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철. 사진=AP/뉴시스 | |
[이데일리 스타in 올림픽 특별취재반]한순철(28.서울시청)은 7일(이하 한국시간)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복싱 라이트급(60㎏)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가이브 나자로프를 맞아 16-13, 판정승을 거뒀다. 복싱은 3,4위전이 없는 만큼 4강 진출과 함께 최소 동메달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한순철의 승리는 흔한 운동 선수들의 성공 스토리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다.
한순철이 살며 가장 처음 성취를 느꼈던 것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처음 나간 전국 체전에서 덜컥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세상에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다. 모두들 그를 ‘한국 복싱을 짊어질 유망주’라고 치켜세웠다.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에 맞이하게 된 생애 최고의 순간. 그러나 그때 그에겐 가장 큰 좌절이 찾아 온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병, 그리고 죽음. 가세는 갑자기 기울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빨리 어머니 혼자 짋어 진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슬퍼할 틈 없이 운동에만 전념하며 보낸 시간들. 그렇게 가정도 꾸리고 예쁜 딸도 낳았다. 제법 안정된 생활도 꾸릴 수 있게 됐다. 생애 가장 편안하고 안정될 시기. 그러나 한순철은 하루도 맘이 편하지 않았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없는 상황. 그가 군대를 가게되면 수입은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가족의 생계는 막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중3때 찾아 온 시련에는 선택의 여지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메달 아니면 끝. 그가 “죽을 각오로 링에 올랐다”고 말한 이유다.
독한 각오는 그를 좀 더 강하게 해 주었다. 절망의 순간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것이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실력을 갖고도 마지막 순간을 넘지 못했던 한순철.
그러나 7일 8강전서는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는 안정감 있는 레이스를 펼쳤다. 끝나는 순간, 승리를 예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경기.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고비. 오히려 그의 마지막 도전은 한순철에게 냉철한 자기 컨트롤을 가능하게 했다.
비단 한순철 뿐 아니다. 서른 넷에 따낸 금메달로 많은 감독을 준 송대남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최고의 성취를 꿈 꿨을 때 김재범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올림픽 출전 꿈이 무산됐던 그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복귀했지만 곧바로 부상이 찾아왔다. 모두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송대남은 그 순간, 체급을 올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그의 피와 땀은 결국 그에게 세계 최고의 자리를 안겨줬다.
그들의 작은 성공 스토리는 ‘작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절망의 순간일 수록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