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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12215
    작성자 : 방랑객사
    추천 : 0
    조회수 : 862
    IP : 59.17.***.82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4/03/10 18:06:32
    http://todayhumor.com/?readers_12215 모바일
    저도 소설을 써봤어요. 제목은 없어요. 봐주세요!
    소설을 써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지만.. 백수라 할 게 없어서 열심히 써봤어요. 글을 짤막짤막하게 나눠 총 12장으로 구성했구요(원래는 7장으로 하려 했는데, 내용 조절이 안 돼서..ㅠㅠ). 종교, 정치, 언론, 의료, 교육계를 조금씩 맛만 보는 식으로 건드렸어요. 일종의 사회고발 소설이라고 할까요.

    블로그에 올리긴 했는데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리 저 혼자 즐겁게 써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서운할 것 같아 제가 따랑하는 오유에 올려봐요. 
    전 개인적으로 글 많은 걸 어지러워하는 타입인데.. 이건 짧은 내용 여러개로 돼있으니 읽으실 때 조금은 편하지 않으실까 싶네요 홍홍



    1장 잿빛

    봄이 됐는데도 나뭇가지는 앙상하기만 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외투로 자신의 몸을 감싼다. 겨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겨울이라 생각해서일까.

     

    이 커피가 식어갈수록 누군가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에너지는 보존된다는데, 이 따뜻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창가로 스며드는 북서풍의 공기가 그나마 남아있던 컵의 온기를 앗아간다. 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자신도 차가워질 것만 같아, 그는 커피를 남긴 채 자리를 벗어났다.

     

    거리는 한산했다. 비가 올듯 말듯한 우중충한 날씨에 도로는 텅 비어있다. 멀리서 앰뷸런스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그의 시선이 도롯가에서 리어카를 끌고 있는 할머니에게 향했다. 교통정리를 하던 공무원이 할머니가 끌던 리어카를 반대 방향으로 민다. 곧 할머니와 공무원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다툼은 몇초 지나지 않아 공무원의 승리로 끝났다. 그가 안전봉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리어카를 도로 바깥으로 치우고, 그 공무원은 앰뷸런스와 소방차가 무사히 도로를 지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했다.

     

    도로의 또 다른 편에서는 사람들이 거리에 비치된 TV를 통해 새로이 통과된 법안을 보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최근 여야가 '뇌사자장기이식등절차에관한법률'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이 법률로 인해 이제 의사의 환자에 대한 '뇌사판정'이 있을 시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의사는 환자의 장기를 적출할 수 있게 된다. 이 법률 제1'목적'에 의하면, 이러한 특별법은 증가하는 뇌사자의 수와 이식에 필요한 장기의 효율적인 확보를 위한 합목적적인 이유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그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미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래왔듯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로 그저 그들을 지나쳐갔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를 만나고 싶은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그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는 서둘러 그녀의 병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무척이나 열정적인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점점 근육이 쇠퇴하더니, 이제는 교단에 서기는 커녕 혼자서 걸음을 뗄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의사는 '고치기 힘든 희귀병'이라고만 말을 할 뿐, 다른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 치료를 받으면 나을 가능성이 있다고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런 의사의 말을 그녀는 맹신했다. 그녀는 의사가 가르쳐준 것이니 틀림없을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오늘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창백해보였다. 아마 상태가 더욱 악화된 듯했다. 그녀는 바깥 소식을 창문으로밖에 접할 수 없기에, 나는 그녀를 방문할 때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해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교통공무원과 새로운 법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늘 그렇듯, 그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교통공무원은... 지켜야 할 공공의 이익이 할머니의 개인적인 이익보다 컸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걸요. 그리고 그 법률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것이니 옳지 않겠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녀는 말이 끝날 때면 항상 배시시 웃었고,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답답하고 슬펐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만약 그 웃음이 멈춘다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2장 양심

     

    "YDNTN라는 병입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학계에 보고된 적은 있고 드물긴 한데... 그다지 심각한 병은 아닙니다. , 교사이시니 치료비는 걱정마시고요. 푹 쉬시고 좋은 음식 잘 드시면 됩니다. 당분간은 몸을 움직이시는 게 힘들 테니, 화장실을 가고 싶으시다거나 하면 여기 빨간 버튼을 누르시면 저희 간호사가 올 겁니다. 푹 쉬세요. 영양분 섭취 잘 하시구요."

