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닥 전문적이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군 시절 포반장 교육대에서 세뇌 교육 받은 기억+줏어온 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포병의 발전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일단 한국은 조선시대 화약무기가 도입된 이후로부터 화약무기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활을 즐겨쓰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함인데.
한반도 지형상 인구부양력이 뛰어난 편이긴 했으나, 옆 동네 황하강을 끼고 무한 생산하다가 황하강 지력이 떨어졌다구? 그럼 장강의 지력을 빨아먹어야지! 하면서 인구생산력의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 동네가 하필 옆동네라 한반도 거주민들에겐 몹시 심기가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북방민족들은 말타고 댕기면서 어딜 감히 정주민족 따위가! 하면서 자꾸만 때려댄 역사가 있는지라 필연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대부분 물량에서 밀리는 경향 혹은 존나 잘싸우는 놈들 오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투사무기의 발달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라 할수도 있을겁니다. 목숨이 귀한 처지니까요.
어찌됫든 서론은 사실 별로 필요없고 한국 포병의 시작은 매우 허접했습니다. 지금이야 105mm가 굴러다니면서 처리할 방법을 몰라 '그래 보병! 보병에게 선물로 주자!'하면서 짬처리해버리려는 105mm는 당시엔 귀하디 귀한 한국의 포병전력이었습니다.
M3 105mm 견인포-105mm지만 생김새가 요망하다.
심지어 현재 국군이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M2 시리즈도 아닌 공수부대나 해병대 화력지원용으로 경량화된 M3 견인포가 국군의 주력이었죠. M3는 M2보다 사거리가 더욱 짧은 6,5km로 박격포랑 별반 다를게 없는 사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국군은 이 m3 견인포로 죽을 힘을 다해 싸웠고 적의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김풍익 소령은 휘하 포대장과 1개 포반을 이끌고 직접사격을 통해 적 전차를 파괴시키기도 했습니다.
(김풍익 소령님의 이러한 전과는 한국 포병이 직접사격을 주특기로 매달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후 후속전차에게 바로 격파당했단건 외면할까요.)
그러나 말 그대로 공중투하나 상륙용으로 경량화가 순수한 목적이던 M3를 주력으로 쓸순 없는 법.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의 무기 투하가 시작됩니다.
이전 사진의 재탕 같지만 그건 기분 탓이다.
본격적으로 M2A1 견인포가 지원되기 시작했고 그때 당시만해도 사실 M2A1는 상당히 우수한 견인포였습니다. 11.5km는 그때 당시엔 후진 사거리가 아니었고 상당히 정밀한 포격에 쓸만한 화력, 적당한 무게는 한국군에겐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스펙이었습니다. 단지 그걸 21세기까지 써먹을 줄 몰라서 그랬지.
105미리 진화형..은 아니고 M114 155mm 견인포. 105mm가 보병 연대 지원이라면 155mm는 사단 전체를 지원하는 역활이었다.
8인치 견인포. 군단급 화력지원용도였다.
155mm와 8인치 포까지 들어오면서 한국군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엔군은 미국이 당시 구사하던 포병전력들을 모두 한국에 전개하게 되죠.
이렇듯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면서 국군은 정말 빠른 속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됩니다. 고작 M3견인포로 시작했던 한국 포병은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에게 다양한 무기들을 양도받게 되는데 개전 초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죠.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군은 미군의 시스템을 대거 도입하는데,1개 보병 대대= 1개 포대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던 것을. 한국군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보병과 포병의 구성비가 3:1를 유지하게 됩니다. 사실 이는 엄청난 포병 숫자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었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어..음.. 들고가기 귀찮으니까 그냥 너 가져 하고 양도한 사실 버린 무기도 제법 많고 냉전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무기달라고 찡찡거리는 한국에게 제법 잘 쥐여줬기 때문에 한국의 포병숫자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렇듯 사실 한국 포병의 시작은 전부 미군에게 양도받은 것이었고 자국 무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습니다만, 사실 갓 해방된 국가에게 무기 개발이란 것은 너무나 어려운 난제였죠. 그렇기에 한국의 무기개발의 시작은 미국제 카피버전을 시작으로 합니다.
우선 시작된 것은 105mm개발이었는데 나름 반공을 국시로 삼고 빨갱이라 하면 ㅂㄷㅂㄷ거리던 박정희는 50년도 60년도에 받은 미국제 무기들이 슬슬 고철덩어리가 되어가는 것과 예비군을 대거 편성했지만 포병 화력을 쥐여줄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105mm기술을 미국에게 달라고 쫄라대기 시작합니다. 물론 미국은 '니들 주제에?? ㅋㅋㅋㅋㅋㅋ'했지만요.
그러나 그때 한국은 까면 된다라는 시절이었고 공돌이를 갈아넣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있던 105미리 화포와 여기저기 루트를 통해 구해온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설계도면을 쥐여주고 105mm만들렴. 했고 한국의 공돌이들은 제대로 된 설계도와 청사진도 없이 오로지 실물을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카피버전 무기들을 생산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이 최초의 한국제 포병 무기의 탄생이죠.
물론 카피버전은 제대로 된 설계를 통해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이는 미국의 호기심과 관심을 충분히 자극시킬만한 소재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쑈부를 치기 시작하는데
-'니들이 만든거 존나 후짐. 우리나라였으면 이런거 쓰지도 못하게 만들었겠지만 니들이 이런걸 만들어낸걸 보니 새삼 놀랍네. 좋아 니네한테 기술전달 해줌. 어설프게 짝퉁 찍지말라구. 그리고 니들 주제에 방위산업 한다고 깝치지 말고 우리가 잘해줄테니까 잘 따라와라 ㅇㅋ?'-
라는 골자로 미국에서의 기술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105mm와 155mm 견인포가 한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는 이후 한국의 무기 개발에 미국이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지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만, 뭐 견인포 기술이라곤 0에서부터 시작했던 한국에겐 미국의 기술지원은 이후 한국형 무기 생산에 기틀이 됩니다. 본래 공짜로 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형 포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M198 155mm 견인포가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M114는 지나치게 노후화된 모델이었고 미군은 이를 교체하기 위해 M198을 개발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따까리 한국은 이번엔 미제를 도입하길 거부하고 한국형 신형 견인포를 생산하고자하는 당찬 목표를 가지고 개발에 들어갑니다.
귀찮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