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와_조우하는_신
눈을 뜨는 와중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언제 눈을 감았던지였다. 조심스레 눈을 뜨자 미처 바닥으로 내려앉기도 전이었다. 온통 하얗게 부서지는 공간 한가운데에 저 혼자 검게 가라앉아있는 여성은 한 눈에 가득히 들어왔다. 자신이 익숙한 대로 몸을 띄운 채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몸 주위엔 그의 머리색처럼 빛나는 금빛의 나비 몇이 그를 감싸고 돌고 있었다. 하얗게 바랜 백발의 여성은 지금까지 그래왔던대로 깊은 물색의 눈동자로 그를 맞이했다. 그 입술매엔 미소가 방긋이 걸려있었다.
"소울 스트림에 어서 오세요."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이었다. 그는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아 똑바로 선 뒤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는 침묵만을 지켰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을 리가 없었다. 아직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아보이는 그를 나오는 잠시 내버려두기로 했다. 찬찬히 그를 보던 나오는 아튼 시미니가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를 만나러오는 대부분의 밀레시안과 달리 그는 특이해보이는 의복을 차려입고서 나타난 것이다. 온통 흰색. 단촐해보이는 그 옷은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정성이 듬뿍 배어 있었다. 아마 저 옷을 만든 이는 입을 이를 위해 몇달을 꼬박 샜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은 자신의 솜씨가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자신의 검은 옷에 비하면 저 옷은 타인을 위한 마음이 함뿍 배여있었다. 사랑받던 이였겠지. 반짝거리는 금빛 가루를 끊임없이 뿌리며 주위를 떠도는 나비는 그의 어깨에 앉기도 하고, 또 나오의 어깨에 앉기도 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일까? 어쩜 이렇게 경계심이 없담. 나오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온 나비를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문득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가느다란 금실같은 머리칼 아래로 어두운 색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긴 어디입니까?"
"소울 스트림이랍니다."
"여긴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나오는 조용히 지팡이를 바닥에 휘저었다. 그 풀에 어깨 위에 앉아있던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갔다. 가볍게 긁히는 소리를 내며 나오의 지팡이는 동그랗게 바닥을 오려냈다. 나오의 지팡이가 닿은 곳을 시작으로 점차 바닥이 투명하게 변해간다. 곧 발밑 가득히 에린의 풍광이 흘러넘쳤다.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과 숨막히게 치열한 전장이 번갈아 흘러간다. 그 광경에 시선이 완전히 빼앗긴 청년은 금방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아 아래를 살펴볼 기세였다.
"여신 모리안의 이름으로. 당신이 이전의 장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여기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 가호 아래 에린으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하시는 곳이 소울 스트림입니다. 저는 그 안내자, 나오 마리오타 프라데이리."
바닥을 향해 힘있게 지팡이를 내려치자 또다시 그 내려친 부분부터 바닥이 점점히 번져올라와 이윽고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고개를 든 청년과 눈이 마주친 나오는 조금 놀랐다. 그의 눈동자에는 새로운 밀레시안이 대개 보이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경외감, 신비. 그런 것을 밀어내고 담겨있는 것은 후회와 슬픔이었다. 깊은 절망감에 천천히 물들어가던 얼굴은 기어코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뒷걸음질치며 제 얼굴을 가리던 청년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눈을 가린 손바닥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물과 일그러진 입매는 감추지 못했다.
"나는, 결국........ 내.....내 백성들을..아이들을....지키지 못했습니까.....?"
절망감에 온 몸을 떠는 청년에게 나오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울음으로 먹먹하게 막혀가는 목소리는 곧 쉰소리로 뒤바뀌었다. 더없이 중했을 자신의 신민들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세계로까지 밀려나와버린 신에게 대리자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말을 건네야할지 나오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안내자여."
"나오라고 부르세요."
"...나오."
"그냥 삶을 사시면 되요. 당신을 위한 삶을요."
"신을 잃은...나를 잃은 내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절절한 그 말에 나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당신의 그 '힘'이 에린에 내려가 유지되기도 어려울거에요, 신이여. 설령 당신이 패배하여 밀려왔다고 해도 그 힘은 너무 강대해요. 지워내는 것조차 힘들테지요."
"어려울 따름이지, 안되는건 아니란건가요."
"대답해드리기가 무척 어려워요. 하지만 당신이 새로운 힘을 키울 수 있을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거에요."
"시간이 얼마나 흘러도 괜찮습니다. 나는 내 백성을 지키러 돌아갑니다."
그가 에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뒤,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은 자신이 입은 옷 그대로 에린으로 내려가는 것 뿐이었다. 자신이 내어준 소개장을 손에 꽉 쥐고 아래로, 아래로. 붉어진 눈가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인사한 '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나오는 정말로 몰랐다. 유난히도 천천히 멀어지는듯이 느껴지는 그 등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나오는 에린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자신의 어깨에 금빛 가루가 흠뻑 묻어있는 것을 보고 나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만큼 나는 얼마나 무력한지.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갓태어난 밀레시안에게 축성해주는 것 뿐이었다.
새로운 밀레시안의 앞길에 축복을.
나오는 진심으로 그것을 빌었다.
어째 절망이 찐득찐득 묻어나네요........................................................................................................... 아쿨 신청하신 신청자님은......................제가 기력보충 좀 하고 써오겠습니다..................맘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갤러헤드님................참.....................키홀은 빼먹었습니다..키홀 때문에 아튼 시미니로 쓸까 하다가 그럼 이야기가 너무 드륵드륵 꼬여서..............좋게봐주세요...나눔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