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시 상황은 선뜻 너를 낳자 말하기 애매했었어. 어른들의 현실이란게 좀 치사하거든.
그런데 처음 병원 간 날, 초음파를 통해 움직이는 널 본 순간 왠지 모를 용기가 샘솟았어.
너 하나 못 책임지겠냐.
어른들은 대체로 바보같아서 지나간 날에 대한 미련이란게 있거든? 아빠도 그랬어. 못 이룬 꿈, 자리잡지 못한 사회에서의 위치, 불안정한 고용과 그에 따른 재정 상황, 갑작스레 유부남이 된다는 압박감.
그런데, 그냥 널 보자마자 모든 아까운 것들이 가치를 잃었어. 네 앞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져 버렸거든.
오로지 너.
서른이 넘도록 어른스러움과는 담쌓고 산 아빠인데, 태어나서 처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
"어떻게든 내가 다 먹여 살릴게."
아빠는 책임감이란 단어를 싫어해. 약속도 잘 하지 않아. 지키는 게 싫어서. 그런데, 네 앞에선 모든걸 약속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게 되더라. 꼼지락 움직이는 너가, 솔직히 형체도 잘 분간못하겠는데 본능적으로 내가 지켜나가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거야. 널 처음보고 엄마 앞에서 울었어.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물론 엄마는 그때 아빠의 대책없는 호기때문에 무진장 고생중이야. 아빠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천성이 참 게으르고 제 멋대로 살아와서 쉽게 바뀌질 않네.
그래도, 좁쌀만큼이지만 달라지고 있다고는 생각해. 다만 정말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라 성격급한 너희 엄마 복장이 터지지.
아, 잠깐 말이 좀 샜는데 어쨌든 그래. 아빠는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해. 잠시 아빠의 길을 놓아두긴 했지만 이상할정도로 아무 미련이 없어.
오로지 너.
너 하나 얻었으면 족해. 우리 깜짝이가 (너 생겼을 때 깜짝 놀라긴 했거든) 건강히 커주면 아빠는 가족안에서 품어둔 꿈을 조금씩 다시 펼쳐볼게.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아빠가 잘 됐으면 좋겠다. 해주고 싶은게 되게 많은데. 오늘은 빡세게 일해야겠어. 엄마가 불안해서 손톱을 다 씹어먹기전에 말야.
그리고 엄마 많이 괴롭히지마. 너 이제 팔키로그램이야. 엄마 팔 떨어져. 고만 찡찡대. 나 닮아서 찡찡도 보통이 아니야, 정말.
아빠는 막상 육아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진 않으니까, 육아일기라고 하면 엄마가 니가 무슨 육아를 하냐며, 한소리 하겠지만, 아빠 나름은 큰 노력중이라고 항변할거니까, 육아일기라고 할래, 그냥 이거.
뭐, 이 마누라야.
그냥 우리 깜짝이 나고 자라는 모습 부지런히 남길게. 지난이야기부터 해야 할테니까 오늘은 너 처음 생겼을 때 이야기를 해 봤어. 옆 방에서 코자는 아가야.
딱 세 시간만 자라.
너희 엄마도 푹 좀 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