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려 차에 시동을 걸고 핸드폰을 보니 카톡메시지가 와있다.
와이프에게서 온거다.
내 차가 제일 앞에 있어서 뒷차가 나오려면 차를 얼른 빼줘야하니 메시지 확인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일단 차를 빼서 버릇처럼 집으로 가는 첫번째 신호를 지나고 두번째 신호에 멈춰서야 메시지 온걸 다시금 생각해냈다.
또 하트달린 이모티콘같은걸 보냈겠지
눌러보니 에비츄 캐릭터 인형이다. 에비츄덕후인 와이프님이라 이게 사고싶은가보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거나 좋아하고 어이구~'
신호가 바뀌고 차를 출발시키며 생각해보니
1. 이번달에 자동차보험을 일시불로 납입했고
2. 어제 둘이 나가서 생전 팔자에도 없던 타이마사지 받는다고 돈을 꽤 썼고,
3. 그 후에 핸드폰 케이스와 강화필름도 둘이 하나씩 비싼걸로 구입하느라 십만원 이상 나갔고, 밥도 비싼걸 먹었다.
4. 이번달 부터 새로 구한 직장에서 종일 서서 일한다길래 다리마사지기도 꽤나 비싼걸 사줬다.
5. 아들놈 신발을 그래도 고학년인데 메이커 따지나 싶어서 나X키신발로 사버렸다.
6.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70권짜리 문학전집을 사줬다.
7. 저번주에 와이프가 현아패딩인가 뭔가를 사고싶다고 하여 사라고 했더니 진짜 샀다. ㄷㄷ
8. 게다가 11월초에 결혼식이 연속으로 두 번....그리고 11월 말에 울아부지 생신까지
지출했던 내역과 지출할 내역들이 좌르르르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그 와중에 피곤한데 고속도로로 갈까...아니 2000원 아끼고 그냥 좀 돌아갈까....어찌한다...
올해 초에 와이프가 실직하면서 수입이 많이 줄어서 통장 잔고가 계속 줄어드는 탓에 자꾸 돈계산을 하게 된다.
다음 신호에 걸려서 답을 보냈다. 이번 달에 너무 지출이 연속되니 적당한 거절의 의미를 담아....
내 눈을 똑바로 보실까? 봐봐! 이런 이모티콘을...
그렇게 보내놓고 마음에 걸려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 : 그게 가지고 싶다고?
와잎 : 아니 귀엽다고~
나 : 그게 사고싶다는거 아니야?
와잎 : 엄청 크고 귀여워!
나 : 돼지인형(10년도 더 전에 사준 늘 끼고 자는 인형)처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게?
와잎 : 그 인형은 너무 오래돼서 머리 터졌어
나 : 이야~ 잔인하게 돼지 머리를 터뜨리냐~?
이런 저런 잡답을 하며 집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통화를 계속한다.
나 : 사고싶으면 사
와잎 : 비싼데?
나 : 49000원 없어서 한달 생활이 매우 어려워지거나 가정에 위기가 닥치진 않으니까 사
와잎 : 사진에 여자가 안고있는거 보면 엄청 커!
나 : 어디 잠깐 보자.....
링크를 눌러서 사진을 보며 생각하길
'사라고 해서 사는 것 보다는 내가 결제해서 보내주는게 더 기분이 좋으려나?
이왕 사주는거 기분 좋게 가자~'
손이 바빠진다. 와이프가 상품 페이지 구경하는 동안 내가 더 빨리 결제해야지!
상품 누르고 선물하기 누르고, 선물포장 선택하고 메시지는 .....무난하게 [사랑해]
아니지 [사랑해♡] 하트를 넣어줘야 제맛이려나....
결제수단 빨리빨리 선택하고 결제버튼 빨리!
나 : 나 도착했어 끊는다아~!
말하기가 무섭게 뚝 끊고 시동을 끄고 잽싸게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뛰쳐들어간다.
'휴~ 완벽했다. 전화 끊자마자 선물이 도착하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청 좋아하는 얼굴이겠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시나....
꽃같이 환하게 웃으며 핸드폰 쳐다보고 날 쳐다보더니
에비츄다~~~~ 하고 좋아한다.
'2000원짜리 고속도로 통행료 때문에 오면서 꽤나 고민했었는데....네가 가지고 싶다니 몇만원도 쉽게 써지는구나
그래....돈 몇만원 그게 뭐 대수겠니....네가 그렇게 웃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써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