     

    그녀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YDNTN이라는 병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증상이 무엇인지는 들었으면 했다. 하지만 증상에 대해 듣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의사는 이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으니 믿고 맡기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 있으면 그가 올 텐데, 만약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이 급해지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간호사부터 부르기로 했다.

     

    병원은 길게 뻗어있는 좁은 복도와 하얗게 칠해진 벽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조화가 담겨있는 화분과 추상화가 있었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바삐 움직였다. 그녀를 담당하는 의사는 복잡한 길목을 지나 병원에서 가장 큰 문 앞에 도착했다.

     

    '병원장실'

     

    병원장은 의사들을 불러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기를 즐겨했다. 오늘 의사를 부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의 책상에는 병원장 본인만 볼 수 있도록 새겨놓은 글이 있었다. 병원장은 그에게 그 글귀를 읽어보라고 했다.

     

    "돈이 없는 자가 오거든 최대한 빨리 치료하고, 돈이 많은 자가 오거든 최대한 느리게 치료하라."

     

    병원장은 넉살좋게 웃으며 의사의 등을 두드렸다. 잘하고 있다는 신호인가.

     

    "자네, 교사를 입원시켰다면서."

     

    "."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네. 혹시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야."

     

    "."

     

    "어차피 그 교사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치료하는 거고, 우리는 나랏돈을 받으면서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

     

    "."

     

    ", 그런데 자네. 혹시 이번에 제정된 '뇌사자장기이식등절차에관한법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

     

    "잘 생각해보게.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하는 거야."

     

    "..."

     

    "실수는 있어서는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이 병원에서 병원장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로 과장급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곤 했다. 자신도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저번의 다른 펠로우는 과실로 사람을 죽였는데도 해외로 보내 교수를 시켰으니, 시키는 것만 들으면 자신도 못해도 조교수는 시켜줄 터였다. 돈없는 사람은 일찍 고쳐주고 돈있는 사람은 느리게 고쳐주라는 가르침을 새기고 이번 건만 잘 해결하자고 의사는 다짐했다. 양심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있는 거니까.

     

    3장 만남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인천에 있는 한 교회에서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를 길러주었던 고아원 원장님의 조언을 따라 고아원에 몇 번 기부를 하러 온 적이 있던 목사님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도가 4,000명이나 되는 교회라 그런지 고아원에서 예배를 드릴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조명이 밝았다 어두웠다를 반복하고, 연예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성가대석을 가득 메운 것이 신기했다. 콘서트장을 가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예뻤던 여자가 특송을 부른다며 무대 가운데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였다. 핀조명이 단 한 사람만을 비추었고,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공기 중의 소리를 잡아먹고 증식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마 자신 몸 속의 장기들이 내는 소리마저 잡아먹혀도 행복했으리라. 이미 예배당 내의 신도들은 마음 속으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내 생명 제단 위에 드리니 주 영광 위해 사용하소서...' 이 순간만큼은 거룩하게 죽을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녀는 새로 온 신도들을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맞이했다. 교회에는 새 신도가 교회에 적응할 때까지 돌봐주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녀는 그 시스템에 따라 그를 돌봐주었다. 교회 근처에 있는 교육대학교의 영향때문인지 교회에는 교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녀도 교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교사답게 그가 모르는 것을 잘 가르치고, 가끔씩은 교회 밖에서 만나 식사도 같이 했다. 인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그에게 그녀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언제나 남자가 붙어있었다. 만나는 사이는 아닌 듯했지만, 남자들은 그녀에게 흑심이 있어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 완벽했다. 그녀를 여성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때를 묻히는 것만 같았다.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에게 그녀는 하늘 높이 떠있는 천사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안색이 안 좋아지고, 수업시간에 주저앉아버리기도 했다. 몸살기운이 있나보다 싶어 병가를 내고 쉬어보기도 했지만, 증상은 더욱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입원을 했다. 사람들은 병명이 무엇인지도 묻지 않고 앞다투어 병문안을 왔다. 그녀가 입원한 방은 금세 꽃다발과 음료수로 가득찼고, 하루에도 세 번씩 기도팀이 와서 시끄럽게 기도를 하고 가는 바람에 몇몇 환자는 방을 옮기기도 했다. 어떤 남자들은 면회 시간이 끝나도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그녀는 무척 야위어갔다. 몸이 비쩍 마르고, 입술은 가뭄에 시달린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일어날 힘이 없다보니 계속 누워있으면서 목에 가래가 끼기 시작했고, 머리에 비듬도 생겼다. 병문안의 횟수도 부쩍 줄어들었다. 꽃은 모두 시들었고, 시끌벅적했던 입원실은 텔레비전 소리가 차지했다.

