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펌이고, 두편의 글입니다. 내용이 좀 길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실로 사소한 편의의 대가로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음법칙의 허와 실 들어가는 말 우리말 자음 중에는 거센소리나 된소리도 아니면서 유난히 만나기 어려운 소리, 이 소리로 시작하는 단어를 들으면 십중팔구 외래어일 것 같은 소리가 있다. 바로 ㄹ 소리이다.
ㄹ 소리가 이렇게 희귀해진 것은 이 소리가 단어의 첫소리로 시작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두음법칙이라는 규범이 우리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우리는 국어 선생님들로부터 “ㄹ은 발음하기 힘드니까”, “소리가 불안정해서 ‘종로’에서처럼 자주 음가를 잃는다”, “우랄 알타이 어족 언어들은 두음법칙을 가지고 있다” 등의 설명을 들어 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말 외에 두음법칙을 가진 언어를 지금까지 전혀 접하지 못했으며, 선진국의 언어들은 음향도가 뛰어나고 듣기에 아름다운 ㄹ 소리를 오히려 활발하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ㄹ로 시작하는 단어가 오히려 고어라고 되어 있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옛날부터 ㄹ 소리가 이 정도로 천대받아 왔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유성음 받침 사이에서 ㄹ은 음가를 잃는 경우도 있지만 ‘솔잎’처럼 덧나서 살아나는 경우도 있으며, 더구나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외래어가 우리말에서 쓰이는 예를 볼 때, 우리는 ㄹ 소리를 적고 발음하는데 조금도 불편을 겪고 있지 않다. 이에, 이 글에서는 두음법칙이 그 태생부터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도리어 발음은 물론 표기에까지 영향을 끼침으로써 우리 말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두음법칙은 한자어와 토박이말을 갈라 놓는다 두음법칙은 아무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한자어에만 적용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디 이것뿐인가? 우리말글 규범에는 한자를 즐겨 쓰는 사람이나 한자어를 잘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것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독 한자어에만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한자어를 알아야 익힐 수 있는 법칙, 좀 까놓고 말하면 우리말에 한자어 영역이라는 독자적인 철옹성을 치고 싶어하는 법칙이다.
과연 그 철옹성이 필요한가? 언젠가 ‘유아틱하다’란 표현을 예로 들며 외래어 때문에 병들어 가는 우리말을 걱정한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유아틱(-tic)하다’는 안 되고 ‘유아적(的)이다’는 괜찮은 것일까? ‘적’이라는 한자 자체가 영어 접미사를 중국에서 음역한 글자인데 말이다. 우리말 사랑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우리말 사랑이며, 그 범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예로, 먼저 인명의 표기를 살펴보자. ‘김 용묵’, ‘도요토미 히데요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빌 클린턴’ 등 세계 어느 나라 사람 이름이라도 성과 이름을 띄어 쓰고 각 언어나 문화에 따라 쓰는 순서만 존중해 주면(우리도 이름은, 로마자로 쓰더라도 반드시 성부터 먼저 써야 한다.) 일관성 있고 좋을 텐데, 중국이나 일본처럼 띄어쓰기 없이 한자로 붙여 쓰는 사람들 취향에 맞게 성과 이름을 붙이는 걸로 맞춤법이 바뀌어 버렸다. 그 결과 ‘황 보율’이나 ‘황보 율’처럼 혼동이 생길 수 있는 경우 또다시 띄어쓰기를 허용한다는 얼치기 예외가 생기고, ‘이 루리’, ‘최 하얀’처럼 단어 단위로 구분이 돼야 말맛이 나는 순우리말 이름을 짓기가 훨씬 불편해졌다.
둘째로, 한자어의 사이시옷 표기를 여섯 개의 예외만 인정하고 모조리 없앤 것도 한자어가 ‘곳간’, ‘숫자’처럼 토박이말로 자연스레 동화하는 것을 막고, 말과 글 사이의 이질감을 초래하여 한글의 변별력을 떨어뜨린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발음이야 어떻든 한자음만 잘 드러나게 맞춤법을 만든 덕분에 ‘솟수’(2, 3, 5, 7)가 ‘소수’로 들어가 버리고 소리까지 엄연히 다른 ‘댓가’가 전문가를 뜻하는 ‘대가’로 흡수돼 버렸다. 사잇소리 문제는 한글 표기법에서 대단히 어려운 숙제임이 틀림없지만, 그 어려운 문제를 한자나 한자음만으로 덮어 버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끝으로, 저 철옹성에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버티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걸고 늘어지는 레퍼토리가 있는데, 왜 외국 한자 고유명사를 우리 식으로 안 읽냐는 것이다. ‘북경’, ‘동경’ 대신 ‘베이징’, ‘도쿄’라 읽는 사람들을 줏대 없는 사대주의자로 매도한다. 소리글자인 알파벳조차도 쓰는 나라마다 다르게 읽히는데, 왜 한자는 그걸 인정 안 하는 걸까? 우리가 평소에 알파벳을 미국 식으로 읽으니까 독일의 고속 철도 이름도 꼭 ‘아이스’라고 읽어야 주체적인가? 영어의 ABC(에이 비 씨)와 독일어의 ABC(아 베 체)가 다른 것처럼, 편견을 버리고 차라리, ‘國’과 ‘国’은 뜻만 같지 소리와 쓰이는 상황은 서로 완전히 다른 글자라고 여기고 사는 게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도 더 나을 것을!
