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이정민이고 현재 인일여고 2학년 학생입니다.
저는 수강료 문제로 다투다가 엄마를 죽이고,
이후 과외교사를 따라 학원장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것으로 작년 11월 쯤 언론에 보도되었던
학생인 이은성의 동생입니다.
저희 언니는 엄마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희 언니는 작년 11월 2일 학원장 살해 혐의로
인천 부평경찰서에 구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전에 엄마를 살해했다는 자백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엄마를 죽였다고 자백하기 전날인 11월 7일
언니는 유치장에 면회를 간 저에게 아빠가
딸을 경찰에 팔았고, 자기는 엄마를 죽이지 않았으며
저만은 언니를 믿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1월 8일 언니는 엄마를
죽였다고 자백을 했습니다. 저는 그날
강력계 조사실에서 만난 언니의 얼굴에서
오른쪽 뺨에 든 시퍼런 멍자국과 뒷목에 든 멍자국,
열 손가락 끝에 난 피멍과 상처자국들을 보았습니다.
저희 언니는 눈에 초점이 없었고 멍하니 넋이 나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11월 8일 밤, 경찰서 유치장에서 언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언니는 대답대신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너무 많이 맞았고, 특히 경찰들이 구둣발로
머리를 걷어 찰때면 예전에 아빠에게 맞던게 생각나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이제는 언니가 옆에 있을 수 없으니
밤에 꼭 문잠그고 자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저희 언니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짐승같은 십대소녀라구요?
저희 언니와 돌아가신 저희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 단체에 찾아갔었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다들 압니다.
하지만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저희 엄마는 아빠에게 맞지 않기위해 도망가다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한 쪽 다리를 잘 못쓰셨습니다.
한쪽 얼굴이 아빠에게 맞아서 무너져내렸고
한 번은 눈이 뒤집어 지면서 아빠에게
`내가 네 에미다`라며 덤빈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들을 끌어안고 `도망가자, 같이 죽자`며
울부짖곤 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제발 아빠와 이혼해서 이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울며 매달렸습니다.
저희 언니는 예전에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서
칼로 손목을 긋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언니가 의붓딸인 것도 아니고 친아버지입니다.
언니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아빠는 언니를 딸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니가 고등학교 때는 언니의 몸을 만지고
옷속에 손을 집어넣고 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언니에게
아빠와 같이 안방을 쓰자고 했습니다.
밤에 언니의 방에 아빠가 들어가서 불도 켜지 않고
얘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한참 후에
나오곤 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언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
언니에게 가보면 언니는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작년 2월 9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언니를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경찰들에게 돈을 주고 언니를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서에 가서는 언니가
범인임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경찰들이 아빠가 언니가 범인이라고 했다며
언니에게 자백하라고 윽박지른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빠는 장손입니다.
친척들도 전부 아빠 편을 들었습니다.
언니를 둘러싸고 쓸데없이 버티지 말고
너만 자백하면 끝난다며 언니를 난도질했습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가
싫다는 언니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며
경찰은 전부 내 수중에 있고 내 말을 잘 들으면
엄마 사건을 자살로 처리해주겠다며
언니 몸을 마구 쓰다듬었습니다.
언니를 구해 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다며
아빠랑 같이 자자고 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셨을때부터 상관도 없는
이민석 선생님 얘기를 경찰서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했습니다. 언니가 이민석이랑 한통속이 돼서
엄마를 죽인 거라고 얘기하고다녔습니다.
언니를 강간하고 나서 검찰에 줄이 있는 경찰을 만나고 있으며
이민석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계속 경찰들에게 돈을 줬습니다.
심지어는 작년 6월달까지도 계속 경찰을 만나며 돈을줬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자살일리 없다며 부검 신청을 자기가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올해 2월달까지도 그런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날
아빠는 엄마가 자살한 거라고 했고 실제로는
그 날 외삼촌이 부검신청을 했다고 경찰 기록에
나와 있는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어느날 아빠가 언니를
성폭행 하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빠는 언니에게 덤벼들어 언니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빠에게 덤벼들면서
제가 미쳐 버리는 줄알았습니다.