     

    세 달째 됐을 때,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건 그 혼자였다. 그는 하루 한 번씩,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그녀를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웃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왜 계속 저를 만나러 오세요?"

     

    "? 왜냐니요.. 제가 신세를 진 게 많아서요."

     

    "신세를 갚으러 오시는 거라고요?"

     

    ", 꼭 그렇다기 보단,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아서요."

     

    "저랑 있으면 불편하시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가장 행복할 때가 병문안을 올 때인 걸요."

     

    "...고마워요. 그래도 여긴 의사 선생님도 계시고, 간호사 분들도 자주 저를 만나러 오시니까 괜찮아요. 그것보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 공부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해서요."

     

    "아녜요. 공부야 잘 시간 아껴가면서 하면 되고, 의사나 간호사 분들은 다른 환자들도 챙겨야 하는 걸요. 저는 괜찮아요."

     

    "사람에게 교육만큼 중요한 건 없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제부터 가끔 들러서 소식만 전해주셔도 좋으니, 계속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가끔 단호하게 말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교육에 관한 것일 때에는 특히 심했다. 그에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조언이 교육만능주의로 들릴 때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과연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이 단지 '이해 불가능한' 것일 뿐 틀리지는 않았다고 보았고, 그녀를 '신뢰하는' 것으로 고민을 넘겼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그녀의 몸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다. 병원에서는 여전히 링겔과 침대, 죽과 재활치료만 제공할 뿐 특별한 치료행위는 보이지 않았다.

     

    4장 밀회

     

    "김의원님, 저번에 말씀드린 법률 말입니다만."

     

    "박의원님, 걱정 하들 마세요. 우리가 이런 일 하는 거 뭐 처음입니까? 박의원님은 사민당측 의원들만 신경쓰시면 돼요."

     

    "사민당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건은 김의원님만 국수당에서 잘 말씀하시면 해결 될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병원장만 수십 명입니다. 안 그래도 우리 당이 병원 관련 법률은 다 접수하고 있는 마당에, 이번 건처럼 확실하게 돈이 되는 법률은 마다할 사람이 없어요. 특히 이거 통과시키면서 우리도 장기이식대기자 1순위에 올려주겠다고 하니, 건강때문에 정치 그만두려는 사람들도 이거 하나만 어떻게든 통과시키려 거의 미쳐있어요. 그러니 누군들 안 하려 하겠습니까? 하하."

     

    "우리는 우리측 언론사에 연락해서 이 법률에 대한 방송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근데, 박의원님. 혹시 종교쪽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그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수도권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미팅이 다 끝났어요. 세금 감면하고 뒤 봐주는 대가로 그 사람들도 이 법률에 대해 문제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몇몇 목사들은 글쎄, 이게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목사님, 목사님이나 목사님의 가족이 몸이 아파 장기이식을 필요로 할 때, 제가 가장 신선한 장기로 금방 구해드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라고 하니 글쎄 다들 입술을 씰룩이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사람 살리는 일이라고 명분까지 줬으니, 아무리 그 사람들이 무식하다 해도 이쯤되면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시 박의원님이십니다. 처음엔 사민당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에요. 그나저나, 종교인들이 그렇게 타락하니 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인들이 다 그렇지요, . 자기들 표 많이 가지고 있다고 우리를 들었다놨다 하면서도, 맛있는 먹이 조금 던져주면 개처럼 달려들어 서로 먹으려 한다니까요. 그러면서 관용이니 사랑이니 말하고 다니니..."

     

    "오늘은 이만 가볼까요. 조금있다 DVB 방송국장을 만나기로 해서요. 오늘 뇌사자 법률 관련 다큐를 제작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우리야 좋은 일 하자고 이렇게 법률 만드는 거고, 그 사람들이 우리의 의도를 이상하게 해석할까 그게 신경쓰일 뿐이지요. 여튼 김의원님께서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시니 저도 더욱 힘을 내야 겠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말이지요."