앞에서 제기한 우리말과 맞춤법의 모든 문제들이 바른 길, 원칙을 무시하고 당장 쓰기 편한 꽁수를 쓰려 한 대신 얻은 댓가이다. 한글 표기법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이래서 한글로만 쓰면 뜻이 변별 안 되고 불편하니까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속임수가 가소롭기만 하다.
두음법칙 역시 한자어 우대를 전제로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자어와 비한자어의 구분에다가, ㄹ도 모자라 ㄴ과 이중모음 구분까지 요구하는 두음법칙은 된소리되기나 자음동화처럼 필연적인 음운 현상도 아니고 단지 몇몇 한자어를 입만 뻥긋하면 낼 수 있는 소리로 만들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한글과 우리말의 성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면서 말이다. 한자어는 꼭 이렇게라도 티를 내야 하겠는가?
표기법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두음법칙은 ‘리성’이라고 쓰고, 읽는 것만 ‘이성’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표기법까지 바꾼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국력’이라고 쓰면 사람들이 ‘궁녁’이라고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읽게 돼 있지만, ‘리성’이라고만 쓰면 ‘이성’으로 읽기 어려우므로 숫제 표기법까지 바꿔 버린 것이다. 이 사실은 그만큼 두음법칙이 당위성이 떨어짐을 입증하는 예가 될 수 있다.
두음법칙은 국어사전의 어휘 배분에도 커다란 불균형을 초래했다. ㄹ에는 단어가 전멸하다시피 하고 외래어만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 ㅇ에는 어휘가 너무 많다. 그 덕분에 정작 한자도 처리하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소리가 ‘리’인 理와, ‘이’인 理가 제각기 다른 코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유니코드에 “한중일 통합 한자” 외에도 “호환용 한자” 영역이 또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양산(陽傘)과 량산(量産), 이론(異論)과 리론(理論), 역학(易學)과 력학(力學) 등, 두음법칙은 그렇지 않아도 넘쳐 나는 한자어 동음이의어에다가 우리 말소리와 한글만으로 충분히 변별이 가능한 동음이의어까지 쓸데없이 만들어 냈다. 소리가 바로 의미로 대응하지 않아 전국민이 사고 과정에서 입는 부담과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동음이의어뿐만이 아니다. 두음법칙의 영향 때문인지, 원래 ㄹ 소리가 존재하지 않던 한자인 諾에 대해서도 ‘허락’과 ‘승낙’ 같은 쓸데없는 예외가 생겨나 우리말의 기능성과 논리성이 떨어지고, 많은 국민들이 예외투성이의 어려운 한글 맞춤법에 좌절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두음법칙이 진짜 직격탄을 때리는 상황은 고유명사나 약어를 표기할 때이다. 신문, 방송이 ‘룡천’과 ‘용천’을 제각각으로 적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오래 전엔 어느 ‘류씨’ 가문이 호적에서 자기 성을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벌인 사건이 있었다. 두음법칙이 멀쩡한 사람 성까지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외자 이름 같은 경우도 ‘신 입’이 맞는지 아니면 ‘신 립’이 맞는지, ‘채 윤’이 맞는지 ‘채 륜’이 맞는지, 맞춤법이 바뀐 뒤에 나온 책들도 표기가 제각각이다. 이런 예들 중 어느 게 맞는지를 따지며 옥신각신하는 게 과연 우리말에 생산적인 활동인가?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의 줄임말이고, ‘양산’은 ‘대량생산’의 줄임말이다. ‘민주노동당’을 ‘민로당’으로 줄여 쓰고 ‘남자여자’를 ‘남녀’라고 쓰는 걸 보면 합성어에서는 두음법칙이 일관성 있게 비켜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신여성’, ‘남존여비’, ‘분노’, ‘희로애락’ 같은 단어는 어찌 설명할 것인가? 한자어는 그렇지 않아도 글자 하나가 단어의 성격을 띠고 있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단위인 단어 경계를 구분짓기 매우 힘들다. 이 경우를 어떻게 봐야 좋겠는가?