언니는 칼로 자기를 자해하곤 했습니다.
팔뚝에 칼로 자기이름을 새긴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구치소 안에서
아빠를 성폭행과 폭행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작년 11월 19일의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11월 19월 그간 언니에 대한
아빠의 성폭력과 폭행에 대한 진정서를
검사님 앞으로 제출했습니다.
언니는 제게 누구도 언니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언니가 엄마를 죽였다는
혐의만이라도 벗기를 바랬습니다.
아빠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을 것이고
저런 년은 감옥에서 몇 년 썩어봐야
정신차릴 거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검사님께 글을 드리고
우리 언니에 대해 알아달라고
매달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아빠는 11월 23일에 검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저에게 검사, 계장이랑 같이
3시간 동안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했고
돈을 써서 언니를 정신이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 10일에
언니랑 아빠가 성폭행 고소에 대한
대질심문을 했습니다.
검사님은 `너도 살고 싶다는 거냐, 네 아빠를
구속이라도 시켜주라는 거냐`라고 언니에게 말한 후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언니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언니를 계속 저렇게
고립시켜두면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할거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12월 중순경부터
`네 언니가 나를 사기로 고소했단다`라고
제게 말했고 저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습니다.
12월 31일에 아빠는 검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검찰이 다 기각시켜서 아무것도 없고,
이제 가서 언론이고 시민단체고 다 고발해
버리라고 했다며 의기양양해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집에서 아빠가
숨겨놓은 각하통지서를 찾았습니다.
1. 2. 날짜였고 거기에는 언니의 고소명이
`성폭행`에서 `사기`로 변경되어 각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각하통지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언니의 성폭행 고소가 각하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지금도 각하통지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검사님께 제출한
아빠의 성폭행과 폭행에 대한 진정서는
검찰 기록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언니는 성폭행 고소를 통해서 아빠에게
벌을 주라거나 아빠를 감옥에 가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언니는 아빠의
친권상실을 시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빠를 저에게서 떼어놓으려 했습니다.
저, 언니, 엄마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언니는 항상 저를 지켜줬습니다.
언니가 아빠에게 온 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고
벽에 얼굴을 짓찧이고 해도
저는 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제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못할까봐 제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언니의 꿈은 대학에 가서
저와 엄마를 데리고 집에서 나가서 사는 거였습니다.
언니는 정말 목숨걸고 공부했었습니다.
성적이 올라가면서 내신이 불리해서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런데 자퇴하고
학원을 관둔 후 집안에서 시달리면서
검정고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수능도 아니고, 검정고시를
아직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공부를 잘했던 언니,
너무 자랑스러웠던 언니는 아직도 중졸입니다.
저희 언니는 항상 제게 저라도
공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저는 공부시키고 언니처럼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도
제게 밤에 꼭 문잠그고 자라며 제 걱정을 했습니다.
이젠 언니가 저를 지켜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희 언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언니가 아빠를 고소한게 자기 형량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쇼라고 말합니다.
아빠가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성폭행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데도요.
죽은 학원장 서인철씨의 부인도 그렇고,
서인철씨가 다녔던 부평교회의 목사님도 그렇습니다.
제가 만났던 기자님들도 그랬습니다.
부인하지 못하면서,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부평교회 목사님은 다 압니다.
저희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저희 엄마가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언니가 아빠를 고소한 게 법정에서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거고 밝혀지지도 않을 거라고요.
여론이니 뭐니 시끄럽게 떠들어도
사건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구요.
그러면서 저희 아빠에게 탄원서를 써줬습니다.
저희 아빠는 지금 언니를 죽이려고 합니다.
밖에 나가서는 착한 아빠인 척 하면서
자기가 언니에게 한 짓들을 전부 숨기고
언니를 죽이려고 돌아다닙니다.
경찰서 형사가 자기한테
수사내용을 다 말해줘서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하면 그 형사가 짤린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런 아빠에게 목사님이 탄원서를 써줬습니다.
저희 언니? ?죽이라고 탄원서를 써줬습니다.
제가 일을 당하고 나면 그땐 제게 뭘 해 주실건가요?