     

    ", 우리 더 힘내봅시다."

     

    경기도의 외딴 식당에서 김신정 국회의원과 박소진 국회의원은 서로 양 손을 마주 잡았다. 평소같으면 기자들을 불러 '국수당 대표와 사민당 대표의 만남, 대 통합의 길 열리나'라는 식으로 기사를 내 달라고 했겠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둘의 회동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온기가 없는 날씨는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5장 유착

     

    김신정이 DVB 방송국에 다다르자 방송국장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평소같으면 기자들을 시켜 플래시나 눈이 멀 정도로 터뜨리게 했을 방송국장이 친히 문 앞까지 나오고, 게다가 뒷문까지 열어주다니. 김신정은 방송국장의 음흉한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일단 무기를 갖고 있는 건 방송국장이다. 마음같아선 저번에 같이 골프를 쳤던 검찰청장에게 부탁해 방송국장을 털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자신의 위신만 떨어지고 오히려 역공격도 당할 것 같아 꾹 참기로 했다. 적어도 다큐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를 들을 때까지는 말이다.

     

    방송국장은 건물 3층 끝에 있는 국장실로 향했다. 김신정이 즐겨 마시는 캐모마일 차를 내온 후, 방송국장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서 이 다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그러니까, 국회의원님께서 추진하신 이 법률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 것을 물으시는 것이라면, 저는 우리나라가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그 법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뇌사자에게 들어가는 의료 비용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그건 의료행위라고 보기도 힘들지요. 애초에 치료라는 게 이루어지지 않지 않습니까. 가족은 막대한 비용을 들어가며 뇌사자가 스스로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하고, 직장 생활에도 무리가 가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족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건 무리입니다. 잔인하기까지 하고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을 통해 뇌사자의 장기로 다른 아픈 사람들을 살리는 게 바람직하지요."

     

    "..."

     

    방송국장은 잠시 침묵했다. 양 손에 깍지를 끼워 턱을 받치고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툭툭 건드리더니, 김신정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박소진 국회의원님과 경기도에서 나눈 대화도 이런 내용이었습니까?"

     

    이번엔 김신정이 침묵했다. 갑자기 경기도가 왜 나왔을까. 그건 비밀이었는데. 박소진이 배신했나. 박소진이라면 이 법률로 내 정치생명을 끊으려 할 수도 있다. 일단 모르는 척을 해볼까. 아니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만만해보일 뿐이다. 대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식당에 감청기가 붙어있었을 확률이 높다. 기계는 정확하니까. 하지만 그건 불법이고, 그걸 무기로 타협을 할 수 있다. 만약 대화 내용을 자세히 모른다면, 박소진이 배신했을 거였다. 그러면 난 일단 잡아떼고 나중에 역공을 하면 된다.

     

    "박소진 국회의원과 경기도에서 만나긴 했습니다만,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내용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방송국장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자기가 기싸움에서 이겼다는 표시였다. 방송국장은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다큐를 제작하면서 두분의 대화 내용도 다큐에 넣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직 제작진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분명 좋은 자극이 될 겁니다. 양 당 대표가 국가를 생각하며 특정 법안과 종교계의 반응에 대해 비밀 회담을 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말입니다."

     

    방송국장의 말만으로는 그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비밀을 잡고 있다는 눈치였고, 종교계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박소진이 배신한 건 아닌 게 분명했다. 그 이야기가 나오면 직격탄을 맞을 사람은 김신정이 아닌 박소진이었다. 그렇다면 감청기인가. 일단은 약점을 잡힌 시늉을 하고, 뒤에서 검찰청장을 통해 수사를 하면 될 터였다. 일단은 양보하자고 결심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저 지금처럼만 있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김신정 국회의원님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고요."

     

    김신정은 방송국장이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의 약점을 잡았으면 자신에게 위기가 오기 전까지 그것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어설프게 약점을 잡았다간 오히려 역공을 당하기 일쑤다. 방송국장은 일종의 보험이라도 드는 셈 쳐서 자신의 약점을 잡았다는 신호를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이득이 없고 손해만 가득한 관계를 김신정이 용납할 리 없었다. 그때 방송국장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원하신다면 이번 법률, 여론은 제가 맡겠습니다."