두음법칙은 이제라도 없애야 한다 음성학에서 ㄹ과 같은 소리는 流라는 한자를 써서 ‘유음’이라고 분류한다. 하지만 나는 두음법칙을 반대하는 학자가 쓴 책으로부터 이 단어를 ‘류음’이라고 맨 처음 접했기 때문에, 지금도 ‘유음’보다 ‘류음’이 듣기에도 더 좋고 먼저 와 닿는다. 읽고 쓰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두음법칙에 의해 언어 감각이 왜곡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에서는 누구라도 ㄹ 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ㄹ은 자음이면서도 모음의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음향적 쾌감이 가장 높아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든가, “얄리 얄라얄라 얄라셩 얄라리 얄라” 등 노래 가사에서 운율을 넣는데도 즐겨 쓰인다. 요들송은 유음 사용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음성학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소리의 소중함을 알고, 정당한 이유 없이 모국어에서 이 소리를 말살하는 말글 규범에 대해 마땅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 혀가 짧아서 ㄹ 소리를 못 내기라도 하는가? 아니면 한글이 이 소리를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기라도 하는가?
‘맥도날드’, ‘빌딩’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마구도나루도’, ‘비르딩구’라고 적고 발음하는 일본어를 생각해 보라. 그런 일본 사람들도 ㄹ 소리는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그대로 발음하고 있다. 우리가 ‘노력, 이론, 윤리, 노령’ 등 ㄴ이나 ㅇ으로 바꿔 발음하는 한자어도 일본어로는 ‘로료꾸, 리롱, 린리, 로레이’이다. 어느 나라 말이 더 아름답게 들리며, 어느 나라 말이 더 밋밋하고 투박하게 들리는가? 우리가 일본 사람보다도 게을러서야 되겠는가?
오래 전부터 남한보다 더 철저하게 한글전용을 시행한 북한은 아직도 머릿소리 ㄹ을 그대로 발음하고 있으며, 두음법칙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차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 맞춤법과 말글 규범을 정할 때, ㄹ을 처리하는 방식은 남한이 기꺼이 북한 방식에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혀의 자그마한 편의를 수용한 대신 잃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ㄹ을 그대로 표기하되 발음만 변형을 허용함으로써 두음법칙 문제를 표기법 차원이 아니라 좀더 가벼운 소리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법칙’이라는 용어도 단순한 현상을 나타내는 ‘되기’로 고쳐, ‘두음법칙’ 대신 ‘머릿소리되기’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두음법칙을 당장 없애면 잠시 많은 낱말들의 표기를 바꿔야 하는 불편이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결국 우리 말글살이는 일관성이 살아나고, 그 효율도 시나브로 높아질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2004년 5월 27일
참고 문헌: <한글을 세계 문자로 만들자> 박 양춘*,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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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반박하려면, ㄹ 소리는 한국인들이 내기에는 인체 생리학적으로 너무나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에게 ㄹ 소리를 강요한다는 것은 마치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들 그렇게 쓰니까 두음법칙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말이 외국어를 따라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게으르고 안일한 딴지는 절대 사절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두벌식 자판도 많은 사람들이 쓰니까 써야 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도 무모하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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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류씨(文化柳氏)의 성씨 표기 문화류씨의 성의 표기는 한문으로는 물론 柳이다. 한자로서는 언제나 '류', 즉 '버들 류'로 불리고 '유'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런데 한글로는 현재 '유'와 '류'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으며, 영문 표기에 이르러서는 유와 류를 통틀어 실로 수십 가지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씨란 그 표기가 여럿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초부터 부친의 말씀에 따라 그 동안 '유'로 쓰던 성을 '류'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그 이전에 알던 사람들은 유로 표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현재 주민등록에는 '류'로 되어 있고 호적에는 '유'로 되어 있다. 근자에, 한 사람의 이름이란 정체성의 시작인데 그것이 이런 혼돈을 겪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들어 성씨 표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연 어떤 표기가 맞는 것일까.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한글에 대한 논의는 문중 내외에서 누차 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최근 '류'의 표기 사용에 대한 헌법소원도 뜻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영문의 경우는 본격적인 문제제기나 고찰이 되어 있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 류씨 성의 한글과 영문 표기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 결론은 위의 요약에 밝힌 대로인데, 차류대종회나 문화류씨대종회에서 이미 같은 내용의 결론이 얻어졌다고 알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필자 나름의 조사와 고찰에 의해 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 또 인터넷 시대에 젊은 세대들에게 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썼다. 혹시 독자의 의견이 있으면 이메일로 연락해 주기 바라는 바이다.
