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 기독교가 흥하면서 신학과 과학,철학이 하나로 통합되어서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보고 지구가 평평하다는 과학적 증명과 철학적 증명을 모두 방출했다가
천문학의 발달로 깨져버리고
그 이후 신학과 철학도 분리되면서 더 이상 신학은 거의 발전 가능성 없는 학문이 되어버렸죠.
학자들이 학문을 한다기보다 종교인이 논리적인 구상을 어떻게든 펴내려는 학문 정도로 여겨지죠.
성경을 신화가 아닌 단군 신화처럼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호랑이부족과 곰부족이 싸워 곰부족이 이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부분은 ~~하고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신학이라기보단 인류학자에 가깝죠.
현재 철학은...
동양철학은 진시황 분서갱유 사건 때 거의 반죽음 상태였고...
양명학과 실학을 끝으로 제국주의 사회에서 종말을 선고한 듯 보이고
서양철학의 끝은 홀로코스트를 불러일으키면서 진리에 탐구를 종결시키고 생철학으로 넘어왔는데
반철학, 생철학도 후기구조주의에서 슬슬 끝나가는 듯 보이고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철학자라고 해봤자
대륙에는 지젝, 바디우, 아감벤, 알튀세르, 보드리야르 등이 있고
영미에는 존 롤스, 피터 싱어, 마이클 센델, 촘스키(언어학자 넣어도 되나요? 근데 진짜 촘스키 못 넣으면 안 되는데 ㅠㅠ)
인데 딱히 누가 주류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대륙철학자들은 거의 학계에서 지탄을 받고
영미철학은 좀 더 공부해야겠지만 아직 뚜렷한 방향이 나온 건 아니고..
행복, 정의, 공동체, 자유 사이에서 정의된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 철학이 완전하다고 볼 수 없지만
자본에 밀리고 대중에게 외면받고 뚜렷한 철학자도 나오지 않는 이 상황에서
철학은 이미 죽었고 오직 선고받는 날짜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자유 사상이야말로 자유를 막는 안전장치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적 방식에 따라 노예의 정신적 해방을 도모하는 것이 노예 해방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에게 과연 자유롭게 되는 걸 원하는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도록 가르치라.
그러면 그는 스스로 자유로워 지지 않을 것이다.
- 체스터튼
철학은 주체의 직접적인 전환이다.
그것은 일종의 근본적 변환, 실존의 완전한 전복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철학은 그 능력이 절대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매우 가깝고,
집중화된 조직의 강제는 없지만 정치에 매우 가깝고,
예술이 갖는 감각적인 능력은 없지만 예술적 창조에 매우 가깝고,
수학의 형식주의 또는 물리학의 경험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이 없음에도 과학적 인식에 매우 가깝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학교, 수련, 전수와 교수들에 속해 있는 교과목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 자유롭게 건네는 것이다.
아테네 거리에서 젊이들에게 말했던 소크라테스처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편지를 썼던 데카르트 처럼,
<고백>을 썼던 장자크 루소 처럼, 또는 니체의 시들, 장-폴 사르트르의 소설과 희곡처럼,
투사를 위한 철학 - 알랭 바디우
영구 실업자군 이라는 세 번째 범주는 그와 정반대되는 것,
즉 교육은 받았지만 아무런 취업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보충해야 한다.
한 세대 전체의 학생이 거의 졸업장에 상응하는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규모 항의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간극을 해결하는 최악의 방법은 교육을 직접적으로 시장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 다름 아니라 시장의 역동성 자체가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을 '더 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제임슨은 한발 더 나아간다. 새로운 구조적 실업을 착취의 한 형태로 특징짓는다.
피착취자들은 임금 노동의 자본주의적 회오리에 휘말리는 것을 구조적으로 금지 당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피착취자는 생산 또는 '창조'하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창조'하지 못하도록 운명 지어진 자들이기도 하다.
- 너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너의 잉여가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아.
자본주의적 회로는 노동자들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예비군을 양성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라캉 카페> - 슬라보예 지젝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 <1984> 조지 오웰
오늘날의 공산주의 이념이 어떤 역사적 정세와 마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젝은 낙관적이지 않다.
역사는 우리 편이 아니며, 오히려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젝은 역설적으로 순수한 주의주의를 요청한다.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수한 주의주의, 다시 말해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다."
과거의 혁명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문제는 혁명적 주체였던 노동계급의 실패에 있었지만,
새로운 혁명적 행위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이를 가리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라는 구호다.
<라캉과 지젝> - 김석 외 다수
가장 비참하고 가장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의 인간을 보려면 울타리도 없는 초원지대나 숲 속 신개척지의 통나무집이 아니라 한 뼘의 땅을 소유해도 큰 재산이 되는 대도시에 가면된다.
진보와 빈곤 - 헨리 조지
그들은 당신에게 말하지. '주어진' 것을 따라라.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것이 아니야.
'빼앗긴' 것이지. 그리고 당신들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빼앗길' 거야.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일단 당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느끼는 것과 느끼지 못한는 것,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1984>- 조지 오웰
가령 술주정은 법이 간섭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술에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한 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법적 제약 아래에 놓인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뒤에 또 다시 주정을 부린다면 그는 형벌을 받아야 하고,
그 뒤에 또 다시 같은 상태로 죄를 늘린다면,
그 죄 때문에 그가 받아야 할 벌은 더욱 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