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씨나 나꼼수나 다 저마다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하는 중입니다.
이번 트윗도 진중권씨가 늘 해왔고 그가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 지켜왔던 자세의 연장선입니다.
진중권씨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많은 것은, 대중은 대중이 옳다고 생각하는 측의 '승리'를 원하지만 진중권씨는 철저히 '진리'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진리란 논리적 모순이 없는 완벽한 이상을 의미하고 이는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씨의 이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진리 추구에 관한 한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결벽증으로 보일 만큼 엄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대부분 그가 옳아 왔지만 그도 논리적으로 완벽하길 '꿈꾸는' 인간인 것을 생각하면, 그런 의미에서는 진리라기 보단 '이상향'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 입니다.
이런 이상주의자 또한 우리 사회에 필요합니다.
현실 속에서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그 무엇을 이루기 어려울 때 우리는 여러가지 우회길을 돌아 갑니다. 그래도 그 우회길 속에서 중간중간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변하지 않는 북극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우회길 속에서 빠져나와 종착점에 섰을 때 조금은 방향이 틀어졌을지언정 북극성 가까이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도착하기 어렵고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실 그 북극성이야말로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고, 이러한 도덕적으로 논리적으로도 완벽한 북극성이 있음을 잊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는 사람이 진중권씨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중은 정권 교체를 통해 승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중권씨는 승리 이전에 논리적 모순 없고 완벽한 진리를 바랍니다. 그리고 대중이 진리와는 다른, 승리만을 바라보며 감정에 휩쓸려 가는 것이 답답할 겁니다.
그에게 있어 승리나 대의 이전에 비논리적인 것은 이미 까야 할 대상입니다. 스스로 옳은 것을 아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그만한 자기 확신과 진리에 대한 추구가 있기 때문에 디워 때나 황우석 사건 때 그렇게 진중권이라는 개인 한 사람에게 대중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질 때에도 그토록 강경하게 자기 주장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진중권씨가 눈 찢어진 아이를 저질 폭로라고 말했습니다.
폭로전으로 치달으면 누구나 저질폭로를 하기 시작합니다. 근본적으로 폭로전이라는 것이 저질스럽거든요. 그리고 대중을 자극합니다. 정책이나 국정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진위논란만 일어나며 그것이 모든 관심과 시간을 잡아 먹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실 유세 현장에서든 어디든 가장 많이 나온 말이 '1억 피부과' 였습니다. 그 네거티브와 폭로전의 시작은 분명 한나라당 측이었고 나꼼수는 이에 대항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중은 나꼼수가 이 폭로전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나꼼수가 '우리편'이라고 생각하기에 여기서 생각을 멈춥니다.
하지만 진중권씨는 니 편 내 편 이전에 그 논리를 따집니다.
"그녀는 사학 공주 1%다. 이전 발언과 행동을 볼 때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1억 피부과에 다닌다.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시민단체 활동 순위 1%다. 이전 발언과 행동을 볼 때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월세 250만원, 한달 생활비가 천만원이 넘는다.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대로 주어만 박원순으로 치환했을 경우, 어떤 부분에 대해 주어와 행동을 바꾸면 의미가 정반대가 되는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의 폭로는 거의 동일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결국 폭로는 양날의 검인 셈입니다.
눈 찢어진 아이의 경우도 숨겨놓은 애는 개인사일 뿐 현재 mb가 국민과 나라에 잘못하고 있는 일과는 관계가 없다. 내곡동같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면 까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가 자기 아내와 가정에 잘못한 것에 우리가 여론을 모아 심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진중권씨가 이번 트윗 외에도 줄곧 나꼼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은 진중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게 전체주의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도, 황우석 사건도, 디워도 결국 대중이 어떤 방향으로 휨쓸려 가는 것에 대해 극히 경계하기 때문에 그였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말입니다. 그리고 그 비판에는 합리적인 논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후에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그와 생각을 달리했던 사람은 '내가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 놈은 재수없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진중권씨가 적이 많은 이유는 이 사람은 여기저기 다 까기 때문입니다. 니 편, 내 편 없이 자기의 생각에 자기의 기준에 자기의 논리에 맞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을 비평합니다. 다만 그는 합리성과 논리를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최대의 무기이고 힘입니다. 홀로 자기 힘으로 서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황우석 사건 때도 디워때도 진중권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주체적으로 황빠/디워를 지지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물론 나꼼수 지지자들이 그들과 같다고는 아직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진보' 안에 또다른 전체주의의 모습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잘 생각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이게 옳은 것이고, 이것에 대해 누군가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다고 그것이 마치 나 개인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 들여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비판하고 있는 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모습니다.
