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내 오지마을 '동막골'...전기없이 36년 산 할아버지의 한숨
【용인=뉴시스】
전화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
강원도 산간 마을이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서울에서 40분 가량 떨어진 경기 용인 삼성에버랜드 인근 마을의 얘기다.
이 마을의 이름도 우연찮게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배경 마을과 같은 '동막골'.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에 위치한 '동막골'은 에버랜드에 둘러 싸인 마을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심노원 할아버지(73) 부부는 올해로 36년째 이 마을에 외롭게 살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호암미술관 뒷편에 있는 이 마을은 아직까지도 전화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오지 마을이다.
미술관 정문에서 100m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비포장길을 따라 2㎞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심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꺼내 물고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심 할아버지 부부가 전화도 전기도 없이 수십년째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용인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 때문이라는 것.
에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이 한창 조성중이던 지난 1969년, 58가구가 살고 있던 동막골은 자연농원이 조성되면서 주민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팔고 하나 둘 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땅 일부를 팔았지만 청송 심씨 부윤공파 종중땅만은 팔수 없었다.
"자연농원에서 종중땅을 팔라고 하루에도 수십차례 요구했었지. 종중땅이 자연농원과 호암미술관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어떻게든 나를 내보내고 싶었겠지. 그때 내가 마차를 끌고 다녔는데 이병철 회장 별장 앞을 지나다니니 좋게 보였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심 할아버지는 자신의 16대조 할아버지부터 부모님까지 묻혀있는 종중땅을 끝내 팔지 않았다.
"나 살기 괴롭고 힘들다고 아버지 어머니를 버려서야 쓰겠어. 전화국하고 한전에서 자연농원이나 호암미술관쪽에서 선을 따올 수 있으면 연결해주겠다고 했는데 안되더라구. 땅을 팔지 않자 자연농원측이 전기와 전화 연결을 협조해주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전화와 전기를 사용하려면 에버랜드나 호암미술관 소유의 땅을 지나야하는데 에버랜드측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3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기와 전화를 공급받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심 할아버지 부부의 이런 생활을 보다 못한 자식들은 결국 승합차 엔진을 이용해 만든 발전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발전기를 돌리는데 들어가는 기름값만도 한달에 30만원을 훌쩍 넘어 하루에 1~2시간 이상 돌리지 못한다.
"시골 살림에 한달에 30만원이 넘는 기름값을 어떻게 감당하나. 손님이 오거나 할때만 잠깐 잠깐 돌리지. 그래도 20만원이 넘게 나와."
전기 못지 않게 심 할아버지 내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교통편.
생필품이라도 구입하려면 에버랜드를 가로질러 1시간 가량 걸어서 포곡면 전대리까지 가야만 버스를 탈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비라도 오면 7000원 넘게 들여 택시를 타지만 이마저도 할아버지 집앞까지 가기를 거부한다.
비포장 도로를 2㎞가량 가야하기 때문에 택시가 도저히 올라가지 못해 호암미술관 앞에서 내려주기 일쑤다.
"이른살 넘어서 1시간을 넘게 걸어야 하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비오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지만 집까지 오지도 않아. 어쩌겠어. 걷기에도 힘든 진흙탕을 택시가 들어올 수 있어야지."
심 할아버지도 불편한 생활을 참기 힘들어 간혹 에버랜드측에 전화와 전기만이라도 놓을 수 있도록 협조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땅을 팔라는 말뿐.
"왜 안했겠어. 전화하고 전기라도 들어오게 해달라고 여러차례 자연농원에 얘기했지. 그러면 뭘해. 대답도 없이 전대리로 나가 살수 있는 좋은 집을 구해주겠다는 말만 하지.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고 있어."
그래도 심 할아버지는 이곳 동막골을 절대 떠날 생각이 없단다.
"나 살아있는 동안 이 땅은 절대 못팔아. 암 못팔지. 부모를 버리고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산다고 그게 편하게 살아지겠어."
심 할아버지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1시간 가량 걸어서 전대리로 향한다.
<관련 사진 있음>
김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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