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오전 9시 50분 경 어머님 휴대폰에서 찾은 사진입니다. 어머니가 찍으신 겁니다. 12년 12월 10일 고경석이라고 싸인이 되어 있습니다. 제 본명입니다.
격자를 치고 그렸기 때문에 격자를 지우는 과정에서 격자 무늬가 미세하게 남았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까지 의심하시리라는 건 아예 예상조차 안 했습니다.
잡스가 그려진 경위를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친척 중에서 미술을 하는 건 일단 저 하나 뿐입니다.
외숙모 아들, 사촌 형이죠. 이 형이 애플 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게 정말 잘 해 줬습니다. 수능 끝나고 서울 놀러갈 때 친구와 헤어진 뒤 하룻밤은 묵고 가곤 했습니다.
근데 사촌형이 우리 집에 옵니다. 저는 그 때 잡스를 그리고 있었죠.
그림을 그리는 게 신기했던 형은 옆에서 완성되가는 과정을 찍습니다.
첫날, 뭉툭한 4B연필만을 이용한 초벌 소묘이고 뾰족한 연필이나 이외의 재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날로부터 23일 후 완성되겠습니다.
사진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해당 위치에 정확히 소묘합니다. 근접 촬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 사진 퀄리티정도밖에 안 뽑았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어두운 부분을 지우개로 살짝 지운 뒤 콩테나 스테들러 8B를 얹습니다.(비슷합니다.) 아주 어두운 부분은 볼펜을 쓰기도 합니다. 이 땐 아직 붓펜은 안 썼구요.
뭘 더 고치나 싶으실 수도 있으시겠습니다만 제가 대충 보기엔
머리쪽이 너무 밝고 수염쪽 묘사가 덜 됐고 오른쪽 안경이 살짝 올라가 있으며 왼쪽 미간의 찌푸림이 어색하고 반지를 낀 손가락이 살짝 얇고 오른쪽 귀가 미세하게 올라와 있고 오른쪽 아래 턱수염이 조금 더 밝고 엄지 아래 손등은 좀 더 어두워야 하고, 오른쪽 어깨위의 잔상은 지워져야 합니다.
완성 후 저는 서울로 실기시험을 치러 올라갑니다. 종이 한 장을 말아가기 조금 그래서 스케치북에 끼웠습니다.
시험을 치룬 후 저는 그림을 형에게 선물하고 스케치북도 부피가 커서 올 때 가져오기 불편했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부 다 그린 스케치북이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없습니다. 버렸답니다. 저 방금 이 형이랑 싸웠습니다.
다음, 보정과 촬영에 대해서
폰카메라 화질은 그리 좋지 않고, 묘사를 묻어버려 그림이 아닌 사진처럼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자 장점이 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이 벽에 밀착시킨 뒤, 스탠드 조명과 휴대폰 조명, 형광등, 햇빛을 비추시고, 본인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손만 이용합니다.
다만 그래도 보정해보면 당연히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ctrl+M으로 원하는 대비효과를 준 후 하이라이트 번 툴을 이용해 눈에 보이는 그림자를 지우고, 연필이 반사한 빛을 묻어줍니다.
균일화를 이용해 남아있는 그림자가 있는 곳을 확인한 후 하이라이트로 말끔히 제거합니다.
이후 흰 브러쉬로 외각을 정리하고, blur툴로 사진과 비슷한 정도로만 테두리를 아주 살짝 바릅니다.
이렇게 한 후 jpeg로 저장하면 명도차를 크게 할 때 계단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전문 장비가 없으면 저정도 노력은 불사하셔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원본과 비교하면서 테두리를 깍고, 기울이고, 색상 비교하고, 어깨도 더 그려 넣었습니다. 아래는 이전에 올렸던 작품입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그림입니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사진이고, 사각 테두리를 썼습니다. 독도님이 말씀하신 검은 점 하나는 위에 삐져나온 곳을 덜 지운게 아닌게 생각합니다.
제가 10살 때부터 포토샾 하신 분.
저 10살 때부터 소묘했습니다.
검지 안 부분과 손바닥 한 구석에 굳은 살이 박혔습니다.
이건 소묘할 때 엄지로 힘을 줄 때 잡는 방식에서 연필이 닿는 부분입니다. 보통은 네다섯번째 손가락에 닿습니다만 제 손이 작아서 저기 평생 닿았네요.
이래뵈도 나름 10년차이긴 합니다. 마냥 어리지만 어디 가서 꿇리진 않습니다.
기본기에 치중하라시던 분, 입시미술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시던 분.
아주 잘 하진 못합니다만 평균은 하고, 걱정하실 수준은 아닙니다.
그리고 1년 만에 그림체가 급변하셔서 놀란 분.
저 잡스 그림은 12년, 제 신상을 파서 얻으신 그 만화가 올라간 것과 매우 비슷한 시기입니다.
다만 그 때엔 아직 인체에 대한 공부가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타블렛도 저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부끄럽지만 지금 종이에 연필로 그리면 이 정도밖에 못 합니다.
그리고 그 만화와 실력차에 대해서. 캐릭터를 소묘할 것도 아니고,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소묘는 그저 보고 베끼기에 불과하지만 완벽히 베끼기 어려울 경우 그 사물을 이해하는 것으로 똑같지만 다른 묘사를 합니다.
극사실주의 화가들 중 대다수는 저해상도 사진을 보고 고해상도로 바꿔놓습니다. 피부를 완벽히 이해했고, 빛을 정확히 때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생각 좀 하느라 늦은 게 맞습니다. 내가 화를 내야 하나? 이걸 올린다고 이 사람들이 내 말을 믿기나 할까? 예상 범위 안이라면서 저것조차 조작으로 판명되지 않을까.
찍으래서 찍은 사진을 들고 왔는데 아무도 믿지 않고, 저를 어리다면서 무시합니다.
게다가 제 실력이 증명까지 필요할 정도로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시간만 있으면 당신이 누구든 할 수 있고, 저같은 사람도 충분한 시간만 있었다면 무리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24일간 똑같지 않게 그리는 게 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왜 내가 한다면 안 믿는 거죠.
대체 내게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기꾼이 되는 것?
기다려 달래도 분석하고, 지금이라도 사과하라고 부추깁니다. 차라리 거짓말로라도 인정하면 편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나 솔직히 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뭘 더 인증해야 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지금은 지쳤어요. 어젯밤도 부아가 치밀어 한숨도 못 잤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자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