     

    "여론을 맡으시겠다고요?"

     

    "DVB와 뜻을 같이 하는 방송사들은 모두 국회의원님의 법안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솔직히 말해 DVB의 입장에서는 저를 들고 흔드는 게 시청률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더 큰 선을 위해서..겠지요."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 방송국장에게도 이익이다. 김신정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이 할 일을 가지고 자신에게 생색을 내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 해도 이번 기회에는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번 셈이었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방송국장의 약점을 쥐면 자신의 승리였다.

     

    6장 설교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있는 말씀이 바로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개미만도 못한 존재를 살리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그 시뻘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은! 살갗이 찢어지고! 몸의 모든 피가 빠져나오고! 창에 찔리고.. 팔목과 발목에 대못이 박히고... 몸에 물이 없어서 눈물도 안 나와요... 그렇게.. 개미만도 못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처음엔 격렬했던 목사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5,000평이 넘는 예배당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목소리가 침묵으로 변했다. 군데군데 목사를 따라 흐느끼는 성도들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침통해하는 청년들은 없는 눈물을 쥐어짜는 듯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과 똑같이 눈물을 흘렸을 그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신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불안했다. 마음에 병이 생기지 않고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피곤한 나머지 예배에 집중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병실에 누워 말도 못하고, 간신히 누워만 있는 우리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사랑받아야 할 존재인데!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그런 핍박을 당하셨는데! 우리의 형제들은 단지 뇌가 죽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바람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곁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 바로 그거 하나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로 그들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께 보내고, 이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파 힘든 사람들을 찾아 돕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요,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배당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무대의 희미한 조명만이 남아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언어라기보다는 그저 이상한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뇌사자를 기계로 생명 유지하는 것은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고, 장기가 망가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해서 생명 유지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가. 뇌사자는 자신이 죽기를 원할까. 아니, 생각을 못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나. 그래도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은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을 못하면 인간이 아닐까.

     

    예배가 끝나고 그는 목사와 면담을 했다. 그는 목사에게 뇌사자가 죽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목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뇌가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면 10명 중 10명 모두 천국으로 가고 싶어할 겁니다. 그나저나, 그녀는 잘 지내고 있나요? 요즘 심방때문에 정신이 없어 병문안을 못 가봤네요. 제가 듣기로 병문안을 꽤 자주 간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부쩍 야위어 가고 생기가 없어보인다고 말하자, 목사는 입원이 원래 다 그런 거라며 퇴원해서 몸조리만 잘하면 금방 예쁜 얼굴로 다시 돌아올 거라 말했다.

     

    7장 다른 시각

     

    국장님, FPB에서 8시 뉴스에 뇌사자장기이식등절차에관한법률에 대해 특종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 무슨 내용인데?”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이 법률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과 이 법률이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위배된다는 분석이 그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게 뭘 특종이라고. 이번에 시위자들 정면에서 찍은 장면 있지? 사람 제일 적게 나온 거 골라놓고, 법무팀한테 연락해서 자기결정권이니 뭐니 그런 거 전혀 해당 안 되게끔 분석해놓으라 그래. 불법시위라는 거 부각시키고. 그리고 이번에 물가인상에 관한 뉴스를 앞쪽에 배치하고. 물가인상 다음에는 외국 투자기업이 우리나라 투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 거 찾아서 쓰고. 무슨 말인지 알지?”

     

    , 국장님.”

     

    자네도 알겠지만, 정의보다 급한 건 그날 먹을 쌀이야. 그렇다고 FPB가 정의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 그놈들은 아직도 Fool’s Paradise나 꿈꾸는 놈들이니까. 그런 놈들의 정의는 유토피아에서나 이루라고 해.”

     

    , 국장님.”

     

    FPB보도국은 벌써부터 잔치 분위기였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을 추산해보니 거의 100만명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약간만 정보를 과장해서 국민들을 흥분시켜도 청와대가 뒤집힐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속보로 법률안 반대 시위자 100만명 넘어라는 문구를 내보냈고 인터넷에도 기사를 띄웠으니, 조금 있다 내보낼 8시 뉴스는 시청률도 대폭 상승될 터였다.

