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신인, 한 소절 100번씩 녹음해 편집
한국 댄스음악의 비밀
히트곡 끝까지 한번에 부른 적 없는 가수도… 보아·비는 노래도 훌륭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는 한국 댄스 음악, 오디오로 들을 때는 훌륭하지만, 정작 자신의 노래를 라이브로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별로 없다. 왜일까.
거기에는 ‘비밀’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부 댄스 가수는 자신의 히트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실은 이렇다. 가수들이 음반을 녹음할 때, 노래를 한번에 불러 녹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8마디씩 끊어 부른 뒤, 각 부분을 합쳐 한 덩어리의 노래를 만든다. 이를테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가사가 있다면, ‘나는’ ‘너를’ ‘사랑해’를 수없이 반복해 부른 후, 이 중에서 가장 좋은 소리가 나온 부분을 골라서 노래 한 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물론 ‘사’ ‘랑’ ‘해’도 따로따로 ‘채집’이 가능하다. ‘찍어 붙이기’라 불리는 이 ‘짜깁기’ 편집 기법은 한국의 댄스곡 수준을 엄청나게 향상시킨 ‘비밀 병기’다.
한 가요 작곡가는 “신인급에 속하는 댄스가수는 보통 소절마다 100번씩 노래를 반복해서 부른다”며 “최악의 경우, 1000번씩 노래하는 댄스가수도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노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디지털 시스템이 뒷수습을 해준다. 6년여 전부터 가요계에 보급되기 시작한 소프트웨어 ‘프로 툴(Pro tool)’.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하면, 소리가 컴퓨터에 파형으로 입력되기 때문에 음정, 박자 모두 시스템 안에서 보정이 가능하다. 한 스튜디오 관계자는 “노래를 잘 못해도 편집을 통해서 얼마든지 잘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기술이 한국 댄스 음악의 한 축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기계로 조작한’ 잘 부른 노래를 춤추면서 라이브로 부를 만한 가수는 별로 없었다는 것. 2, 3년 전까지 입만 벙긋거리는 ‘금붕어’ 댄스가수들이 양산됐던 이유다.
몇 년 전까지 연예 기획사들은 댄스가수를 찾으려 오디션을 하거나 길거리 캐스팅을 할 경우, 춤·노래·외모가 모두 갖춰진 인재를 찾지 못하면, 춤과 외모가 되는 쪽을 택해왔다. 오디오는 컴퓨터의 도움을 얻어 만들고, 방송에서는 립싱크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어진 3인조, 5인조 댄스 그룹의 등장은 곱상한 외모의 멤버들 사이에 ‘노래만’ 되는 멤버를 포함시키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대중들 사이에 ‘립싱크 거부감’이 확산되며 노래 잘하는 댄스가수가 차례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아, 비, 세븐 등은 “노래만으로 승부를 걸어도 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송에서도 최근에는 라이브가 대세. 관계자들에 따르면, 방송 가요 프로그램에서 댄스 가수들도 70~80%는 춤을 추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한다.
노영주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는 “노래에 감정을 담아내지 못하면 아무리 기계적인 장치로 음정, 박자를 바로잡아도 소용이 없다”며 “음악적인 재능은 무시한 채, 외모만 보고 훈련시킨 댄스가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90년대 이전에 비해 요즘 댄스가수들의 가창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승현기자 [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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