1. 한글 표기
우리 성을 한글로 '류'로 쓰자는 운동이 대종회를 중심으로 있어왔다. 그 표기에 대한 1960년대 이후의 사실적 관계들이 대종회보에 여러 차례 밝혀졌었다. [예: 차류대종보, 제23호, 8-13페이지, 1996] 간단히 그 내용을 요약하면, 1968년부터 1988년까지는 고유명사는 두음법칙에 간섭받지 않는다는 규정 하에 자유의사에 따라 '류'로 사용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그 규정이 빠짐에 따라 혼란이 일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1995년 호적에서 '유'로 써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에 의해 확실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치 않은 복잡한 측면을 다수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근본으로 내려가면 두음법칙이라는 어법이 일문(一門)의 성씨의 표기를 제약할 수 있느냐 하는 점으로 모아진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어법 체계를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는 한글 표기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선 柳씨의 옛 표기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여기서 그것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두음법칙에 대해 알아보고, 柳씨의 발음 문제를 고찰해 본 다음, 표기 및 발음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1-1. 柳의 옛 표기
柳가 한글로 어떻게 표기되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명한 옛 한글 문헌들을 확인해 보았다. 먼저 계축일기가 떠올랐다. 광해조(光海朝)와 柳門의 악연이 걸렸지만 柳씨가 많이 나오기에 먼저 생각난 것이었다. 물론 柳씨 성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계축일기를 포함하여 다음 세 경우가 눈에 들어왔다.
*계축일기 (癸丑日記. 17세기 초. 어느 궁인): 柳哥 → 뉴, 뉴가; 柳自新 → 뉴신; 柳永慶 → 뉴영경; 柳希奮 → 뉴희분
*임진록 (壬辰錄. 작자, 연대 미상): 柳成龍 → 판본에 따라 뉴, 유, 류 혼용. 뉴셩용, 유셩용, 유성용, 류셩룡
*구운몽 (九雲夢. 1688.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양처사 부인 柳氏 → 뉴시
참고로 중국의 劉씨를 언급하는 것들이 눈에 띠었다. 劉도 한자의 대표음이 '류'(죽일 류, 속칭 묘금도 류)이다.
*박씨전 (朴氏傳. 17세기 말-18세기 초. 작자 미상): 劉皇叔(劉備) → 류황숙
*유충렬전(劉忠烈傳. 19세기 초 추정. 작자 미상): 劉忠烈 → 여러 이본이 존재하며, 류츙렬, 유츙열, 뉴충열, 유충열 등
*유씨삼대록 (劉氏三代錄. 작자, 연대 미상): 劉氏 → 류시, 뉴시
또한 가장 중요한 자료로서 "가정보"(嘉靖譜: 1565년 완성된 문화류씨 족보)에 '柳氏'에 '뉴시'라는 한글 토를 달아놓은 것이 있다. 이것은 현재 음가로 '류씨'이다.
넓게 보아 한자에서 'ㄹ'로 시작되는 음을 갖는 단어들은 'ㄴ, ㅇ, ㄹ'로 표기되어 왔고, 이것은 20세기 전반까지 소설을 비롯한 많은 한글 문헌에서 지속되어 왔으며, 참고로, 북한에서는 지금도 'ㄹ'을 그대로 밝혀 표기하고 있다 (아래 참조).