     

    하지만 예전에도 특종이 터지기도 전에 DVB방송국에 먼저 알려져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유도 국가대표였던 박종주 선수의 열애 현장을 잡았는데, DVB에서 FPB방송국이 박종주 선수의 사생활을 추적해열애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스토킹방송국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거였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터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두 방송국의 뉴스는 10일 오후 8시에 시작됐다.

     

    FPB 8시 뉴스

     

    날이 갈수록 날씨는 추워지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100만명 넘는 국민이 서울시청 일대를 가득 채웠는데요. 뇌사자의 장기 이식등 절차에 관한 법률,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심재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심재민 특파원입니다. 지금 하늘에서 촬영한 장면을 보고 있으신데요. 무려 1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서울 시청 일대를 가득 메웠습니다. 잘 보시면 어린이부터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까지 함께 나와 어두워진 밤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10만명으로 시작된 운동이 닷새만에 열 배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입장은 여전히 완고합니다. 한 번 통과된 법률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법률의 개정이 없는 한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과연 국민의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법률을 국회의원이 마음대로 제정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기계에 의존하여 단지 목숨만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의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이번 법률에 대하여 뇌사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족의 의견 없이 담당 의사의 판단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뇌사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뇌사자가 생전에 연명치료를 거부했는지와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기를 원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족의 의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인데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 법안,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서둘러 통과를 시켰을까요. 아마 건강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재민 특파원이었습니다.“

     

    DVB 8시 뉴스

     

    물가인상과 외국투자기업의 외면 가운데 오늘 서울 시청에는 20만명의 국민이 모여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는데요. 중간 중간에 촛불 대신 술병을 들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추운 겨울에 서울 시청까지 내몰았을까요. 박선미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박선미 특파원입니다. 이곳은 오후 3시부터 붐비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국민들이 가득 앉아있습니다. 저기 보시는 곳에는 발언대가 있는데요. 몇몇 정치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차례로 발언대에 올라가 이번 법률의 제정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좋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돈있고 인맥있는 사람이 최고다 이겁니다! 어디, 돈 없고 인맥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

     

    “5시간째 계속된 발언 중에는 취객이 발언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법률을 찬성하는 사람이 올라가 발언 도중 썩은 계란을 맞기도 했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간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경찰이 이 시위를 불법시위로 간주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발생하면 인간은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가정이나 국가에서 찾게 됩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가의 정책이 잘못돼서 내가 이렇게 산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데요.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하에정치적 집회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몇몇 정치인들이 이런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명분을 쥐어주고 피와 땀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게 만드는 것이지요. .”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는 안락사를 허용한 바 있습니다. 장기 기증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과연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법률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낳은 시위, 이들이 오후 3시부터 이 자리에 나오지 않고 일을 했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갈등을 위해 갈등을 만드는 시위현장에서 박선미 특파원이었습니다.”

     

    8장 전조

     

    당신, 이번에 서울시청에서 시위하는 뉴스 봤어요?”

     

    그녀는 핏기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 봤어요. 그건 왜요?”

     

    어떻게 생각해요?”

     

    담담한 목소리는 오히려 슬프게까지 들렸다. 사실 그도 그 시위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법률을 반대하기 위해 참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 자리까지 나아온 건지,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했다가는 그녀가 실망할 터였다. 그녀는 늘 시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들도 국가를 위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것밖에 방법이 없나 싶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얼굴 근육을 움직일 힘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을까요?”

     

    그녀는 항상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만드는 것에 그녀는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나라를 위한다면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교회에서도 그렇게 배웠고요.”

     

    ... 맞아요. 우리가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게을리하거나 욕심때문에 갈등을 만들 때 우리가 살기 힘들어지는 것이고요. 예수님도 늘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셨잖아요.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해요.”

     

    그는 어느 순간부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그러한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환자였다. 이제는 자신의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어하는 환자였다. 그런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했다가는 그녀의 병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었고, 더 이상 그녀를 볼 면목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그밖에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 병원에 오는 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9장 재판

     

    피고인측 변론하세요.”