저 또한 대중이지만 대중은 현명하지 않고 다수가 지지한다 하여 그것이 옳음을 방증하지 않습니다. 대중이란 존재들은 대부분 스스로 판단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누군가가 떠들어대는 얘기 중에서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거기에 대하여 종교에 가까운 맹목적인 믿음을 보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사기냐, 예술이냐, 정치냐 범주의 문제를 넘어서있습니다.
나꼼수는 분명히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인 논의이나, 분명히 모든 부분이 사실이고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고는 보장 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과장이 들어 갈 수도 있고 예상이 틀릴 수도 있는건데 이미 나꼼수가 해준 얘기니까 그게 곧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꼼수 측도 이를 피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여기까지는 팩트고"하는 식으로 선을 긋는데, 이렇게 선을 그어서 문제의 소지는 피하면서 결국 대중들에게 전달할 내용은 다 전달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책임은 질 수 않고 100프로 확신할 순 없지만 이러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나꼼수를 듣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조차도 '이러이러하다'로 받아 들이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자칫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 있기에 진중권씨는 어찌보면 히스테릭하다고까지 할 말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진중권씨는 좌/우,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전체주의 색채를 보이는 것에 경계하고 혐오를 보입니다.
전체주의가 별 것이겠습니까.
당장 지금 진중권씨가 나꼼수에 대해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알고보니 골수 MB 지지자였네' '나꼼수 인기 질투하는 거임' '조중동의 선동 근거를 주니 나쁜놈',,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로 그의 경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진중권씨에게 '그런 넌 무엇을 하였냐' 라고 묻는 것은 그의 역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학자이자 비평가로서 직접 뭔가를 이뤄내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역할입니다.
그는 말을 했고 글을 썼습니다. 사회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하였고 그것은 그가 할 일을 충실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 또한 직장을 잃고 법원을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내에 있다간 하루종일 법원 출두로 글이고 뭐고 못 쓰겠단 판단 하에 해외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에겐 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글을 쓸 시간과 도구만 있으면 되니 국내를 고집할 이유가 없던 것이죠.
그는 개혁을 하건 정권교체를 하건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진보의 '도덕적으로 논리적인 승리'를 바랍니다. 여기서 대중의 바람과 달라지는 거죠. 진중권씨가 원하는 건 '승리' 이전에 '진리'이고, 대중이 원하는 건 '진리'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이 차이가 지금 승리를 염원하는 우리 대중 입장에선 화가 날지 모르지만 진중권씨는 늘 그래왔고, 그것이야말로 진중권씨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꼼수를 듣는 사람이 몇백만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진중권 씨의 브레이크는 오히려 시기적절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먼 만큼 가슴은 뜨겁게 그러나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합니다.
내 편이라는 이유로 그에 대한 비판을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내 편이 집권하고 힘을 가졌을 때 우리가 얼마나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들을 견제하여 이들이 부패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분열하면 안되니 의심하지 말고 뭉쳐라.
우리 사이의 사소한 차이는 다 뭉개고 일단 뭉쳐라.
사소한 차이로 트집을 잡으면 역적이니 너의 소신과 달라도 일단 뭉쳐라."
이 논리야 말로 우리 정치를 막장으로 끌어왔던 논리이고, 지금 일부가 진중권씨에게 들이미는 논리로 보입니다.
2007년 3월 19일 '공존과 연대로서의 자존심' 특강에서 했던 진중권의 말입니다.
"가끔 글 쓰다 보면 어떤 유혹을 받아요. 대중들에게 유혹을 받거든요. 내가 글 쓰면 어떤
사람들은 막 환호하고,어떤 사람들은 흥분하지요. 하지만 글쟁이의 덕목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원하는,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듣기 싫어하는,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를 막 지지하거나 편들어주거나 좋아
하거나 이런 사람들도 배신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창조적 개새끼'로서.
대중들한테 자기 존재를 맡겨버리면 자기가 그들에 의해서 외부적으로 규정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만 하게 되죠. 그게 아니라 그걸 또 뒤통수칠 수도
있어야 하고,때로는 배신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나중에 대중들이 "아,그래도 저
이야기는 쟤가 무러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쟤가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라고
인정해주게 되겠지요.(…)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일종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창조적 개새끼'를 품을 만한 아량이 우리에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까, ~빠 ] 2분법에서 뭘 바라겠어요. "
대중이 듣고 싶은 말 뿐 아니라 듣기 싫은 말이라고 해도 그것이 옳다면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창조적 개새끼'를 품을 만큼 우리의 그릇도 넓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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