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음식 전문 블로그를 운영했었던 때가 있었다. 혹여 회사에서 짤리면 음식쪽 포트폴리오라도 가져가볼까 하는 얄팍한 술수였다. 방문자도 꽤 모였었는데, 하다보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접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음식 포스팅을 잘 안하는 편이다.
수 년간 음식 포스팅을 해봤지만, 아무리 글을 써봐야 음식맛이 잘 전해질리 없다. 각자 음식을 좋아하는 취향이 다른데다가, 주인장 컨디션에 따라서 음식 맛이 변하기도 하고, 내가 음식을 먹는 상황에 따라서 또 음식맛이 다른 경향도 있다.
가장 골치아픈건, 입으로 맛있는 음식은 대체로 보기에 그다지 좋지 않다. 보통 소문난 맛집은 음식을 꾸밀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더 팔기에 바쁘다.
반대로 대부분의 음식 검색자들은 '맛'보다는 '색'과 '분위기' '디자인'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짜 맛있는 집. 별 다섯개 만점에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집의 포스팅은 오히려 댓글이 적었고, 반대로 음식 맛은 개판인데 조명이 괜찮았던 집들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집이 바로 은행골이다. 이 집은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을 내는 초밥집이다. 다른 분들에게 소개시켜 줄 때 항상 "인생을 바꾸는 초밥 집"이라는 말을 단다. 이 집에서 한 번 초밥을 먹고 나면 그 동안 먹었던 초밥들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부터 초밥을 먹을 때 마다 이 집의 초밥을 그리워 하게 되는 초밥집이다.
이 집의 초밥은 무엇보다도 '밥'맛이 신기하다. 약간 찰진듯 하면서도 뭔가 독특한 식재료를 이용해 지어낸듯한 이 집의 밥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오른 수준이다. 참기름을 뿌리지 않고, 참기름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데도 참기름급의 고소함을 갖고 있고, 식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데도 약간의 감칠맛이 도는 밥이다. 여기에 참치를 얹으면 도무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 난다.
입안에서 참치의 약간 비릿한 향기가 멤돌면서 참치살이 녹아 들어가고, 밥알의 끈끈함이 함께 어우려 지면서 진한 맛을 남긴다.
첫 맛은 연한 간장의 맛, 씹으면 씹을수록 밥알의 향기가 자리를 채우고 넘기고 나면 진한 참치향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정말 안타까운건 이 집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거다. 그리 크게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다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자리도 도로가에서 한참을 더 들어간 곳에 잡아서 처음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은 둘째 치고 이 곳에서 다년간 살던 사람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이 집에서 음식을 시키면, 이런 형태로 초밥이 튀어 나오는데
그림만 봐서는 대체 이게 장인의 초밥인지 아니면 어느 와갤러가 초밥을 연성한 것인지 알 턱이 없다.
덕분에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보다,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의 비중이 많고.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게를 방문한다. 아마도 입소문의 위력일것 같다.
은행골은 다년간 최고 수준의 초밥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다. 식도락가들이 방문하는 만큼 주인장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게 아닐까.
아무튼 확신하는건 이 집 초밥을 단 한번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단 한번만 먹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모시고 갈 곳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은행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