     

    재판장님, 국가명예훼손죄는 우리 형법전에 없는 죄명입니다. 국가는 인격의 주체가 되지 않으며, 이러한 사건은 우리나라에 존재할 수도 없고, 재판 대상이 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이는 우리 형법이 취하고 있는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법원 2011.9.2. 선고 201017237 판결에 의하면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가 있습니다. 이미 대법원의 입장이 뚜렷히 밝혀진 상태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국가의 명예훼손에 대하여 검토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피고인측 변호인의 입장에는 울분이 섞여있었다. 국회가 뇌사자장기이식등절차에관한법률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최한 사람들을 명예훼손죄로 고발했고, 법원은 말도 안되는 논리로 이 재판을 진행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소는 하지 못하더라도 시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주최자들을 묶어둘 생각인 듯 싶었다.

     

    재판장님, 피고인측은 현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피고인들의 행위 중에는 법안을 찬성한 국회의원들의 명단을 유포한 행위도 있으며, 이들이 어떤 병원에 자주 다녔는지, 가족 중 장기 이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유무도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명예가 훼손된 문제라기보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명예가 훼손된 것입니다.”

     

    재판장님, 국가의 명예훼손을 인정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를 찾아도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극우주의자가 독일 군대는 다 살인마들이다라고 말해 국가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를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한 판례가 있으며, 다른 국가는 이러한 소송을 전혀 찾을 수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법원이 국가의 명예훼손을 인정할 경우 우리 법원은 세계적으로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측은 지금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법체계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준법정신에 의해 재판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명예훼손죄 전문가인 박상철 교수는 악의로 국가기관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예외적으로 국가의 인격을 인정하여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박상철 교수가 말이지요?”

     

    깍지를 끼고 한숨만 쉬던 판사의 눈이 번뜩였다. 박상철은 자신이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친구였으며, 함께 사법시험을 합격한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이 사건에서 양측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있어보이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논리 구성은 가능할 터였다. 정부의 편을 들면 승진이 가능했고, 박상철의 논문을 인용해도 좋을 것이었다. 자신의 판결은 형법 기본서 각주에 들어갈 것이었고, 이는 자신뿐 아니라 박상철에게도 득이 되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학설은 판례가 뒷받침될 때 주목을 받으니 말이다.

     

    판사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10장 관찰력

     

    자네,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아나?”

     

    병원장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인턴인 신참은 양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두려움에 젖은 눈빛으로 병원장을 바라봤다.

     

    내 방에 들어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인턴은 혼란스러워졌다. 예전에 뭔가 잘못한 분위기로 이 방에 불려온 적이 있었나를 곰곰이 되짚어봤다. 처음 인턴으로 뽑혀 인사를 드리러 온 적 빼고는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요즘은 잠도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기억력이 흐려져 그런 게 아닌가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듯 싶었다.

     

    , 처음 인사드릴 때 빼고는..”

     

    그래, 그러니까 두 번째란 말이지.”

     

    ,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네,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나?”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 인턴에게는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배웠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의사라도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배웠다. 패치 아담스, 그 영화가 그가 의사가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병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틀렸어.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관찰력이야. 한 눈에 보고도 환자가 어디가 아픈 건지, 얼마나 시간을 들여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관찰력. 근데 자네는 관찰력이 좋은 편인가? 나쁜 편인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자네는 관찰력도 없고 눈치도 없구만.”

     

    ?”

     

    내 책상에 무어라 쓰여 있나?”

     

    그는 책상에 다가가 그곳에 쓰인 글귀를 읽었다.

     

    "돈이 없는 자가 오거든 최대한 빨리 치료하고, 돈이 많은 자가 오거든 최대한 느리게 치료하라. 입니다.“

     

    그래. 근데 자네는 어제 감기에 걸려 찾아온 노인을 어떻게 했지?”

     

    그 노인은 단순한 감기에 걸린 거라, 약과 영양제를 처방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돌려보냈지?”

     

    , 단순한 감기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인턴의 얼굴로 두꺼운 명패가 날라왔다. 그 명패에 이마를 맞은 인턴은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피가 묻어나왔다.

     

    이 미친 새끼야! 그 노인이 누군지 알아? 일년에 한 번씩 몸이 아프다고 찾아와 특실을 전세내고 지내는 노인이야! 게다가 무식해서 지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입원시켰으면 너같은 새끼 연봉을 한 달도 안돼서 다 뿌리고 다니는 양반이야! 근데 그런 노인이 그냥 감기라서 집에 보냈다고? 미쳤어? ? 죽고 싶어?”

