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2.토요일
딴지 군사부
6년전 일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포복절도 하면서 엎어진다만 군바리 정신에 희생된 가련한 한 떨기 돼지의 넋을 어찌 알리오.
97년 가을의 어느날이었다.
대대회식이 거하게 펼쳐지던 그날, 우리 대대장의 정치력의 승리로 돼지를 치던 인근 주민으로부터 돼지 한마리를 대대 회식용으로 지원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 그 돼지는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자란 우리와 형제와 같은 돼지였다. 우리가 남긴 짬밥을 받아 키운 돼지였으니까.
중대 행정보급관과 몇명의 중대 고참들이 돼지를 잡기 위해 취사장 뒷편으로 모이게 되었다.
원래 돼지를 잡는 거...그거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곤충채집해오라면 바퀴벌레 잡아갔던 본 기자와 같은 도시 출신들에게는 돼지 정도의 커다란 생명을 잡기 위해선 <단호한 결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돼지 한마리 잡아서 해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3만원 안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군대 특유의 <군바리 정신>.
사람은 남아 돌더라도 돈은 죽었다 깨나도 엄따.
포크레인 한대면 언덕 하나 뭉갤 수 있는데 대대 전병력을 끌고와 이박삼일 삽질 시키는게 바로 군대였던 것이었다.
자... 문제는 그 취사장 뒷편으로 당연히 갔어야 할 <백정> 역할의 고참이 제대하고 말았다는 것. 이 백정이 제대하기 전에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했어야 하는데 고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던 거다.
취사장 뒷편에 모인 5명의 군바리들. 그들은 일단 고심끝에 돼지목에 밧줄을 걸었다. 근데 이거 아시다시피 개잡는 방법이다. 하물며 살아움직이는 돼지를 메다는 게 가능할 리 엄따. 되려 돼지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돼지가 입에 거품물며 덤벼드는 통에 허둥되며 도망가기를 수차례...
우리의 용감한 취사병 <식도일형>으로 돼지목을 섣불리 내리치다가 돼지의 발광에 의해 총보다 더 중요하다는 그 <식도일형>을 버리고 줄행랑을 쳐야 했었다.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최영의. 세계를 돌아다니시며 맞짱을 뜨신 그분이 존경스러워졌다.
결국 우리의 특전사 출신 행보관, 당시 군수병이었던 펜더에게 준엄히 한마디 한다.
씨바, 내총 가져와!!
행보관의 K-2 한정과 30발 들이 탄창에 실탄 두발을 장전해 가져왔다. 어차피 교탄은 남아돌아 11월만 되면 교탄 소모를 위해 60트럭에 실어 총쏘러 달려가는 것이 <탄약 보급병>인 본 기자의 연례행사가 아니었던가?? 남아도는 교탄 몇발 <영점 조준용>이라 돌려봤자 그 누가 알리요??
결국 우리의 행보관은 K-2를 정조준해서 돼지의 옆구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쓰바... 다음 사태에 대해 아는 사람??
꽤액...꽥꽥...케엑...
돼지는 앞족발에 총알이 꽂혀서 비명과 함께 발광을 하며 취사장 뒷편을 이리저리 뛰어 당겼다. 아... 그때 그 돼지의 <땐스>...
참고로 취사장 뒷편에서 총질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 던질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라. 우린 그때 총질 했었다. 못믿겠음 말아라. 당나라 부대였다고 말해도 할말 엄따.
자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돼지는 취사장 뒷편에서 이리저리 <세발>로 뛰어 다녔다. 그리고... 세발이 네발보다 훨 빨랐다. 피 질질 흘리며 오른쪽 앞족이 거꾸로 꺽여서 꽥꽥되며 취사장 뒷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이놈을 빨리 보내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면서 오함마로 내리 찍고 목에다 <식도일형>을 쑥 쑤셔 쭉 잡아땡겨 걸죽한 검은 피를 뽑아내던 우리 <백정병장>의 아삼삼한 모습이 그렇게 그리울수가 없었다.
아...그때 우리 특전사 행보관...
우리 행정보급관, 원래 공수 출신이었는데 낙하하다가 허리를 다쳐 일반 하사로 빠졌다고 그랬다. 그 공수 특전 행보관은... 쫄따구들 앞에서 그 큰 돼지 한 마리 한발로 잡지 못했단 쪽팔림과 저 건방진 돼지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다.
결국 이 행보관...다시 나에게 나즉한 목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씨발... 도폭선 가져와.. 특전사식 돼지 잡기를 보여주마!!
자 여기서 도폭선이란??
도폭선. 춘계 진지공사 할때나 많이 쓰이는 거인데 한마디로 폭탄 되겠다. 나무 같은데 돌돌 묶어서 콱 누르면...나무 한두그루 그냥 나자빠진다. 그걸 가져오라는데.... 어차피 그거도 남아도는 거고... 결국 가져왔다.
돼지를 붙잡으라는 추상같은 우리 행보관의 명령. 4명의 말년들과 상병 왕고들 죽을둥 살둥 돼지를 잡아챙긴다. 잡힌 돼지에.... 정말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아니 돼지 목에 도폭선 감기였다.
돼지 팔다리(?)에 삐삐선이 감기고...
돼지목에 도폭선이 감기고....
우리는 취사장 뒷편의 부식창고로 잽싸게 날랐고 살짝 보이는 우리 행보관의 머리... 그리고...콱 눌러지는 손......
퍽....
짧은 폭음과 이어지는 커다란 폭발음....
그리고 허공을 날아오르는 돼지 대가리...
우리는 하늘에 커다랗고 깨끗한 호를 그리고 날아오르는 돼지 대가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추락하는 돼지 대가리... 그 뒤로 길게 일자로 분수처럼 뿌려지는 돼지 피...
에반게리온의 모가지가 제르엘에 의해 짤려나갈 때 토해내는 핏방울처럼 돼지 목에서 분수처럼 토해져 나오는 피들... 그리고 우린 그 핏방울 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진 핏빛 무지개를 보게 되었다.... 아 아름다워라....
물론 목이 잘린 우리 돼지는 4개의 족을 부들부들 떨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며 떨다가 곧 쓰러져 멀쩡한 세다리와 병신된 다리 한쪽을 하늘로 치켜세운채 명을 다하고 있었다.
그날... 난 특전사의 돼지 잡는 법은 도폭선을 돼지목에 감아 터트리는 거란 걸 믿게 되었고 불쌍한 우리 돼지는 재수 없게도 <백정>의 부재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두들겨 맞고, 어설프게 식도일형에도 베이고 돼지론 드물 게 5.56미리 나토탄에 맞아 다리 한짝을 잃어버린 것도 모잘라 전세계 돼지 중에 한마리 걸릴까 말까한 도폭선을 목에 감고 폭탄에 목에 잘린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근데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진짜... 특전사는 도폭선으로 돼지를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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