1-2. 음소주의 표기법과 형태주의 표기법
한 나라의 말을 표기할 때는 서로 약속된 방식대로 표기해야 한다. 그때 발음 그대로 적어야 한다는 주장을 음소주의라 하고 글자의 원래의 형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형태주의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북한의 한글 표기법은 이 측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여 현재 남한에서는 음소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1989년에 제정된 "한글 맞춤법"이 사용되고 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형태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1987년에 제정된 "조선말규범집"이 사용되고 있다.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북한의 언어규범을 통일하자는 논의가 대두되고 있는데, 거기서 가장 현저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두음법칙에 관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발음을 그대로 적는다는 원칙에 따라, 예를 들어, 年歲를 '연세'라 표기하고 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年의 원래의 형태를 밝혀 '년세'라고 표기하며 발음까지 그렇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통일 방안으로서 언어학자들의 제안 중 한 가지는, 표기는 해당 한자음을 그대로 밝히어 적고 발음은 두음법칙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즉 年歲의 경우 표기는 '년세'로 하고 읽기는 '연세'로 읽자는 것이다. 향후 이에 대한 토의는 더 깊게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1-3. 두음법칙
그럼 과연 두음법칙이란 무엇일까. 두음법칙은 말의 첫머리에 오는 자음(子音)이 본래의 음가(音價)를 잃고 다른 음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원칙상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우리말에서는 어두에서 'ㄹ' 발음을 회피하기 때문에 유음(流音) 'ㄹ'이 어두(語頭)에 올 수 없다는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i]나 [j] 앞에서의 ㄹ은 0(零)이 되며(즉 탈락하며), 'ㅏ ㅓ ㅗ ㅜ ㅡ ㅐ ㅔ ㅚ' 앞의 'ㄹ'은 'ㄴ'으로 변한다. 곧 어두에 'ㄹ'이 오는 것은 기피되며 'ㄴ'은 그 보다는 덜 기피된다는 말이다.
초성 'ㄹ'이 'ㄴ'으로 표기되는 것은 이미 16세기 초기와 중기 문헌에 그 예가 널리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위에 보인 계축일기 같은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사계(斯界)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극히 드물지만 이미 15세기 말 문헌에도 나타나 있으며, 훈민정음 제정 당시에도 이미 두음 'ㄹ'은 기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해 보면, 한글 표기가 시작된 후에 초기에는 표기의 엄정성을 지키기 위해 두음에도 표기상 'ㄹ'이 쓰이다가 그것이 실제 발음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점차 'ㄴ'으로 쓰였다가 그것도 일부만 허용되고 탈락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만 현재는 외래어에서는 두음에 'ㄹ'이 오는 것이 허용되고 있는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ㄹ'로 시작되는 단어는 무척 많다. 한글의 경우는 사전에서 'ㄹ'로 시작하는 단어는 몇 개 나오지만 모두 고어이다. [러울 = 너구리, 수달; 로새 = 노새; 로어 = 농어; 료화 = 여뀌꽃; 류거흘 = 배의 색만 흰 검정말; 리어 = 잉어; 림금 = 능금, 등.]
두음법칙은 1933년, 당시 극심하던 맞춤법의 혼란을 타기하고자 제정된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그때는 '마춤법'이라 했음)에서 확정되었고 그것이 현재 우리의 맞춤법에까지 이어져서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맞춤법은 표기에 관한 표준화일 뿐이라는 비평도 제시되고 있음을 지적코자 한다. 즉, 원래 한 언어의 사용법은 사용되는 개개의 단어들을 모아서 표기해놓은 사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정상인데 우리의 경우는 맞춤법이란 것이 사전의 표기를 지배하고 있어 맞춤법이 달라지면 사전의 표기들이 전체적으로 달라지는 부자연스런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내용들을 발음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은 두음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어색한 발음을 주는 발성구조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거나 갖게 발전해왔으며 북부의 사람들은 그 반대인, 인구학적인 차이점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북부언어권에서는 어두의 'ㄹ'음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이 사실은 오늘날 북부 방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까지 '두음법칙'에 위배되는 표기가 흔히 쓰였음을 생각하면 남한에서도 그런 표기에 합당한 발음이 흔히 이루어졌으리라 짐작된다.
1-4. 柳의 발음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께서는 과연 성씨 柳를 어떻게 발음해 왔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柳자가 단어의 처음에 오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자신의 성을 소개할 때 한자를 밝혀 '버들 柳자'임을 말할 때나 본관을 밝혀 '문화 柳씨'임을 말할 때, 그리고 문화류씨의 약자인 '文柳' 같은 경우, 당연히 '버들 류'로 발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어두에 올 때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런데 실상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미루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사람에 따라 발음의 편의성 때문에 '유'라고 발음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같은 발음의 편의성의 이유로 그리고 그에 덧붙여서 뜻이나 한자음을 밝혀서 '류'라고 발음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간혹 후자의 경우 '뉴'에 가깝게 발음되기도 했을 것이다. 현재는 북한에서는 '류'로 표기하고 그렇게 발음하고 있다고 하며, 남한에서는 아직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자의 음이 '류'이기 때문에 조상들을 자신들이 '유'씨냐 '류'씨냐를 물었을 때 결코 '유'씨라 하지 않았을 것임은 확실하다. 이것은 위에 언급한 족보인 "가정보"의 경우만 보아도 자명하다. 그리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 중 하나가 柳씨 성이 탄생하고 몇 대에 걸쳐 살았고 특히 시조 대승공의 엄청난 부(富)의 기반이었던 황해도 구월산 일대의 유주(지금의 문화) 지방이 바로 북부언어권에 속한 곳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柳를 '류'라고 발음했음에 틀림없다고 추측된다는 점이다.
