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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126139
    작성자 : 넷지니
    추천 : 59
    조회수 : 2730
    IP : 219.252.***.10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6/03/17 12:40:01
    원글작성시간 : 2006/03/17 10:31:02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6139 모바일
    [펌] WBC의 지배자 - 한국야구의 철학은 뭘까?
    자칭 최강 미국을 실력으로 사뿐하게 즈려밟아 준 다음, 김인식 감독은 한국야구의 철학이 뭐냐고 묻는 미국기자의 질문에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며 그저 우리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아직 많이 배우고 있다는 겸손한 대답을 한다. 우리가 볼땐 분명히 겸손한 대답이었지만 미국기자들에겐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불분명한 대답이었을 거다. 그리고 나도 정말로 궁금해졌다. 진짜루 한국야구 철학이 뭘까?

    미국 야구는 팬을 우선한다. 다시 말해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소리. 승리도 중요하지만 미국 감독 어느 누구도 본즈에게 희생번트를 대라고 지시할 감독은 없다. 설사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가리는 승부처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건 소비자인 팬들이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팬들은 시속 160Km의 광속구를 던지는 파워피처에 환호하고 그런 공을 하늘 저 편으로 까마득히 날려버리는 괴물같은 슬러거들에 열광한다. 랜디존슨과 배리본즈가 맞붙는데 감독이 고의사구를 지시하면 아마 관중들은 감독을 죽이려 할 거다. 진짜로 폭동이라도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일본 야구는 승부에 철저하다. 이들은 스몰볼이라고 불리는, 적의 작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치밀한 작전에 의한 야구를 펼친다. 따라서 기본기와 팀플레이가 강조된다. 정확하고 세밀한 분석은 기본이고 승리를 위해 각종 꼼수도 동원한다. 그렇기에 관중석에서 상대 포수의 싸인을 훔쳐보고 그걸 우리팀 선수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일본야구의 풍토 속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일본 야구만화의 한 장면을 보자. 주자가 베이스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흙을 파놓는다. 혹시라도 타구가 그쪽으로 날아오면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기 쉽게 만드는 거다. 그걸 눈치챈 수비수는 땅을 다시 고른다. 이게 실제 일본야구의 현실이든 아니든 스몰볼에 충실한 일본야구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역시 이웃 일본 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팬의 요구보다는 승부에 더 철저하다. 아무리 관중을 끌어모으는 스타플레이어라 하더라도 팀플레이를 외면하면 비난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야구가 일본식 스몰볼의 아류에 그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다. 국민성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한국 야구 선수들은 단순한 부속품이기를 거부한다. 뭐랄까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자꾸 불거져 나온다. 한번 흥이 나면, 그러니까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진짜 물불 안가리고 덤벼들지만 말이다.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우리나라 운동선수들 치고 감독에게 얻어터지지 않고 운동한 사람 있음 나와 봐라.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배우면서도 완전히 주눅들기는 커녕 진짜로 맘에 안들면 마구 개긴다. 김응용 감독은 해태시절 호랑이 감독으로 악명이 높았다. 성질이 불같아서 맘에 안들면 그 육중한 몸으로 길길이 날뛰고 툭하면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그런 감독 밑에서 해태 선수들이 주눅들어버렸으면 한국시리즈 불패신화가 생겨났을까?

    당시 해태타이거즈에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김응용 감독 앞에서 아예 같이 화를 내고 주전자를 걷어 차버리거나 방망이나 글러브를 집어던져버리거나 마운드에서 공을 안주고 감춰버리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래도 팀의 결속력은 최고였다. 중요한 경기가 되면 선수들이 알아서 몸을 날린다. 팀을 위해 진짜로 이를 악물고 몸이 부서져라 뛰고 끈질기게 상대팀을 물고 늘어진다. 프로야구 원년 팀들 가운데 완봉패를 가장 오랫동안 당하지 않았던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였다. 

    일본 야구에는 호시노처럼 카리스마 있는 감독은 있지만 이순철처럼 그에 대놓고 반항하는 선수는 없다. 일본 야구에 고의로 위협구를 던져대는 투수들은 많지만 이승엽같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의 머리를 향해 제대로 된 빈볼을 던지는 서승화같은 투수는 없다. 또 그렇게 빈볼 던졌다고 야구장에서 정말로 패싸움을 벌이는 일도 없다. 그저 흉내만 낼 뿐이다. 메이저에서 차별 받았으니 WBC 대회를 통해 설욕하겠다고 자국 언론에다 투덜거리는 이치로는 있지만 건방진 미국 메이저리그선수에게 대놓고 발차기를 날리는 박찬호는 없다. 

    이런 우리 선수들이 일단 흥이 나면 어깨가 으스러질 때까지 마운드에 선 불사조 박철순이 되고 한국시리즈에서 최강타선 삼성을 4게임 연속 막아낸 최동원 선수가 되고  대만과의 예선에서 앞뒤 생각않고 1루 베이스에 몸을 날린 김동주 선수가 되는 거다. 한번 흥이 붙으면 무서울 것 없이 내달리기 때문에 상대팀이 이런 기세를 타지 못하도록 꺾어버리는 것도 한국야구의 특징이다. 홈런 신기록을 향해 가는 이승엽을 걸러버리는 감독이 미국이나 일본에 존재할 수 있을까? 김재박 감독의 그 결정은 사실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미국은 소비자의 외면이 두려워서, 일본은 국민에게 왕따당할까 두려워서 절대 그런 짓은 못할 거다.

    한국 야구에는 일본야구의 스몰볼에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 살아있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고 억지로 꾸며지는 드라마가 아닌 각자의 개성이 부딪히고 융합하며 발하는 생생한 에너지가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나간다. 미국식 상업주의의 때가 덜 묻고 일본식  "혼의 야구"라는 집단주술적 수사에 짓눌리지도 않은 야구. 일단 동기부여가 이루어지면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걸 팀의 승리를 위해 바치는 순수함이 살아있는 야구. 이것이 한국야구만의 고유한 특징이 아닐까? 고로, 누가 딴지를 걸든가 말든가 나는 한국야구의 철학은 선수의 흥겨움을 바탕으로 승리의 흐름을 가져가는 "맥(脈)의 야구"라고 할란다. 

    - 오예~ (서프라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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