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제가 생각 했을 때 지금 현재 일본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가장 잘 만드는 감독은 딱 3명 꼽을 수 있겠는데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썸머워즈>, <늑대아이>등의 "호소다 마모루" 그리고 이번 <언어의 정원>의 "신카이 마코토"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3분의 감독은 잘하는 것도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 굉장히 뚜렸합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 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단 전통이 있죠. 오랜 기간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특징은 주제의식이 뚜렸하다는 것이죠. 반면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뜨는 별인 호소다 마모루는 이미 지브리를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특징은 스토리텔링방식 즉 이야기가 무척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특징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포스팅을 통해 따로 이야기 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신카이 마코토는?
먼저 3명을 꼽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다른 2분의 감독에 비해서 인지도도 떨어지고 작품성이나 흥행성을 비교해도 조금 뒤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신카이 마코토는 자기만의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고 두터운 팬층이 뒷받침 해주고 있기도 하죠. 결코 다른 두 감독에 비해 뒤떨어 진다고 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바로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면...
저는 신카이 마코토의 모든 작품을 다 보았습니다. 원체 런닝 타임도 짧은 편이고 필모그라피가 많은 편도 아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카이 마코토의 최고작이라고 손꼽는 <초속 5cm>은 저 역시도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그때 부터 '아 이 감독은 디테일을 볼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정원>전작인 <별을 쫓는 아이>는 조금 실망스러웠죠. 괜시리 판타지를 끌어들여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펼치려 한것은 혹시 다른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벤치마킹 한것으로 보이고 흥행을 의식한 듯한 연출이나 이야기는 결코 신카이 마코토스럽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서 신카이 마코토가 잘 할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낼 수 있죠. 커다랗고 무게감 있는 장엄한 서사시같은 이야기 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의 디테일을 잡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신카이 마코토의 장기이겠죠.
전 작의 혹평을 만회하려는 듯 이제 자신의 장기를 알게 되었다는 듯, 신카이 마코토는 다시 소소한 일상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바로 <언어의 정원>에서 신주쿠 한 복판 도심 속의 공원에서의 에피소드를 45분간 담아내고 있지요.
사실 스틸 컷만 봐도 두 남녀의 관계를 쉽게 유추 할 수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들의 주요 소재인 첫사랑에 대한 테마도 다시 가져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나이차이가 좀 많아 보이죠.
여주인공의 나이는 27세. 반면 남자주인공은 15세 고등학생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렇지 않죠.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시종일관 이들의 관계가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디테일이 보여지는데 남자주인공의 엄마는 이혼을 했고 띠동갑인 남자와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극의 초반에 잠깐 보여줌으로써 주인공들의 사랑을 정당화 시킵니다. 그리고 연하남자의 성격을 들어내주죠. 책임감 있고 믿음 직한, 그냥 단순한 15세의 어린 고등학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성숙한 면을 보여 줍니다. 반면 여주인공의 성격은 27세의 직장을 가진 어른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그걸 견디지 못해 힘들어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남자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잊게 만듭니다.
감독은 이렇게 자칫 커 보일 수 있는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활용...그리고 비
이들의 사랑은 장마가 시작되는 어느 여름날 시작되죠. 주인공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합니다. 처음 비가 내릴 때는 평범하지만 감정의 시작을 알리는 여름비.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부드럽고 촉촉한 보슬비. 그리고 감정의 절정에 이르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 할 때에는 세찬 장대비까지 비를 이용해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비가 내리는 공간도 갑갑한 도심속이 아닌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일본식 정원인 것도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엽집『萬葉集』과 구두
소품을 이용한 이야기의 전개방식도 아주 훌륭합니다. 여주인공은 직업을 살려 만엽집의 인용구를 이용하는데 그의 대한 답가가 극의 절정에서 사용되면서 다시 한번 서로의 사랑을 확인시켜 줍니다. 남자주인공의 꿈인 구두 만드는 기술을 이용한 에피소드도 극을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소재로 작용합니다. 특히 클로즈업으로 여주인공의 발이 자주 보여지는데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주인공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는 점이 매우 새로 좋았습니다.
사실 <언어의 정원> 에서 구두는 아주 중요한 소재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영화를 보시면 몸소 느끼 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이 맨발로 아파트 복도를 뛰쳐나와 계단난간에서 남자주인공을 끌어앉죠. 이때 주인공의 발이 크로즈업 되는데 남주인공은 손수 만든 구두를 신고 있고 여주인공은 맨발로 있습니다.
아직 미완성으로써의 사랑이랄까...결국 남자주인공이 만든 구두를 신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극대화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 더 효과가 좋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결말이네요. 앞서 말했듯이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는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제가 구구절절 이야기 한 영화적 장치 이외에도 신카이 마코토의 그림만 봐도 디테일을 한 눈에 알 수 있지요. 특히 전작에서도 그래왔던 것처럼 지하철에서의 그림은 정말 사진같이 보일정도의 극사실적인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정원에서 풀들이 흔들리는 모습이나 비를 맞는 나무의 모습, 비에 젖은 땅에 비추는 하늘까지 화면을 대충 찍기만 해도 훌륭한 스틸컷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를 별칭하는 빛의 마술사 답게 자연광을 이용한 묘사라던가 카메라 렌즈에 역광이 비추는 모습까지 매우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어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그림에 대한 디테일 역시 다른 애니메이션 감독들과는 차별되는 특징이지요.
마치 잘 만들어진 훌륭한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언어의 정원>이었습니다.
칭찬 일색이지만 그만큼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론 신카이 마코토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