1-5. 柳의 한글 표기와 발음
柳의 한글 표기와 발음에 대해 세 가지 가능한 대안이 있다.
표기와 발음을 모두 '유'로 한다.
표기는 '류'로 하고 발음은 '유'로 한다.
표기와 발음을 모두 '류'로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견해는 당연히 (3)번이다. 그 가장 큰 근거는 하나의 성은 두 가지 표기와 발음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형태주의 표기법을 따른다면 당연히 '류'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말의 맞춤법의 원칙인 음소주의를 따를 경우에도 柳가 두음이 아닐 때는 '류'로 발음되며 따라서 그렇게 표기되어야 한다면 두음일 때도 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표기를 써야한다. 이때 발음이 문제가 되는데, 성씨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언제나 '류'로 발음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위에서 암시했듯이 '두음법칙'이라는 것 자체가 허다한 외래어의 유입 및 일상적 사용, 柳씨 등의 성씨, 그리고 형태주의 표기법도 최소한 일부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북부언어권과의 통합 문제 포함) 등의 허다한 이슈 때문에 결코 우리말에 대한 절대 불변의 법칙일 수 없으며, 더 깊은 성찰을 통해 발전적 해체 내지는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법칙이라는 견해를 덧붙인다.
이런 柳의 표기와 발음을 모두 '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의 柳씨에 대한 표기와 발음의 측면에서도 타당하다.
성씨란 것이 일정한 혈통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므로 성씨는 근본적으로 타성과의 구별을 그 속성으로 갖는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 배타주의나 이기주의라고 매도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논리를 조금만 확장시켜보면, 그 자신이 자기 성씨를 얼마든지 바꾸거나 없앨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 헌법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무제한의 권리일 수는 없으며 사회의 정의와 조화의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성씨의 문제는 여러 복잡한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최소한 柳씨의 한글 표기를 '류'로 하는 문제라면 국가가 막을 수 있는 하등의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왜 귀화한 외국인들은 호적에 'ㄹ'로 시작하는 이름을 싣는 것이 가능한 데 왜 柳는 안 된다는 것인가.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 표준말의 기준인 서울지방에서의 발음의 편리함을 위해서 성씨를 바꾸어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한 'ㄹ'로 시작하는 허다한 외래어의 사용을 보면 '류'로 표기하는 것을 막을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라면을 아면으로, 류머티즘을 유머티즘으로 말하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6. 향후 문제점
여기서 柳씨의 한글 표기에 국한하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큰 문제로 확대될 여지가 많다. 그 첫째가 타성의 문제이다. 柳씨와 같은 문제가 관습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한글 표기가 되는 다른 성씨들 예를 들어 李, 羅, 盧씨 등에 그대로 적용된다. 둘째가 이러한 같은 성씨 내에서도 한글 표기를 달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柳씨 중에도 어떤 이유에서건 한글로 '유'라 표기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셋째는 성씨의 자기 결정권이다. 이것은 기존 성을 변경하는 것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새로운 성,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문제들이다. 이것은 호주제와 관련한 최근의 논란과도 무관치 않다. 여기서 세 번째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正體性)과 관습, 정통성, 가족의 개념 등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필요로 하며 사회의 발전 및 변화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방향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커다란 문제이기에 여기서는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다.