얼마나 대단한 걸 해주시려고요?
저희 집안 사정은 저희 학교 선생님들도 다 압니다.
제가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죽건 말건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저는 저희 학교 1등입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학교를 관두지 않고,
저희 아빠가 저를 학교를 관두게 하지 않고
계속 다니기만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적당히 학교 다니다가
적당히 대학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집에서 쫓겨나 있습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1월 18일에 언니의 첫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밤새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빠에게 처음으로 대들었습니다.
아빠가 언니에게 한 짓은
아빠도 나도 언니도 다 아는데
이제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라고 대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언니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시던
명동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빠와 화해하라고 하시고
쉼터를 찾아주신 뒤 연락한번 없으셨습니다.
저희 언니를 도와주시려고 하시는 걸 압니다.
많이 바쁘신 신부님이시고 제게
신경써주시려 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죽어갔습니다.
제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벼랑 끝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을 꿉니다.
꿈에서 아빠에게 쫓기거나 강간당합니다.
어디에서도 마음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가 사람을 사서 저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길거리를
다닐때는 항상 주위를 살핍니다.
아빠한테 잡혀 끌려들어갈까봐
이후의 언니 재판에도 가지 못했고,
구치소에 면회 한 번 가질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집에 들어가서 언니처럼 살아야 하는 겁니까?
이민석 선생님은
언니를 보호해주셨던 유일한 분입니다.
죽은 학원장 서인철씨는 저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저희 엄마를 협박했고,
엄마를 협박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면서 도리어 아는 경찰들이랑 같이
저희 언니를 엄마를 죽인 범인으로 몬 사람입니다.
자기가 한 짓을 숨기기 위해 저희 언니를
죽이려 들었던 사람입니다.
아빠랑 연락해 가면서 저희 아빠, 경찰들과
함께 1년 동안 언니의 삶을 짓밟았던 사람입니다.
언니는 자기가 서인철을 죽인 거고
선생님은 그냥 그때 거기 계셨던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언니와 선생님의 관계를
이상한 관계로 몰아붙이고
언니가 선생님에게 의식화됐다고 말합니다.
언니를 도우려는 언니 친구들도 의식화됐고
선생님과 불륜이라고 하고,
심지어 이제는 저한테까지 의식화가 됐다고 합니다.
저희 아빠, 경찰들, 검사님, 부평교회 목사님까지 그럽니다.
저는 이민석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한 적도 없습니다.
의식화를 당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왜 제가 의식화가 됩니까?
두려워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진실을 이야기하니까 멀쩡한 제가 왜 의식화당한게 됩니까?
자기 편한대로, 자기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전부 의식화로 몰아붙입니까?
그리고 기자들도 그렇고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전부 의식화로 몰아붙이면 누가 진실을 말합니까?
진실이 밝혀지는게 그렇게 두렵습니까?
차라리 그냥 제 목을 졸라줬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아빠가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으라고 칼을 갖다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저희 언니뿐만이 아니라 저까지 죽으라는 겁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감옥에 있는
저희 언니뿐만이 아니라 저도 죽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으면,
그래서 진실이 가려지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아니, 이젠 두렵지도 않습니다.
절망스러울 뿐입니다.
우리 언니 좀살려달라고,
저 좀 살려달라고 외쳐댔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들리지않는 척 했습니다.
저희 언니와 저는 살고자 했던 것밖에 없습니다.
아빠가 언제 방에 들어올지 몰라
방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한 번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했던 것밖에 없습니다.
다 같은 사람이니까 한번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살 수 있는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죽는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언니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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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서명운동 하고 있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do?no=324&kind=petition&cateNo=241&boardNo=324 사실 시사게시판에 어울릴 내용이지만, 유머글게시판에 올리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저도 이 글이 3,4년이나 지난 글이란 것은 압니다.
이글을 쓸 당시 지금의 저와 같은 나이였을 이 여학생은 20대 여성이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어찌 살고 있을까요?
그때도 이 글이 많이 퍼지긴 했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분명 오늘의 네티즌은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질뻔한 억울한 사연, 다시 살려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