희 자식 면회 시간에 병실에 들어가 너무 아파 헛소리를 하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지 않겠습니까? 마음의 위로라도 받을까하여 사단장에게 하소연의 메일을 보냈더니 인사참모(이찬우중령)라는 사람이 도리어 그런 메일을 보내면 어떻하냐고 호통을 치니 이런 경우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툭하면 하는 말이 일개 병사가 다쳐 입원하여 사단장이 문병간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몇번씩을 강조합니다. 세상에 남의 둘도 없는 귀하디 귀한 3대 독자를 온뭄에 화상과 팔을 절단하는 불구로 만들어 놓고서도 이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 사람들도 자식을 키울진대 말입니다.
장관님
이 사건 철저하게 다시 조사하여 주십시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한 내용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 안전사고 무방비 상태에서 빚어진 사고 입니다. 사고 당시의 대대장은 물론 중대장 조차도 아직 인사 조치도 않하고 있습니다. 부디 아무 힘도 없는 억울한 부모 심정 조금이라도 이해하시어 관계자들을 재 조사하여 문책하여 주시옵기를 갈망하옵니다.
2006년 4월 18일
지금도 중환자실 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제 친구를 위해서 글 올립니다.
제발... 한번씩만 이라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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