첫째의 경우는 이 글의 논점에 따라 각 성씨의 구성원들이 원한다면 허용되어야 마땅한 일이라 생각된다. 둘째의 경우는 국가기관에서 한 가지 표기로 강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친족이란 결국 개개인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씨의 선택권은, 물론 현재에는 '유와 류', '이와 리', '노와 로' 같은, 사회 통념에 반하지 않는 일정 범위 안에서이겠지만, 개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한 표기를 사용해왔던 개인이 앞으로도 동일하게 표기를 계속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일시키는 것은 하부상향적인 방식으로, 즉 종중의 지속적인 계몽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언하면, 국가로서는 柳씨처럼 두 개 이상의 한글 표기가 가능한 성씨의 한글을 모두 허용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柳씨의 경우엔 '유'와 '류'의 두 표기가 지금도 주민등록표 상에서는 허용되고 있으며, 영문 이름의 표기의 경우엔 사람마다 각양각색으로 사용하는 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전혀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고 있음을 볼 때 전혀 시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다른 측면에서는 법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대법원이 1995년에 호적에서 柳씨의 한글 표기를 '유'로 사용하도록 확인한 것은 결국 현행 규정들에 입각한 판단일 것이다. 만일 헌법소원에서 '류'로 표기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관련 규정들은 자연적으로 수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교과서, 문헌 등 사회 전반에서 일관되게 표기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관계 인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특히 문중 전체 차원에서의 노력이 상당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2. 영문 표기
이하는 柳씨의 한글 표기 및 발음이 모두 '류‘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글 표기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논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영문의 경우는 한글에 비해 논의가 덜 되었다. 성씨 표기는 통일이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국제화 시대에 이름의 영문 표기는 누구나 필요하게 되었는데 같은 성씨가 다른 영문 표기를 갖는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할 수 있기에 성씨의 영문 표기에 대한 합의는 무척이나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성씨의 로마자 표기에 대한 논의는 사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씨의 로마자 표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서 한 조사에 의하면 150여개의 주요 성이 평균 13.1개의 로마자 표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 조사는 '류'에 대한 표기는 조사하지 않았으며, '유'의 경우엔 Yoo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류'는 현행 맞춤법에 허용이 안 되고 있으니 표기 원칙을 논의할 때도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류'씨의 영문 표기는 Lyu, Lyoo, Lyou, Ryu, Ryoo, Ryou, Rhyu, Rhyoo, Rhyou 등이 쓰였으며 간혹 Liu, Lew, Reu, Rheu 등의 표기도 있었다. 앞의 9가지는 모음 'ㅠ'를 yu, yoo 또는 you로 표현한 것이고, 자음 'ㄹ'을 L, R, 또는 Rh로 표기한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대학시절부터 별 생각 없이 옥편에 제시된 중국 발음을 쫓아 Liu로 표기해왔는데 중국문인 柳宗元(773-819) 같은 이들의 중국 柳씨나 劉씨, 廖씨 등이 그렇게 표기하고 그들 숫자가 상당하기 때문에 유학시절부터 중국인으로 오인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애석한 일이지만 우리 고유명사의 영문 표기만큼 갈팡질팡해온 것도 없다. 음성기호를 사용하다가 없앤 것도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혹자는 외국인이 발음할 때 가장 우리말에 가깝게 발음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많다. 외국인은 모두 영어권에 사는 것만은 아니며 또 어떤 영문 표기를 보고 모두 똑같이 발음한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외국인이 보고 자연스레 가깝게 소리 낼 수 있도록 표기하되 우리말의 표기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타협을 해야 한다.
'류'의 표기로서는 우선, Lew, Reu, Rheu 같은 경우는 발음은 류에 가깝게 날 것이지만 우리말의 일반 표기와 너무 동떨어져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Liu의 경우엔 필자의 다년간 (쓰라린!) 경험에 의하면 영어권에서는 '루'처럼 발음하는 경향이 있고, 중국 성과 같은 표기라서 한국인으로서의 구별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권할만하지 않다.
먼저 자음 'ㄹ'의 표기부터 살펴보자. 자음 'ㄹ'을 Rh로 표기하는 것은 h를 추가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자음으로서는 R이나 L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좁혀진다. 이씨와 임씨는 가장 많이 쓰이는 표기가 각각 Lee와 Lim이라 한다. 모두 'ㄹ'을 L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ㄹ'은 그 위치에 따라 실질적인 소리값이 달라진다. 곧 어두에 올 때는 탄설음(彈舌音; 혀끝과 잇몸 사이가 한 번 닫혔다가 열리는 동안 혀 옆으로는 공기가 새어 나가면서 나는 소리)으로 발음되고, 반면에 음절 끝 종성의 위치에서는 설측음(舌側音; 혀끝을 윗잇몸에 아주 붙이고, 혀 양쪽의 트인 데로 날숨을 흘려 내는 소리. 쌀, 길 등에서의 ㄹ음)으로 발음된다. 후자는 영어의 [l]로 볼 수 있지만 전자는 정확한 영어 발음이 없다. 그러면 그 중 가까운 [l]이나 [r]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혀를 윗잇몸에 붙이고 발음하는 [l]음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붙이지 않고 발음하는 [r]음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의 첫소리 'ㄹ'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모음은 yu, yoo, you 등으로 표기될 수 있다. '유'의 경우 You로 표기한다면 미국인들은 2인칭대명사를 떠올려서 '유'로 읽어줄 확률이 높지만 실제 문장 사이에서는 그것과 혼동할 확률 또한 높아서 권하고 싶지 않은 표기이다. 