     

    인턴은 아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무어라 말했다간 명패가 아니라 유리잔이 날라올지도 몰랐다. 인턴이 계속 주저앉아 신음소리만 내고 있으니 병원장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씩씩대던 병원장도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인턴에게 말했다.

     

    관찰력이 없는 인턴은 우리 병원에 필요 없네. 나가봐.”

     

    해고라는 말인가. 인턴은 얼굴을 감싸고 나가며 자신이 한 일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었는지 생각했다.

     

    11장 이별

     

    선생님, 그녀는 좀 어떤가요? 나아질 기미가 보이나요?”

     

    그는 1년째 그녀에게 병문안을 왔지만, 그녀는 갈수록 더욱 지치고 힘들어보였다. 특별한 치료행위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의 일상은 링겔을 맞고, 그와 함께 나가 맑은 공기를 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의사는 그녀에게 곧 나아질 것이라고,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뿐이 하지 않았다. 그는 답답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찾아가 단 둘이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계속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주 병문안을 오시니 그녀도 분명 힘이 날 겁니다.”

     

    의사는 늘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YDNTN’이라는 질병을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아무 것도 안 나오고, 심지어 다른 병원 의사들도 잘 모르는 듯했다.

     

    “’YDNTN’이라는 질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일종의 근위축성측색경화증과 비슷하지만, 근위축성측색경화증과는 달리 치료가 가능합니다. 운동신경세포가 사멸되는 것도 아니고요. 대화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고, 당연히 호흡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잘 쉬면 나을 겁니다.”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잘만 쉬면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녀를 보세요. 온 몸이 뼈만 남은 것처럼 앙상한데 거기에 링겔까지 맞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로 입원한 어떤 꼬마애가 그녀를 보고 미라라고 손가락질까지 했어요. 대체 치료는 하고 있으신 거 맞나요?”

     

    치료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자꾸 말만 그렇게 하시는데, 지금 링겔 맞는 것 말고 특별히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의료행위를 모르시는 분이라 설명드려도 잘 모를 것 같지만, 치료는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오히려 이런 태도를 보이시는 게 환자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진정하세요.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최선인지 조금이라도 설명을 해주실 수 없나요?”

     

    , 이런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다른 환자들이 진료를 못 받고 있습니다. 전 그럼 이만.”

     

    의사는 불쾌하다는 듯 말을 끝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다른 병실로 향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그녀의 병실로 들어가 의사와 나눴던 대화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조용히 다 듣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의사선생님도 다 계획이 있으시겠죠.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있는 거니까요.”

     

    아니, 그래도 아무런 치료행위를 하지 않잖아요.”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치료는 아니겠지요. 아마 의사선생님들도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있을 거예요.”

     

    그는 벽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여지껏 그녀와 대화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긴 했지만, 이정도인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이야 좋다 쳐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도 그의 의견을 존중한 적이 없다. 그녀에게 그는 물론 고마운 존재이지만, 어디까지나 계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올바르게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그녀를 떠나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12장 희생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늘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아홉 명의 시위 주체자 전원에게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는 명예훼손죄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을 받은 것인데요.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가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나아가 국가 경제 상황을 고의적으로 악화시킨 점, 이미 통과된 법안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준법정신을 훼손시킨 점, 반성의 기미가 없고 재판 과정에 불성실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법정 최고형인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연합측은 역사상 유래가 없던 부정 재판이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고, 법원은 이러한 변호사 연합의 반응에 대해.”

     

    그는 차가운 눈으로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원인을 찾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종교, 의료, 언론, 정치, 모두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문제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은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대규모 시위는 주최자가 전원 징역을 받게 되자 자연스레 사라졌다. 가끔 인터넷에서 그들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보이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얼굴을 드러내고 나서서 시위를 하지는 않았다. 1인 시위를 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바로 옆에서 시위하는 척 피켓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 때문에 2인 불법 시위가 되어 경찰서로 잡혀가기 일쑤였다. 법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은 국가가 끊임없이 국가명예훼손죄로 고발하자 벌금의 부담을 못 이겨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소식을 들은 건 오랜만에 방문한 교회에서였다. 그녀는 그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뇌사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담당 의사의 소견에 의해 장기가 적출되었으며, 그녀의 장기로 인해 5명의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목사는 그런 사실을 아주 감동적으로, 자랑스럽게 설교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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