예를 들어 '노'씨가 표기를 No로 한다거나 '신'씨가 Sin으로 한다면 발음은 가장 가까울 가능성이 높지만 그 뜻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다른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you를 사용할 경우에 '류'는 Ryou가 되는데 이때는 오히려 발음상 '료우'처럼 읽힐 가능성이 높으며 표기 자체도 you 앞에 R이 붙어있는 모양이라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남는 형태가 Ryu와 Ryoo이다. 여기서 영어에서는 yu와 yoo 모두 앞에 자음이 하나 와서 단어를 이루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을 써도 영어권 외국인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단어들일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놓는다. 이런 면은 특히 영어권에 없는 발음인 "으" 발음이 들어가 있는 경우에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그럼 Ryu와 Ryoo 중에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필자는 Ryu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는 현행 로마자 표기 원칙에 따르면 yu이다. 같은 맥락으로 '유'씨 성의 표준으로 Yu가 제안되어 있기도 하다[국립국어연구원, "성(姓)의 로마자 표기 방안"]. 그리고 Ryoo를 "료-"로 읽을 가능성도 있고 성씨에 'oo'로 끝나는 철자가 들어 있는 것이 어색해 보인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외국인이라면 이 표기에 익숙지 않을 것이며 간혹 '려'나 그 비슷하게 읽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도 이름의 표기만 보고는 개개인이 원하는 발음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그런 것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다. Ryu의 경우는 간결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이고 외국인이 '류'라고 읽을 가능성이 높으며 (일본에서는 문제가 전혀 없다), 혹시 멋대로 잘못 읽더라도 외국에 없는 철자이기 때문에 '류'라고 읽으라고 가르쳐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모름지기 로마자 철자법은 우리말들 사이에서의 표기의 일관성과 외국인 입장에서의 정확한 발음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며 그런 면에서도 Ryu의 표기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종친회에서는 Ryu로 사용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적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글 표기 문제만큼 영문 표기 문제도 심각한 것이라는 인식을 제고하여 다시금 이에 관한 철저한 합의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 결언
이 글은 이미 종중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반복이 될 가능성도 있으나 기존의 주장에 필자의 견해를 덧붙여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씌어졌다.
일관된 언어 사용은 한 사회 또는 국가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어법이라는 것이 '대다수'가 사용하는 언어 습관 방식을 명문화한 것이다. 한번 명문화 되었다고 해서 불변의 법칙이 되는 것이 아니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일관된 근거에 입각해서 언어 사용을 유도해 가는 시금석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이 일관된 법칙으로 규정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그리고 어떤 언어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 구성원의 일부 또는 개인의 행복과 정체성 추구의 권리에 반해서는 안 되는 것이어야 한다.
柳씨의 한글 표기는 언제나 '류'가 되어야만 한다. 성씨라는 것이 단어에서의 위치에 따라 그 표기가 달라진다면 성씨라는 고유 불변의 속성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항상 일정하게 표기되어야 하며, 柳의 경우 '유'와 '류'의 표기 중에서 타당한 선택은 당연히 '류'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발음도 언제나 '류'가 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즉 단어에서의 위치에 따라, '유'로 발음되었다가 '류'로 발음되었다가 한다면 이 또한 성씨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며, 사회적인 혼란의 소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문 표기의 문제는 한글 표기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기성세대가 영문을 쓰기 시작한 1세대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미 여권이나 신용 카드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문 표기가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柳’씨는, 柳씨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한글 표기도 그렇거니와 영문 표기도 동일한 것을 써야만 한다. 필자는 표기의 간결성과 품위, 외국인이 제대로 발음할 가능성이 높음과 우리말 로마자 표기법과의 부합 등의 이유로 'Ryu'로 표기하는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또한 이런 표기에 대한 보편적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법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편 이상의 논의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가 또는 사회가 柳씨의 한글 표기를 '유'라고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마찬가지 맥락에서 국가가 '류'라고 강제할 이유도 없는 것이 된다. 즉 한글이 되었건 영어가 되었건 여러 표기가 가능한 경우 국가 차원에서의 강제적으로 표기의 통일을 시도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해당 개개인의 의식의 제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글을 '류'로 쓰지 않고 있는 柳씨는 가능한 한 '류'로 쓰길 바란다. 또한 여권이나 신용카드 등의 영문표기는 반드시 'Ryu'로 쓰기를 간곡하게 권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씨가 살아있는 한 성씨의 표기에 관한 제반 문제의 해결을 향한 문중 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 (c) 채하 류주환 (대승공 36세손; Juwhan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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